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256)
〈 256화 〉 256 민우성은 진지했다
* * *
1.
해응응.
그녀와의 대화는 말보다 침묵이 길었다.
‘담배가 그리도 좋은가.’
피우는 본인이 할 생각은 아니지만, 흡연가인 박지오도 질릴 정도로 만끽하는 시간이 길다.
긴 흡연시간은 여유로움의 상징이다.
그렇다면 해응응은 박지오가 살면서 본 가장 여유로운 사람이었다.
[일은 잘되시나요.]“작년에 고생한 보람이 있어서 올해는 편히 쉬고 있습니다. 빌딩을 하나 샀거든요.”
생각보다 실력이 좋다.
해응응의 박지오에 대한 평가가 올랐다.
[어떤 악기로 연주했나요?]“가상악기를 다룹니다. 키보드로 연주를 하고 작곡 프로그램으로 믹싱을 돌리는 편이죠.”
[그 노래도 사람도 공격할 수 있나요?]“다크 일렉트로 믹스로 공격적인 비트를 채용하기도 했죠. 이번에 데뷔한 아이돌그룹 슈퍼비스트의 1집 대표곡 슈퍼비스트가 제 노랩니다.”
[궁금하네요.]무언가 초점이 맞지 않는 대화가 오가고 있지만 박지오는 마냥 대화가 오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로 환심을 사고 싶은 여자와 대화를 나눈다.
남자에게 이보다 더한 기쁨은 없다.
“어떠십니까?”
[즉석에서 연주하기는 힘들겠네요.]“전자악기의 한계이기는 하죠.”
[그래도 진법과 장비를 갖추고 음향을 스무 배 이상 증폭해서 터뜨리면 비트에 심장박동을 맞춰 터뜨릴 수 있겠어요.]“하하. 심장이 터질 것처럼 근사한 비트라는 칭찬 맞죠?”
…정말로 어떻게 대화가 성립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두 사람은 이 대화에 만족했다.
[십대엔터와 척을 질 작곡가가 필요해요.]“아. 그게 그거였습니까? 곡이야 대충 아무거나 줘도 되니깐 삼 개월만 십대엔터랑 계약서 쓰라던 묘한 제안.”
[이미 계약하셨나요?]“아까도 말했다시피 올해는 쉬는 중이었던지라. 계약은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애들, 노래를 잘하는지는 모르겠어요.]“하하. 너무 솔직하신 거 아닙니까?”
[그래도 근성은 있어요. 심사위원들 말로는 몇 명은 재능도 있다고 하고요.]무술을 배우는 근성을 노래에도 발휘한다면 재능을 꽃피우는 건 일도 아니다.
해응응은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기에 느긋하게 수첩에 글씨를 썼고, 박지오는 그 자신감이 여러모로 멋있다고 생각했다.
“어린 친구들이 못난 어른들 때문에 초빙강사를 못 구해서 고생이 많군요. 얘기만 들어도 제가 다 화가 납니다. 기꺼이 한 손 거들어드리죠.”
[공격적인 노래로 부탁해요. 나중에 교육용으로 다른 제자들에게도 가르치고 싶거든요.]두 사람의 계약은 성공적으로 체결됐다.
흡연부스에서 나온 박지오.
그가 줄곧 자리를 지키던 민우성에게 인사말을 건넸다.
“날도 추운데 밖에서 고생이 많으십니다.”
“박지오씨?”
“하실 말씀이라도?”
“혹시나 싶어서 말씀드리는데, 길드장님의 말은 반은 걸러 들으셔야 합니다.”
“예?”
“절대로 시청자들의 고막을 터뜨리고 심장을 멎게 만드는 살인노래를 만드시면 안 됩니다.”
“아. 취향 독특하시네. 미국 제품설명서 개그죠? 전자레인지에 애완동물을 넣고 돌리지 말라거나 세탁기에 아이를 넣고 돌리지 말라는.”
“절대로입니다. 아시겠습니까?”
“하하. 그런 짓을 실제로 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 있을 거다.
민우성은 그런 속마음은 꾹 눌러 삼켰다.
길드장의 사고치기 직전 단골멘트 “무림인이라면”을 모르는 자에게 굳이 그 사실을 설명해주고 싶지는 않았다.
박지오가 해응응과 담배를 핀 추억을 쌓았다면 그는 곁에서 보필하며 온갖 사건사고를 목격하고 뒷수습한 추억이 있다.
이 추억의 주인은 그이니,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그 혼자만의 것이어야 했다.
