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73
172화 가족들(2)
“형!”
쫓아 나온 사람은 사촌 동생 이창민이었다.
이신의 기억에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형, 잠깐 시간 있어?”
“없어.”
짧은 대꾸와 함께 갈 길 가는 이신.
특유의 직설 화법에 잠시 당황해 사고가 정지된 이창민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는 허둥지둥 쫓아왔다.
“잠깐만, 잠깐만! 오늘 주말이잖아!”
“프로게이머는 그런 거 없어.”
“알았어, 그럼 갈 길 가면서 잠깐만 내 얘기 좀 들어주라.”
“하지 마.”
“……?”
“프로게이머 하지 말라고.”
용건을 꺼내보지도 못하고 거절당한 이창민.
난생 처음 겪는 묵직한 돌 직구에 또다시 사고가 일시 정지되어 버린 이창민이었다.
이신은 지하 주차장에 대기 중인 롤스로이스 팬텀을 타고 그렇게 유유히 사라졌다.
연습실에 출근한 이신은 바로 최환열에게 말했다.
“다른 팀이랑 연습 좀 하자.”
“그래? 어디랑 할까?”
“1군에 괴물 애들 많은 팀이랑.”
“잠깐만.”
최환열은 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연락처를 뒤져 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말했다.
“화성전자 괜찮지?”
화성전자.
바로 황병철의 소속팀이었다.
황병철뿐만 아니라 팀의 또 다른 신진 에이스로 떠오른 장기전 머신 신태호도 있었다.
괴물 플레이어로는 지난 2년간 꾸준히 주전 자리를 지킨 오창수가 있는데, 황병철과는 반대로 장기 운영에 능한 타입이었다.
“괜찮아.”
이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환열은 바로 화성전자 측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고는 승낙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리로 오겠대.”
“잘됐네.”
그런데 그로부터 10여 분쯤 뒤, 연습실에 웬 불청객이 찾아왔다.
“형!”
연습실에 울려 퍼지는 익숙한 목소리.
“신이 형!”
이신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바로 사촌 동생 이창민이었던 것이다.
“너 부른다.”
최환열이 옆구리를 툭툭 쳤다. 이신은 짜증 섞인 얼굴로 일어섰다.
“여긴 왜 왔어?”
“에이, 그렇게 매정하게 굴지 좀 마.”
연습실의 선수들 시선이 쏠려 있었다. 다들 이신을 형이라고 부르며 나타난 이창민에게 주목을 하고 있었다.
“따라와.”
이신은 이창민을 감독실로 데려갔다.
“와, 여기가 형 일하는 데야?”
“어.”
“연습실 좋다. 이런 데서 하면 정말 게임 할 맛이 나겠어. 근데 형 옆자리에 있던 사람 최환열이지? 와, 저 사람 개인 방송도 자주 봤는데…….”
이창민은 잔뜩 들떠서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다.
“용건.”
“아참, 형! 내가 고민이 좀 있는데 들어주면 안 될까?”
“말해.”
“실은 내가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어서 형한테 상담을 좀 받아보려고.”
“하고 싶으면 해보든가.”
“에이, 그것도 어디 하고 싶다고 다 되는 건 아니잖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학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맨땅에 헤딩을 해야 하는데…….”
이신은 그렇게 말하는 이창민의 심리가 이해되지 않았다.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왜 학원을 찾는단 말인가?
맨땅에 헤딩할 용기도 없으면서 왜 굳이 성공 아니면 실패인 이 길을 걷고 싶어 할까?
프로게이머로 성공한 사람들은 전부 남들이 하지 말라고 해도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중 상당수는 누가 전문적으로 가르친 것도 아닌데 이미 웬만한 프로 뺨치는 실력을 지니고 있어, 프로팀들이 먼저 주목했었다.
최환열이 발굴한 이신이나, 이신이 제자로 삼은 주디, 존, 차이처럼 말이다.
진로 때문에 상담이 필요하다는 것은 본인도 확신이 잘 안 서기 때문.
정말 하고 싶었다면 남들이 뜯어말려도 기어코 하고 말았을 터였다.
또한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으면 매달 열리는 아마추어리그에 참가해 좋은 성적 내고 준프로 자격을 획득하면 된다.
이신은 이미 이창민이 e스포츠에서는 성공 못 할 타입임을 알아보았다.
그래도 속단할 수는 없었다.
‘아직 게임하는 것을 보지는 못했으니까.’
뭐라고 이야기를 시작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위잉, 윙.
구형 폴더폰 특유의 요란한 진동 소리.
이신은 전화를 받아보았다.
“여보세요?”
-신이냐?
전화한 사람은 작은아버지. 바로 눈앞에 있는 이창민의 부친이었다.
