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233
232화 프랜시스(2)
드워프를 상대로 한 서열전은 아직까지 치러본 적이 없는 이신이었다.
때문에 상당히 긴 준비 기간을 가지고 모의전을 치렀다.
질 드 레는 이번에는 드워프로 이신의 모의전 상대가 되어 주어야 했다.
하지만 질 드 레는 그동안 스피드가 빠른 마물을 다뤘던 탓에 느리기 짝이 없는 드워프에 쉽사리 적응을 못했다.
“스피드가 느리다고 템포가 느린 게 아니야.”
이신이 충고를 했다.
“말뜻을 잘 이해하기 힘듭니다.”
“휴먼도 마찬가지지만, 드워프는 특히나 더 중요한 자리를 잡는 게 중요해.”
“그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속도가 느리니 자리 잡기 싸움에서 이기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더 빨라야 해.”
“예?”
의아해하는 질 드 레에게 이신이 말했다.
“생각과 결단.”
이신이 계속 말했다.
“원하는 위치를 먼저 선점하려면, 상대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거나 상대의 방해를 극복할 수 있는 전력을 모으거나 하는 준비가 필요해. 그때그때 상황을 보며 즉흥적으로 판단한다면, 아무리 빨라도 늦어.”
“무슨 말뜻이신지 알겠습니다.”
“크게는 전략, 작게는 적을 타격하는 작은 전술까지도 그렇게 미리 설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예, 제게 잠시 시간을 주십시오.”
이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생소한 종족인 드워프를 지휘하게 되었으니 연구할 시간을 더 주어야 했다.
다만, 이신의 준비도 바쁜데 질 드 레에게까지 시간을 주자니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단점이 있었다.
그러다가 이신은 문득 무언가가 떠올랐다.
“콜럼버스!”
“예, 주군!”
“너도 뱃사람이지?”
“헤헤, 제가 뱃사람이 아니면 누가 뱃사람이겠습니까?”
콜럼버스가 헤죽거리며 웃었다.
유럽과 아메리카를 연결하는 신항로를 개척한 콜럼버스는 프랜시스 드레이크보다 더 이전 시대의 탐험가였다.
“너도 한 번 내 모의전 상대가 되어봐라.”
“제가요?”
콜럼버스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물었다.
“너도 프랜시스 드레이크와 마찬가지로 뱃사람이었으니 참고가 될 지도 모르지.”
“프랜시스 드레이크라! 들어봤는데 악마라 불릴 정도로 스페인을 괴롭힌 유명한 해적 놈이라면서요?”
“그래, 너도 어디 한 번 네 나름대로 드워프를 지휘해 보아라.”
“예!”
그리고 이신은 질 드 레에게도 말했다.
“콜럼버스와 너 둘이서 번갈아가며 내 모의전 상대가 되어라. 자기 차례가 아닐 때는 모의전을 관람하면 참고가 될 것이다.”
“알겠습니다.”
물론 콜럼버스와 프랜시스 드레이크의 능력은 비교 자체가 불가능했다.
프랜시스 드레이크는 마젤란에 이어 두 번째로 세계 일주에 성공한 탐험가이자, 스페인 무적함대 격파의 일등공신.
그에 비해 콜럼버스는 지구 한 바퀴 반이나 되는 엄청난 오차의 거리 계산법으로 항해를 시작했고, 죽을 때까지 아메리카를 인도라 믿은 작자였다.
당대 군주들 대부분이 콜럼버스의 탐험을 후원해주지 않은 것은, 19세기 소설가 워싱턴 어빙의 소설처럼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 시대는 이미 지구가 둥글다는 상식을 전제로 항해술이 발달했고, 군주들은 콜럼버스의 계산대로 대서양을 통해 인도로 향했다가는 물귀신이 되리라는 걸 알았다. 아메리카 대륙의 존재를 몰랐던 걸 감안하면 타당한 판단이었다.
그럼에도 새로운 항로를 개척할 필요가 있었던 스페인의 이사벨라 1세 여왕에게 후원을 받아냈지만 말이다.
‘어찌 되었건 연습 상대로 써서 도움이 된다면 그만이지.’
그때부터 이신은 두 사람을 번갈아 상대하며 드워프를 상대로 한 서열전 감각을 끌어올렸다.
콜럼버스를 또 다른 연습 상대로 삼은 이신의 선택은 옳았다.
콜럼버스는 군사 전문가인 질 드 레와 관점이 달랐다.
