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255)
〈 255화 〉 255 만만치 않은 남자
* * *
1.
친분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그저 담배가 피우고 싶었던 그녀.
하지만 친분을 물었던 민우성이 듣기에는 이쪽과의 친분이 더 깊다고 들렸다.
‘그 길드장님이 여자와 남자 사이에서 남자를 골랐다고?’
동성이 편해서 그런지, 이성이 꺼려서 그런지.
이유는 몰라도 은근히 여성을 편애하는 길드장 답지 않은 대답이었다.
‘정말 친한가보네.’
운전대를 쥔 민우성.
한참 운전을 하다가 잠시 신호를 대기하는 사이, 거울로 시선이 향했다.
파이프담배를 만지작거리는 해응응.
길드장은 확실히 애연가였다.
하루 2시간은 꼬박꼬박 파이프담배를 물고 있으니, 가만히 차를 타기 지루했나보다.
그가 넌지시 말했다.
“피우셔도 괜찮습니다. 저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연초는 가서 피울 거예요.]피우지도 않을 담배를 미리 꺼내…?
가서 피운다면, 박지오라는 그 남자와 함께 피우겠다는 뜻인가?
민우성의 표정이 굳었다.
그리 생각하고 보니 담배를 만지작거리는 모습도 어쩐지 심상치 않게 보였다.
길드장의 곁에 있는 남자 중에서 길드장을 노리는 건 우지우 같은 얼뜨기뿐이라고 여겼던 그로서는 제대로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박지오. 너, 뭐하는 놈이냐.’
운전에 집중하는 척, 고개를 돌린 민우성.
그의 눈에 고요한 분노가 차올랐다.
2.
난봉꾼 박지오.
작년까지의 그는 그렇게 불렸지만, 요즘은 주변의 평판이 부쩍 달라졌다.
“박쌤. 요즘 사람이 많이 순해졌어? 물 빼러 다니지도 않는다면서?”
“우리야 늘 놀던 곳에 있으니 시간 비면 나와. 여자는 몰라도 술이라도 한 잔 해야지.”
파트너를 만들고 육체적인 쾌락만을 주고받는 관계를 추구하며, 때로는 그보다 더욱 편리한 유흥을 즐기던 난봉꾼.
그랬던 그가 해응응의 미모를 눈에 담은 뒤로는 유흥도 끊고 파트너 관계도 정리했다.
“오빠 우리 궁합 좋았잖아.”
“그래, 좋았지.”
“근데 왜 그만 만나자고해? 딴 여자 생겼어?”
“생긴 건 아닌데. 마음 가는 사람은 있어.”
“별일이네. 오빠 같은 사람은 평생 연애는 못할 줄 알았는데. 까이면 연락해. 나야 오픈마인드니까. 그래도 너무 늦음 알짤 없다?”
유흥을 즐겨도 그 여자를 가질 수 없다는 생각에 몸이 차갑게 식었다.
관계를 이어나가도 여자들을 그녀의 대체품으로 여기는 자신의 본심에 놀랐다.
“박지오 그 새끼 요즘 선비생활 한다면서?”
“그놈 완전 또라이야. 문란한 생활은 다 즐기더니 왜 갑자기 개과천선한 것처럼 굴어?”
“여자한테 반했다던데? 어떻게 생겨먹은 여자인지 진짜 궁금하기는 하네. 명호동 벌쳐가 지뢰매설도 그만두고 오입질을 끊다니.”
문란한 생활을 함께 즐기던 동료 작곡가들과의 관계도 자연스레 멀어졌다.
뒷담까지는 아니라도 사는 방식이 달라지니 그와의 만남을 꺼려하는 이들이 늘고, 업무상으로도 크게 엮일 일이 없었다.
작곡가란 모름지기 제 노래를 사줄 거래처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후우. 더럽게 집중 안 되네.”
짜증스레 머리를 흐트러뜨리다가 외투를 어깨에 걸치고 엘리베이터에 탄 박지오.
