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380
380화 불길(1)
“그렇게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는 상대였습니까?”
왕춘 감독이 물었다.
이신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2대 0 완승이라 다행이지만, 뒤가 없는 플레이라 걱정했습니다.”
이신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
“위험을 감수한 적이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놀란 얼굴을 하는 왕춘 감독.
이신은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제 제자 중에 차이와 장양은 늘 무난한 빌드 오더로 시작합니다. 변함이 없죠. 왜 그런지 아십니까?”
“상대가 뭘 하건 이길 자신이 있으니까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군요?”
왕춘 감독이 내놓은 답에 이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도 그와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오늘은.”
그렇게 말하고는 이신은 쉬러 떠났다.
왕춘 감독은 그 뒷모습을 가만히 보다가 중얼거렸다.
“상대가 어떻게 디펜스를 하건 뚫을 자신이 있었던 건가…….”
이윽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그건 완전히 전성기의 카이저로군.”
늘 공격지향적인 이신의 빌드 오더를 뻔히 알면서도, 막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의 모습이 지금 다시 보이고 있었다.
사상최대의 연봉을 주고 데려온 보람이 있었다.
‘지우펑도 힘냈으면 좋겠군.’
이신과 박영호가 영입되는 바람에 기존의 팀 에이스였던 지우펑에게도 정신적으로 영향이 없을 수 없었다.
다행히 지우펑은 노력형이었다.
부족한 피지컬을 피 나는 노력으로 극복하고 중국 톱의 위치로 올라선 입지전적인 선수였다.
그런 근성이 있기에 이신과 박영호에게 지지 않기 위해 전보다 더 노력하고 있었다.
다만 혹여나 끝내 벽을 넘지 못하고 좌절할까봐 걱정되기도 했지만 말이다.
‘하기야 더 걱정인 건 리우지. 리우 그 녀석은 전혀 자극을 받지 않으니.’
작년에 데뷔하자마자 다승왕과 신인왕을 수상한 초특급 신인.
쾌활하고 천진난만한 성격의 소유자인데, 지나치게 낙천적인 게 흠이었다.
그게 어떻게 흠이 되냐면, 위기감이 없고 굉장히 게으르다.
틈만 나면 몰래 다른 게임을 하고 있고, 잠깐 쉬러 간 틈을 이용해서도 스마트폰으로 모바일 게임을 즐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채 생겨먹은 재능이 뛰어나서 실력이 탁월했다.
새로운 맵이 발표되면 누구보다도 빨리 맵의 특성을 파악한다.
전략연구팀이 자원과 시간을 타이트하게 짠 고난도의 전략을 제시해도, 단숨에 그걸 소화해 버렸다.
그러니 성실하게 훈련에 임하지 않는다고 질책하기도 뭐했다.
저 재능에 노력까지 하면 분명 톱이 될 것 같은데, 그러지 않으니 답답하던 차였다.
‘자극 받으라고 박영호를 데려온 것도 있었지.’
같은 괴물 플레이어를 엄청난 몸값에 데려왔으니 자극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랬더니 자극은 도리어 노력파인 지우펑이 받아 버렸고, 리우는 동경의 대상인 이신에게 이따금 관심을 드러내는 것 말고는 변함이 없었다.
‘노력도 재능이라더니.’
왕춘 감독은 이내 휘휘 고개를 저으며 번뇌를 털어버렸다.
* * *
이신은 장양과 수시로 온라인에서 만나 연습을 했다.
8강전 상대는 괴물 플레이어인 안드레이 이바노프였고, 그의 토털 어택 스타일을 가장 잘 흉내 내는 사람은 장양이었다.
아니, 장양은 흉내를 넘어 아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쐐기충을 최대한 살려서 후반까지 활용하는 게 포인트로군.’
장양의 플레이를 면밀히 보며 이신은 분석을 했다.
인류를 상대로 쐐기충은 명백한 유통기한이 있었다.
쐐기충의 용도는 비행 유닛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한 견제로 인류의 성장과 병력 진출을 지연시키는 것.
하지만 보병들의 공격력이 업그레이드되면, 그 화력에 의해 자칫 잘못해도 몇 마리씩 녹아버린다.
뿐만 아니라 전술위성이 방사능을 살포하면 곁에 있던 쐐기충들도 덩달아 오염되어서 무더기로 체력이 깎인다.
어디 그뿐인가?
