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6
15화 경기장의 신(2)
MBS와 CT의 경기는 1세트부터 이변이 발생했다.
-아, 이게 웬일입니까! MBS의 승리를 책임져 줄 신지호 선수가 선봉으로 나와서 맥없이 패했습니다!
-CT의 선봉 박진수 선수의 초반 광신도 찌르기가 제대로 먹혔습니다.
최소한 3킬은 해줘야 했던 에이스 신지호가 1세트부터 패배해 버린 것.
잘하면 올킬까지도 기대했던 MBS로서는 골머리를 썩을 게 분명했다.
‘바보 같은 수를 뒀군.’
경기를 보며 이신은 생각했다.
1세트 맵 ‘투지’는 신지호가 선호하는 맵이었다.
아마 방진호 감독은 신지호로 하여금 본인이 좋아하는 맵에서 원하는 플레이를 해 기세가 오르도록 할 의도였으리라.
하지만 신지호가 선호하는 맵이니만큼, CT도 MBS 선봉으로 신지호가 나올지도 모른다고 예상했던 게 문제였다.
‘신지호도 머저리고.’
폼이 하락해 최근 부진을 면치 못하는 노장 박진수가 선봉으로 나온 이유가 뭐겠는가?
운영 대결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신지호를 이기지 못할 박진수가 꺼내 들 카드가 뭐겠는가?
당연히 초반에 승부를 보는 도박성 전략이다.
그걸 경계했어야 했는데 신지호는 상대가 만만하다고 너무 방심했다.
‘아니면 뭘 해도 막을 수 있다고 자신했는지도 모르지.’
하지만 박진수는 노장인 만큼 멀티태스킹과 피지컬은 떨어져도 컨트롤은 발군이었다.
유닛 하나하나가 소중한 살 떨리는 초반 승부에 강했다.
-신지호 선수가 선봉으로 나올 걸 CT가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노장 박진수 선수를 선봉 카드로 꺼내 아주 크게 재미를 봤습니다.
-예, 정말 노장다운 노련함이었습니다. 저 신지호를 1패도 없이 치워 버렸잖습니까!
-아, 화면에 나온 방진호 감독의 표정이 정말 안 좋네요.
-승점에 정말 목말라 있는 MBS인데 첫 판부터 승점 40점에서 멀어지고 있습니다.
-자, 2세트가 준비되고 있습니다. 제 역할을 다해 홀가분한 박진수 선수와 MBS의 차봉 박신 선수의 대결, 2세트 맵은 ‘안드로메다’입니다.
-여기서 또 지면 MBS는 정말로 안드로메다로 가는 겁니다.
신지호의 활약을 기대했던 MBS 팬들이 실망한 가운데, 2세트 경기가 시작되었다.
박신은 올해 20세로 프로 경력 3년차였다.
이름은 이신과 똑같은 신.
종족도 이신과 똑같은 인류.
심지어 키도 이신과 똑같은 183㎝.
이신을 존경하기에 인류를 주 종족으로 선택했다는 MBS의 1군 주전 박신!
‘짭신’이라는 불행한 별명을 얻긴 했지만, 그 덕에 e스포츠 팬들에게 나름 인지도가 있는 선수였다.
“짭신! 짭신!”
“짭신! 짭신! 짭신!”
경기장의 관객들이 입을 모아 소리쳤다. 킥킥거리는 웃음도 들리고 CT 팬들도 함께 외치는 것을 보면 응원보다 장난이 다분했다.
-신지호 선수와 함께 MBS의 인류 라인을 책임지는 박신 선수가 나왔습니다.
-신의 가호가 함께해서 반드시 MBS를 구원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보겠습니다.
캐스터의 농담에 관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MBS에게 오늘은 정말 안 풀리는 날이었다.
박진수는 1세트와 동일한 센터 참회실 전략을 펼쳤다.
본진이 아닌 맵 중앙지역에 참회실을 건설하는 도박성 전략.
참회실에서 생산되는 광신도가 빠르게 상대방 진영에 도달할 수 있어서 깜짝 기습 전략으로 가끔 쓰이곤 했다.