도중에 멈춰선 층에서 들어온 여자가 어맛 하고 놀라더니 얼굴이 따갑도록 대각선 뒤에서 훔쳐보는 기색이 느껴졌다.
‘수수하시네. 파티는커녕 클럽도 안 다녔을 평범녀인가. 힙은 의외로 커 보이는데. 운동은 아니고 그냥 살이 찐 거겠지? 뒤로 할땐 좋겠네.’
아무렇지도 않게 난봉꾼 시절의 버릇처럼 여자를 품평하는 박지오.
마음만 먹으면 1분 만에 키스도 하겠다는 직감이 들었다.
“어… 저기…….”
“아.”
생각이 너무 길어져서 그럴까.
자신도 모르게 거울 너머로 여자를 너무 오래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을 붉히며 몸을 배배 꼬는 여자의 모습에 괜히 장난기가 일었다.
“저 너무 좋아하지 말아요.”
“아……. 역시 여자친구 있으시죠?”
박지오보다 윗층에서 먼저 타있던 남자가 세상에게 배신당한 비극의 주인공처럼 충격에 빠졌다.
여자는 언제나 새침하고, 표독스러운 눈으로 째려보고, 말만 걸면 없던 약속이 저절로 생기는 생물이 아니었단 말인가?
‘이놈 이 여자 좋아하네.’
예전 같았으면 보란 듯이 손도 잡고 진도도 빼고 수컷으로서의 우위를 과시할 그였지만, 상사병을 겪고 난 뒤로는 마음이 달라졌다.
손 위에 올라온 먹이처럼 가볍게 가지고 놀 수도 있지만, 손 하나 대지 않고 고개를 돌린 박지오.
다각다각.
힐신은 발을 동동 구르며 괜히 말 걸었다고 쪽팔려하는 여자의 기척에 남자는 동공이 거세게 떨렸지만, 박지오는 신경을 껐다.
‘이것도 많이 봐준 거야, 어린 친구. 작년이었으면 멘탈 다 털었을 거라고.’
뛰어난 매력이란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가져간다.
잘생기고 예쁜 외모는 선제공격권과도 같다.
엘리베이터에 타서 내리기까지의 1분 간.
그는 딱히 노력해서 뭔가를 하지 않아도 이 엘리베이터의 승자가 되었다.
이러니 문란하지 않을 수가 없었지.
띵─.
로비를 가로질러 건물을 나온다.
건물 밖 흡연실까지 20m.
몸 좋은 각성자에게 모여 있던 시선이 그가 내딛는 걸음마다 한 명씩 그에게 넘어왔다.
헬스장으로 향하는 남자를 바라보던 카페 야외테라스의 여대생들, 횟집 입구에서 등산복을 입은 아저씨들, 점심시간을 맞이한 직장인들까지.
이럴 적이면 매 순간 그런 실감이 난다.
이 세상은 자신을 위해 존재한다고.
‘나란 놈이란, 참. 조금 시선이 모여든다고 금방 우쭐해져서 즐기기나 하다니.’
외투로 들어간 손이 담배 곽을 잡았다.
그리고 멈추었다.
담배를 쥔 손도, 흡연부스로 향하던 걸음도.
그 앞에 선 여자를 바라보는 눈도.
그녀가 해응응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머리도.
전부, 시간이 멈춘 것처럼 멈추었다.
휘오오.
코를 찌르는 인위적인 향수에서는 느낄 수 없는 부드러운 향기가 바람을 타고 흘러왔다.
그를 보던 많은 사람들이 느꼈을 설렘이 지금 그의 가슴에서 일어났다.
모든 것이 예전과 같지는 않았다.
땋아 올린 긴 생머리를 비녀로 꽂은 머리모양도, 하얗게 드러난 목선도, 비 한 방울 안 내리는 날씨에 들고 다니는 비닐우산도.
전과는 달라진 지위를 알리듯이 곁을 지키는, 정장차림의 무색무취에 가깝게 존재감이 없는 남자비서도.
지하 1층 악기연습실의 흡연실에서 마주보던 때와는 몹시 달랐다.
