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23
22화 코치(1)
‘기분 좋긴 한데 조금은 찜찜하군.’
물을 마시며 이신은 생각했다.
짜릿한 역전승!
완전히 불리한 판세를 힘으로 스피드로 뒤집었으니, 그 기분은 일반적인 승리보다 훨씬 짜릿했다.
하지만 승리를 만끽하면서도 이신은 냉정하게 판단을 했다.
신지호는 상대가 자신이라는 걸 몰랐다.
봉쇄전략으로 상대를 자원 부족으로 고사시키려던 신지호의 전략 미스였다.
시간을 준 덕에 이신은 본진과 앞마당 자원을 쥐어짜 역전에 나설 최후의 병력을 마련할 수 있었다.
신지호가 만약 상대가 이신이란 걸 알았다면, 절대 시간을 주지 않았을 터.
결국 신지호의 방심에 기댄 승리였다.
‘그나저나 새로운 빌드인가 보군.’
리플레이 영상을 보며 신지호의 플레이를 공부하는 이신.
병영을 짓고 바로 앞마당 확장 기지를 가져가는 빌드 순서에 이신은 깜짝 놀랐다.
그런데도 2기갑 빌드의 선제공격을 충분히 막을 수 있는 방어가 구축됐다.
‘이러면 2기갑 빌드를 쓸 수가 없지. 내가 요즘 추세를 너무 몰랐다.’
지난번에 경기장에 갔을 땐 인류 대 인류 전이 없었기 때문에 새 빌드를 볼 기회가 없었다.
그걸 이제야 확인하게 된 것이다.
‘한번 해보자.’
이신은 새로운 게임을 시작하며, 신지호의 플레이를 똑같이 따라했다.
확실히 부유한 자원을 갖고 시작할 수 있어서 좋았다.
다만 초반부터 공격적인 이신의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러면 인류 대 인류 전이 팬들이 보기에 지루할 텐데.’
가뜩이나 방어에 특화된 종족인 인류.
둘 다 부유하게 시작하면, 서로 규모가 커졌을 땐 더더욱 섣불리 상대를 공격할 수 없어진다.
결국 전선을 구축하고 세력다툼을 벌이는 장기전이 된다.
‘다른 빌드가 더 있나 살펴보자.’
은퇴하고서 벌어졌던 인류 대 인류 전 경기를 보며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득, 그의 오래된 3G 폴더폰이 진동을 했다. 액정을 보니 발신자는 방진호 감독이었다.
“여보세요?”
-너지?
“뭐가요?”
-아까 신지호랑 붙은 거!
“제가 신지호랑 왜 붙습니까?”
-플레이어 신, 그거 너 맞잖아 인마.
“그게 누굽니까?”
-구라 까지 말고 솔직히 불어. 너 아니면 누가 그 스피드로 신지호를 몰아세워?
“그런 선수가 있었습니까? 그럼 어서 영입하시죠.”
-너 맞잖아. 은퇴한 선수라던데 너 아니면 누구야?
“현역 선수가 거짓말하는 건지 누가 압니까? 아무튼 전 아니니 귀찮게 하지 마십시오.”
그러면서 폴더폰을 닫아버렸다.
잠시 후 다시 방진호 감독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왜 끊어 새꺄?
“용건 끝난 줄 알고요.”
-하여간 싸가지 하고는. 코치 정말 할 거야?
“할 겁니다. 절 영입할 용의는 있으십니까?”
-있긴 한데 계약은 조금 미루자.
“왜요?”
-신지호 재계약부터 먼저 해야 돼. 어차피 코치는 이적 시즌 아니어도 고용할 수 있잖아.
“여름 이적 시장 끝날 때까지만 기다리죠.”
-그래, 근데…… 정말 너 아냐?
“아닙니다. 손목도 아직 시원찮은데 무슨 신지호랑 게임입니까?”
-에이, 좋다 말았네.
통화가 거칠게 끊겼다.
그렇게 통화를 마치고 다시 게임을 하고 있을 때였다.
-쪽지가 도착했습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
이신은 확인을 눌렀다.
쪽지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안녕하십니까. MBS의 감독 방진호라고 합니다. Player_SIN님의 실력에 경탄해 이렇게 쪽지를 보내게 되었습니다.괜찮으시다면 직접 만나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데, 꼭 연락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신은 피식피식 웃었다. 가볍게 답장을 보냈다.
