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438
438화 분담(1)
흐르는 물처럼 검을 휘두르다.
그날 중국 e스포츠 언론이 이신의 플레이에 찬사를 보낸 표현이었다.
그 표현이 딱 맞았다.
시종일관 유리했던 리창이 만신창이가 되기까지가 그야말로 한 순간이라 임팩트가 더욱 컸다.
흐르는 물이라는 표현이 딱 맞는 이신의 견제 플레이였다.
잠깐 대기했다가 겹쳐 심은 지뢰가 폭발하자마자 득달같이 달려들어 다친 거신병기에게 마무리를 가한 고속전차들.
같은 시각 항공수송선이 출발.
고속전차들이 목적을 완수하고 뒤로 빠졌을 때, 항공수송선이 도착.
빠지자마자 항공수송선을 타고 다시 본진 침투.
같은 시각, 후속 생산된 고속전차가 달려와 앞마당 습격.
추가로 생산될 때마다 계속 달려와 공세의 끈을 놓지 않는 고속전차.
1초도 쉬지 않고 몰아친 연속 난타에 리창은 단번에 그로기에 몰리고 말았다.
지뢰를 밟은 실책 하나가 패배로 직결될 정도로, 상대의 대미지를 눈덩이처럼 불려버린 이신의 플레이는 그야말로 전위예술이었다.
그렇게 이신이 수준 높고 보기도 즐거운 슈퍼플레이로 하이라이트를 장식!
SC스타즈는 3-0 대승이라는 개막전 시나리오를 달성했다.
이날 가장 주목 받은 주인공은 이신이었다.
“성공적인 중국 데뷔전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상대였던 리창 선수는 어땠습니까?”
“아직 뭐라고 평가할 만한 상황은 못 봤습니다.”
“지뢰 겹쳐 심기와 1기갑 1항공 빌드 오더는 준비한 전략입니까?”
“준비한 게 맞지만 지뢰 겹쳐 심기에 중요한 비중을 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게 안 걸리더라도 견제를 넣어 어떻게든 무너뜨릴 작정이었습니다.”
“과거의 전성기를 느끼게 한 공격적인 플레이였는데, 스타일에 큰 변화를 주기로 한 겁니까?”
“스타일이야 언제든 때에 따라 바꿀 수 있습니다만, 과거의 플레이를 좀 더 참고하기 시작한 건 사실입니다.”
“각국 서버에 Kaiser2018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시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그건 말을 아끼겠습니다.”
그냥 한번 찔러본 기자의 질문에 이신은 그리 대답했다.
자신이 관련되어 있다는 걸 굳이 숨기지는 않은 것이다.
‘이렇게 날 귀찮게 했으니 반드시 재미있는 것을 보여줘야 해, 코렛 사장.’
SC코퍼레이션이 준비하고 있을 희대의 이벤트에 이신은 기대를 품었다.
* * *
상하이 게이밍은 패배를 인정하면서도 오늘의 굴욕을 잊지 않겠다고 표했다.
패배의 원인으로는 주 전력을 1, 2, 3세트에 집중시켜 일찌감치 승부를 띄운 왕춘 감독의 과감한 용병술로 꼽았는데, 사실 그건 그냥 변명이었다.
“그냥 상대가 안 된 거지.”
“응, 5세트에도 러너가 있었는데 전력 집중은 무슨. 그냥 주전 멤버가 다 강한 거야.”
“어느 강팀에 가도 에이스 대우 받을 사람이 넷이나 있으니까. 상하이 게이밍도 골머리 썩겠지.”
“작년에도 당해내지 못했는데 이제 작년 멤버 그대로에 카이저와 러너가 더 얹어졌잖아. 이번 시즌은 그냥 우리가 전승 우승하는 거 아닐까?”
두런두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청년들은 바로 SC스타즈의 선수들이었다.
1군과 2군 선수들인데, 숙소로 돌아와 오늘의 경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죽을 맛인 건 상대팀만이 아니지.”
“…….”
선수들의 분위기가 우울해졌다.
그랬다.
팀이 이겼다고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는 처지였다.
그들은 그런 4인방과 주전 경쟁을 벌여야 하는 것.
1군 선수들은 그 4인과 직접 경쟁하는 처지였고, 2군 선수들의 경우는 따로 하위 팀 소속으로 2부 리그에 출전하고 있지만 그들 또한 1군에 올라가고 싶어 했다.
