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639)
1.
너무 많은 사람들이 무림비망록으로 넘어갔다.
그 여파는 빠르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지방 길드들이 던전관리를 위한 인력부족으로 해남파에 무림인 지원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남미에서는 너무 많은 각성자들이 이탈하면서 국가의 존속이 위태로워지며 국경을 넘거나 무림으로 달아나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국내와 국외를 가리지 않고 전세계적으로 늘어나는 순화해서 말하면 무림비망록 빙의자이고 직설적으로 말하면 인생 리세마라하러 떠난 이세계 탈주자들.
그들이 사회에서 해왔던 역할을 방임하고 떠남에 따라 각성자 업계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문제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그거 혹시 제 책임인가요?”
“그럼 이 사달을 만들어놓고 아무 책임도 지지 않을 생각이었소? 가이드라인을 만들라고 했더니 인생 리세마라 치트키 꿀팁을 적으면 어쩌자는 거요.”
백소천은 진저리를 쳤다.
눈가에 거뭇한 기운이 어리는 것이 며칠간 잠도 제대로 못 잔 모양이었다.
“급한 대로 정부대응기관을 결성해서 국내에 한해서는 무림비망록 파일이 색출되는 즉시 삭제하는 프로그램을 국내 모든 PC에 배부하기 시작했소. 해외도 곧 작업에 들어가겠지.”
이세계 빙의티켓이 위험하니 티켓을 걸리는 족족 전부 찢어버리겠다는 발상이다.
일주일 쯤 밤샘을 한 보람이 있어보이는 제법 괜찮은 아이디어였다.
“정성들여 쓴 건 알겠지만 가이드라인 게시글을 다른 이들이 보는 일은 없을 것이오. 차원이동자를 대량으로 양산하는 글은 접근제한을 걸어 마땅하지.”
“지울 거면 속 시원하게 전부 지우지 접근제한은 왜 거나요?”
“대책도 없이 넘어간 사람들을 구하려면 누군가는 방법을 알아야 할 텐데, 언젠가 지구의 모든 혼란이 종식되면 무림비망록으로 탈주한 머저리들 중에 무림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것들을 데리고 와야 하지 않겠소. 장담컨대 제발 지구 보내달라고 애원하고 있는 것들이 반을 넘길 거요.”
자기들이 좋아서 넘어가놓고 후회를 할까?
반신반의하는 그녀에게 백소천이 말했다.
“절세미녀가 되고 새 인생을 살 수 있다고 할 때는 좋겠지. 제 운명이 평생 강호의 미친 칼잡이나 색마, 권력자들의 노리개가 되어 원치 않는 아이를 낳고 노예처럼 살다가 죽는 것이라면 그때도 좋다고 즐길 수 있겠소?”
“브이튜브 댓글창을 보면 그런 사람도 없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물론 없지는 않겠지. 하지만 피학적인 성향을 지닌 이가 아닌 이상에야 현대지구만도 못한 생활수준을 누리며 저보다 못난 것에게 깔리며 생활용품도 자동청소도구도 없는 무림지구에서 살고 싶을 이들은 천에 하나 꼴밖에 안될 거요.”
아닐 거 같은데.
브이튜브 댓글창에는 열에 아홉이 그러던데.
해응응은 속으로만 생각했다.
기껏 밤새워가며 힘들게 일하고 온 백소천이다.
격려하지는 못할망정 그의 사기를 실추시키는 이야기를 철야 끝에 건네는 것은 너무 매정한 처사였다.
뭣보다 무림비망록 파일 자동색출삭제 프로그램은 이미 제작과 배부가 진행되지 않았는가.
작업 전이라면 모를까, 이미 작업이 실행된 와중에 그거 쓸모없는 짓임, 이라고 초를 칠 필요는 없다.
“그럼 이제 다 괜찮은 거죠?”
“책임을 지라니까 뭘 발뺌을 하는 것이오.”
그냥은 넘어갈 수 없네.
역시 해남파의 살림을 맡는 내원주다운 깐깐함이다.
“지방을 순회하면서 관리에 실패한 던전을 폐쇄하기라도 하면 되나요?”
“그것도 시급한 일이지만 길드장님이 맡아야 할 건은 따로 있습니다.”
백소천이 잠시 침묵하며 어디론가 전음을 보내더니 한 달간 월급도 밀린 채 철야만 해온 블랙기업의 직원들 같은 몰골을 한 사내들이 몰려왔다.
그들의 정체는 비서실장 우지우가 수련에 매진하면서 안 그래도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던 와중에 업친 데 덮친 격으로 백소천의 일까지 맡으며 진짜로 과로에 시달리고 있는 비서실 직원들이었다.
“보고 올리게.”
