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96
195화 리버스(1)
부스에서 PC에 자신의 장비를 설치하면서 이신은 생각했다.
‘어떤 전략을 쓸까?’
오늘의 마이클 조셉은 최고조였다.
쥐고 흔들려는 견제 플레이가 잘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엔조 주앙과의 일전에서 잘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반대로 빈틈없는 디펜스로 찌를 구석을 전부 없애버려서 답답하게 만들면 어떨까?
공격적인 성향을 가진 두 사람이지만, 이신은 때때로 그런 장기전을 구사할 줄도 알았다. 다만 싫어할 뿐이다.
‘역시 그건 싫군.’
마이클 조셉을 이겨도 다음에 줄줄이 4명을 더 상대해야 하는데 장기전을 갔다간 맥이 빠지고 만다.
이신은 진지하게 고심했다.
맵은 나락.
‘신족 맵이군.’
상성상 불리한 처지인 신족을 배려하기 위해서, SC 협회의 맵 제작자들은 신족에게 유리한 맵을 만들어주기 위하여 노력하는 편이다.
신족 맵은 만들기 어렵다. 자칫 잘못하면 인류 맵이, 혹은 괴물 맵이 되어버리기 십상인 것이다.
하지만 나락은 대표적으로 성공적인 신족 맵이었다.
‘마이클 조셉은 나의 인류와 싸우기를 원하겠군.’
문득 이신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네가 원한다면.’
난 네가 원하는 걸 하지 말아야지.
이신은 그런 사람이었다.
정말 싫은 사람이 되는 것이 승부에 임하는 이신의 자세였다.
***
-하하, 카이저가 웃고 있습니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도리어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건가요?
-마이클 조셉은 정말로 자기가 한 말을 지켰습니다. 이제 카이저만 이기면 정말로 올킬입니다. 카이저도 자신이 올킬 재물로 놓인 이 상황이 어이없겠지요.
-오 마이 갓! 카이저가 종족을 선택했습니다! 인류가 아니에요!
-신족!
“오오오오!”
“카이저! 카이저!”
관객들이 쩌렁쩌렁하게 반응했다.
세계 e스포츠의 핫한 이슈 중 하나가 바로 이신의 서브 종족!
이신이 인류가 아닌 신족으로 얼마나 잘 하느냐는 전 세계 네티즌의 논쟁거리였다.
‘카이저는 신족도 미친 듯이 잘한다.’
‘깜짝 전략 카드로 구사할 뿐 메인 종족을 대체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e스포츠 팬들 사이에서는 두 가지 의견이 격렬하게 대립 중이었다.
이신은 지금까지 신족을 딱 세 번 보여줬다.
라스베이거스의 이벤트 매치 때, 마이클 조셉을 상대로 2세트에서 지뢰를 제거하며 싸우는 엄청난 거신병기 무빙을 보여주었다.
또한 한국 2020 후반기 개인리그 결승전에서 신지호를 상대로, 그야말로 환상의 전략을 구현했다. 사략기의 전파방해와 거신병기를 조합한, 이른바 사략병기 전략이었다.
그리고 한국 2021년 프로리그 1라운드, 오성준을 상대로 사략기의 전파방해와 수송기에 태운 철갑충차의 조합이라는 화려한 전략을 또다시 펼쳤다.
이신의 신족은 평범한 신족과 궤를 달리 했다.
강력한 유닛과 폭발적인 물량의 조화가 일반적인 신족 플레이어의 패턴인데, 이신은 그보다 신족이 가진 강력한 마법의 힘을 잘 활용했다.
정말 따라하고 싶어도 따라할 수 없는 곡예 같은 컨트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신의 신족은 매우 인기가 높았다.
이신의 신족을 지지하는 팬들은 그가 다른 신족 플레이어들도 흉내 내기 어려운 컨트롤을 완벽하게 구사한다는 점을 내세웠다.
잘 쓰지도 못하는 사략기의 전파방해를 그런 식으로 펼치는데 신족을 못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얘기였다.
반대 의견으로는 이신의 컨트롤은 인정하지만, 기본적으로 정석이 아닌 매우 위험성 높은 깜짝 전략만 구사하므로 메인 종족 수준은 아니라고 말했다.
즉, 어쩌다 한 번씩 고비를 만날 때마다 써서 상대의 허를 찌르고 극복하는 것이 현재 이신이 가진 신족 플레이라는 소리였다.
-하하하! 카이저가 신족을 처음 보여줬을 때 상대가 바로 마이클 조셉이었지요?