2.
십대길드를 적으로 두고도 두려워하지 않을 유일한 여자, 해응응.
그 해응응에게 부탁을 받았다.
십대엔터를 상대로 척을 져라.
이런 과감한 일, 원 없이 돈을 번 성공한 작곡가가 아니라면 절대로 저지를 수 없다.
박지오는 그런 사람이 자신뿐이라고 생각했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달랐다.
“이런 위험한 제안을 받아들일 사람은 당연히 나 혼자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피차일반이거든? 하필이면 이런 난봉꾼을 먼저 뽑다니. 응응씨도 참 실망이야.”
박지오에게는 안타깝게도 그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한 또 다른 작곡가가 있었으니.
악기연습실을 쓰던 장기임대인 동기이자 기타리스트 겸 작곡가 장건영.
히트곡 경쟁에서 그에게 밀리지 않는 뛰어난 실력의 A급 작곡가이자 먹을 것으로 점수를 땄던 여자였다.
“힘을 합치고 싶은 상대는 아니지만 오늘만큼은 특별히 눈감아주지.”
“내가 할 소리라니깐요, 이 난봉꾼 양반아.”
유명 기획사에 곡 판매 경쟁을 벌이는 라이벌답게 두 사람의 사이는 좋지 않았지만, 인간관계란 공공의 적이 나오면 극적으로 풀리기 마련이다.
“박지오. 너 돌았냐? 한동안 쉬더니 감 다 죽었네. 그쪽 의뢰 받으면 십대엔터에서 나가리 되는 거 몰라? 그러다 영영 쉬는 수가 있어.”
“건영언니~ 요즘은 자선사업에 재미 들리셨죠? 아무데나 곡을 다 주고. 사람 좋은 거 너무 티내고 다니면 언니만 힘들어져요~”
십대엔터에 고용된 작곡가들.
그들이 냉소적인 얼굴이나 은근히 비웃는 얼굴로 흘려듣기 힘든 소리를 하며 두 사람의 신경을 긁어대기 시작했다.
이번 작곡미션은 곡만 주고 끝이 아니다.
참가자들이 해당 노래를 얼마나 잘 소화하는지, 어떤 방향으로 노래를 불러야 할지 관리감독 하는 것까지가 작곡가들의 역할.
‘추잡하기도 하지.’
해응응의 섭외를 받고 찾아온 두 번째 작곡가 장건영. 그녀는 꼴에 십대엔터가 뽑은 작곡가랍시고 건방 떠는 후배의 모습에 코웃음부터 쳤다.
그녀는 이미 실무진이나 다름없는 민우성과 담당PD에게 내막을 전해들었다.
십대길드의 강력한 요청과 이만하면 합당한 요구다 싶어 제작진이 수락한 이번 작곡미션은 실은 십대길드가 판 함정이었다.
참가자들이 초빙강사와 얼마나 합을 잘 맞추는지, 얼마나 노래를 잘 부르는지 따위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
묵언검객 따라잡기 전투력 측정부문에서 해남파에게 허를 찔린 것을 보복하기 위한 회심의 역습일 뿐.
“요즘 애들은 갑질 참 못한다. 그치?”
“어디 가서 그런 소리 마셔. 꼰대 소리 듣기 딱 좋아.”
박지오와 장건영이 해남파 참가자들을 도우면서 숨통이 트였기에, 참가자들 대신 작곡가들을 향한 은근한 협박이 시작된 것이다.
해응응과 해남파를 노릴 수는 없으니 경연대회에 나온 갓 스무 살이 넘은 애기 같은 참가자들을, 참가자들을 기죽이기 위해 작곡가들을.
예나 지금이나 십대길드와 십대엔터가 벌이는 짓은 참 유치하고도 추잡스러웠다.
그래서 더 웃겼다.
해응응 같은 백이 없던 시절에도 A급 작곡가로 잘 먹고 잘 살던 그들이었으니 이 정도 갑질은 비일비재했고, 대응도 어렵지 않았다.
“아~ 후배는 아직 모를 나이지? 십대엔터가 쉽게 써주는 대신 쉽게 갈아치우는 거. 어디보자, 올해로 3년 경력이니 밑에 보조로 붙인 애들이 알짜배기 다 빼먹기까지 얼마 안 남았네?”
“어, 언니도 참. 요즘 그런 거 없어요. 제가 언니 걱정 좀 했다고 화내시는 거 아니죠?”
