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508
508화 복귀(1)
그레모리가 서열 8위에 머물러 있는 동안 9위로부터의 도전은 없었다.
현재 서열 9위는 악마군주 바르바토스였는데, 그의 계약자가 바로 바야투르였다.
묵돌선우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바야투르는 이미 테무친과 함께 알렉산드로스와 싸웠다가 이신에게 당한 바가 있었다.
그때 이신에게 크게 당한 바야투르는 72악마군주의 축제 이후로 또다시 입증된 이신의 단체전 능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대일이면 모르겠지만 단체전으로는 어렵다.’
일대일이라면 안 진다는 생각이 바야투르의 마지막 자존심이었지만, 어쨌든 이신과 싸우는 일은 기피하기로 결정했다.
한창 기세를 탄 적과 굳이 싸울 필요가 없다는 게 바야투르의 생각이었다.
아니, 사실 바야투르 외에 최상위 계약자들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루 이틀 치러본 서열전이 아니었다.
서열 10위 안에 들어가는 계약자들은 다들 한 번씩 그런 상승세를 경험해 보았다.
지금은 11위로 떨어져 있는 한신도 한때는 3위까지 무섭게 치고 올라간 전적이 있었고, 바야투르도 마찬가지였다.
나폴레옹에게 밀려 2위에 머물러 있는 알렉산드로스도 한때는 아무도 대적 못하는 부동의 1위였다.
‘저렇게 기세를 타고 있을 땐 정말 상대가 누구라도 안 질 자신이 있지.’
바야투르도 그런 경험을 해보았기 때문에, 상승세를 탄 이신을 가만 내버려두기로 하였다.
어차피 기세는 꺾이게 마련.
괜히 지금 건드려서 피해를 볼 필요는 없었다.
자기 마력을 걸고 싸우는 거라면 해보겠는데, 악마군주 바르바토스는 모든 악마가 다 그렇듯 마력을 굉장히 아까워하는 작자였다.
졌다가는 무슨 잔소리를 들을지 모르므로 그냥 잠잠히 있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싸우기 꺼려지는 상대이기도 했다.
‘난생 처음 보는 용병술이었어. 정교한 운영도 그렇고…….’
숱하게 서열전을 치러본 바야투르였지만, 이신 같은 타입의 계약자는 보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을지 정확한 방도가 나오지 않았다.
‘보아하니 한신도 실패한 듯하고.’
한신이 피로스와 손잡고서 이신과 승부를 걸었다가 패배한 소식은 들었다.
단체전에 대하여 잔뜩 골몰하던 눈치던데, 나중에 들어보니 허무하게 당했다고 한다.
‘한신 녀석도 실패했다니, 나도 자중해야겠군.’
어차피 시간은 많았다.
끝을 모르고 올라가는 이신도 결국 어딘가에서 멈출 것이다.
수없이 연구당한 끝에 약점이 나타날 것이고, 기세가 꺾일 것이다.
불쑥 8위에 나타난 이신을 다른 최상위 계약자들이 가만 놔두는 이유도 이거였다.
다들 바야투르와 같은 생각을 하고는 느긋이 관망하는 것이었다.
여기저기서 마력을 벌어 와서 순위를 높이고 있는 이신을 그냥 지나가게 놔두겠다는 태도로 말이다.
아주 오랫동안 이 끝없는 경쟁을 펼쳐본 계약자들은 일시적인 순위 변동에 대해서 그다지 예민하지 않았다.
최고가 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알렉산드로스야 1위를 되찾고 싶어 안달이지만 말이다.
* * *
덕분에 이신은 아주 순조롭게 순위를 올리는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지원 요청이 들어올 때마다 순순히 응해주어서 서열전 단체전 경험을 쌓고 마력을 벌었다.
물론 이신이 나타나면 상대측은 도전을 포기하거나 혹은 배팅을 최소로 해버리는 탓에 마력 벌이가 시원치 않았지만.
그 대신 질 드 레가 열심히 다니며 마력을 벌어왔다.
계약자가 아닌 일개 권속 악마에 불과한 질 드 레의 활약상은 마계에 또다시 파장을 불러오고 있었다.
자기 휘하의 권속 악마를 가르쳐서 서열전 단체전을 뛰게 한다는 개념은 신선하기 짝이 없었다.