인류의 공중의 왕자인 로켓 프리깃도 천적이다.
로켓 미사일을 날려 막강한 범위 공격을 하는 로켓 프리깃은 한데 뭉쳐져 컨트롤되는 쐐기충 편대의 체력을 단체로 뭉텅뭉텅 증발시킨다.
이렇게 천적이 많기 때문에 쐐기충은 초중반에 견제용으로 활용할 뿐, 중후반까지 살리는 경우는 드물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트렌드가 조금 달라졌다.
괴물 플레이어들의 컨트롤 능력이 크게 향상된 것.
전술위성에게 방사능 살포를 당하면, 방사능을 뒤집어 쓴 쐐기충만 빼내서 다른 유닛들이 오염되는 걸 막는다.
보병들의 사격을 피해 끈질기게 사각지대로 다니며 게릴라를 펼친다.
로켓 프리깃은 도리어 쐐기충을 미끼로 유인한 뒤, 폭탄충으로 격추시킨다.
물론 이 같은 플레이는 일류의 컨트롤이 필요했다.
장양은 그걸 더할 나위 없이 잘한다.
‘안드레이 또한 컨트롤 능력이 발군이었지.’
마이클 조셉을 제압한 경기를 보면 순간순간의 컨트롤 센스가 무척 비범했었다.
‘장양과 같은 레벨이라고 생각하고 경기에 임하겠다.’
이신은 장양과의 연습을 통해 자신의 공격력을 더더욱 날카롭게 벼렸다.
너무도 날카로워서 금방 부러질 것 같을 정도로 위험천만하게 말이다.
‘일단 레퍼토리 하나는 생겼군.’
안드레이의 토털 어택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본 이신의 토털 어택.
병영 병력, 의무병의 섬광탄, 스텔스 전투기, 고속전차의 지뢰를 종합적으로 사용하는 플레이는 장양을 상대로 승률이 굉장히 높았다.
‘일단 이걸로 1승.’
8강전부터는 5판 3선승제였다.
이신은 안드레이와의 다전제 시나리오를 차근차근 구상해나갔다.
‘토털 어택을 또 펼치는 척하면서 2항공 스텔스 전투기를 쓰는 것도 괜찮겠군.’
1세트는 2항공을 예상한 상대에게 토털 어택을.
2세트는 전판의 토털 어택을 예상한 상대에게 2항공을.
항공정거장 1채에서 쐐기충을 견제할 정도의 스텔스 전투기만 뽑는 것과, 항공정거장 2채에서 스텔스 전투기를 다수 생산해 공격에 쓰는 건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었다.
‘생각대로 되면 2세트도 승리할 수 있다. 그럼 2승이군.’
2세트에서 2-0의 스코어를 만들면 대결은 9할 가량 이겼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리고 3세트는…….’
나머지 3, 4, 5세트는 그냥 무난한 플레이를 해도 된다.
하지만 이신의 준비성은 그렇게 허술하지 않았다.
3세트 역시 상대가 예측 못한 전략을 하나 넣을 생각이었다.
‘이번에는 무난하게 시작하는 편이 낫겠지.’
너무 본진 플레이 위주로 하면 부작용도 생긴다.
그래서 이번에는 평범한 1병영 더블로 시작하기로 했다.
병영을 짓고 바로 앞마당 확장을 하는 보편적인 빌드 오더 말이다.
하지만 상대의 예측을 벗어난 타이밍이 하나 있어야 한다.
이신은 고민 끝에 한 가지 시도를 더 해보기로 했다.
* * *
세계 최고의 프로게이머 8인이 윤곽을 드러냈다.
지난해 은메달리스트이며 올해에 한층 더 강력해진 기량을 뽐내는 박영호.
엄청난 뚝심의 철벽 디펜스로 두각을 드러낸 신지호.
미국에서 활약 중인 아마드 부티아.
지난해 금메달리스트 엔조 주앙.
돌아온 러시아의 차르 안드레이 이바노프.
중국 최고의 신족 플레이어 지우펑.
독일의 미하엘 슈나이더.
그리고 말이 필요 없는 게임의 신 이신.
이중 이신과 박영호, 아마드 부티아 등은 최소 8강 이상은 당연히 진출할 수 있다고 추측되는 강자들이었다.
엔조 주앙의 경우 작년에 금메달을 획득한 스타였으나, 올해 들어 부진이 있었기에 좋은 성적을 얻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평을 받았다.