질 드 레는 이신의 전략을 파악하고 분쇄하는 데 골몰했다면, 콜럼버스는 그런 투쟁심보다는 시간과 거리의 계산으로서 접근했다.
놀랍게도 콜럼버스는 전장의 중앙 지역에 소화기공방을 건설했다.
소화기공방에서 소환된 드워프 총수를 다수의 드워프 광부(마력석을 채집하는 드워프의 일꾼)와 대동시켜서 초반 기습을 펼쳤다.
이신을 흉내 낸 치즈 러시.
드워프의 짧은 다리라도, 전장 중앙에서 소환되어 걸어가면 원하는 시간에 적진에 도달할 수 있다고 계산한 것이었다.
비록 막아내고 승리하긴 했지만, 이신은 이때 상당히 고전해야 했다.
똑같이 병력이 많지 않은 초반에는 체력이 우수한 드워프 쪽이 육탄전에서 유리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신이 치유 능력을 동원했다면 더 쉽게 막았겠지만, 지금은 빙의해야 하는 콜럼버스가 없어 불가능했다.
“잘했다.”
이신의 칭찬에 콜럼버스는 의기양양한 표정이 되었다.
이 같은 콜럼버스의 색다른 관점과 시도는 질 드 레에게 영감을 주었다.
콜럼버스는 이따금 엉뚱한 시도만 할 뿐 실력은 제자리걸음을 하였지만, 덕분에 질 드 레가 일취월장하였다.
시행착오 끝에 질 드 레의 드워프 전략 방침이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혔다.
수비태세를 갖춰가며 차근차근 안전하게 마력석 채집장을 늘려나간다.
그렇게 모은 병력의 막강한 화력으로 전진.
전진할 때마다 추가로 마력석 채집장을 가져가며 점진적으로 전장을 장악하는 방식이었다.
드워프에 가장 어울리는 정석적인 운영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이신은 생각했다.
이 기본 정석에서 개개인마다 자기만의 색깔을 입힐 것이다.
그리고 프랜시스 드레이크가 가진 색깔은 소수 부대의 침투 및 기습을 통한 흔들기라고 이신은 확신했다.
‘이제 문제는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느냐군.’
프랜시스 드레이크도 악마로서의 고유 능력을 가지고 있을 터. 그것이 어떤 변수가 될지 알 수 없었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기습 작전과 관련된 능력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지.’
이신은 철저한 모의전으로 준비를 해나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
“이번 서열전은 여러 번 치러야 할 수도 있어요.”
서열전 준비에 몰두하던 이신에게 그레모리가 말했다.
“한 번이 아닐 수 있단 말씀이십니까?”
“네, 최근 들어 유행하고 있는 서열전 방식이 있죠.”
의아해하는 이신에게 그레모리가 설명해주었다.
72악마군주들의 최상위권.
나폴레옹을 계약자로 거느린 바알부터 시작해 아가레스, 바싸고, 가미진, 마르바스, 발라파르, 아몬 등은 보유한 마력량이 수백만 단위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악마군주들이었다.
당연히 서로 간의 마력량 차이도 수십 만 가량이었다.
문제는 서열전에서 배팅할 수 있는 마력량은 최소 1만, 최대 5만이라는 점.
“즉, 서열이 바뀌려면 서열전을 한두 번만 치러서는 어림도 없는 거예요.”
“카사노바와 겨뤘을 때처럼 여러 번 치르겠군요.”
3판 2선승 규칙으로 서열전을 치렀던 카사노바와의 서열전 기억을 떠올리며 이신이 말했다.
“네, 다만 계속 도전할지 포기할지는 도전자의 의지에 달렸죠.”
서열전 한두 번 가지고는 서열 변동이 이루어지지 않는 최상위권.
한 판에 운명이 갈리지 않으니 긴장감이 하위권보다 떨어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것은 훨씬 더 피 말리는 사투였다.
한 번 기세 싸움에서 도전자에게 밀렸다가는, 도전자에게 계속해서 연패해 마력을 자꾸만 갈취당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나름대로 매우 살벌한 세계인 것이다.
“상대가 그걸 흉내 낼 수 있다는 것이군요.”
“그래요. 현재 제가 보유한 마력량은 33만 가량인데 악마군주 오로바스는 36만 정도예요. 만약에 악마군주 오로바스가 1만씩 배팅을 한다면, 우리가 이긴다 해도 한 번 더 치러야 하죠.”
