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97
196화 리버스(2)
뜬금없이 이신으로부터 종족을 골라보라는 말을 들었다.
‘내가 원하는 종족으로 상대해주겠다는 건가? 이런 미친……!’
왕펑카이는 기가 막혔다.
자신이 그렇게 우습게 보인단 말인가?
중국 제일의 프로게이머인 자신이 이렇게 상대에게 얕보여서는 안 된다.
왕펑카이는 인류를 골랐다.
메인 종족이자 신화를 일궈낸 이신의 인류와 한 판 승부를 보고 싶었다.
신이니 카이저니 해봐야 그 역시 똑같은 사람이다.
사람이 살다 보면 질 때도 있는 법이고, 이신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카이저를 살아 있는 전설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직까지 그가 다전제에서는 져본 적이 없기 때문이지만, 이건 다전제가 아니라 한 판으로 끝나는 승부였다.
왕펑카이는 호승심이 치밀어 올랐다.
저 대단한 이신에게 당당하게 도전장을 내민 스스로가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한껏 자아 도취된 왕펑카이에게 이신은 아주 시원하게 찬물을 끼얹어버렸다.
[Kaiser: Monster]이신이 괴물을 고르자 왕펑카이의 정신이 한 번 흔들렸다.
하지만 가벼운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결국은 인류를 고르겠지.’
보다 어린 자신을 놀려주려는 가벼운 농담 혹은 도발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는데도 이신은 종족을 바꾸지 않았다.
‘설마 실수인가?!’
왕펑카이는 크게 놀랐다.
끝내 이신은 괴물에서 종족을 변경하지 못한 채로 게임에 임하게 되었다.
‘실수? 실수겠지? 아니면 설마 진심으로 괴물로 날 이기려고 하는 건가?’
아까까지만 해도 충만했던 투쟁심은 온데간데없고, 왕펑카이는 불안을 느꼈다.
실수인 건지 진심으로 괴물을 고른 건지 알 수 없으니, 대항해야 할 상대의 플레이 스타일도 오리무중.
한마디로 상대가 어떤 전략을 잘 구사하는 괴물인지 이미지가 전혀 안 잡히는 것이었다.
***
최환열은 선수들과 함께 인터넷으로 생중계되는 올스타전을 보고 있었다.
-G·Kai: mistake?
왕펑카이가 실수냐고 묻는다.
마침 영상에 이신이 잡혔는데, 그는 대답은 하지 않고 그저 나직이 미소 짓고 있었다.
“저 악마 같은 자식.”
실수였는지 진심으로 괴물을 골랐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신이 괴물로도 굉장한 수준의 플레이를 한다는 사실은 같이 훈련한 올도어SCC의 선수들만이 알고 있었다.
이신은 상대의 실체를 알 수 없어서 끙끙 앓는 왕펑카이의 심리를 파악하고 즐기는 게 분명했다.
“인류도 신족도 아니고 괴물을 고르다니…….”
“괴물한테 발려버리면 기분 최악이겠다.”
“왕펑카이 불쌍해…….”
게임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었다. 왕펑카이가 그렇게 얕볼 만큼 허접한 실력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도무지 이신이 질 것 같지가 않았다.
왜냐하면,
“안 그래도 잘 하는 감독님이 오염된 성좌에서 질 리가 없지.”
그랬다.
이신은 그저 왕펑카이를 조롱하겠다고 괴물을 고른 게 아니었다.
6세트 맵이 괴물에게 매우 유리한 오염된 성좌였던 것이다.
저 맵에서 이신의 괴물과 게임을 하면 어찌 될지 안 봐도 알 수 있는 선수들이었다.
***
앞마당과 뒷마당에 확장 기지를 펼쳐놓고 자원을 쭉쭉 먹은 이신은 금방 다수의 쐐기충을 생산해냈다.
이신이 괴물을 플레이할 때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었다.
한데 뭉친 채 날아간 쐐기충 부대가 왕펑카이의 진영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퍼엉!
-퍼어엉!
쐐기충이 치고 빠지며 쐐기를 날려 건설로봇을 1기씩 사냥했다.
왕펑카이는 대공포를 곳곳에 지어놓고 대비를 해놓았지만, 이신은 이리저리 살핀 끝에 가장 약한 부분을 정확하게 노렸다.
-콰아앙!
대공포가 쐐기충의 집중공격에 폭발하고 말았다.
쐐기충이 그쪽을 파고들며 건설로봇을 계속 잡아주었다.
보병·의무병 부대가 우르르 몰려오자 빠져버리는 쐐기충들.
하지만 다시 나타나서 회군하는 병력의 낙오병들을 잘라먹기 시작했다.
-으악!
-으아악!
삽시간에 보병 2명과 의무병 1명이 사살 당했다.