오늘따라 박진수의 광신도 컨트롤은 발군이었다.
광신도 1기가 박신의 진영에 난입해 인류의 생산유닛인 건설로봇을 2기나 잡아버렸다.
먹힌다 싶자 박진수는 참회실을 추가 건설하며 광신도를 생산, 계속 보내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진땀을 흘리며 어떻게든 막아보려 했던 박신은 결국 실의에 빠진 표정으로 채팅창에 항복을 뜻하는 GG를 쳤다.
-아, 박신 선수 GG!
-박진수 선수 오늘 되는 날인가요! 1세트도 그랬고 광신도 컨트롤이 제대로 살아 있습니다!
-한 번 쓴 전략을 또 쓰진 않겠지, 라는 심리의 허점을 찔렀죠.
-이야, 박진수 선수 오늘 벌써 2킬! 이러다 3킬, 4킬, 올킬 가는 거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3세트에 중견을 내보내는 MBS의 벤치가 우울해 보입니다.
3세트가 준비되는 동안 대형스크린은 관객석을 비추고 있었다.
움직이는 카메라에 비춰질 때마다 관객들은 웃으며 손을 흔들거나, 수줍어서 얼굴을 가리고는 했다.
준비한 피켓에 응원 문구를 써서 흔드는 관객도 상당수 있었다. 경기장 입구에서 피켓과 펜을 나눠주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피켓 응원이 가능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대형스크린에 이신이 비춰졌다.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삐딱하게 앉아 있는 폼이 e스포츠 관계자라면 익숙한 모습이었다.
-어? 지금 화면에 비춰지는 분 혹시 이신 선수 아닙니까?
캐스터 10년차 이병철은 얼굴이 보이지 않아도 이신을 한눈에 알아봤다.
해설위원 정승태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그런 것 같은데요. 저기 관객분, 실례지만 혹시 이신 선수 아닌지 얼굴 좀 보여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하하하.
관객석 전체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이신?”
“진짜?”
“대박!”
“어디야?”
관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할 때였다.
이신은 대형스크린에 자꾸 자신의 모습이 나오자 눈살을 찌푸렸다. 카메라를 향해 파리 쫓듯이 손짓을 했다.
-어어? 카메라 치우라고 신경질을 냅니다. 저건 이신입니다! 이신 선수예요!
-저런 성격 가진 사람은 세상에서 이신 선수밖에 없죠.
캐스터와 해설위원이 흥분해서 소리치자 관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남 눈치를 조금도 안 보는 이신의 돌직구 성격은 워낙 유명했던 것이다.
-아, 이신 선수 당황하네요. 어떻게 알았지? 하는 표정 같은데요.
-왜 눈치챘는지 본인만 모르죠. 아마 영원히 모를 겁니다.
웃음소리가 더더욱 커진다. 그리고…….
“꺄아아아악!”
“오빠다!”
“우와, 이신이다!”
이신이 마스크와 모자를 벗자 경기장이 열광의 도가니가 되었다.
이신은 집요하게 자신을 비추는 카메라를 똑바로 노려봤다.
검지를 들어 입술에 갖다 댔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관객들의 환호성이 줄어들었다.
이어서 카메라 치우라고 가볍게 손짓했다.
그제야 카메라는 다시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이 들어가 있는 게임부스를 비췄다.
비로소 진정되고 3세트 경기가 시작되나 싶었지만, 이미 이신 주변은 사인 요청이나 스마트폰 카메라 세례로 정신이 없었다.
-아, 관람을 하러 온 이신 선수가 제대로 경기를 못 보고 있죠.
-그러네요. 저희가 괜히 아는 체를 했나요. 관객 여러분, 원활한 관람이 될 수 있게 제자리에 앉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나 이신은 이제 기자들의 질문 공세에도 시달리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한국 e스포츠 최악의 사건이라 불리는 일을 당하고 사라져 버린 이신.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으니 소란이 오죽하겠는가.
급기야 경기장의 스텝들이 나서서 진정시키려 하는 상황까지 발생했을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