내공을 얼마나 돌려가며 부족한 체력을 대신했는지, 더는 기로도 신체를 강제로 움직이게 만들 수 없는 것처럼 비서들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USB를 꽂았다.
150인치 와이드스크린을 통해 벽면에 쏘아지는 영상에는 유백색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금속동체로 이루어진 커다란 용이 하늘을 날고 있었다.
화면이 바뀌며 나타나는 훈장처럼 상처를 수집한 험악한 노인장전사, 더럽게 잘생긴 엘프활쟁이, 카리스마 넘치는 여군주와 그 뒤를 따르는 수많은 병사들.
이윽고 장면이 교차하며 메탈드래곤의 부하들과 인간족 연합군이 번갈아가며 나오다가 서로를 향해 일제히 돌격한다.
금속동체와 날붙이가 서로 충돌하며 일어나는 격렬한 전장의 소리.
웅장한 노래와 함께 세로로 길게 열린 전선의 길을 따라 정예부대가 메탈드래곤을 향해 돌진한다.
엄청난 속도감과 함께 용의 꼬리와 전사의 무기가 충돌하며 떠오르는 문구.
영상이 끝나자 해응응이 멀뚱멀뚱 화면을 쳐다보다가 비서를 돌아보았다.
“박수를 치면 되나요?”
“이 에픽판타지 시즌보스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게 빙의자 대소동과 무슨 상관이죠?”
“아주 밀접한 상관이 있습니다. 에픽판타지 유저들도 대거 무림으로 떠나는 바람에 월드레이드보스 최고난이도가 공략되질 않고 있습니다.”
“…!”
평상시라면 문제 될 건 없다.
에픽판타지는 동접자 최대인원을 자랑하는 게임.
레이드보스 클리어가 없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연예인의 재산을 걱정하는 것만큼 덧없다.
그런데 지금은 평상시가 아니다.
각성자들도 더 강한 무림인이 되겠다고 떠났고.
각성능력은 없어도 게임 속에선 내가 더 강하다며 자부심을 느끼던 랭커들도 떠났다.
무림인의 무공실력으로 은근히 랭킹권에 비벼보던 소수 랭커들도 마찬가지다.
“상위랭킹 1000위 안에서 하루 이상 접속하지 않은 랭커의 수가 60%를 넘겼습니다. 원인은 잠깐 사이에 고수들을 대상으로 무림비망록 파일이 풀린 탓으로 추정됩니다.”
“보스토벌실패의 패널티…”
“생각하시는 바가 맞습니다. 각 게임의 최종보스를 일정기간 내에 토벌하는데 실패하면 벌어지는 일. 현실게이트가 열릴 것으로 추정됩니다.”
현실세계에 월드레이드보스가 등장한다.
최소 백령신군과 대요괴, 어쩌면 폭군과 선각자, 정말 심하면 마선급의 강함을 지녔을지 모를 존재가 공략실패라는 인과율을 얻고 지구를 침범한다.
정말 보통 사태가 아니다.
비서들과 백소천이 저리 정색하는 것도 당연했다.
“메탈드래곤은 어느 정도로 강한 시즌보스인가요?”
“압도적입니다. 에픽판타지의 시즌보스들은 한 가지 특징이 있는데, 판타지 게임의 보스이니만큼 이전시즌 보스보다 다음시즌 보스가 무조건 더 강합니다.”
“…!”
“특히나 오버스펙이 거듭 된 장수중인 MMORPG에서 시즌보스제를 유지하려면 무적방어기는 물론이고 즉사기 패턴을 지니는 경우도 부지기수입니다. 심지어 그게 쌓이고 쌓여서 15시즌이나 된 겁니다!”
공포에 어깨마저 덜덜 떠는 비서의 어깨를 손으로 짚으며 백소천이 내기를 불어넣었다.
“진정하게. 뒤는 내가 알아서 설명하지.”
“가, 감사합니다…”
백소천이 파워포인트 버튼을 넘기자 세계지도가 펼쳐졌다.
“메탈드래곤이 출현하더라도 장문인이라면 어떻게든 이길 수는 있으리라 생각되오. 하지만 장문인이 메탈드래곤을 잡기까지 걸리는 시간동안 녀석이 작정하고 대륙을 파괴한다면 그 피해가 얼마나 심각할지에 대해 세계 각성자협회에서 추산한 결과가 이것이오.”
━━━
최소 두 개 대륙 초토화.
창공에 거대한 금속섬이 떠올라 비행경로 근처의 모든 금속성 물체를 끌어당겨 항공, 선박, 차량을 비롯한 이송수단 및 금속구조물의 붕괴가 예상 됨.
피해보호를 위해서는 금속물질을 보호할 거대 역장의 건설이 필요.
