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439
439화 분담(2)
선수들이 세 종족으로 나뉘어서 팀을 결정하고 각자 주장 선출에 들어갔다.
인류 팀의 경우 만장일치로 주장이 선출되었다.
실력으로 보나 나이로 보나 이신밖에 없었다.
이신은 팀원들에게 이번 역할 분담 플레이에 대한 설명을 자세하게 들을 수 있었다.
“생산 유닛을 다루는 사람과 전투 유닛을 다루는 사람이 각기 따로 있다고?”
“그래, 한 명은 생산과 운영을 담당하고 나머지 셋이 각자 맡은 전투 유닛을 컨트롤하는 거야.”
“신기하군.”
이신은 생소하지만 나름대로 재미있는 게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게 딱히 훈련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냥 팀워크를 다지기 위해서인가.’
팀워크를 중요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게임은 혼자서 하는 거다.
사이가 안 좋다고 해서 서로 연습을 못하는 것도 아니고, 결국 경쟁이란 건 본인의 의지와 노력에 달린 거였다.
‘서로 친해져서 뭐 하겠다는 거지?’
연습 상대가 있는 한 혼자서도 얼마든지 실력을 연마할 수 있다. 이신은 그렇게 했다.
심지어 전략팀의 피드백까지 있는 축복받은 환경이다.
각 팀이 주장을 선출하는 동안 이신은 잠시 휴게실로 나왔다.
“마뜩찮은 표정이군요?”
어느새 따라 나온 왕춘 감독이 말을 건넸다.
“훈련의 목적은 압니다.”
“하지만 딱히 의미는 없어 보인다는 겁니까?”
왕춘 감독은 정곡을 찔렀다.
“예.”
“모두가 다 당신처럼 강인한 게 아닙니다.”
“…….”
“넘을 수 없는 벽 앞에 좌절하기도 하고, 보다 높은 도약을 위해 타인의 도움도 필요합니다. 카이저라도 이 자리에 오기까지 완전히 혼자였던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신은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최환열이 떠올랐다.
플레이의 대부분은 VOD를 보며 홀로 연구한 게 대부분이었지만, 기본기를 습득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줬고 게임 외적인 부분에서 끌어준 면도 있었다.
“그런 것 같습니다.”
이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냥 심심풀이라는 셈치고 후배들과 어울려주십시오. 혹시 모르잖습니까. 어린아이에게도 배울 점이 있다고 했는데, 당신도 뭔가를 깨우치는 계기가 될지.”
고개를 끄덕인 이신은 다시 연습실로 돌아갔다.
다른 팀들도 주장을 선출했다. 신족 팀은 단연 지우펑, 괴물 팀은 리우였다. 실력 위주로 주장을 뽑았는데, 박영호의 경우 실력은 공인되었으나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 관계로 리우가 뽑혔다.
역할 분담 게임에 참여할 수 있는 건 한 팀당 4명까지였으므로, 주장을 제외한 다른 3명은 1군, 2군과 상관없이 제비뽑기로 뽑았다. 어차피 번갈아가면서 모두 참여할 기회가 가도록 했다.
“풀리그 방식으로 1위를 뽑는다. 상만 있으면 재미없으니 벌칙도 정하지.”
왕춘 감독이 규칙을 추가했다.
“꼴지를 한 팀은 24시간 훈련.”
“24시간?!”
“잠도 자지 않고?”
“와, 너무해.”
선수들이 암담해진 얼굴로 울상이 되었을 때였다.
문득 박영호가 나서서 왕춘 감독에게 뭐라고 얘기를 했다.
하는 수 없이 이신이 통역해 주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24시간 밤샘 훈련은 자주 했던 일이라 너무 쉽고, 60시간쯤은 되어야 재미있는 벌칙이 되지 않겠냐고 합니다.”
왕춘 감독도 코치도 선수들도 그만 멍해졌다.
“60시간? 그거 장난이지?”
“에이, 사람이 어떻게 60시간동안 잠도 자지 않고 게임을 해.”
“아냐, 한국인은 할 수 있댔어. 한국인 게이머들은 PC방에서 며칠 지새는 건 기본이라고…….”
“그런 민족이 어디 있어?!”
“여긴 중국이라고!”
“24시간 밤새는 게 너무 쉽다니, 무서운 한국의 게임 폐인들…….”
“그 정도는 해야 은메달을 딸 수 있는 건가? 너무 지독하잖아!”
왕춘 감독은 코치진과 상의를 했다. 모양새를 보니 정말 박영호의 의견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고민하는 것 같아 선수들은 불안해졌다.