또다시 병력이 몰려들자 슬그머니 뒤로 빠져버리는 이신이었다.
잠시 물러선 뒤에 부상 입은 쐐기충을 빼버리고 새로 생산된 쐐기충을 합류시켜서 재정비.
그리고는 다시 뒷마당 확장 기지에서 게릴라를 펼쳤다.
실로 집요한 견제 플레이.
본래 이러한 쐐기충 견제는 괴물이 인류를 상대로 시간을 벌기 위한 전략인데, 이신의 쐐기충 견제는 시간을 버는 수준이 아니었다.
-맙소사! 엄청난 컨트롤입니다!
-한 번도 삐끗하는 법이 없어요! 여기저기 취약한 부분만 귀신 같이 파고들어서 괴롭힙니다!
-왕펑카이 이대로는 병력이 진출 한 번 못해보고 계속 견제만 당하다가 끝날 겁니까?!
-카이저는 이대로 끝낼 생각인 것 같은데요!
계속해서 새롭게 생산된 쐐기충들이 합류했다.
아예 쐐기충으로 끝장을 내버리겠다는 의도였다.
곳곳에 차지한 확장 기지가 엄청난 자원과 병력을 이신에게 제공해주고 있었다.
왕펑카이가 제대로 견제해주지 못하고 괴물을 방치한 결과였다.
대공포를 하나씩 깨부수고 자원을 캐는 건설로봇들을 거의 학살하다시피 했다.
각성제를 흡입하고 달려드는 보병들도 그대로 치고 빠지며 순간 삭제!
-아아! 왕펑카이, 너무 괴롭습니다!
-아무것도 못 해보고 얻어맞나요?! 저 쐐기충들이 쏘는 쐐기가 왕펑카이의 가슴이 박히고 있어요!
낑낑대며 방어하기도 벅찬 왕펑카이의 모습은 누가 봐도 안쓰러울 정도였다.
지대공 공격력이 우수한 기계보병까지 생산하며 쐐기충에 맞서보았지만,
-끼엑! 껙!
-끼에엑!
쐐기충과 함께 우르르 몰려드는 것은 바로 바퀴들이었다.
바퀴 떼가 뒷마당을 습격해 그야말로 초토화로 만들어버리고는 본진으로 밀고 들어갔다.
앞마당에 있다가 본진을 지키러 돌아오는 병력들은 쐐기충이 치고 빠지며 남김없이 잡아먹어 버렸다.
바퀴들의 물량 공세!
입구 심시티를 부숴버리고 그대로 본진 침입.
병영이며 기갑정거장이며 보이는 인류의 건물을 닥치는 대로 박살내기 시작했다.
끝까지 뭔가를 해보려 했던 왕펑카이는 결국,
-G·Kai: GG.
“와아아아아아!!”
부스에서 나온 이신은 환호하는 관객들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괴물! 카이저가 괴물로 왕펑카이를 격파했습니다! 중국에서 우승까지 거둔 실력자 왕펑카이가 아무것도 못 해봤어요!
-정말 가공할 쐐기충 컨트롤이었습니다. 괴물이 쐐기충을 저 정도까지 쓰면 천적인 인류도 어찌할 도리가 없죠!
-인류와 신족에 이어 괴물까지! 대체 저 남자의 한계는 어디까지입니까? 나이를 먹을수록 오히려 더 괴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정말 신입니까?!
그때였다.
이신이 수만 관객을 향해 손가락 세 개를 펼쳤다.
-앞으로 3명!
-하하하, 역 올킬을 선언하는 카이저! 예, 전 세계 최고의 스타들이 한 자리에 모인 올스타전이지만, 예! 저 남자라면 정말 할지도 모릅니다. 예전에도 했었거든요!
그때부터는 광란의 파티였다.
vs 흑팀 중견 존 던.
현 캐나다를 대표하는 슈퍼스타로, 밴쿠버SCC의 에이스였다.
이신과도 인연이 있었다.
주디·존 남매와 함께 밴쿠버SCC의 연습실을 방문했을 때 함께 훈련한 바 있었다.
하지만 존 던은 그때도 지금도 마찬가지로 이신의 고속전차 견제 플레이를 막지 못했다.
본진을 침투해 들어가 지뢰를 매설하고 날렵하게 신도들을 사냥하는 고속전차의 견제!
한 번 견제 루트가 뚫리자, 이신은 그 루트로 쉬지 않고 고속전차를 찔러 넣어 끝내 GG를 받아냈다.
-3킬! 오늘 처음으로 카이저 본연의 플레이가 나왔습니다.
-지금은 엔조 주앙과 마이클 조셉 등 대표적인 인류 플레이어가 많이들 구사하는 견제형 인류의 시초가 바로 카이저입니다. 역시 시초는 다르네요!