***
2020년 6월, 월드 SC 그랑프리가 시작되었다.
세계 e스포츠의 축제.
한국에서도 작년 프로리그 승률 3위권의 세 선수가 개인전에 출전. 단체전에도 작년 프로리그 우승팀 쌍성전자가 출전했다.
그리고 참가하지 않은 나머지 팀에게는 휴식이 주어졌다.
하지만 월드 SC 그랑프리 외에도 e스포츠 팬들의 관심을 모으는 이벤트가 있었다.
6월은 바로 이적 시즌이었던 것.
응원하는 팀이 어떤 선수를 영입할 것인가, 혹은 보낼 것인가가 주목되는 시기였다.
올해 여름 이적 시장의 가장 큰 대어는 바로 MBS의 에이스 신지호.
작년 프로리그 승률 4위.
이신이 없는 현재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의 인류 플레이어.
계약 기간이 분명 끝날 때인데 아직 재계약 소식이 들리지 않자, MBS 팬들은 불안에 휩싸였다.
가뜩이나 여러 팀에서 노리는 올해 0순위 타깃.
이러다 정말로 딴 팀에 에이스를 빼앗기는 건 아닌지 걱정이 들었다.
MBS팀 운영진도 안달복달 나기는 마찬가지였다.
역사가 짧은 e스포츠의 특성상 팀보다 선수 개인에 더 애정을 갖는 팬이 대다수.
딱히 팀마다 연고지가 있는 것도 아니므로, 신지호가 다른 팀에 가버리면 덩달아 이탈해 버리는 팬들이 상당할 터였다.
박상혁 단장은 MBS 방송국 상부에 건의해서 연봉을 더 높게 불러야 한다고 피력했지만, 끝내 허가를 받지 못했다.
나이 많고 보수적인 방송국 경영진에게 e스포츠는 아직도 애들 장난 정도이며 필요 이상의 투자는 낭비였다.
결국…….
“죄송하게 됐습니다, 감독님.”
고개 숙이는 신지호.
“그래, 어쩔 수 없지. 너나 나나 프로니까.”
방진호 감독은 차분하게 수긍했다. 얼굴은 불편했지만, 냉정한 프로의 세계이니 떠날 선수는 떠나보내는 수밖에.
그게 자신이 연습생 시절부터 키운 애제자 같은 선수라도 말이다.
“쌍성전자에 가더라도 감독님의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그랬다.
작년 프로리그에서 우승한 강팀 쌍성전자는 기어코 신지호를 빼앗아가 버렸다.
2년간 연봉 8억!
e스포츠계의 레알 마드리드를 꿈꾸는지, 엄청난 1군 라인업을 갖췄음에도 신지호까지 영입해 버린 것이다.
다른 팀들도 탐낸 신지호였기에, MBS가 제안한 2년간 5억이라는 조건은 초라할 뿐이었다.
그렇게 신지호는 자기 짐을 챙기고 팀을 나가버렸다.
이제 연습실에도 숙소에도 신지호의 자리는 비어버렸다.
‘이렇게 된 이상 이신이라도 데려와야지.’
신지호가 없어졌으니 MBS에 이신을 반대할 사람은 없었다.
신지호를 잃고 끊어질 팬들의 관심을 붙잡아줄 스타가 필요했다. 그게 선수가 아닌 코치라 하더라도 말이다.
신지호에게 주려고 했던 연봉만큼의 돈도 비었기에 이신이 제안한 연봉 1억쯤은 줄 여유가 있었다.
박상혁 단장도 동의했고, 마침내 이신에게도 연락을 취해 고용 의사를 밝혔다.
‘정말 아닌가?’
방진호 감독은 Player_SIN을 떠올렸다.
명백하게 신지호를 압도한 경기력!
그런 선수를 얻으면 신지호를 잃은 전력 손실을 매우고도 남는다.
하지만 Player_SIN과의 쪽지 대화는 영 잘 풀리지 않았다.
아무리 간절히 설득해도 방진호 감독을 사기꾼으로 몰며 욕설 가득한 답장만 날아올 뿐이었다.
“혹시나 현역 프로 새끼가 장난 친 거면 절대 가만 안 놔둔다.”
방진호 감독은 주먹을 불끈 쥐고 부르르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