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161)
〈 161화 〉 161 제 2회 묵언검객배 무술대회
* * *
2.
후드를 뒤집어쓴 작은 체구의 여자가 다가왔을 때, 해응응은 반신반의했다.
“저분이 동유럽의 전쟁영웅이자 코드네임 성녀로 불리는 각성자 이브 크리스티나이십니다.”
민우성의 거창한 소개와 달리, 이브의 첫인상은 마냥 귀여웠기 때문이다.
저런 작고 무해해 보이는 여자아이가 정말로 전쟁영웅이라고 불리는 걸까?
사르륵.
이브가 후드를 걷고, 안에 갇힌 긴 금발의 머리카락이 폭포수처럼 바깥으로 흘러내렸을 때.
빛에 비치는 그 찬란한 머릿결과 맑은 호수처럼 푸른 눈, 새하얀 피부를 보고 나서는 귀여움을 넘어선 아름다움을 느꼈다.
그래도 그 아름다움은 여전히 전쟁영웅과는 거리가 멀었다.
스스스.
호수처럼 맑은 눈과 서로의 눈을 마주 바라보며, 깊은 호수 속에 잠기는 느낌이 들었을 때.
그제야 비로소 해응응은 귀엽다거나 아름답다는 감상을 넘어서는 감정을 느꼈다.
그 감정의 정체는, 그리움이었다.
언니, 저랑 같이 북해빙궁에서 살면 안돼요?
북해빙궁의 소궁주.
무림에서 마주친 또 다른 구음절맥 환자.
가끔은 두려워져요. 영약을 찾아도 먹을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 뿐이라면. 그때에도 저희는 지금처럼 서로 의지할 수 있을지.
서로의 존재를 위안으로 삼으며 구음절맥의 치료를 위해 힘을 합치고 영물사냥을 다닌 동료.
언니가 제게 보여줬던 헌신과 자애, 우정을 기억해요.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이제는 제 목숨보다 언니의 목숨이 소중하게 느껴지지 뭐예요?
내공을 취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빼앗는 대신, 격체전공????을 펼쳐 역으로 제 내공을 해응응에게 넘겨준 생명의 은인.
끝내 그녀가 원치 않아도 피안의 저편, 이승세계 너머로 떠나보내야만 했던 인연 중 하나.
‘빙소소.’
오래도록 잊고 지냈던 그 이름을 되새기는 순간, 기억이 폭포처럼 밀려들어왔다.
“!”
빙소소가 그녀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짓더니 걱정스레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괜찮으세요? 어딘가 많이 편찮으신 곳이라도 있으신가요?”
해응응은 고개를 저었다.
가볍게 훔쳐낸 눈물 너머로 빙소소였던 얼굴은 낯선 여자의 얼굴이 되었다.
“떠나보낸 인연이군요. 애도는 충분히 하셨나요?”
[그랬다고 믿었어요. 하지만 부족했나보네요.]눈꺼풀을 가늘게 떨며 감정을 추스르던 해응응.
한 차례 지그시 눈을 감고 다시 떴을 때.
그녀의 동요는 씻은 듯이 사라졌다.
[초면에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네요. 죄송해요.]“그럴 것 없어요. 저희는 각성자. 별보다 많은 목숨을 떠나보내죠. 동유럽이든, 동아시아든 망자를 기리는 마음은 모두 같아요.”
[성녀. 당신은 착한 사람이군요.]성녀가 고요한 호수처럼 깊이가 느껴지는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이브. 이브라고 불러주세요.”
[알겠어요, 이브. 저는 해응응이라고 해요.]“해, 응응? 독특한 이름이네요.”
[이름을 부르기 힘들다면… 저를 언니라고 불러도 좋아요.]“언니… 시스터Sister. 성녀인 저로서는 기꺼운 호칭이네요. 시스터 해응응.”
풀네임으로 부를거면 시스터는 붙이나 마나잖아요.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는 해응응.
그 모습의 무어가 마음에 뜰었는지 마주 웃는 이브 크리스티나.
두 여자의 사이에는 긴장된 공기도, 은근한 경계심도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오랜만에 마주친 자매처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서로 옆자리에 나란히 붙힌 의자에 앉아 이런저런 대화가 오갔다.
‘뭐지? 두 분끼리 통하는 얘기가 있나?’
‘저 시종놈도 당황한 건 마찬가지군.’
대쉬맨과 민우성이 마주친 시선에 멋쩍게 눈인사를 주고받고는 서로 두 여자의 뒤에 서서 자연스럽게 고개를 주변으로 돌렸다.
친숙한 시간을 누리는 두 여자들과 달리, 어색한 시간을 누리는 남자들 나름의 시선처리였다.
3.
우지우 본인도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그는 해남파에서 나름 정상인에 속하는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현실에서 무술대회라니요. 말이 됩니까? 각성자들끼리 싸우면 스쳐도 중상에 사망마저 빈번합니다. 이건 미친 짓이라고요.”
[무술대회에서 사상자는 피치 못하게 발생하곤 하죠. 참가자들도 각오하지 않을까요?]“아무리 정부기관의 행정력보다 길드의 자치권이 앞서는 세상이라도 그렇게까지 막나가는 짓을 공식행사로 벌이면 분쟁을 피할 수 없습니다.”
“자꾸 그러시면 경석이한테 이를 겁니다.”
깐깐하기로는 길드 제일로 손꼽히는 소경석을 호출하겠다는 말에 해응응이 시무룩해졌다.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소경석은 무술대회를 개최해서는 안 될 49가지 이유를 쉬지 않고 댈 수 있는 인간이었다.