가르쳐서 질 드 레처럼 뛰어난 실력을 갖추게 만들면 계약자와 권속 둘이 같이 서열전을 치르고 다니며 마력을 두 배로 벌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무나 흉내 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일단 가르친다고 질 드 레처럼 어마어마한 실력을 갖게 되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자칫 가르쳐 놓은 권속의 실력이 자신을 추월해 버린다면?
그럼 악마군주가 자신을 쫓아내고 권속을 계약자로 임명할 수도 있는 노릇 아닌가.
그래서 계약자들은 이신이 위험한 일을 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신으로서는 아무 상관도 없었다.
누구한테도 절대 안 진다는 마인드!
오히려 가르쳐 줄 테니 제발 나 좀 뛰어넘어보라고 부채질하는 게 이신이었다.
제자의 청출어람을 보며 흐뭇해하는 스승의 마음씨 따윈 조금도 없었지만, 너무 오랫동안 적수를 못 보다 보니 생긴 희한한 사고방식이었다.
그리고 언젠가 계약자를 관두게 되면 질 드 레를 후임으로 내세울 생각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질 드 레의 실력이 입증되자, 하위 서열에서 질 드 레를 지원자로 요청하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질 드 레가 이신만큼 무섭지는 않았으므로, 상대측도 도망치거나 배팅을 낮추지는 않았다. 그 때문에 오히려 질 드 레가 벌어다주는 마력이 점점 많아졌다.
그리고 마침내…….
[마력 총량 1,899,000으로 악마군주 그레모리 님께서 서열 7위가 되셨습니다.]72위 밑바닥에서 시작하여서 마침내 7위를 달성했다.
수많은 계약자들이 출현하고 이에 따라 악마군주들의 흥망성쇠도 끝없이 반복되었지만, 최하위에서 최상위권까지 올라온 예는 지금까지 없었다.
‘그레모리가 정말 계약자 하나 제대로 물었군.’
‘악마군주의 지위까지 위협받던 그레모리가 무려 7위라니.’
‘계약자 잘 만나서 저런 어마어마한 대군주가 됐어!’
‘나도 새로운 계약자나 물색해 봐야 하나.’
‘영구 계약이 아니라던데 혹시 그레모리와 결별할 수도 있지 않을까?’
모든 부러움이 그레모리에게로 쏟아졌다.
그레모리는 연회를 열어 서열 7위로 발돋움한 경사를 기념했다.
이신과 사도들도 전부 참석하여서 흥겹게 놀고 마시고 놀았다.
연회에서 적당히 어울려준 이신은 곰곰이 앞으로의 일을 생각했다.
‘벌써 여기까지 왔군.’
서열전 단체전을 통해 서열을 높이겠다는 계획은 대성공이었다.
서열전 단체전의 일인자라는 이미지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이렇게 많은 지원 요청을 받을 수 없었으리라.
덕분에 7위가 되었지만, 반대로 일대일 서열전 실력은 아직 최상위권 계약자들에게 견줄 정도는 아닐 거라는 인식도 생겼다.
딱히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는 않지만, 이신도 이제는 본격적으로 최상위 계약자들과 대결을 할 생각이었다.
이만큼 순위를 올렸으면, 이제부터는 여기저기서 마력을 벌어오는 것보다 직접 위 서열에 도전해서 이기는 편이 순위를 올리는 더 빠른 길이었기 때문이다.
목표는 1위!
지금은 나폴레옹이 차지하고 있는 그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가고 싶었다.
서열전이라는 악마군주들의 게임에 뛰어든 이상 그 정도는 해야 직성이 풀리니까.
그 뒤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최고가 되고 나면, 이제 그 자리를 뺏기 위해 오는 도전자들과 싸울 것이다.
아마도 최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싸움의 반복일 것이다.
물론 그때는 이미 목표를 잃어버렸을 테지만 말이다.
현실에서처럼 말이다.
이신은 문득 피로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동안 짧은 사이에 수많은 서열전을 치른 탓이었다.
‘일단 돌아갈까.’
더 높은 서열로의 도전은 나중으로 기약하고, 이번에는 이쯤 해두고 현실세계로 돌아가기로 했다.
“질 드 레.”
“예, 주군.”
