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564
564화 선택(1)
하늘과 땅이 뒤집힌 순간이라고 해도 아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최하위 서열에 있었던 그레모리가 마계 최고의 악마군주로 등극한 순간이니까.
그 기적을 가져다준 장본인인 계약자 이신은 아직 긴장을 풀지 않았다.
악마군주 아가레스와 나폴레옹이 포기하지 않은 이상 아직 대결은 끝난 게 아니었다.
이신은 가만히 나폴레옹을 바라보았다.
나폴레옹도 이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문득 나폴레옹이 이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땠나?”
“무엇이 말입니까?”
“방금 전은 내 실력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이었어. 어땠냐고 묻는 거다.”
이에 이신은 미소를 지었다.
“제가 졌어도 이상할 게 없는 싸움이었습니다.”
“그런가.”
나폴레옹은 그제야 씨익 웃었다.
“실망시키지 않아서 다행이군.”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의 완패인 건 확실하지. 이렇게 완벽하게 당한 적은 처음이야. 하지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저도 즐거웠습니다.”
“덕분에 무엇을 얼마나 더 연마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갈 길이 참 멀다는 것도 알았고. 나 역시 알렉산드로스 그 친구처럼 한동안은 훈련을 하며 살아야겠어.”
나폴레옹은 이신의 어깨를 툭 쳤다.
“놀라운 실력을 보여주어서 고맙다. 다시 만날 때는 내가 도전자이겠군. 그때는 이렇게 압도적으로 당하지는 않을 거야.”
“벌써 그날이 기다려집니다.”
“하하, 변함없이 호전적이군. 어서 내가 강해져서 다시 나타나길 기다리는 모양인데, 기대를 저버릴 수가 있나. 그럼 승리를 축하한다.”
그렇게 나폴레옹은 패배를 깨끗이 인정했다.
오늘 그는 이신에게 수없이 패배했지만, 더불어 이신에게서 많은 것을 배워갔다.
서열전에 대한 새로운 개념.
그것은 서열전의 전략전술을 완전히 뒤바꾸는 일종의 혁명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이신은 수없이 많은 계약자들을 꺾으면서, 그들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해준 셈이었다.
‘마계의 서열 경쟁은 끝이 없는 것이군.’
이신은 기분이 좋았다.
또다시 최고의 자리에 올랐지만, 옛날처럼 고독하지 않았다.
나폴레옹, 알렉산드로스, 프리드리히 2세, 한니발…….
그밖에도 수많은 천재들이 갈고 닦으며 이신에게 다시 도전하려 하고 있었다.
그것을 알기에 이신은 앞으로의 대결이 더 기다려졌다.
-그럼 이만 우리는 떠나야 할 시간인 것 같군.
악마군주 아가레스가 말했다. 그는 그레모리를 바라보며 웃어 보였다.
-최고의 군주로 등극한 것을 축하하네.
“감사해요, 위대한 군주여.”
그레모리는 정중히 예를 갖췄다.
이제 누구보다도 높은 서열에 있는 그녀였지만, 아가레스나 바알은 여전히 존중해야 마땅한 악마군주들이었다.
아가레스는 떠나기 전에 문득 이신에게 말을 건넸다.
-좋은 선택을 하길 바라네. 어느 쪽은 선택하건 그분의 안배이니 현명한 결과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지만.
“……예.”
이신은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일단 대답을 했다.
그렇게 아가레스와 나폴레옹은 떠났다.
이제 전장에는 이신과 질 드 레, 그리고 그레모리만 남았다.
“카이저, 우리가 이겼어요!”
비로소 그레모리는 기쁨을 표했다.
“예, 결국 1위에 이를 거라 생각했지만, 예상보다 빨랐습니다.”
이신의 덤덤한 대꾸에 그레모리는 화사하게 웃었다.
“카이저의 그런 터무니없는 자신감이 보기 좋았어요. 그런데 정말로 저를 서열 1위의 악마군주로 만들어주셨네요.”
“그러기로 약속했으니까요.”
“정말 고마워요. 카이저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오늘의 영광은 없었을 거예요.”
“저도 덕분에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이신도 진심으로 그녀에게 감사했다.
그녀 덕분에 건강을 되찾아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었고, 역사속의 수많은 영웅을 만나 서열전으로 경쟁을 벌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그레모리의 계약자가 되지 못했더라면 이신의 인생은 지금처럼 풍요롭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까지도 절망 속에서 고독하게 살고 있었겠지.’
적수가 없이 독주하던 어린 날의 전성기 시절.
그리고 삽시간에 추락하여서 은둔하던 절망의 시절.
과거의 이신은 외로웠었다.
그건 타인에게 배척 받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자신이 너무 어렸던 탓이었다.
자신의 주변에는 많은 좋은 사람들이 있었음에도 좋지 않은 사람만 보았고, 어울려 관계를 맺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었다.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자신을 찬양하는 수많은 팬들에 둘러싸인 채, 그것이 자신의 가치이고 외롭지 않은 것인 줄 알았다.
지금은 다르다.
이제는 자신의 욕망과 영광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음을 안다.
많은 소중한 사람들이 자신을 위하고 아껴주고 있음을 안다.
그렇기에…….
‘이제 끝을 봐야지.’
이제 영광을 내려놓고 권좌에서 내려올 각오가 되어 있었다.
* * *
악마군주 그레모리의 궁전에서 축제가 열렸다.
그녀의 권속에 있는 수많은 악마들이 자신의 군주가 마계 최고의 악마군주가 된 것을 기뻐하고 축하했다.
이신과 사도들도 참가한 그 축제는 그레모리와 그의 계약자를 칭송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수많은 악마군주들이 찾아와 축하해주었고, 덕분에 그날은 마계 전체의 축제가 되었다.
