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523
523화 한니발(3)
1차전의 승리로 마력의 정산이 이루어졌다.
아직 서열 변동은 없었으나, 악마군주 가미진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상대 계약자 이신은 처음 만난 상대였다. 즉, 졌으니 소원을 들어줘야 하는 것이었다.
악마군주 가미진은 모든 학문에 통달했으며 강령술도 할 줄 알았다.
이신은 평소처럼 1%의 마력을 요구하려다가 문득 마음이 바뀌었다.
‘모든 학문?’
어차피 사도들도 다 상급 악마라 업그레이드할 것도 없었다.
마력이 더 있어봐야 딱히 쓸데도 없는 이신이었다. 악마화가 된 다른 계약자들처럼 마력을 탐내지도 않았고 말이다.
그런 이신의 기색을 본 악마군주 가미진은 혹시나 싶어서 물었다.
-다른 원하는 소원이 있느냐?
“모든 학문에 통달했다고 하셨는데, 제게 학문을 몇 가지 분야나 가르쳐주실 수 있습니까?”
-두 가지, 아니 세 가지 학문에 통달하도록 해줄 수 있다.
악마군주 가미진은 이신의 마음이 변할까봐 두 가지에서 세 가지로 올렸다.
가진 총 마력 총량의 1%라면 무려 32,316마력이었다.
이 피 같은 마력을 주는 것보다는 학문 몇 가지 전달해주는 편이 훨씬 남는 장사였다.
이신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높은 수준까지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다양한 분야를 터득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말에 악마군주 가미진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시험이군? 다양한 학문의 기초지식을 묻는.
“예.”
-그럼 거기에 알맞은 게 있지.
가미진은 문득 입을 열더니 웬 구슬 하나를 토했다.
-시험 보는 날 이 구슬을 삼키면 시험에서 묻는 지식이 전부 머릿속에 들어올 것이다. 효력은 사흘간 지속된다.
“좋습니다.”
이신은 그 구슬을 받아들었다.
-그럼 소원은 그걸로 끝난 것이다.
악마군주 가미진도 이신도 만족할 거래였다.
‘이걸로 수능은 문제없다.’
아버지와 약속했던 대로 선수 생활 은퇴 후 한국대 입학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아무리 이신이라도 다시 수능을 보려면 족히 1년은 투자해야 했다.
공부 따위 어려울 게 없었지만, 시간을 아낄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게 없었다.
이 구슬로 1년을 아낀 셈이었다.
‘은퇴 후에 바로 수능을 봐도 되겠군.’
아마 그때 세상은 수능 만점자가 된 이신 때문에 들썩이리라.
한편, 가미진과의 거래를 지켜본 한니발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그런 하찮은 소원을 비는 계약자는 처음 보는군.”
“해야 할 게 많으니까요.”
이신의 짧은 대꾸에 한니발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살아 있기 때문이지. 부럽군.”
아직 살아 있는 이신을 부러워하는 것만은 한니발도 다른 계약자들과 마찬가지였다.
얼마나 많은 영광을 누렸건, 마계에서 얼마나 대단한 존재가 되었건, 아직 죽지 않고 인생을 누리고 있다는 것보다 부러운 건 없었던 것이다.
마계에서 누릴 수 있는 향락이 훨씬 많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계약자가 공통적으로 살아있음을 동경하고 있었다.
이신은 구슬을 안주머니에 소중히 넣어두었고, 다시 서열전에 대한 이야기로 되돌아왔다.
-전장을 바꾸겠다. 이번에는 제 7 전장 오린에서 붙어보자.
가미진의 말에 이신은 눈이 빛났다.
제 7 전장 오린.
구릉 형태로 된 3인용 전장이었다.
전장의 한가운데 중앙을 향해 솟아오른 지형을 띠고 있어, 중앙을 장악한 쪽이 매우 유리해진다.
‘특히 휴먼이 중앙에 투석기를 배치시키면 반쯤 승기를 잡은 것이나 마찬가지지. 왜 이곳을 골랐지?’
제 7 전장 오린을 택한 건 당연히 한니발의 선택일 터.
한니발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야 했다.
‘제 4 전장은 테스트를 위해서였다는 것이군.’
전장 중에 뚜렷한 특징 없이 무난한 전장을 고르라면, 제 1 전장 아스테이아와 이곳 제 4 전장 엔터홀을 꼽을 수 있다.