-슬슬 분위기가 이상해지기 시작합니다. 역 올킬이 가시권에 들어왔습니다. 흑팀의 다음 선수는 누구입니까? 누가 카이저를 막을 겁니까?
vs 흑팀 부장 리샤오친.
대만 출신의 프로게이머로 지금은 유럽에 진출해서 맹활약 중인 괴물 플레이어였다.
상대가 괴물이니, 이신은 당연히 인류를 골라 상대했다.
이번에는 2항공 빌드를 구사했다.
본진 플레이로 스텔스 전투기를 뽑아 하늘군주와 일벌레를 사냥하며 견제 플레이를 펼친 것이다.
자폭하러 쫓아오는 폭탄충을 터닝 샷으로 잡아내며 계속 활개 치는 스텔스 전투기 편대!
종이비행기처럼 약한 스텔스 전투기도 저렇게 컨트롤이 정교하면 상대하는 괴물 입장에서는 악몽이나 다름없었다.
이어지는 결정타는 바로 보병·의무병·기동포탑의 진격!
한 번에 덮쳐서 잡아먹으려 드는 괴물의 최후의 저항을 격파하고 GG를 받아냈다.
-오 마이 갓! 또 이겼습니다!
-카이저의 스텔스 전투기는 역시 무섭습니다!
-특유의 화려한 곡예비행 때문에 일부러 카이저의 2항공 빌드가 나온 경기를 찾아보는 팬들이 적지 않죠!
-오늘은 정말 카이저의 모든 것이 다 나오는 날인 것 같습니다. 이 자리에 오신 관객 여러분, 그리고 전 세계 시청자 여러분, 여러분은 정말 행운아입니다!
“와아아아아!!”
관객들이 호응하여서 열광의 함성을 터뜨렸다.
모두가 이신의 역 올킬을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다음 상대는 또한 만만치가 않았다.
vs 흑팀 대장 알렉산더 스테인.
영국을 대표하는 신족 플레이어로, 그의 트레이드마크는 암흑사제.
하지만 그것은 워낙에 암흑사제를 잘 썼기 때문이고, 알렉산더 스테인의 스타일은 바로 디펜스를 통한 장기전이었다.
‘쉽지 않은 상대군.’
알렉산더 스테인은 인류, 신족, 괴물 등 상대를 가리지 않고 다 강했다.
작년의 월드 SC 그랑프리 개인전에서도 8강이라는 좋은 성적을 거둔 바 있었다.
게다가 이신은 많이 지친 상태였다.
올스타전인 만큼 상대도 하나같이 쉽지 않았다.
그나마 마이클 조셉을 이겼을 때가 좀 일찍 끝났지만 말이다.
‘반지의 힘을 쓸까?’
피로를 풀어주는 반지의 힘이면 정신을 말끔하게 해주리라.
하지만 이신은 고개를 저었다.
중요한 공식전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이신은 지친 몸을 이끌고 5세트에 임했다.
***
장장 42분간의 대혈투였다.
초반부터 펼친 이신의 견제 플레이가 계속해서 막히는 바람에, 견제 플레이가 막히는 횟수만큼 승부의 추가 알렉산더 스테인에게 기울었다.
하지만 그 시점에서 오늘의 명장면이 나왔다.
알렉산더 스테인이 차지한 3시의 섬 확장 기지를 이신이 친 것.
지상으로 갈 수 없는 섬.
이 섬에 확장 기지를 편 알렉산더 스테인은 캐논포로 도배를 해버려서 이신이 절대로 공격을 시도할 수 없게 했다.
‘여긴 절대 못 치겠군.’
처음 레이더로 찍어보았을 때 이신은 헛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이윽고, 이신은 2채나 되는 건물을 3시의 섬 확장 기지로 보냈다.
천천히 날아온 건물이 3시에 나타나 캐논포의 포화에 얻어맞기 시작했다.
그 순간, 항공수송선 2기가 날아들어 고속전차를 일제히 드롭.
건물들이 캐논포의 집중 공격에 당하는 사이, 8기의 고속전차가 자원을 캐던 신도들을 말끔하게 털어버리고 재빨리 내빼버렸다.
신도들이 사라져버린 3시 섬 확장 기지를 보며 관객들이 열광을 터뜨렸다.
그렇게 승부의 균형이 돌아왔고, 이신은 버티기에 들어가 맵 자원을 전부 먹어치우는 장기전을 벌였다.
-경기 끝났습니다! 정말 대단한 경기였습니다!
-오늘 모든 것을 보여준 카이저가 녹초가 된 모습으로 나옵니다! 오늘 마이클 조셉도 카이저도 모두 대단했습니다!
대형화면은 탈진된 채 힘없이 걸어 나오는 이신을 비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