“예.”
-창민이 그리로 갔지?
“예, 같이 있습니다.”
-걔가 요즘 이상한 바람이 들어가서 자꾸 프로게이머 하고 싶다고 난리다.
“들었습니다.”
-너처럼 성공하겠답시고 공부도 안 하고 학원 빼먹고 PC방 가고 그런다.
작은아버지는 나직이 한숨을 토했다.
-그런데 너처럼 어엿하게 성공한 케이스도 있으니까 마냥 하지 말라고 윽박지를 수만도 없고…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그냥 공부하기 싫어서 저러는 거거든.
“제가 보기에도 그렇습니다.”
-그렇지? 그런데 어떻게 좀 잘 타이르든가, 정 아니면 정말로 지 좋아하는 게임이라도 열심히 노력해서 프로게이머가 되든가 했으면 좋겠다. 뭘 하든 좀 농땡이 피우지 말고 노력을 했으면 좋겠는데 걱정이다.
구구절절하게 고민을 토로하는 작은아버지.
그래도 아버지처럼 프로게이머를 마냥 배척하지는 않아서 좋았다.
아니, 어쩌면 이창민이 원채 공부도 안 하기 때문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인지도 몰랐다.
세상 오래 살아본 어른은 한눈에 척 알아본다.
공부 외에 뭔가 다른 진로가 있어서 노력하고 있는지, 그냥 말만 앞세울 뿐 게으름을 피우는 것인지.
그냥 평소 생활 태도를 보면 커서 어떻게 될지 장래를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은 것이었다.
-명문대 나와도 다 성공하는 게 아니라느니, 그런 헛소리나 찍찍 해대고. 어휴, 내가 이렇게 하루하루 늙는다. 저러다 나중에 취업 전선에 서고 나서야 뼈아프게 대가를 치르지…….
그때, 가만히 듣고 있던 이신이 입을 열었다.
“지금 방학이죠?”
-어, 그렇지.
“그럼 일주일만 저한테 맡겨주시겠습니까?”
-그래도 되겠니?
“예, 저런 타입 많이 봤습니다. 그냥 한 번 해보라고 멍석을 깔아주면 현실을 알게 되겠죠.”
-그래……. 그럼 일주일이 아니라 열흘이라도 상관없으니 부탁 좀 하마.
그렇게 통화가 끝났다.
“뭐래? 우리 아빠지?”
“어.”
“나 프로게이머 해도 된대?”
“할 수 있으면 해봐.”
“…….”
“임시 연습생으로 팀에 넣어줄게. 짐 싸들고 와서 연습생들 숙소에 들어가.”
“정말?”
반색을 하는 이창민.
“아싸! 그럼 나 당장 집에 다녀올게.”
“택시 타고 당장 다녀와. 바로 숙소 들어가고 연습 시작할 거야.”
이신은 지갑에서 5만 원짜리 지폐를 꺼내주었다.
“알았어! 고마워, 형!”
희희낙락해서는 쏜살같이 달려가는 이창민.
이신은 나직이 혀를 차고는 다시 연습실로 나가 훈련을 시작했다.
곧 있으면 저 실실거리는 웃음이 사라지게 될 터였다.
?
* * *
?
이창민이 옷가지를 싸들고 돌아왔을 때, 올도어SCC는 화성전자의 1, 2군 선수들과 친선 훈련을 하고 있었다.
PC방처럼 모든 자리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이창민은 치열한 분위기 때문에 상당히 놀랐다.
‘뭐야 이게?’
3판 2선승제의 다전제 방식으로 번갈아가며 연습 게임을 치르는 선수들.
지고 나면 머리를 싸쥐고 괴로워했고, 다 죽어가는 표정으로 바람 쐬러 나가는 선수도 있었다.
그 전투적인 공기 탓에 이창민은 압도되어서 덩달아 긴장을 하게 되었다.
때마침,
“수고하셨습니다.”
“수고.”
이신이 화성전자의 1군 오창수를 가뿐하게 격파하고 인사를 나눴다.
오창수의 썩은 얼굴 표정을 보니 이신의 압승이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이신은 바로 이창민에게 까닥까닥 손짓했다.
이창민이 쏜살같이 달려갔다.
“어, 형.”
“종족 뭐야?”
“나 괴물.”
나쁘지 않았다.
이신은 같은 팀의 괴물 플레이어 유진영을 가리켰다.
“지금은 네 자리 없어. 진영이 쫓아다니면서 뒤에서 플레이하는 거 지켜봐.”
“응, 알았어. 근데 난 황병철이 더 좋던데.”
이창민은 황병철의 팬이었다.
“황병철은 참고가 안 돼.”
“쳇, 알았어.”
