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502
502화 일인자(2)
-경기는 잘 봤습니다. 지금껏 본 최고의 명경기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왕춘 감독의 찬사에 이신은 가볍게 화답했다.
-AI의 실력이 우리의 예상 이상이더군요. 이제 와서 세삼 당신의 예전 플레이를 다시 연구하는 움직임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왕춘 감독의 목소리는 기뻐 보였다.
e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실력이었다고 회자되는 2018년도의 이신.
그걸 반영한 AI를 상대로 이신은 기어코 승리했다.
지금의 자신이 그 시절의 스스로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증명한 순간!
손목 부상을 당하기 전보다 퇴보한 게 아니라는 것을 입증했으니, 그 의미는 컸다.
SC스타즈로서는 명실상부한 역사상 최고의 실력자를 품고 있는 셈이니, 그를 영입한 왕춘 감독의 배팅이 더욱 빛났다.
-그렇게 준비시킨 지우펑이 졌을 땐, 당신도 2-1 정도로 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저희의 오산이었군요. 정말 준비를 많이 하셨던 듯합니다.
“디펜스를 강화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아슬아슬했죠.”
-예, 모처럼의 휴가를 전부 훈련으로 보낸 게 눈에 그려졌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복귀를 나흘 더 늦춰드리겠습니다. 푹 쉬다 오시죠.
“그럼 리그에 차질이 생기지 않습니까?”
-첫 경기 정도는 당신이 빠져도 문제없습니다. 그리고 휴가를 훈련으로 보냈으니 감각이 떨어졌을 걱정도 할 필요가 없을 테고요.
“걱정 안 해주셔도 휴가는 충분히 즐겼습니다.”
이신은 자신이 받는 연봉에 대한 책임이 있으므로 특혜를 거부하려 했다.
하지만 왕춘 감독이 말했다.
-많이 지쳐 계시지 않습니까?
“제가요?”
-정신적으로 말입니다.
“…….”
경기가 끝나고 있었던 인터뷰에서 화제가 되었던 것은, 다음 목표가 뭐냐고 물었을 때 모르겠다고 한 이신의 대답이었다.
뭘 해도 감흥이 없을 것 같다는 이신의 말에는 너무 오랫동안 최고의 자리를 지켰던 최강자의 비애가 담겨 있었다.
그런 권태감을 SC스타즈에서 우려스럽게 받아들인 것이었다.
어찌 되었건 거액을 투자하여 데려온 특급 에이스였고, 아직 팀을 위해 더 열심히 활약해 주어야 하는 이신이었으니까.
“익숙한 일이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실 필요 없습니다. 말씀대로 기분 전환도 하면서 쉬다 복귀하겠습니다.”
-그러십시오. 그동안 못 해봤던 것을 이참에 해보시는 것도 좋겠군요. 모르잖습니까. 게임 말고 또 좋아하는 걸 찾아낼지. 아직 해본 것보다 못 해본 게 더 많으실 테니까요.
“그러죠.”
휴가가 늘어난 이신은 주디 일행과 함께 더 어울려 놀았다.
게임은 매일 1시간씩 손을 풀어주는 정도로만 했고, 그 외에는 왕춘 감독의 권유대로 이것저것 해보았다.
스키도 타고 등산도 하고 영화도 보았다.
이곳저곳 관광도 다녔다.
하지만 이신이 그동안 그런 여가 생활을 하지 않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재미없다.’
실시간으로 펼쳐지는 불꽃 튀는 승부.
순간의 판단에 희비가 교차되는 숨 막히는 경쟁의 세계.
그런 극단적인 자극을 즐겼던 이신으로서는 다른 모든 것에 무덤덤했다.
그나마 즐거워하는 주디를 보며 위안할 뿐, 이신은 슬슬 무료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그의 선택은 마계였다.
‘이게 있어서 다행이군.’
아직 서열전이 남아 있었다.
현재 악마군주 그레모리의 서열은 11위.
이제 최종 목적지인 1위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아직 목표가 남아 있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이신은 당분간은 마계에 집중하기로 했다.
반지에 마력을 불어넣고 그레모리에게 말을 걸었다.
-어머, 카이저. 무슨 일이죠?
언제나 그렇듯 반가워하는 기색이 담긴 그녀의 목소리는 듣기 좋았다.
‘슬슬 마계의 일에 집중해 볼까 해서 연락드렸습니다.’
-마침 잘됐네요.
‘예? 혹시 도전이라도?’
-호호, 아뇨. 악마군주 할파스는 우리에게 도전할 엄두를 못 내고 있어요.