슥
그런 박지오를 향해 한 손에 끼운 파이프담배를 들어 보이는 해응응.
쓸어 만지고 싶을 정도로 매혹적인 손가락이 담뱃대를 손톱으로 가볍게 툭툭 두들겼다.
야심한 새벽에 복도에서 다른 연습실 이용자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목소리를 내지 않고 주고받던 신호.
한 대 필래요?
신호는 언제나 해응응이 건넸고, 그럴 때마다 박지오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달칵.
한 손에는 담배를, 반대 손에는 지포라이터를 들고 뒤따르는 박지오.
그의 걸음은 어느 때보다도 경쾌했다.
3.
길드장의 흡연시간은 길다.
필터담배가 아닌 파이프담배로, 오랜 시간 충분히 뜸을 들여 시가를 피우듯이 연기를 입에 머금고 즐긴다.
에너지를 얻기 위해 짬을 내어 담배를 피는 것이 아니라 연초를 피우는 시간을 즐기기 위해 일정을 비울 정도로 길드장은 상당한 애연가였다.
‘역시 필 걸 그랬군.’
담배도 피지 않는 사람이 왜 따라 오냐며 눈총을 주던 길드장.
흡연부스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입구를 지키는 처지가 처량하기 짝이 없다.
담배를 폈다면 지금쯤 그가 선 자리는 흡연부스 밖이 아닌 안이 되었을 것이다.
“본부에 정보지원바람.”
국가안보국의 정보라인을 이런 식으로 이용해서는 곤란하다는 사실쯤은 알고 있다.
정보국에서 그가 사감을 품지는 않았는지 의심하기 시작하면 하루아침에 그를 향한 지원을 끊을지도 모른다.
“이름 박지오. 현업 작곡가. 주소지 해남1동 금선오피스텔 603호. 해당 인물에 대한 모든 신상정보 및 특이사항을 알려주길 바란다.”
남자의 질투는 추하다.
알고도 저지르는 질투는 더욱 그렇다.
정보요원으로서도, 접객당주로서도, 그리고 한 사람의 남자로서도.
실시간으로 자존심에 금이 간다.
하지만 박지오를 처음 본 순간부터 그런 초조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불쾌할 정도로 잘생겼군.’
그리고 그 사실을 스스로도 알고 있다.
자신의 외모를 이용할 줄 아는 남자다.
심지어 그는 외모만 믿는 것도 아니다.
본부 : 조사결과, 현 A급 작곡가로 유명 엔터테인먼트 여러 곳과 작년 한해 7건의 히트곡 계약을 체결. 단일 최고 계약금 35억 기록.
본부 : 현재 곡당 평균 작품료로 3천만 원을 기록. 올해 들어서 긴 휴식기를 가지는 중.
실력도 있다. 그것도 상당한 수준이다.
각성자는 아니지만 각성자식 등급체계에 따르면 작곡가들 사이에서는 십대길드의 고위간부, 대형길드 길드장에 비견되는 수준이다.
본부 : 여자관계가 문란하다는 흠이 있었지만, 최근 몇 개월 간 관계를 지닌 파트너를 모두 정리하고 유흥업소 출입을 모두 끊은 것으로 추정.
본부 : 신용결제 및 스크린폰 이동정보 열람결과, 건강에는 이상 없음.
유일한 흠결인 문란한 여자관계도 손수 정리하고 유흥을 끊은 지도 긴 시간이 지났다.
‘만만치 않군.’
마음을 고쳐먹은 선수.
여자를 빼앗기기에 이보다 위험한 상대도 없다.
자신의 것도 아닌 여자라면 더욱.
담배냄새. 그래, 이게 부족했었어. 내가 기억하는 이 여자의 냄새는 바로 이 냄새였지.
그립구나. 매일 새벽 같이 담배를 피우던 그때가. 그때로 돌아갈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하물며 상대가 의미심장한 생각을 하고 있고, 그것을 흡연부스 밖에서 묵묵히 훔쳐보기만 해야 하는 처지라면 더더욱.
담배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살심을 참기가 정말 쉽지 않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