“안전이 걱정된다면 제가 도와드릴 수 있어요.”
“예? 아니, 진심이십니까?”
[이브가 도와줘도 안 되나요?]“성녀님이 도와주시면 안 될 게 뭐가 있겠습니까. 목이 떨어져도 늦지 않게 붙이면 다시 살아난다는 그 성녀님이신데. 헌데 저희들을 위해서 꼭 그렇게까지 하셔야겠습니까?”
“고국의 싸움은 끝났어요. 이 먼 극동까지 찾아온 것도 일선에서 물러나 자유를 얻었기 때문이죠. 남겨진 시간은 오롯이 제 몫이에요.”
민우성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고등급 각성자가 능력을 사용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그가 아니었다.
당장 성녀 뒤에 기립한 채 주변을 둘러보던 대쉬맨부터 기겁하고 나섰다.
“성녀님! 저희 같은 것들을 위해서 귀한 수명을 쓰실 필요 없습니다. 저기 저놈들 중 태반은 일확천금이나 노리고 온 한량들입니다!”
“나머지 반은 진지하게 면접시험에 참석한 각성자분들이라는 말씀이시군요.”
이게 아닌데.
울상을 짓는 대쉬맨의 손을 성녀가 잡아끌었다.
깜짝 놀란 대쉬맨이 급히 손을 빼내려 하자, 성녀의 몸이 가볍게 딸려왔다.
깜짝 놀라 멈춘 대쉬맨.
다시금 잡아끄는 손에 저항도 못하고 대쉬맨이 손 하나를 내주었다.
“대쉬맨님은 정말 사려 깊으시군요. 저를 위해 그렇게까지 진지하게 걱정해주시다니. 그 자애로운 마음씨에는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성녀님…….”
“저는 알고 싶었어요. 묵언검객의 나라에는 어떤 각성자들이 있는지. 다음 세대를 이끌어나갈 인재들이 어떤지.”
성녀의 마음은 너무나도 순수하고, 아름답고, 고귀했다. 그래서 대쉬맨은 더 후회되었다.
‘여기 있는 새끼들 태반은 협회보조금이나 타먹는 날먹충이란 말입니다. 이런 새끼들 힘자랑에 당신 같은 사람이 수명을 쓰면 안 된다고요!’
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시청자 채팅들도 그와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도 그들이 차마 말하지 못하는 이유.
성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고귀함에 보답하고 싶었다.
당신이 보고 싶던 타향의 각성자들은.
당신이 지켜왔던 세계의 차세대 주역들은.
이렇게나 든든하다고.
이렇게나 대단하다고.
당당하게 외치고, 보여주고, 증명하고 싶었다.
대쉬맨이 이런 남자다운 표정 짓는 거 난생 처음 봄
어이, 「사나이의 각오」를 모욕하지 마라
오늘부터 바보형은 우리형이다.
대쉬맨 너도 남자였구나
오늘부터 구독관계에서 벗어나 대쉬맨과 나는 한몸으로 일체가 된다. 대쉬맨에 대한 공격은 나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
사나이의 각오.
그 뜨거운 의지는 말로 하지 않아도 전해졌다.
움켜쥔 주먹에서
돋아난 핏줄에서
너무 힘을 줘서 하얗게 질린 손등에서
악다문 입에서
눈물을 참는 눈가에서
고개 숙인 남자의 다짐에서
시청자들은 헤드캠에 비친 거울과
거울에 담긴 대쉬맨의 모습에서
한 남자의 진심을
한국인의 자존심을 느꼈다.
그 뜨거운 결의는 클립을 따고
면접장에 참석한 각성자들의
수많은 개인방송으로 전해지며
성녀가 어떤 마음으로 대회를 바라는지
대쉬맨이 어떤 마음으로 그녀를 말리지 못하는지를 모두가 알게 되었다.
“묵언검객님, 무술대회를 하고 싶습니다!”
“무술대회에 참가하게 해주십시오!”
“최대한 사상자가 나오지 않게 신경 쓰면서 저희의 저력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지상파방송에는 미처 담기지 않았던 대회개최의 전말.
겉으로도 감동이 몰아치는 그 뜨거운 외침들을 한 남자는 속으로도 느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진지함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었던 면접장.
자신을 향한 유치한 시기나 질투에 짜증만을 느끼던 민우성은, 어느새 변해버린 참가자들의 마음을 읽고 전율에 휩싸였다.
‘한 사람의 숭고한 마음이 한 남자의 진심을 끌어내고, 한 남자의 진심이 모든 참가자들의 동의를 이끌어내었구나.’
과연 성녀라 불릴만한 인물이며
성녀의 시종을 자처할만한 인물이었다.
“우지우씨. 이들의 각오를 봐서라도 기회를 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지만… 성녀님께 너무 큰 폐를 끼치게 됩니다. 아무리 성녀님이 원하시더라도…”
“성녀님의 과도한 능력사용을 방지하기 위해 의료진을 모은다면 해결될 일입니다. 마침 얼마 전에 의료진을 모집한 적이 있지 않습니까.”
비상연락망은 이미 존재한다.
민우성의 말에 우지우도 연락망의 존재가 기억 났다.
[이래도 경석씨한테 이를 건가요?]“이렇게까지 판이 깔리니 어쩔 수가 없군요. 저는 말렸습니다.”
마지막 반대자 우지우까지 두 손 들고 항복하며 의료진 소집을 적극적으로 도우니, 더는 누구도 무술대회 진행을 막을 수 없었다.
그렇게 제 2회 묵언검객배 무술대회의 개막이 이루어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