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209
208화 흉조(2)
그리고리 라스푸틴.
악마군주 안드라스와 계약하고 마력을 부여받은 그는 하급 악마로서의 능력을 각성했다.
-그리고리, 넌 이제부터 나의 계약자이며 또한 나의 권속이다.
불화를 조장하고 흉조를 퍼뜨리는 능력!
하급 악마가 된 그는 마력으로 개선된 육체와 특별한 능력에 희열을 느꼈다.
‘좋다. 난 악마다! 이렇게 된 것, 내게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겠다.’
그것은 악마군주 단탈리안과 계약하고 저주를 받아 악마로서의 힘이 강화된 장각과 비슷한 케이스였다.
다만 라스푸틴은 계약 상대가 악마군주이며 자신이 악마가 되었다는 것을 인지했다는 면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라스푸틴은 작정하고 세상에 불화와 흉조를 조장하기 시작했다.
성직자를 자처하고 다니며 괴이한 교리를 내세워 사람들을 홀리기 시작했다.
그는 세계에 드리울 크고 작은 재앙을 예언했는데, 흉조(凶兆)를 퍼뜨리는 그의 능력은 효력을 거두어 모두 다 적중하였다.
그럴수록 라스푸틴의 명성은 높아져만 갔고, 끝내는 러시아 로마노프 황실의 귀에도 들어갔다.
로마노프 황실은 당시 황태자 알렉세이가 혈우병을 앓는 일 때문에 골치를 썩고 있었다.
“정말로 그렇게 신비로운 능력을 가진 자라면 황태자의 병도 고칠 수 있지 않겠는가?”
그것은 제정 러시아를 거의 확실하게 파멸시킨 불화의 단초였다.
악마의 능력으로 황태자 알렉세이의 혈우병을 고친 라스푸틴은 황실의 신임을 얻어 귀족으로 대우받았다.
그때부터 라스푸틴은 로마노트 황실에 불화를 일으켰다.
불화를 일으키는 그의 능력은 황후 알렉산드라의 신경쇠약으로 나타났다.
신경쇠약에 빠진 황후 알렉산드라는 예언자 행세를 하는 라스푸틴에게 더욱 의지하게 되었다.
러시아 황제 로마노프 2세는 황후에게 휘둘리는 경향이 있었고, 때문에 정국(政局)이 라스푸틴에게 좌지우지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9할에 달하는 살인적인 세율.
임금을 올려달라고 시위하러 모인 노동자를 학살한 피의 일요일 사건.
상상을 초월하는 폭정이 라스푸틴에 의해 펼쳐졌다.
온 나라에 불화가 번지면서 그의 마력은 점점 강해졌다.
악마군주 안드라스의 말대로, 악마로서의 본문을 다할수록 그의 마력은 저주에 의하여 점점 증식되었다.
마력이 모여서 중급 악마로 각성까지 하자, 라스푸틴은 희열과 성취감을 느꼈다.
‘좋아, 내 힘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로마노프 2세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느라 나라를 비우자, 거칠 것이 없어진 라스푸틴은 더더욱 폭정을 일삼고 사치와 방탕을 누렸다.
하지만 라스푸틴의 폭정은 거기까지였다.
“저놈을 가만 놔둬서는 안 돼.”
“이러다가 나라가 반란에 휩싸인다.”
황족과 귀족이 다함께 모의하여 라스푸틴의 암살을 시도했다.
암살 과정도 괴이스럽기 이를 데 없었다.
파티에 초대한 뒤에 청산가리가 든 음식을 먹였는데, 라스푸틴은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불렀다.
결국 암살자가 공포에 질려 권총을 꺼내 쐈다.
총탄에 맞았음에도 라스푸틴은 죽지 않고 몸싸움을 했다.
결국 모두가 달려들어 포박한 뒤, 강물에 던진 끝에야 간신히 죽일 수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시신을 건져 보니 포박을 풀려 있었고, 강바닥에 그가 손톱으로 할퀸 자국까지 있었다.
사인은 독살도 총살도 아닌 익사였다.
심지어 사후 그의 방에서 편지가 발견되었다.
[나는 곧 죽을 것이다.내가 러시아 국민들의 손에 죽는다면 황제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로마노프 왕조는 수백 년간 지속될 테니까.
하지만 내가 특권층, 귀족의 손에 죽는다면, 그들의 손은 앞으로 25년간 같은 형제의 피로 젖은 채로 유지될 것이며, 끝내 러시아에 귀족이 한 사람도 남지 않으리라.