미하엘 슈나이더는 탄탄한 기본기를 가진 독일의 강자로, 늘 그랑프리 개인전 무대에서 16강 이상은 하던 선수.
가장 의외의 인물은 바로 두 사람, 신지호와 안드레이였다.
신지호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실력자로 알려지긴 했지만, 이렇게 세계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낼 정도라고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또한 안드레이는 이미 2년간 부진을 겪어서 이미 쇠퇴기에 접어들었다고 평가받았는데, 마이클 조셉을 꺾어서 파란을 일으켰다.
항상 세간의 추측대로만 되지 않는 것이 승부의 세계인지라, 올해의 그랑프리 개인전은 더욱 큰 관심을 받았다.
[카이저를 꺾을 자는 누구인가?] [카이저의 권좌 탈환을 저지하려는 도전자들] [SC스타즈 왕춘 감독 “카이저, 다시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려 해”] [엔조 주앙 “진정한 금메달의 주인 될 것”] [전문가들이 꼽은 유력 금메달 후보는?]다시 e스포츠는 이신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랑프리 무대로 돌아온 이신.
손목 부상 이전에는 세계무대에서도 적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가 칩거한 1년간 엔조 주앙과 마이클 조셉 같은 신흥 강자들이 두각을 드러냈다.
예전처럼 결국 카이저를 당해내지 못한다는 스토리가 아닌, 정말 누가 이길지 기대되는 대결 구도가 성립된 것이었다.
특히나 4년 전에 이신과 4강전에서 치열하게 붙었던 안드레이까지 돌아오면서 드라마는 화룡정점을 찍었다.
세계 e스포츠팬들은 그랑프리에서 만들어질 감동의 드라마에 대한 기대를 느꼈다.
그동안 엔딩이 뻔한 드라마만 봐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카이저라 해도 쉽게 금메달을 장담할 수 없는 예측 불허의 무대였다.
그 탓일까.
스트리밍 서비스로 전 세계에 방영되는 그랑프리 경기의 데이터 송출량은 나날이 역대 최고점을 갱신하고 있었다.
“아주 좋은 바람이 불고 있어.”
SC사의 사장, 코렛 사장은 기분 좋게 웃었다.
월드 SC 그랑프리의 소식을 전하는 인터넷 뉴스들은 e스포츠 시장이 카이저의 귀환과 함께 더욱 부흥하고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여기서 끝날 바람이 아니지.”
전 세계 e스포츠팬들에게 선사하고 싶은 사상 초유의 이벤트가 준비 중이었다.
스페이스 크래프트 리마스터 정식 출시.
그리고 카이저를 그대로 재현한 인공지능!
이 이벤트들은 월드 SC 그랑프리의 열기가 식기도 전에 더더욱 불을 지필 것이다.
산불처럼 번져나가 활활 타오를 것이다.
불타오르듯이 팬들은 열광할 것이다.
“그렇지, 카이저?”
코렛 사장이 주시하는 모니터에는 이제 막 온라인 대전에서 승리를 거뒀다는 알림 메시지가 뜨고 있었다.
아이디는 다음과 같았다.
Kaiser2018.
카이저의 1년 치 플레이 데이터를 더 입력한 이 인공지능은 더더욱 살아 숨 쉬는 것처럼 온라인을 주름잡고 있었다.
이 인공지능은 스스로 학습하는 머신러닝 방식이 아니라서 지금껏 없었던 무언가를 창조하지 못한다.
이미 카이저가 과거에 시도했던 플레이만 재현할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Kaiser2018은 충분히 다채롭고 플레이 하나하나가 살아 있었다.
그만큼 카이저가 이룩한 데이터는 방대하고 위대했다.
S등급에 오른 Kaiser2018은 이미 수없이 영입 제의를 받고 있었다.
현재는 북미 서버에서 활동 중이나, 곧 아시아, 유럽 서버에서도 활약케 할 생각이었다.
정체불명의 온라인 초고수!
전 세계가 이 신비 고수의 정체를 궁금해 할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 코렛 사장은 준비한 모든 이벤트를 뻥 터뜨릴 생각이었다.
그날을 기다리며 코렛 사장은 불을 서서히 지피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카이저 당신이 다시 권좌에 올라주어야 할 텐데.’
과거와 현재의 카이저가 맞붙는다는 세기의 빅 매치를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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