“카이저.”
문득 그레모리가 이신을 불렀다.
그녀는 술기운에 얼굴이 홍조가 띤 모습이었는데, 살짝 풀린 눈빛이 고혹적이기 이를 데 없었다.
“예.”
“아직 결정 안 하신 것 알아요?”
“무엇을 말입니까?”
그녀의 질문에 이신은 의아함을 느꼈다. 술기운이 감도는 모습이었지만 실제로 취한 것은 아닐 터였다.
아가레스도 선택을 운운했기 때문에 이신은 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다.
“계약 말이에요.”
“계약? 아.”
다행히 그레모리가 언급한 결정은 바로 두 사람의 계약 문제였다.
10. 이신은 10승 달성 시 본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단, 승리가 패배보다 많아야 한다.
그러고 보니 나폴레옹과 십여 차례 서열전을 치르면서 또 10승을 넘긴 것이다.
“서열 1위가 되겠다는 목표도 달성되었고, 만일을 대비해 후임 계약자로 질 드 레도 훈련시켜놓으셨죠. 그래서 전 카이저가 떠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건…….”
“이전 같았으면 애타게 카이저를 붙잡았겠죠. 하지만 이제 그러지 않을게요.”
“…….”
“카이저는 이미 제게 너무 많은 것을 가져다주셨어요. 악마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이지만, 전 이제 카이저의 선택을 존중하고 싶어요. 계약자를 그만두고 싶다면 받아들일게요. 자유가 된 이후에도 다른 악마군주들이 손을 뻗지 못하게 막아주겠어요. 제가 분에 넘치는 영광을 얻었듯, 카이저도 원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녀도 이신의 열정의 원동력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최고를 향한 향상심, 경쟁심.
그리고 목표를 달성한 지금, 이신은 더 이상 지금까지의 열정을 유지하지 못할지도 몰랐다.
만약 그렇다면 그레모리는 이신에게 계속 매달리지 않을 생각이었다.
물론 최하위에서 서열 1위까지 악마군주를 끌어올려준 계약자가 자유의 몸이 되면, 다른 악마군주들이 노리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 때문에 이신은 계속 그레모리의 계약자로서 남아 있어야 했다. 물론 지금까지는 이신 자신도 서열전에 재미를 느꼈기 때문에 계약을 해지할 필요를 못 느꼈지만 말이다.
이신은 그녀의 말에 곰곰이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은 길지 않았다.
“무엇을 걱정하시는지 압니다. 배려에 감사합니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전 지금 아주 즐겁습니다.”
“예?”
“나폴레옹이나 알렉산드로스, 그밖에도 많은 계약자들이 복수하겠다고 벼르고 있습니다. 절 꺾겠다고 실력을 갈고 닦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즐겁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정말…… 카이저는 한결같네요. 그럼 계약은…….”
“예, 연장입니다. 즐거운 제 취미 생활을 잃을 수는 없죠.”
취미 생활이라는 말에 그레모리는 호호호 웃었다.
“슬슬 돌아가야겠습니다.”
축제가 어느 정도 무르익을 무렵, 이신은 현실 세계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네, 정말 수고하셨어요.”
그레모리가 차원의 게이트를 열어주었고, 이신은 거기로 들어갔다.
이신을 삼킨 차원의 게이트가 닫히는 것을 보며, 그레모리는 복잡한 심경이 담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그것이 어떤 선택이든 부디 당신에게 좋은 길이길.”
* * *
이상한 일이었다.
게이트를 통해 차원을 넘나들 때면 항상 정신을 잃곤 했다.
의식을 잃었다가 깨어나면 현실세계 혹은 마계로 돌아와 있곤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의식을 잃지 않았다.
마치 빛조차 흡수되어서 어떤 것도 식별할 수 없는 블랙홀 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이 상황이 낯설지가 않다는 것이었다.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신은 이 같은 상황을 과거에 한 번 겪어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일단은 앞으로 나아가자.’
이신은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 고민을 길게 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얼마나 나아갔을까?
시간의 개념도 공간의 개념도 없는 이 무의 통로를 걷던 이신은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밝은 빛이 아닌, 빛이지만 빛나지 않는 기이한 회색빛이 비춰지는 곳.
죽음 같은 음산함만이 보이는 회색빛 땅.
그 외에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 괴이한 곳이었다.
이곳은 어디일까?
하지만 이신은 이곳에 한 번 와봤던 느낌이 들었다.
[왔구나.]머릿속에 어떤 메시지가 울려 퍼졌을 때, 이신은 놀라지 않았다.
“게이트를 비틀어 저를 이곳에 부르셨군요.”
이신이 말했다.
[그렇다.]“그때처럼.”
[기억이 났구나.]“예.”
이신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이 신비의 향연에 경외를 느꼈다.
마계의 존재도 평범한 사람에게는 충분히 신비한 것이지만, 그런 마계도 이곳처럼은 아니었다.
“무엇을 물으시는 겁니까?”
[끝없는 향상심과 욕망으로 경쟁하는 72악마군주들. 악마가 되어 서로 경쟁을 벌이며 도태되거나 살아남아 더 강해지는 계약자들. 그리고 그 밑의 사도들까지도. 그들은 참으로 마계를 풍요롭고 강하게 하고 있지 않나.]“…….”
[그 경쟁에서 정점에 오른 소감이 어떠한가?]“즐거웠습니다.”
이신이 답했다.
[식지 않는 열정의 수레바퀴가 끊임없이 구르며 마계를 달군다. 서열전은 이를 위해 존재하는 것. 하지만 마계와 현실에 한 발씩 걸친 자여. 마계에서도 현실에서도 더는 오를 곳이 없어진 너는 아직도 여전히 열정이 식지 않았다 말할 수 있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