그리고 황제여, 명심하라.
당신 일족 중 한 사람이라도 내 죽음에 가담했다면, 당신의 일족은 2년 이내에 그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모두 러시아 국민에게 살해된다.]
그것은 라스푸틴이 죽음을 기다리면서 남긴 최후의 흉조였다.
정말로 로마노프 황실 일가는 모두가 죽임을 당했고, 러시아 혁명을 통해 일어난 소련은 내부분열에 시달리다가 25년 뒤에 독소전쟁이 발발했다.
그 같은 일들이 전부 전해지면서, 라스푸틴은 사람이 아니라 악마였다고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라스푸틴은 마지막까지 악마군주 안드라스로부터 받은 사명은 완벽하게 수행한 것이었다.
***
이신이 마계로 소환된 것은 밤늦게까지 개인리그를 준비하다가 잠들었을 때였다.
일어나 보니 낯이 익은 오두막의 천장이 보였고, 이신은 곧 자신이 그레모리 궁전 뒤뜰에 있는 자신의 영지에 있음을 깨달았다.
“일어나셨나요?”
활짝 웃으며 그에게 인사한 여자는 세리시아.
그레모리의 권속으로, 이신의 영지 관리를 맡은 하급 악마였다.
“…내가 언제 이리로 불려왔지?”
“새벽에 주무시다가 소환되셨어요. 영지에서 주무시니 몸이 한결 좋죠?”
“그렇군.”
세리시아의 말대로, 영지의 평온한 기운 덕에 막 자고 일어난 그의 몸에는 한 점의 피로나 불편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렇게 개운하게 깨어난 것은 오랜만이라, 확실히 자신이 마계에 와 있음을 실감했다.
‘다행히 아직 휴식기일 때 소환됐군.’
프로리그 2라운드 경기 당일에 소환됐으면 큰일 날 뻔했다.
마계에서 서열전에 몰두할 때는 스페이스 크래프트를 하지 못한다.
그렇게 마계에서 최소 일주일에서 길면 한 달까지 지낸다.
그렇게 긴 시간 게임을 손에서 놓으면 감각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돌아가면 죽어라 연습하는 수밖에.’
치유 능력까지 써가며 밤새워 연습해 게임 감각을 되찾아야겠다고 이신은 생각했다.
채앵! 챙! 까앙!
문득 바깥에서 병장기가 부딪치는 맹렬한 소리가 들렸다.
“뭐지?”
“계약자님의 두 권속이 대련을 하고 있어요. 매일 볼 수 있는 풍경이죠. 조용히 하라고 할까요?”
“아니.”
그제야 이신은 사도들 중 질 드 레와 이존효에게 마력을 부여해 자신의 권속으로 삼았던 사실을 기억해 냈다.
“저 두 명은 여기서 지내는 건가?”
“물론이죠. 계약자님의 권속인데 계약자님의 영지를 놔두고 어딜 가겠어요?”
“이 오두막에 틀어박혀 지내야 하는 건 아니겠지?”
“호호, 설마요. 궁전 내부를 마음대로 돌아다녀도 된다고 그레모리 님께서 허락하셨죠. 하지만 아무래도 권속의 악마들은 자기 주인의 영지에 있을 때 가장 안정감을 느끼는 법이랍니다.”
마당에서 질 드 레와 이존효가 각자 무기를 들고 싸우고 있었다.
아무래도 질 드 레는 이존효에게 쩔쩔 매는 모습이 연출되었다.
복잡하게 생긴 혼천절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요리하는 모습이었다.
“찻!”
이존효가 찌르기를 할 듯한 동작을 취하자, 질 드 레는 급히 옆으로 피했다.
하지만 혼천절에 달린 무쇠 추가 질 드 레의 뒤통수를 강타했다.
크게 휘청거리는 질 드 레에게 곧장 창날이 들이밀어졌다.
“휴우, 도저히 안 되겠군.”
질 드 레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하핫, 그래도 제법이었소. 여간해서는 내게 맞설 수 있는 사람이 없는데.”
뭐라고 더 말하려던 질 드 레는 이신이 나온 것을 발견하고는 곧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오, 주군! 깨어나셨군요.”
이존효도 공손하게 인사했다.
“잘 지냈나?”
“예!”
“주군 덕에 편안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권속으로 삼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됐어. 다음 서열전 상대에 대해서 들은 건 있고?”