“노트랑 펜 있어?”
“응? 어, 있어.”
“그걸로 요약 정리해.”
“…뭐?”
“진영이가 치르는 게임을 다 보고 전부 요약·정리하라고.”
이창민은 당황했다.
이것은 흡사 수업 듣고 요점 정리하는 것 같지 않은가.
“그럼 멀뚱히 구경이나 하려고 했어?”
“아, 알았어.”
이창민은 유진영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 양해를 구했다.
이신을 슥 본 유진영은 다행히도 쾌히 승낙했다.
연습이 다 그렇지만, 유진영은 화성전자의 1, 2군을 상대로 싸우면서 대부분은 이기고 때때로 졌다.
이길 때는 기쁨을 표현하지 않고 절도 있게 다음 게임을 준비했지만, 졌을 때는 리플레이 파일을 보면서 왜 졌는지는 파악하고 PC 메모장에 짤막하게 기록했다.
그제야 이창민은 이신이 자신에게만 이런 일을 시킨 게 아님을 깨달았다.
올도어SCC의 선수들은 전원이 이러한 방식으로 훈련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입식 암기 교육을 숭상하는 이신이 도입한 훈련법이었다.
이창민은 정리를 제대로 못하고 헤맸다.
유진영은 조금의 힌트만 갖고도 바로 파악한 상대방의 빌드 오더를 이창민은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아 씨, 나도 온라인에서 B등급은 되는데…….’
프로게이머가 되겠다고 큰 소리를 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이창민이 온라인에서는 꽤나 잘하는 편이었기 때문이었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지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프로의 세계에서는 부질없는 이야기였다.
가끔씩 이신이 불러서 정리한 내용을 검사했다.
“뭐가 이렇게 괴발개발이야?”
“아, 그게 정신이 없어서…….”
“나중에 리플레이를 보고 전부 다시 정리해.”
“저, 전부?”
“싫으면 집에 가.”
“아, 알았어, 할게.”
“그리고.”
“응?”
“여긴 재능 없는 것도 죄야. 명심해 둬.”
“…….”
이창민은 기가 질려 버렸다.
그렇게 그의 연습생 첫날이 지나갔다.
연습생들의 숙소에서 묵게 된 이창민은 다음날 연습실에 출근했을 때 표정이 한층 밝았다.
그 짧은 틈에 연습생들과 친해진 모양이었다.
하지만 하루 종일 계속되는 훈련 일정 속에서 이창민은 쉽사리 지쳐 갔다.
게임을 했다 하면 거의 대부분 져 버리니 정신적으로도 편할 리 없었다.
숙소에서 친해져 웃고 떠들던 또래의 연습생들이 게임상에서 만나자 괴물들로 돌변했다.
하나같이 미친 듯이 잘했다.
그런데 그렇게 잘하는 연습생들이 은퇴한 지 꽤 된 수석코치 최환열조차 이기지 못했다.
“진짜 보이지 않는 벽이 있어.”
“계란으로 바위 치기지.”
“진짜 일류들은 일류들의 감각이 있나봐.”
“수석코치님은 은퇴한 뒤에도 개인방송 하면서 게임을 손 놓지 않았잖아.”
듣자하니 연습생들은 1군으로 올라가려면 무언가 각성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 무언가가 뭔지는 아무도 모르는데, 정말 그걸 한 번 각성했던 사람과는 하늘과 땅처럼 차이가 나서 죽었다 깨어나도 이길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연습생 생활을 체험하면서 이창민은 현실을 느꼈다.
연습생들이 죽어도 뚫지 못하는 1군의 벽.
게임 좀 한다는 사람들이 전부 모여서, 그중에서도 유독 특출한 천재들이 1군으로 올라갔다.
‘아, 신이 형은 대체 얼마나 대단한 거야?’
그런 천재들조차 신이라 부르는 이신이 경이롭게 느껴졌다.
특히나 인류는 물론이고 때때로 신족과 괴물도 골라 사용하며 1군들을 흠씬 두들겨 패는 광경을 볼 때면 저게 사람인가 싶어 욕이 나왔다.
결국,
“형, 나 집에 돌아갈게.”
“포기했어?”
“응, 여기서 죽자 살자 훈련받으니까 더 이상 게임이 재미있지도 않고, 그냥 공부가 나을 것 같아.”
“잘 생각했어.”
“그래도 좋은 경험이었어. 선수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체험해 보니까 더 e스포츠가 좋아졌어.”
이신은 피식 웃었다. 이창민도 씨익 웃으면서 작별을 고했다.
그날 저녁, 이신은 작은아버지로부터 고맙다는 전화를 받았다.
이창민이 마음잡고 다시 학원을 다니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