악마군주 할파스는 서열 12위, 그 계약자는 다름 아닌 발터 모델이었다.
일전에도 비스마르크를 앞세워서 서열전 단체전을 벌였다가 이신과 질 드 레에게 패배했다.
그 뒤에 이신은 알렉산드로스의 지원 요청을 받아서 활약, 서열이 단숨에 11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이제 발터 모델이 도전해야 하는 입장이었는데, 아직까지 아무 소식이 없는 걸 보니 이신을 상대하길 꺼려하는 것이 확실했다.
‘발터 모델이 누군가에게 겁먹을 사람은 아니었는데 의외로군요.’
-요즘 들어 카이저의 단체전 실력이 인정받았거든요. 축제 때도 활약했고, 요번에도 알렉산드로스를 도우면서 다시 실력을 입증했죠. 그래서 요즘 10위권 이내에서는 서로 단체전을 하지 말자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다는 소문이에요.
‘그건 또 무슨?’
의아해하는 이신에게 그레모리가 웃으며 알려주었다.
-단체전이 벌어지면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카이저를 부르기 때문이죠. 가뜩이나 10위권 진입을 노리는 강력한 경쟁자인데, 그런 카이저에게 좋을 일을 시켜줄 수는 없다는 뜻이죠.
그제야 이신은 상황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서열전 단체전에서의 실력은 최상위권의 계약자들도 인정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동안 보여준 것이 있으니 당연했다.
이신은 앞으로도 배팅이 2배인 단체전을 이용하여서 빠르게 서열을 올릴 것이고, 이는 최상위 계약자들이 매우 경계하는 상황이었다.
어찌 보면, 마계에서도 시대의 변화가 이신에게 웃어주고 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마침 잘됐다고 하신 건?’
-아하, 그건 말이죠.
어쩐지 웃고 있는 그레모리의 표정이 눈에 보일 듯했다.
-지금 여기저기서 카이저에게 지원 요청이 들어오고 있거든요.
그랬다.
이신이 한편이면 서열전 단체전에서 매우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다.
최상위권에서도 경계할 정도인데, 아래쪽에서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래서 지원 요청이 아래쪽 서열에서 물밀 듯이 쏟아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일복이 터졌죠. 이것들을 전부 받아들여주면 마력을 쓸어 담을 수 있겠어요. 어때요? 흥미가 생기나요?
이신은 피식 웃었다.
‘좋습니다.’
마침 기분 전환이 필요했는데 잘됐다.
어디든 부르는 대로 달려가서 마음껏 싸우고 싶었다.
이윽고,
파앗!
시커먼 블랙홀이 나타나 이신을 집어삼켰다.
* * *
이신이 마계로 돌아왔다는 소문을 들었는지, 다음날 바로 계약자 3인이 방문했다.
다들 낯이 익었다.
가장 눈에 띠는 건,
“여어! 잘 있었어?”
볼 때마다 활기찬 조아생 뮈라였다.
“또 보는군. 무슨 일이지?”
“무슨 일이겠어? 이제 슬슬 윗 서열로 도전을 하려 하는데 네가 도와주면 일이 훨씬 잘 풀릴 것 같아서 말이야. 인연도 있는데 당연히 날 도와줘야지?”
그때였다.
“결론을 너무 빨리 내리는 것 같은데 그만두시지?”
여성의 목소리였다.
바로 하트셉수트.
이집트를 전성기로 이끌었던 위대한 여성 파라오였다.
축제 때 원숭환과 한편에 서서 이신과 싸웠던 인연이 있었다.
“레이디께서 도움이 필요하신 모양인데, 이 조아생 뮈라는 어떻소?”
조아생 뮈라가 능글거리는 태도로 하트셉수트에게 말했다.
하트셉수트는 물론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았다.
“너야말로 의사의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군. 이신을 앞에 두고 너 따위에게 도움을 청할 이유는 뭐냐?”
“어허, 섭섭하게 말씀하시기는. 그래서 더 매력적으로 보이긴 하오만.”
“어른이 말하는데 끼는 게 아니다, 꼬마야.”
그렇게 조아생 뮈라를 깨끗이 무시하고는, 다시 이신을 바라보며 하트셉수트가 말했다.
“난 지금 도전을 받는 입장이고 상대측에서 먼저 단체전을 요청했습니다. 그대가 도와주면 깨끗이 낙승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최대 배팅을 할 생각이니 도와준다면 그대도 얻는 게 많을 거예요.”
“어이, 그렇게 따지면 나도…….”
조아생 뮈라가 뭐라고 반박하려는 찰나, 하트셉수트가 말을 끊었다.