지구에 풀린 모든 탁기에너지를 총동원해서 도시의 경계를 사수하지 않을 시, 국가기능이 해체되며 인류의 문명이 3세기는 쇠퇴할 예정.
이후, 캡슐 및 컴퓨터의 접근이 불가능해지며 걷잡을 수 없는 수의 게이트가 열릴지도 모름.
도시국가 단위로 각국의 모든 행정역량을 집중시켜 역장의 범위를 좁히면 조금이라도 많은 인류의 자원을 존속시킬 수 있음.
대신, 향후 인류활동권은 현재의 3% 수준으로 급감하며 외부필드의 게이트를 감지하고 폐쇄하는 일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됨.
━━━
“지구 종말의 날이네요.”
이런 짓을 당하고도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
해응응 본인이야 어떻게든 살아남겠지만 다른 인간들에게는 도시와 국가, 사회가 건재하지 않으면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남을 힘이 부족했다.
힘이 있는 각성자라도 마찬가지다.
지구가 극단적으로 멸망으로 치닫고 문명의 혜택을 누릴 수 없다면.
그들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겠는가?
문명이 존재하는 또 다른 지구.
무림비망록의 무림지구이다.
1차 대탈주와는 비교도 안 되는 거대한 규모의 2차 대탈주가 시작되고, 인류는 완전히 회생불능의 결정타를 입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인류가 겪었던 모든 공격을 통틀어 가장 치명적인 몬스터의 침공이 될 것이오. 메탈드래곤은 절대로 지구로 나와서는 안 되는 존재요.”
“이걸 제가 막아야겠군요. 가능하다면 현실이 아닌 게임 속에서.”
백소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최우선 공략사항이지. 하지만 혼자서는 불가능하오. 에픽판타지에는 레벨에 따른 이라는 기능이 있소. 일정수치 이상 레벨이 차이나면 주는데미지는 줄고 받는데미지는 늘어나는 기능이오.”
“그딴 기능이 왜 존재하는 거죠?”
“무과금 유저들이 과금유저와 피지컬이 뛰어난 유저만 다 헤쳐 먹는 게임관행은 가상현실세계에서라도 바로잡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시위한 결과, 시간을 갈아넣어서 레벨을 손에 넣은 게이머들을 위해 만든 기능이라고 알고 있소.”
게임사가 일을 너무 잘해서 벌어진 일이라는 말이다.
이렇게 궁지에 몰리고 보니 의심도 든다.
처음부터 언젠가 이런 미래가, 아니 이런 기회가 올 것을 대비하여 수작을 부린 건 아닌가 하고.
게임은 인간계를 침략하기 위한 타 세계의 침공수단.
통상게이트로는 넘어올 수 없는 강력한 존재들의 침공을 허용하기 위해 인과율을 얻는 과정이다.
그런 존재를 해치우는데 필요한 조건이 늘어난다면 무과금 유저만 좋은 것이 아니라 침공을 하려는 이계의 존재들에게도 좋은 일이다.
평범한 게임이라면 무과금 유저들의 승리라며 환호했을 일이 자신이 한 말과 행동에 스스로 구속되어 괴로운 처지에 놓이는 자승자박自繩自縛을 이루었다.
“유의미한 데미지가 들어가려면 게임레벨을 어느 정도로 올려야하죠?”
백소천은 독약이라도 먹는 사람처럼 이를 악물다가 힘겹게 말했다.
“1000레벨.”
“…네?”
“이것도 필요최저레벨이오. 현재 가장 레벨이 높은 유저는 2050레벨을 달성했소.”
레벨 너무 높잖아.
기가 막혀하는 해응응에게 백소천이 쐐기를 박았다.
“시즌 15가 종료되기까지는 앞으로 두 달 남았소. 앞으로 59일 내에 최소 1000레벨을 달성해서 메탈드래곤을 죽이거나 누군가가 최고난이도 월드퍼스트킬을 달성하지 못할 시, 남은 사람들도 무림비망록으로 도망칠 생각을 해야만 하오.”
가상현실게임 등장 이후 가장 오랜 시간동안 가장 많은 게이머들의 사랑을 받아온 장수게임, 에픽판타지Epic Fantasy.
그 이름이 반요곡보다 더한 공포의 상징이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방송을 켜야겠군요.”
누군가는 멸망이 가시권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지금, 인류를 결집시켜야 했다.
동요하는 랭커들을 수습하여 메탈드래곤 월드퍼스트킬을 성공시켜야만 했다.
무림비망록으로 달아나지 않아도 희망이 있음을 보여주어야만 했다.
그런 막중한 책임.
짊어질 자격이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
“이번 게임방송은 제법 길어지겠어요.”
무림계 귀환자의 게임방송.
현대지구의 명운을 건 도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