이윽고,
“좋습니다. 꼴지 팀은 밤을 새든 새우잠을 자든, 진 시점부터 60시간 동안 연습실을 떠나지 말 것.”
그리고는 화이트보드에 60이라는 숫자를 적었다.
“으아악!”
“진짜 60시간이다!”
“이제 외박 휴가 보상 따위가 문제가 아니야!”
“다 모여! 제대로 전략 짜자고!”
패닉에 빠진 선수들이 전의에 불타올랐다.
어떻게든 꼴지는 면해야 한다는 의지로 가득 찼다.
한편, 의견을 낸 박영호 본인도 화이트보드에 쓰여 있는 숫자를 보고 당혹했다.
“형, 내 말 제대로 통역한 거 맞아? 난 분명 40시간이라고 했는데…….”
“40시간도 너무 쉬워.”
박영호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이신을 쳐다보았다.
그랬다.
박영호도 인간적으로(?) 40시간을 제안했는데, 중간에서 통역한 이신이 60시간으로 뻥튀기 해버린 것이다.
‘그쯤은 되어야지.’
40시간 밤샘 훈련도 여러 차례 해본 적이 있는 이신.
벌칙이라면 그쯤은 되어야 한다는 자신만의 기준으로 이런 만행을 저지른 것이었다.
덕분에 선수들은 불타올랐다.
“생산은 누가 맡지? 이게 가장 중요한 역할이잖아.”
“당연히 주장인 카이저가 맡아야지.”
“아냐! 카이저의 컨트롤이 너무 아깝잖아! 직접 유닛 컨트롤해서 견제하는 역할을 해줘야 돼.”
“바보냐? 견제 플레이도 운영이 중요하지.”
“어째서?”
“견제에 투입할 병력을 생산하고 그것 때문에 지출되는 자원 손해도 최소화시켜주는 관리가 필요하잖아. 게다가 견제는 아무 때나 하냐? 상대 상황을 살펴가면서 적절한 타이밍에 해야 하고,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고 연속으로 공세를 이어가려면 오더를 잘 내려야 해.”
1군 주전 선수의 말이라 2군과 연습생들은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건설로봇 컨트롤도 카이저가 최고잖아. 일단은 생산은 카이저에게 맡기자.”
그렇게 생산과 운영은 카이저가 총괄하기로 결정 났다.
첫 번째 상대는 신족이었다.
생산을 담당한 것은 역시나 지우펑이었다.
그렇게 게임이 시작되었는데, 헤드셋으로 서로 바쁘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플레이하는 건 색다른 재미가 있었다.
이신의 첫 활약은 건설로봇의 정찰로 시작되었다.
본진 출입구를 광신도가 막고 있었는데, 이신이 컨트롤하는 건설로봇이 멋지게 통과해버린 것이다.
-오!
-우와, 어떻게 한 거야?
이신이 간단히 답했다.
-앞마당 자원 클릭하고 비비면 돼.
-앞마당 자원?
-각도 조절을 잘 하면 미세하게 비비고 통과할 수 있어.
생산유닛으로 자원을 클릭하면 중간 루트를 가로막는 유닛을 그냥 통과해버리는 특성이 있다.
그걸 활용하여서 미세하게 광신도를 통과할 수 있는 빈틈을 만들어낸 것이다.
물론 프로들 사이에서 활용되는 노하우이긴 하지만, 저런 위치에서도 통과가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저 위치에서도 되긴 되는구나.
-각도 조절을 얼마나 잘해야 하는 거야?
덕분에 신족 팀의 빌드 오더를 확인.
-건물이 하나 비었다!
-철갑충차다!
-로봇공학연구소를 어딘가에 숨겨 지은 거야.
상대팀의 의도가 빤히 밝혀졌다.
생산과 컨트롤을 각기 분담할 수 있기 때문에, 한 명이 철갑충차 컨트롤에 집중해서 견제하겠다는 의도였다.
-안전하게 가볼까.
이신은 안전하게 본진과 앞마당에 대공포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철갑충차가 수송기를 타고 침투하지 못하게 원천봉쇄한 것.
그리고 고속전차를 생산해서 맵 곳곳에 지뢰를 심고 정찰을 하도록 시켰다.
철갑충차로 견제하면서 2번째 확장 기지까지 가져갈 시간을 버는 게 신족 팀의 목적.
의도 파악이 끝났으니 이신은 자신의 판단대로 대응을 개시했다.
기갑정거장을 늘려 짓고 고속전차를 찍어낸 것.
컨트롤을 맡은 세 팀원에게 계속 견제를 펼치도록 했다.