그런데 안 그래도 높았던 벽이 더 높아진 것.
“다음에 돌아올 팀 내전 때 어떻게든 5위 안에 들어야 할 텐데.”
주전 5인을 결정하는 팀 내전은 매달 벌어진다.
거기서 5위 안에 들어야 경기에 출전할 수 있는 주전이 된다.
물론 경기 출전 자체는 감독의 뜻에 달린 것.
감독과 전략팀의 회의에 따라 전략적인 카드로서 다른 선수가 출전할 때도 있지만, 그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체로 팀 내전의 결과가 반영된다.
“연습 때 카이저 이겨본 사람 있냐?”
“없지…….”
“유리한 빌드 오더로 시작했는데도 못 이기겠더라.”
“오늘 상대였던 리창하고 똑같아. 분명히 유리했는데 계속 얻어맞다 보니 어느새 져 있어.”
“견제 올 걸 알고 있는데도 못 막겠더라. 진짜 괴물이야.”
견제가 들어올 걸 알고서 디펜스를 탄탄히 해놓았는데도, 이신은 야금야금 건드리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없었던 빈틈도 억지로 만들어내 비집고 들어가 상처를 입혔다.
한 번 상처를 입으면 아주 작은 생채기라도 상관없었다.
그걸 시작으로 쉴 틈 없이 몰아치는 견제를 받아 보면 작은 상처가 점점 벌어지는 것.
뭔가를 보여줄 틈도 없이 그냥 막다보면 져 있었다.
이쪽에서 먼저 선수 치려면 초반의 올인 전략밖에 없는데, 초반에 승부 보려다가 건설로봇의 초인적인 블로킹에 막혀 자멸하는 패턴이 된다.
옛날 이신의 무패 금메달 업적에 희생된 상대 선수들의 심정을 알 것 같았다.
“견제를 알아도 막다보면 져 있고, 먼저 선수 쳐도 막혀 버리고. 대책이 없었겠지.”
“나이를 속인 거 아냐? 전성기 시절 포스 그대로잖아.”
지금도 금메달을 획득하여 정상에 오른 이신이지만, 사람들은 이신의 전성기 시절을 데뷔부터 부상당해 은퇴했던 때까지로 일컫는다.
그때는 아예 적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신의 상대를 찾지 못하는 한 스페이스 크래프트 e스포츠는 미래가 없다고까지 말했다.
이신이 너무 많이 이기다 보니 재미가 없어졌다는 의견이었다.
세월이 흘러 20대 중반이 되었건만, 이제 와서 이신은 그 전성기 시절의 위압감을 풍기기 시작했다.
다시 찾은 금메달이 신호탄이 된 것처럼 말이다.
“그런 선수랑 치열하게 싸우다니, 러너도 대단하지?”
“그냥 은메달이 아니지. 그건 그냥 인간 세상의 금메달이야.”
“결승 5세트 다시 봐봐. 러너도 인간 아니잖아.”
“지금도 카이저 상대로 연습게임하면 절반은 이기더라.”
“종족 상성도 있는데 어떻게 괴물로 카이저를 이기지?”
그들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경쟁을 해볼 만한 상대에서 이신, 박영호, 지우펑을 제외해 나갔다. 달걀로 바위 치기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리우는 한번 해볼 만하지 않을까?”
“아서라, 리우는 만만해 보이냐? 그 4명 중에는 그나마 낫긴 하지만.”
“아냐. 신인왕에 다승왕 먹었던 작년이면 모를까, 요즘 리우는 좀 상태가 별로야. 오늘 경기도 그랬고.”
“그건 그렇지? 여전히 플레이에서 클래스가 드러나긴 하지만, 잔 실수가 좀 많아진 구석이 있어. 그치?”
“세심함이 떨어졌지. 예전에는 촉수충을 겹쳐 놓고서 그 위에 하늘군주를 띄워놓아서 안 보이게 가려놓았거든. 근데 요즘엔 잘 안 하더라.”
“귀찮아진 거네. 원래 좀 설렁설렁 하려는 구석이 있었잖아.”
“연습도 잘 안 하고.”
반란을 모의하듯이 팀 내전에서 5위 안에 들 방법을 고심했다.
그들은 주요 타깃으로 리우를 노렸다.
* * *
“이기기 위해 모여서 상의를 하는 건 좋은데, 파벌이 갈리는 건 안 좋지 않을까요?”