한니발은 승리가 아닌 이신에 대해 파악하기 위하여 이곳을 1차전의 전장으로 삼았다는 뜻이 된다.
‘그럼 이제는 파악이 끝났기 때문에 전장을 바꿨다는 뜻인데.’
그래서 택한 게 제 7 전장 오린이라니, 어떤 의중을 품고 있는지 궁금했다.
‘일단 부딪쳐볼까.’
1차전에서 한니발이 이신을 탐색했다면, 2차전은 이신이 한니발에 대해 파악할 차례였다.
* * *
2차전이 시작되었다.
한니발은 1차전과 똑같이 시작부터 이신을 거세게 압박했다.
‘멋진 걸 보았다, 젊은 친구.’
그때 이신은 밖에 진을 치고 기다리는 적의 압박을 뚫고 나가야 했다. 심지어 적의 마력석 채집장 한 군데에 피해도 입혀야 했다.
그런 어려운 과제를 성공시키기 위하여, 이신은 변칙적인 기교를 부려야 했다.
적의 눈앞에서 병력을 양분시키는가 하면, 절반밖에 안 되는 병력을 가지고 마물 대군과 싸우며 시간을 벌었다.
‘결국 최종 목적은 12시에 장창병 셋을 보내는 것이었지.’
그것을 위하여 위험 부담을 감수하며 현란한 용병술을 펼쳐 보인 셈이었다.
그 눈속임!
불가능한 과제를 성공시키기 위하여 기교를 부려야 했던 이신의 대담성과 특별함에 한니발은 순수하게 감동했다.
어떻게 그러한 일을 해낼 수 있었을까?
한니발은 2배 이상의 병력을 갖고도 이신의 반쪽짜리 군대에게 농락당한 중앙 지역의 전투를 떠올렸다.
한 번 당해본 이상, 두 번은 같은 수법에 안 당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걸 떠나서, 중앙 지역의 교전에서 이신이 보여준 스피드는 말도 안 됐다.
한니발은 더 빠르고 사나운 마물 군단을 이끌고 있으면서도 이신의 병력을 뒤쫓기에 벅찼다.
‘이신의 장점은 기동성이다.’
한니발은 확신했다.
마물보다 휴먼이 더 기동성이 빠르다는 건 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는데도, 한니발은 확고했다.
그의 군대는 잠시도 제자리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였다.
매순간 조금도 고민하지 않는 의사결정의 속도!
거기다가 상황에 따라 물처럼 병력의 포지션을 바꾸는 말도 안 되는 용병술!
판단 속도와 진형을 단숨에 재정비하는 신속성으로 마물을 능가하는 기동성을 구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휴먼으로 기동성을 중시한 전술을 펼친다니.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폴레옹은 철두철미한 수비태세를 취하다가 기회가 보이면 과감하게 치고 나가 자신의 영역을 확장한다.
이에 반해 이신은 시종일관 빠른 스피드로 상대를 흔들고 현혹시키며 기회를 창출하려 들었다.
어느 쪽이 더 우위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신이 나폴레옹과는 전혀 다른 휴먼의 전략 전술 패턴을 확한 것은 틀림없었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서열 6위라는 위치에 걸맞은 실력자임을 말이다.
그래서 택한 곳이 바로 이 제 7 전장 오린.
전 지역이 경사진 지형을 띠고 있고 절벽 등의 장애물도 많은 복잡한 지형이었다.
평탄했던 제 4 전장 엔터홀 때처럼 종횡무진 달리기 어렵다는 뜻.
한니발은 이곳에서 이신의 기동성을 철저히 봉쇄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장기전까지 갈 생각이 없는 한니발은 꾸역꾸역 병력을 소환하여서 마물 대군을 형성하였다.
그러면서 이신이 본진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계속 압박!
전장에서 고도가 가장 높은 중앙 지역을 장악한 채로 일대를 한 눈에 내려다봤기 때문에, 이신은 한니발의 눈을 피해 병력을 움직이지 못했다.
한니발은 이번에는 독포자꽃이 아니라 비행 마물인 마룡을 주력으로 소환했다.
마룡 편대는 하늘을 날며 이신이 공중으로도 나오지 못하게 감시했다.
이신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봉쇄되어 있는 동안 테크 트리를 올리는 데 집중하여서 마법사를 최단시간에 소환하였다.