“장단점이 뚜렷하겠군요.”
“네.”
이신은 여러 번 게임을 치르는 다전제의 속성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예를 들어 회심의 깜짝 전략을 준비했는데 한 판 더 싸워야 한다면 곤란해진다.
즉, 다전제는 상대에 대해 얼마나 잘 분석해서 많은 수를 준비해왔느냐에 걸렸다.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기본기가 중요했다.
“서열전은 많이 치를수록 계약자의 실력도 올라가기 때문에 요즘은 이 방식을 많이 선호한다고 하더라고요.”
곰곰이 생각해본 이신이 입을 열었다.
“제 예상에 오로바스의 계약자 프랜시스 드레이크는 기습 작전을 즐겨 사용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래요?”
“악마군주 오로바스가 마력을 어떻게 배팅하느냐에 따라 프랜시스 드레이크의 스타일이 분석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똑같이 기습을 선호해도 사람에 따라 스타일이 천차만별이었다.
황병철은 기습 한 방에 올인을 한다.
이신은 상대가 그로기 상태에 빠질 때까지 쉬지 않고 펀치를 퍼붓는다.
반면 레전드 프로게이머인 최환열이나 오성준의 경우는 운영상의 이득과 우위를 위해 상대를 견제한다. 한 마디로 몇 포인트를 득점하기 위한 가벼운 잽이라 할 수 있었다.
프랜시스 드레이크가 이중 어떤 스타일일지는 아직 미지수.
하지만 악마군주 오로바스의 마력 배팅량을 통해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신이었다.
‘2만 이상의 마력을 한 번에 배팅하면 기습 작전에 무게를 많이 뒀다는 뜻이다.’
반대로 마력을 1만만 배팅한다면, 기습 작전이 한 번 노출되어도 상관없다는 뜻이었다.
즉, 기습이 운영상의 일환이라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이쪽이 더 가능성이 높군.’
칼레 해전을 생각해보면, 프랜시스 드레이크는 상습적으로 스페인 함대를 노략질해 악마라 불린 남자였지, 크게 한 방으로 끝낸 스타일이 아니었다.
“아무튼 상대가 여러 번 서열전을 치른다면 저도 준비할 게 더 많아지겠군요.”
“호호, 그렇겠네요. 수고해주세요.”
“예.”
그렇게 이신은 서열전 준비를 마무리했다.
서열전을 준비하면서 부수적인 소득도 거뒀다.
바로 질 드 레와 콜럼버스의 실력 향상이었다.
“주군 덕분에 여러 가지 종족을 해보니 서열전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원래 상대를 잘 알아야 싸워 이길 수가 있지.”
이신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프로게이머들은 기본적으로 하루 연습을 시작할 때, 손을 풀면서 다른 종족으로 플레이를 해본다. 직접 플레이해봐야 더 상대 종족을 잘 이해하게 되고 그만큼 상대가 어떤 의도를 품고 있는지 잘 파악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질 드 레는 그걸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제가 계약자였던 시절에 지금 같은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렇게 허망하게 버려지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군요. 물론 주군을 만난 덕분에 이렇게 강해졌으니 과거에 대한 미련은 없습니다.”
질 드 레로서는 계약자 자리에서 쫓겨나 다시 지옥에 돌아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던 옛날보다, 이신의 권속이 되어서 마계에 정착한 지금이 더 행복할 터였다.
이신은 문득 궁금해졌다.
“한때 15위에 있었다고 했지?”
“예, 별다른 활약을 못해보고 연패하여 쫓겨나긴 했습니다만.”
“그쪽 계약자들의 실력은 어느 정도지?”
그 질문에 질 드 레는 조금의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아마 지금의 제 수준쯤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가.”
“하지만 아직까지 주군보다 강한 계약자는 본 적이 없습니다.”
“현재 10위 이내에 있는 계약자들과도 서열전을 치러본 적이 있나?”
“한 번도 없습니다. 하지만 10위권에 새로 진입한 계약자는 지금까지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들의 강함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하더군요.”
“재미있겠군.”
“예, 주군이시라면 그들과도 능히 대적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결국 그곳까지 이르게 될 거야. 그리 긴 세월이 걸리진 않을 거야.”
1위 나폴레옹.
그밖에도 기라성 같은 영웅들이 그곳에 있을 것이다.
그런 이들과 승부를 겨룬다니, 상상만 해도 매우 즐거운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