코치가 왕춘 감독에게 말했다.
다른 코치들도 동의하는 눈치였다.
“표현은 안 하지만 카이저와 러너를 데려온 것에 불만이 좀 있는 눈치였습니다.”
“사실 카이저가 아니라 러너죠. 카이저야 선수들로서도 우상이니까 그렇다 쳐도, 러너는 그냥 한국에서 온 엄청난 주전 경쟁자일 뿐이니까요. 말도 안 통하니 더 위화감이 커졌고요.”
“그 위화감이 문제죠. 선수들이 네 사람을 멀리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 걱정됩니다.”
의견을 듣던 왕춘 감독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왕춘 감독은 세계 최강팀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품고서 그런 결단을 내렸다.
이는 옳은 선택이었다.
기존의 선수들로서는 주전 경쟁이 더 심화되어서 힘든 측면이 있을 터였다.
지난 시즌 우승을 이뤄낸 공로까지 있으니 왕춘 감독에게 섭섭함도 느꼈을 터였다.
그래도 경쟁 속에서 서로 실력이 향상된다면 팀에 좋은 작용이 된다고 왕춘 감독은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부분은 카이저와 러너의 실력이었다.
기대 이상이었다.
지나치게.
카이저야 그렇다 쳐도, 러너의 기세가 무서웠다.
SC스타즈의 체계적인 팀 지원을 받자 더 성장해 버렸다.
연습을 해도 아예 이길 수가 없을 정도이니, 자극받아 성장하기보다는 전의를 꺾는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었다.
수준이 다르다고 인정해 버리고 순응해 버리면 문제가 된다.
“카이저, 러너와 다른 선수들. 서로 대화는 하나?”
왕춘 감독이 문득 물었다.
“전혀요.”
코치들이 고개를 저었다.
“카이저는 말수도 사교성도 없는 편이고, 러너는 언어가 안 통합니다.”
“뿐만 아니라 지우펑, 리우와도 거리를 두는 모습입니다. 이러다가 주전 4인과 나머지 선수들로 사이가 갈라지겠어요.”
왕춘 감독도 문제의 근본을 인지했다.
경쟁은 좋다.
하지만 서로 소통이 되지 않으면 팀에 상승효과가 일어나지 않는다.
연습 게임을 치른 후에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성장해 나가는 걸 보고 싶었다.
“일단 사이가 좋아지게 만들어야겠군.”
왕춘 감독이 중얼거렸다.
문득 미소가 나왔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아들이 게임을 하던 게 떠올랐다.
분명 스페이스 크래프트이긴 한데, 그런 게임 방식은 처음 본 왕춘 감독이라 흥미로웠다. 아들은 카이저와 같이 이 게임을 해보고 싶다고 조르기도 했다.
“감독님?”
갑자기 말이 없어진 왕춘 감독을 코치들이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왕춘 감독은 웃음을 띠며 말했다.
“내일 오후 훈련은 다른 걸로 대체하도록 하지.”
“그게 뭡니까?”
“역할 분담 플레이라고 들어봤나?”
다음 날, 선수들은 코치들의 말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역할 분담?”
“그게 뭐지?”
“아, 나 알아. 요즘 유행하는 건데.”
선수들이 웅성거렸다.
이신과 박영호도 의아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역할 분담? 그게 뭔지 형은 알아?”
“몰라.”
역할 분담 플레이는 스페이스 크래프트를 즐기는 색다른 방식이었다.
어떤 유저가 만든 맵인데, 선수들은 알 리가 없었다.
가뜩이나 매일 붙잡고 있어서 지겨운 스페이스 크래프트를 쉴 때도 취미 삼아 할 리가 없지 않은가.
코치의 설명이 이어졌다.
“생산과 컨트롤을 따로 분담해서 프레이 하는 맵이다. 한 사람은 생산유닛을 담당하고, 다른 사람들은 각자 맡겨진 전투 유닛을 컨트롤하는 방식이다.”
그래도 아직 이해가 덜 된 선수들이 있어 코치는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됐다, 해보면 알겠지. 인류, 괴물, 신족 세 팀으로 나눠서 주장을 뽑은 뒤에 서로 겨룬다. 이긴 팀에게는 상이 주어진다.”
상이란 말에 선수들이 관심을 보였다.
상이 무엇인지는 왕춘 감독이 밝혔다.
“1박 휴가.”
선수들의 눈빛이 뜨겁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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