마법사가 3명까지 모이고 투석기도 2기가 완성되자, 이신은 즉각 전군을 거느리고 출진했다.
마법사 3명이 쏠 수 있는 파이어 스톰은 총 6방.
그 6방 안에 적을 격퇴시켜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있었다.
하지만 꼼짝없이 봉쇄당해서 적의 동태를 정찰하지 못했다는 점이 악재로 작용했다.
이신이 뛰쳐나온 순간, 한니발이 텅 빈 이신의 본진을 침공한 것이다.
[계약자 한니발 바르카님께서 고유 능력을 사용합니다. 300마력이 소모됩니다.] [50마리의 마물이 절벽을 건넙니다!] [5마리의 마물이 절벽을 건너다가 추락사했습니다.]말로만 들었던 한니발의 고유 능력이 마침내 펼쳐졌다.
50마리의 헬하운드가 일제히 절벽을 건너 본진에 나타나는 광경은 두렵기 짝이 없었다.
그중 5마리가 추락하여서 죽어버린 부작용도 있었지만, 이 능력으로 얻은 전략적 가치를 따지면 약소한 희생이었다.
헬하운드뿐만이 아니었다.
하늘을 날 수 있는 마룡들도 절벽을 건너 날아들어 합세했다.
헬하운드 떼에 마룡까지 합세하니, 한니발의 주력이 모두 이신의 본진에 침투한 셈이었다.
이신은 급히 밖으로 나갔던 병력을 다시 불러들였다.
본진에 어느 정도 방어를 해두었기 때문에 시간을 끌 수는 있었지만, 이신의 예상보다 훨씬 거센 공격이었다.
한니발의 마물 떼가 본진을 휘젓고 다녔다.
이신은 마물들을 한 곳에 몰아넣고 파이어 스톰으로 학살하는 전술을 사용했다.
하지만 마물들은 끝이 없었다.
새로 추가 소환된 헬하운드들이 줄지어서 이신의 앞마당을 급습한 것이다.
이신은 심시티로 앞마당 통로를 틀어막고, 소수의 석궁병으로 대응하는 임기응변을 펼쳤다.
본진과 앞마당에서 모두 처절한 전투가 펼쳐졌다.
한니발은 마룡들을 앞마당 쪽으로 보내서 통로를 막고 있는 건물을 파괴했다.
하지만 심시티로 시간을 번 이신은 그동안 화살탑 2채를 세워놓은 후였다.
살아남은 석궁병들이 화살탑에 들어가 저항했다.
온힘을 쏟고 있는 것은 한니발도 마찬가지.
진즉에 항복 선언을 받았어야 했는데, 끈질기게 버티는 이신 때문에 한니발도 살짝 당황했다.
심지어…….
[적의 습격을 받았습니다!]1시 지역에 구축한 마력석 채집장에서 들린 소식이었다.
장창병 2명이 일하던 클로들을 습격하고 있는 게 보였다.
그 광경을 본 한니발은 그만 혀를 내둘렀다.
‘그 와중에 반격까지!’
급히 본진 수비를 하러 회군했을 때, 장창병 2명은 따로 빼두어서 1시까지 침투시킨 모양이었다.
한니발이 공격에 집중하고 있는 틈을 타서 1시까지 침투시킨 이신의 수완에 경탄이 나왔다.
1시 급습은 예상도 못했기 때문에 한니발도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
뒤늦게 헬하운드들을 보내 진압했지만, 이대로 공격이 막힌다면 상황이 묘해진다.
‘지금 이겨야 한다!’
한니발도 사력을 다했다.
본진에 침투한 헬하운드들이 주요 건물만 골라서 파괴했다.
이신이 노예까지 동원해서 저지하려 했지만, 헬하운드들은 마지막까지 건물만 때려서 파괴하는 데 성공했다.
하필이면 테크 트리의 핵심이었던 마탑이었다.
핵심 전력인 마법사를 소환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마법사가 없자 계속 밀려드는 마물의 물량공세를 이겨내기 힘들어졌다.
[악마군주 그레모리님의 계약자 이신님께서 패배를 선언하셨습니다. 악마군주 가미진님의 승리입니다.]결국 이신은 패배를 인정했다.
일방적인 대승을 예상했었던 한니발로서는 진땀 흘린 신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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