“그리고리 라스푸틴입니다.”
“라스푸틴?”
언뜻 들어본 이름이었다.
아마도 1차 세계대전 시기의 역사를 훑어보다가 우연히 보게 된 이름이었던 기억이 났다.
“뭐하던 놈이지?”
“들은 소문에 의하면 성직자였다고 합니다. 살아생전에 이미 악마군주 안드라스의 계약자였다고 하니 알 만하지요.”
질 드 레가 말했다.
말투에서 성직자를 별로 탐탁지 않아 하는 기색이 엿보였다.
‘그러고 보니 질 드 레도 종교 재판에 회부되어서 죽었었군.’
질 드 레를 사도로 맞이한 뒤에 그에 대해 조금 인터넷 검색을 해본 적이 있었다.
악마 숭배와 아동 연쇄 살해 등 전형적인 마녀사냥 성격의 죄목으로 통해 사형을 선고 받았다.
저런 죄목을 갖다 붙이는 일은 당시에는 아주 흔했고, 잔인한 고문을 당하느니 그냥 순순히 죄를 인정하는 편이 훨씬 합리적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당시의 관례상 죄를 자백하고 참회하면 신분과 재산을 가족에게 물려줄 수 있었다.
1992년에는 전직 성직자와 의원, 유네스코 전문가로 구성된 법정이 질 드 레의 판결을 재검토해 무죄로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진실은 알 수 없고 이신도 굳이 그걸 본인에게 물어보지 않았지만, 일단 살아생전에 방탕하고 퇴폐적인 삶을 살았던 난폭한 인물임은 확실해 보였다.
“종족은 마물을 주로 다루며, 무엇보다도 놈은 이미 상급 악마라고 합니다.”
“상급 악마?”
“살아생전에 악마를 숭배하고 악마가 관장하는 능력으로 재앙을 퍼뜨리면 마계의 영지에서 마력을 수확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일어난다고 들었습니다.”
“재앙을 많이 퍼뜨리면 마력이 상승한다?”
“예. 저보다 후대의 인물이라 잘은 모르겠지만, 상급 악마가 될 정도로 강대한 힘을 얻으려면 나라를 몇 번은 족히 말아먹을 정도의 재앙을 일으켜야 합니다.”
“누군지 알겠군.”
마침내 그리고리 라스푸틴이 누군지 기억이 난 이신이었다. 온갖 괴담이 난무하는 작자라 인상적이었다.
그때 이미 악마였다면 그러한 온갖 괴담들이 난무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아무튼 어떤 상대인지 잘 감이 안 오는 작자였다.
명성 떨친 군인도 아니었고 정치가로서 수완을 발휘했던 인물도 아니니 말이다.
‘장각과 같은 유형인데 뚜껑을 열어보기 전까지는 알 수가 없군.’
일단은 그리고리 라스푸틴과 서열전을 치러보았던 이들을 찾아가 물어보는 수밖에 없다고 여겼다.
***
마치 성당처럼 둥그런 형태의 건물이었다.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된 창문을 통해 형형색색의 빛이 내부로 들어왔다.
곳곳에 켜진 촛불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더욱 자아낸다.
그 한가운데서 조용히 기도를 하는 사나이가 있었다.
덥수룩한 수염에 날카로운 눈매, 그리고 검은 신부복 차림의 건장한 서양 사내.
성당에서 기도를 올리는 경건한 신부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곳이 마계이며, 저 사내의 이름이 바로 그리고리 라스푸틴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는 그 자체로도 신성모독과 음험함이 흐르는 장소인 것이었다.
잠시 후에 그의 몸에서 흐물거리며 검은 안개와도 같은 마력이 빠져나왔다.
안개처럼 흘러나온 마력이 한데 뭉쳐졌다.
진흙으로 형상을 빚듯이 마력 덩어리는 무언가가 되었다.
부리가 되고 날개가 되고 검정색 몸뚱이가 된다.
이윽고 탄생한 것은 작은 까마귀였다.
까마귀는 라스푸틴의 어깨에 앉아 소리쳤다.
“까아악! 이신이 도전해 온다! 까악!”
요란스럽게 흉조를 지저귀는 마력 까마귀.
비로소 눈을 뜬 라스푸틴이 중얼거렸다.
“이신이라…….”
“강하다! 까아악! 아주 강하다! 무섭다! 까아아악!”
까마귀는 쉴 새 없이 지저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