“내가 없더라도 서열전 단체전 요청이 들어오면 계속 응하도록. 경험을 많이 쌓을수록 나중에 도움이 될 거다.”
“알겠습니다. 주군께서 다시 돌아오셨을 때는 서열 6위가 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농담 섞인 그 말에 이신은 피식 웃었다.
현실 세계에 가 있을 때도 마계에서는 질 드 레가 계속 일해서 마력을 벌어들일 테니, 이건 이것대로 치트키를 쓴 것처럼 편리했다.
질 드 레에게 마계의 일을 맡긴 뒤, 이신은 현실 세계로 돌아갔다.
* * *
현실 세계에서는 휴가가 다 끝나가고 있었다.
인공지능과의 대결 때문에 제대로 쉬지 못했을 이신을 위하여 왕춘 감독이 휴가를 연장해 줬는데, 그것도 이제 끝나가고 있어서 슬슬 복귀할 준비를 해야 했다.
“너희도 팀에 복귀해야지?”
이신의 말에 주디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너무 재미있었는데 아쉬워요.”
주디는 이신과 함께 보낼 수 있었던 휴가가 행복했던 모양이었다.
이신은 이제 손에 익은 습관대로 주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또 휴가 받으면 놀면 되지.”
“약속이에요? 휴가 받으시면 저를 위해 쓰셔야 해요.”
“그래.”
이신은 약속했다.
제자들과 작별하고서, 중국으로 떠나기 전에 가족과도 하루를 보냈다.
“더 쉬지 못해서 어쩌니?”
“충분히 쉬었어요.”
“더 쉬어야지. 그렇게 무리하다간 건강 안 좋아져. 이제 어린 나이도 아닌데…….”
“쉬는 게 더 피곤해요.”
“쯧쯧, 느긋하게 쉬어본 적이 없으니 그렇지.”
마지막 날은 부모님과 함께 느긋하게 보냈는데,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어머니는 문득 스마트폰을 꺼내셨다.
“참, 요즘 네 아버지 별명이 뭔지 아니?”
“아버지 별명이요?”
이신은 의아해졌다.
“그만해.”
아버지는 갑자기 심기가 불편해진 모습으로 핀잔을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기어코 스마트폰으로 이미지 파일을 보여주었다. 웹사이트 커뮤니티의 어느 글을 캡처한 것 같았다.
[제목: 이분이 누군지 알아?]그러한 제목 밑에는 학교에 출근하신 아버지의 사진이 찍혀 있었다.
슈트 차림의 단정한 모습에 안경을 낀 날카로운 인상.
나이는 들었으나 큰 키에 훤칠한 외모는 이신의 유전자가 어디서 왔는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아래로,
[이분이 바로 갓파더임.]라는 본문 글 한 줄이 있었고, 그 아래로는 ‘ㅋㅋㅋㅋ’를 연발하는 댓글들이 이어졌다.
“아버지더러 갓파더란다. 요즘 학교에서도 다들 그렇게 부른다더라.”
“흠흠, 그만하래도.”
아버지는 가만있지를 못하고 연신 헛기침을 하셨다.
그랬다.
아버지는 신의 아버지라는 이유로 학생들 사이에서 갓파더라 불리고 있었다.
굉장히 재미있어 하시는 어머니와 더불어 이신도 피식 웃고 말았다.
아버지는 쑥스러워하셨지만, 아들 때문에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은 것이 딱히 싫은 눈치는 아니었다.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다음 날 이신은 공항으로 나섰다.
택시를 타고 갔는데, 인천공항에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e스포츠 전문 기자는 몇 명 되지 않았다.
나머지는 다 사진 찍으러 온 연예부 기자들이었다.
현재 한국에서 가장 핫한 연예인은 바로 이신이었던 것이다. 인공지능과의 희대의 대결을 치른 뒤라 국민적인 관심이 매우 컸다.
“이제 복귀하러 가시는 겁니까?”
“예.”
“곧 프로리그가 시작되는데 새로운 시즌을 맞이하여 포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모르겠습니다.”
“예?”
“무슨 포부가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
그 말을 남기고 이신은 중국으로 향했다.
2022년.
다시 프로게이머로서 새로운 시즌을 맞이했지만, 이신은 더 이상 선수 생활에 목표도 흥미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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