-내가 앞마당 갈게, 넌 9시로 가.
-좋아!
-오, 항공수송선도 나왔다. 이거 내가 쓴다?
-그래, 넌 그걸로 본진 가.
세 선수가 각기 3곳을 공격하니, 멋진 견제 플레이가 펼쳐졌다.
이신은 팀원들에게 지시를 내림으로서 견제 플레이가 단지 산발적인 공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서로 연계되어서 시너지 효과가 일어나도록 유도했다.
-카이저, 기계보병도 조금만 뽑아줘.
본진 견제를 맡은 팀원이 요구하자 이신은 쾌히 기계보병을 생산해 주었다.
놀랍게도 그 팀원은 기계보병을 항공수송선에 태워서 상대 진영에 드롭, 상대측의 정찰선을 격추시키는 데 활용했다.
-여기다가 레이더!
레이더를 쓰자 투명했던 모습이 드러나는 신족의 정찰기.
기계보병이 즉각 그 정찰기를 격추시켰다.
‘괜찮은 방법이군.’
정찰기를 격추시킴으로서 신족은 본진에 깔린 지뢰를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져 버렸다.
그렇게 지뢰 제거를 방해하면서, 본진 공격이 더 원활해졌다.
고속전차들이 계속 항공수송선을 타고 침투해 본진을 마구 헤집었다.
기계보병도 견제에 동원해 상대 정찰기를 제거한다는 발상은 이신도 해본 적이 없었다.
‘정말 배울 점이 있었군.’
왕춘 감독이 옳았다. 이신도 무언가를 배웠다.
본진만이 아니라 앞마당과 2번째 확장 기지로 견제를 당하고 있어서 신족 팀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와, 이러니까 진짜 잘 된다.
-하하! 우리가 전성기 시절의 카이저가 된 것 같아.
-이러니까 카이저의 견제를 알아도 못 막는 거구나.
팀원들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넷이서 다 함께 하는 플레이가 이신을 닮았다는 것.
물론 생산과 운영을 맡은 게 이신이니 당연했지만, 사방에서 동시다발로 펼치는 견제가 쏙 빼닮았다.
셋이서 분담해서 하는 플레이를, 이신은 혼자 펼쳐냈던 것이다.
‘나도 이런 플레이를 해봐야지.’
‘그냥 간간히 한두 번 하는 견제는 약해. 이렇게 상대가 방비하고 있어도 견제가 먹힐 수 있도록 만들어내는 게 필요해.’
‘견제만이 아니라 공격할 때도 이런 식으로 하면 좋은 것 같다.’
이신이 내리는 지시를 통해 그의 의도와 상황 판단력이 팀원들에게도 전해졌다.
이를 통해 팀원들은 초일류 플레이를 체험할 수 있었다.
결국 신족 팀은 견제만 받다가 무너지고 말았다.
빌드 오더를 들키는 바람에 철갑충차로 아무것도 못한 신족 팀은 완패당할 수밖에 없었다.
“와.”
“롤러코스터 탄 느낌이었어.”
“카이저의 오더대로 하니까 재미있네. 상황 전개가 진짜 빨라.”
이신과 합작 플레이를 하면서 개안을 한 팀원들.
이어진 게임에서도 교대로 출전한 팀원들이 같은 기분을 느꼈다.
이신 팀은 무적이었다.
그것은 오더를 내리는 능력의 차이였다.
마계에서 서열전과 모의전을 치러본 경험이 이신의 오더 능력을 턱없이 높게 키워준 까닭이었다.
디테일한 부분까지 지시를 내림으로서 팀원들에게 가르침을 내려준 셈.
한편으로는 이신도 새로운 기분을 느꼈다.
‘평소보다 더 잘됐다.’
손이 여덟 개가 됐으니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것 말고도 다른 이유가 있었다.
직접 플레이하기보다는, 서열전 지휘를 하듯이 전황을 관조하는 입장에 서다 보니 게임이 새롭게 다가왔다.
새로운 시각에서 게임을 보게 된 것.
게다가 팀원들도 제각기 개성과 아이디어가 있었고, 이를 통해 이신도 많은 것을 배웠다.
‘아직도 더 성장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구나.’
이래서 스페이스 크래프트는 재미있었다.
그날 이신의 인류 팀은 압도적으로 1위를 했다.
꼴지는 괴물 팀이었다.
“다들 오해하지 마, 난 분명 40시간이라고 했는데 저 양반이 글쎄…….”
박영호가 팀원들의 원망을 한 몸에 받으며 손짓 발짓으로 떠들어댔다.
보아하니 그새 꽤 친해진 모양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