“넌 분명 도전하는 입장이랬지? 네 편에 이신이 있으면 상대가 잘도 최대 배팅을 하겠구나?”
“끄응!”
“지금 급한 건 네가 아니니까 얌전히 순서를 기다리려무나, 꼬마야.”
또 꼬마 취급을 당한 조아생 뮈라는 울컥했다.
“또 꼬마라고 했어?!”
그러나 돌연 느끼한 표정으로 돌변하며 이어서 말했다.
“날 그렇게 대한 건 어머니 이후로 당신이 처음이오, 레이디. 더 반하겠군. 우리 어머니는 당신이 이집트 다스리듯 여관을 잘 꾸리셨소.”
“…정말 징그러운 놈이구나.”
눈살을 찌푸리는 하트셉수트를 보며 그제야 다소 만족스러워하는 조아생 뮈라였다.
실랑이를 벌이는 두 사람.
그리고 나머지 한 계약자는 바로…….
“내가 예견하지 않았소. 당신은 아주 크게 될 인물이라고.”
러시아를 망친 사이비 요승, 그리고리 라스푸틴이었다.
그를 보자 이신은 떨떠름해졌다.
마계에 있는 72명의 계약자 중 요사스럽고 미스터리하기로는 으뜸인 라스푸틴이었다.
“당신도?”
이신이 묻자 라스푸틴이 답했다.
“동탁이 도전할 거라는 흉조가 내려졌소.”
악마로서의 그의 고유 능력은 바로 흉조.
즉, 상대의 모든 공격을 미리 알아차리는 능력이었다.
그게 이런 식으로도 작용되는 모양이었다.
그레모리의 궁전 뒤뜰에 마련된 이신의 작은 영지는 세 계약자의 방문으로 어수선해진 상황.
이신은 3인을 면밀히 둘러보다가 결정을 내렸다.
“순서대로 가지요.”
이신은 하트셉수트, 라스푸틴, 조아생 뮈라의 순서로 결정을 내렸다.
단, 라스푸틴에게는 단서(但書)를 달았다.
“내가 지원한다고 했을 때 그래도 동탁이 도전을 한다면 그때 돕죠.”
“아마도 그냥 물러나겠구려.”
라스푸틴은 순순히 수긍했다.
라스푸틴은 현재 서열 59위 구간에 있었다.
지금 껑충 11위로 올라가 있는 이신이 지원군으로 나타났는데 그때도 동탁이 도전을 강행할 확률은 희박했다.
겉보기나 불같은 성질과 달리 상당히 여우같은 구석이 있는 동탁이니 말이다.
조아생 뮈라는 현재 도전자의 입장이니 이신이 언제 합류하더라도 상관없었기에 가장 뒤로 미뤄졌다.
“결정됐군요.”
하트셉수트가 말했다.
“우리는 지금 악마군주 엘리고르의 도전을 받은 상태입니다.”
“엘리고르?”
악마군주 엘리고르라면 몇 번 들어보았다.
바로 질 드 레를 계약자로 임명했다가 쫓아낸 악마군주였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뒤로도 새로운 계약자를 계속 찾아내 시험해 보았지만, 계속 추락을 거듭하다 40위까지 내려앉았다고 들었다.
현재 하트셉수트의 악마군주 말파스의 서열이 39위이니, 도전자가 바로 엘리고르인 모양이었다.
“지옥에서 또 한 명 계약자를 건져다가 썼는데, 이번에는 제법 실력이 있는지 몇 차례의 도전을 이기고 40위 유지에 성공했다고 들었어요.”
“그 계약자가 누구입니까?”
“이반 바실리예비치라고 하더군요.”
“이반 4세?”
이신은 곧바로 기억 속의 인명사전에서 지식을 꺼냈다.
“그렇게 불리더군요.”
한국에서는 뇌제 이반이라 부르는 러시아의 미치광이 통치자였다.
하지만 잔학한 혹정을 일삼은 광기와는 달리 업적도 상당했는데, 중국으로 따지면 진시황에 비유할 수 있었다.
오늘날 러시아의 광대한 영토는 이반 4세 없이는 있을 수 없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후딱 끝내야겠군.’
어찌 되었든 하위 서열이므로 그리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일감이 계속 밀려들고 있으니 후딱후딱 해치워서 마력을 긁어모을 생각이었다.
‘이대로 일감만 받아도 7, 8위까지 금방이겠군.’
뛰어난 단체전 실력이 명성을 떨치는 바람에 마계의 용병 같은 포지션이 된 이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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