-그때 당시는 메인 종족도 아닌 서브 종족에게 져버렸으니 마이클 조셉으로서는 상당한 굴욕이었지요.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굴욕이 아니에요. 이신은 여태껏 강적을 만났을 때만 신족을 꺼내들었거든요. 이번에도 마찬가지의 맥락이라고 봐야지요!
-그렇습니다. 벌써 40만 달러 기부를 확정지은 마이클 조셉의 오늘 기량이 카이저에게 위기감을 주었다고 봐야 합니다. 카이저는 동족 전을 꺼려하는 경향이 있는데, 특히 같은 인류·같은 스타일로 절정의 기량을 찍고 있는 마이클 조셉을 두려워할 만도 하거든요!
-그나저나 이번에도 사략기를 사용한 엄청난 전략을 보여줄지 정말 기대가 큽니다!
-예, 전 세계 팬들이 환호할 겁니다. 카이저가 신족을 써서 화려하지 않았던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5세트 경기가 시작되었다.
-M.J: Why holy blood?
경기 시작 직후 문득 마이클 조셉이 채팅으로 왜 신족을 골랐냐고 물어보았다.
공식전 게임 도중의 사적인 채팅은 허용되지 않고 있는데, 올스타전은 공식전이 아니니 상관없었다.
오히려 선수들 간의 농담과 신경전이 담긴 채팅이 올스타전의 백미 중 하나였는데, 이번에는 마이클 조셉의 예고 올킬 때문에 많이 분위기가 경직된 편이었다.
마이클 조셉의 질문에 이신이 답했다.
-Kaiser: Because you hate it.
“하하하하!”
“싫어하니까 했대!”
“깔깔!”
“저게 카이저지!”
관객들이 너무나 좋아했다.
이미 상대를 괴롭히는 플레이를 즐기는 이신의 못된 근성은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이신의 그 유명한 명언도 있지 않은가.
‘악의로 가득 찬 인간은 그 악의를 실현하기 위해 다양한 창의적인 발상을 하게 된다.’
남들이 좋은 생각을 하며 명상을 할 때, 상대에 대한 악의를 고취시키려고 명상을 한다고 하니 말 다한 셈이었다.
이신은 8번째 신도로 생명석을 건설한 뒤 곧바로 정찰을 보냈다.
정찰 운이 좋았다.
첫 정찰을 보낸 1시에서 바로 마이클 조셉의 진영을 발견한 것이다.
‘음?’
마이클 조셉은 앞마당 앞에 병영과 군량고를 짓고 있었다.
군량고 하나를 더 지으면 앞마당으로 가는 통로를 전부 틀어막는 심시티가 완성되는 상황.
마이클 조셉은 심시티로 보호해놓고 빠르게 앞마당 확장 기지를 가져갈 생각이었던 것이다.
반면 이신은 참회실과 광물정제소를 지어 거신병기를 뽑기 위한 테크 트리를 올리는 상황.
이신이 첫 정찰로 발견하지 않았으면 심시티로 인해 신도가 들어가지도 못했을 터였다.
왜였을까?
이신은 단지 첫 정찰 성공이라는 운을 승부수로 연결 지었다.
참회실에서 광신도를 생산하며, 이신 본진에서 신도 5명이 일제히 뛰쳐나왔다.
-지금 뭔가요?!
-카이저가 일꾼들로 공격을 가고 있습니다!
그랬다.
그것은 공격이었다.
그 와중에 정찰 갔던 신도는 계속 병영을 짓는 건설로봇을 괴롭혔다.
건설로봇의 체력이 절반이나 닳자, 옆에서 군량고를 짓던 다른 건설로봇이 합세해서 맞섰다.
그러자 신도는 얄밉게도 싸우지 않고 물러나 상대의 본진으로 들어갔다.
본진 쪽에서 건설로봇 1기가 나와 신도를 계속 쫓아다녔다.
신도 5명이 도착한 것도 바로 그때였다.
-퍼엉!
신도들이 막 군량고를 완성한 건설로봇을 한 순간에 에워싸 사살했다.
-교전이 벌어집니다!
-건설로봇 1기 잡았고요! 오, 이런!
이신의 손이 신속하게 키보드와 마우스를 연타했다.
신도 하나가 마이클 조셉의 본진 입구에 생명석을 건설했다.
-저기다가 생명석?!
-배리어 충전실을 지을 생각입니다! 하하!
신족의 모든 유닛은 배리어로 보호 받고 있는데, 그 배리어는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회복된다.
배리어 충전실은 그 배리어를 단숨에 회복시켜주는 건물이었다.
건설로봇 1기를 잡은 신도들이 병영 앞에 옹기종기 모였다.
칼 같은 타이밍!
-으악!