“화는 우리 후배님 팽 당하고 나면 품을 게 화인데 무슨 말씀을~ 끈 떨어지면 나중에 연락이나 해요. 언니가 술 한 잔은 사줄게.”
신경 긁으러 왔다가 정말 팽 당하는 건 아닌지 우환거리를 얻게 된 여자작곡가의 표정은 정말 봐줄만했다.
“니도 망신당할래?”
“됐다. 어차피 커리어 족친 건 내가 아니라 너인데 뭐.”
박지오의 손짓에 십대엔터 측 초빙강사로 온 작곡가들이 꼴통 보듯이 하며 돌아갔다.
“애들은 어때? 박쌤이 먼저 와서 봤잖아.”
잠깐 편 좀 들었다고 난봉꾼에서 박쌤으로 호칭이 쑥 올라왔다. 박지오가 어이없다며 장건영을 흘겨보고는 대답했다.
“한 명이 탁월해. 둘은 괜찮고. 나머진 안 돼.”
“많이 적네. 십대엔터 애들이랑 붙기엔. 힘 좀 합쳐야겠어.”
“바라던 바야. 응응씨에게 점수를 딸 기회는 흔치 않으니까.”
라이벌이지만 그래서 더 서로의 실력을 인정하는 두 A급 작곡가가 손을 잡았다.
십대길드에게 일방적으로 기울던 경연 프로그램의 무게추가 맞춰지는 순간이었다.
3.
예선 2차전.
초빙강사와 함께 하는 작곡미션.
작곡가에게 받은 곡을 얼마나 잘 소화하여 부르는지를 시험하는 가창력 시험.
무술은 뛰어나도 노래에 약한 해남파 참가자들이 대거 탈락할 위기였지만, 박지오와 장건영의 도움 덕분에 위기는 무사히 넘겼다.
‘이걸 좋아해야할지 말아야할지 모르겠군.’
민우성은 박지오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긴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민실장님~ 보일러가 고장나서 너무 추워요.”
“그런 것 같아서 담요를 준비해뒀습니다. 수리가 끝날 때까지는 담요를 쓰십시오. 그리고 전 실장이 아니라 접객당주입니다.”
“치. 십대엔터 애들은 실장들이 직접 케어해준다면서 틈만 나면 기죽이려고 한단 말이에요.”
“…앞으로는 민실장이라고 불러도 좋습니다.”
“와! 민실장님 최고!”
애들이야 처음부터 십대엔터의 수작질에 일선에서 맞서 싸웠던 민우성을 좋게 보고 그만큼 잘 따르기는 한다.
[좀 더 빨리 연락할 걸 그랬네요. 이번에 힘써줘서 고마웠어요.]문제는 해응응의 평가였다.
이게 단순한 립서비스인지, 마음이 있어서 한 소리인지 긴가민가한 반응에 애먼 민우성의 속만 타들어갔다.
좀처럼 흐트러지는 일이 없는 민우성이 자신들을 앞두고 딴 생각에 빠져들자 2차 심사에서 합격한 참가자들이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민실장님 지금 길드장님 생각하시죠!”
“…!”
“헤헤. 실장님이 그런 표정 지을 때에는 늘 길드장님 얘기를 들은 뒤였잖아요. 이럴 땐 연애마스터 김한나의 어드바이스를 받아보시죠!”
“와대박설마길드장님좋아하세요? 길드장과비서의금단의사랑이런거절대못참거든요!”
“지수야 숨 좀 쉬면서 말해…….”
톡톡 튀는 매력의 김한나, 해남파 랩퍼 예지수, 노력파 일반인 차지연.
세 사람의 관심에 민우성은 반성했다.
애들 신경 써주면서 걱정을 덜어줘야 할 사람이 오히려 걱정거리를 해결해주겠다며 배려를 받고 있다니.
이래서야 보호자 실격이다.
반성하는 민우성과 달리, 해남파 수련제자 우수성적 3인방은 의욕이 가득했다.
“어디 들어나보죠.”
애들이 조언을 해봤자 무슨 대단한 조언을 한다고 큰 기대를 품겠나.
민우성은 별 생각 없이 가볍게 던진 말이었다.
“넵! 한나의 생각에는 길드장님에게 점수를 따는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은 게임 합방하기라고 생각합니다!”
“절대로 안 됩니다.”
“힝. 왜요?”
가볍게 던진 말과 달리 정색하며 거부하는 민우성. 그에게도 마음이 급해진 이유가 있었다.
“점핑레빗. 그 악마의 게임을 할 가능성은 단 1%도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민우성은 진지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