그때 병영에서 막 생산된 보병이 나오자마자 신도들에게 린치를 당해 죽어버렸다.
“와아아아아아!”
“오오오오!”
관객들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신은 병영에서 보병이 언제 생산되는지, 그 타이밍을 초단위로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실로 엄청난 타이밍 감각이었다.
-일꾼으로 대거 공격해올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마이클 조셉! 이대로 보고만 있어서는 안 되죠!
-예, 조셉도 갑니다!
마이클 조셉이 마침내 건설로봇을 대거 끌고 반격에 나섰다.
생명석에 이어 배리어 충전실까지 완성된 상황.
두 사람의 초미세 컨트롤 대결이 펼쳐졌다.
마이클 조셉은 앞마당에 참호를 건설하기 시작,
그리고 건설로봇 다수로 생명석을 집중 공격했다.
생명석이 파괴되면 배리어 충전실이 제 기능을 못하기 때문.
이에 이신의 대응도 빨랐다.
신도 1명은 참호를 짓는 건설로봇을 공격,
또 1명은 또 다른 생명석을 건설,
나머지는 병영에서 다시 생산된 보병을 귀신 같이 에워싸 죽였다.
-으악!
“와아아아아아―!”
“카이저! 카이저!”
보병이 죽을 때마다 비명과 같은 환호성이 경기장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이신의 광신도가 도착했다!
-오 마이 갓! 광신도가 왔어요!
-참호는 건설로봇을 더 붙여서 간신히 완성했는데, 보병이 안에 있어야 소용이 있죠!
-마이클 조셉도 압니다! 그래서 건설로봇들이 일제히 앞마당으로 나옵니다! 일단 생산된 보병을 무사히 참호에 넣는 게 급선무!
계속해서 이어지는 긴박한 상황.
즉흥적인 러시였지만, 이신은 마치 처음부터 벼르고 벼른 전략인 것처럼 한 치의 빈틈도 없었다.
마이클 조셉이 병영 하나를 더 건설하려고 하자, 그걸 또 귀신 같이 알고는 신도가 집요하게 따라붙으며 훼방을 놓았다.
그러면서 앞마당 쪽 병영에서 보병이 생산되자 양측이 사활을 걸고 싸웠다.
신도들과 광신도가 보병을 공격.
건설로봇들이 이를 저지하기 위해 달라붙었지만,
-으아악!
순간적인 이신의 광신도 무빙!
광신도의 긴 칼날에 걸려 보병이 참호 바로 앞에서 사망했다.
건설로봇들은 어떻게든 광신도부터 처치하려 했다.
하지만 광신도는 배리어 충전실로부터 배리어까지 충전된 채 미쳐 날뛰었다.
추가 생산된 광신도가 도착.
신도들과 함께 마이클 조셉의 본진을 휘저었다.
난장판이 된 마이클 조셉의 본진.
아마 마이클 조셉의 멘탈도 이러할 터였다.
대형화면에 잡힌 마이클 조셉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었다.
-M.J: GG.
-마이클 조셉 GG!
-오늘 놀라운 활약으로 4킬을 기록한 마이클 조셉이 끝내 카이저의 벽은 넘지 못했습니다.
-그 순간 신도들로 공격에 나서는 판단력! 정말 맹수 같은 감각이었습니다.
-이걸로 카이저의 신족은 무패행진 중이지요?
-오, 그러네요! 카이저의 신족이 정말 강하다는 것을 증명되었습니다. 준비된 전략이 아니라, 첫 정찰을 보고 내린 즉흥적인 판단이었습니다. 그런 임기응변이 정말 강하다는 증거거든요!
-자, 백팀 최후의 생존자! 하지만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카이저입니다. 흑팀은 긴장해야 합니다. 저 사람이 카이저인 이상 아직 흑팀은 이긴 게 아니에요!
마이클 조셉이 아쉬움을 남긴 채 벤치로 돌아가고, 흑팀의 차봉이 준비를 시작했다.
그는 바로 왕펑카이.
이신을 도발했던 왕펑카이가 결의 어린 표정으로 장비를 세팅하기 시작했다.
‘왕펑카이라…….’
이신은 가만히 왕펑카이가 종족을 고르는 것을 보았다.
왕펑카이는 인류를 골랐다.
‘인류였구나.’
그제야 왕펑카이의 종족을 알게 된 이신이었다.
문득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다.
-Kaiser: Choice.
-Kaiser: human, monster, holy blood.
-G·Kai: human.
-Kaiser: ok.
이신은 괴물을 골랐다. 해설진과 관중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이신이 종족을 바꾸지 않자 모두들 당황하기 시작했다.
-카이저, 설마 정말로 괴물로 할 생각은 아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