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81
80화 한계(2)
?
?
휴식 시간 동안 이신은 부스를 떠나지 않았다.
패배한 1세트 리플레이를 복기하며 패인을 분석했다.
결정적인 패착은 이신이 먼저 대부분의 병력을 항공수송선에 싣고 대규모 드롭을 시도하다가 카운터를 받은 것.
거기서 더 분석해 보면, 마이클 조셉이 카운터를 준비하고 기다렸다는 게 문제.
하지만 그것조차도 그냥 겉으로만 보이는 패인에 불과했다.
이신은 그보다 더 근본적인 패인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시나리오다.’
처음부터 끝까지 마이클 조셉은 물 흐르듯이 자기 시나리오대로 움직였다.
‘그러니 내가 먼저 나가떨어질 수밖에.’
계획된 시나리오대로 플레이한 마이클 조셉과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판단을 내려야 했던 이신.
당연히 두 사람이 느낀 피로도는 확연히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상대가 세계 최고 수준의 피지컬에 한창 전성기를 맞이한 마이클 조셉이라지만, 그렇게 대놓고 피지컬과 멀티태스킹에서 압도당한 경험은 난생 처음인 이신.
자존심이 상했다.
승리 수당 100만 불을 떠나, 이신은 기필코 이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2세트 맵은 투지.
세 종족간의 밸런스가 잘 맞춰진 맵으로, 그 공평한 밸런스 때문에 공식전의 중요한 경기에서 빈번하게 쓰이곤 했다.
‘이 맵에서도 나를 철저히 분석했겠지.’
당연하게도 이신은 이 맵에서 무척 많이 경기를 치러보았다.
마이클 조셉 측이 이신을 분석할 수 있는 데이터를 많이 확보했을 것이다.
특별히 전략을 준비해 오지 않은 이신으로서는 그들의 예상 범위를 벗어나기가 힘들었다.
치즈 러시 같은 도박 수는 시도할 수 있지만, 그것은 성공하든 실패하든 경기가 허망하게 끝나는 전략이므로 이벤트 매치에 초청해 준 주최 측에 미안한 노릇이었다.
‘가만?’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허를 찌를 수 있는 한 수.
‘웬만해서는 시도하지 않으려고 했던 건데.’
먼저 자존심을 건드린 건 마이클 조셉 측이었다.
때마침 휴식 시간이 끝났다.
“Are you ready?”
경기장 스태프가 부스 안에 들어와 물었다.
이신은 나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폰을 끼고 차음 헤드셋을 착용했다.
바깥의 소음에서 완전히 단절되었다.
그 고요함 속에서 이신은 투혼을 불살랐다.
‘본때를 보여주마.’
?
* * *
?
?
플레이 준비가 완료된 화면이 온라인에 송출되고 있었다.
지수민은 온라인으로 이벤트 매치를 관람하면서 이신교 대사제들과 채팅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
-인의예지신님: 아, 이번에는 이겨야 할 텐데ㅠㅠ
-이신전심: 2연패 당하고 오시면 안 돼요, 신님! ㅠㅠ
-신님의하녀: 패, 승, 승 기대합니다!
-신께서보고계셔: 역전! 승리 수당!
-이신교순교자: 그냥 마음 편히 하고 오세요. 그깟 100만 달러 제가 별사탕 쏠게요!
-신님께간다: 우리 신님 져서 상처받으면 어쩌지ㅠㅠ
-인의예지신님: 신님께선 그렇게 약한 분이 아니에요!
?
채팅을 치다가 지수민은 부득부득 이를 갈았다.
미국의 해설진들은 마이클 조셉이 이신을 압도했다고 영어로 멋대로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
[Kaiser: Holy blood]?
이신의 선택 종족이 갑자기 신족으로 바뀌었다.
-카이저의 종족이 신족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저게 무슨 일일까요?
-일부러 종족을 바꾼 걸 보니 실수 같지는 않은데요. 그냥 조크인지 어떤 의도인지 의아합니다. 예, 지금 스태프가 확인하러 부스로 들어가네요.
해설진들이 당황한 듯 의문을 표했다. 관객들도 술렁이고 있었다.
통역사와 함께 이신의 부스에 들어온 스태프가 뭐라고 물어보았다. 이신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고, 통역사가 스태프에게 통역해주었다.
스태프는 부스에서 나와 무전기로 뭐라고 말한다.
이윽고 미국의 해설진들이 말했다.
-예, 물어본 결과 종족 선택이 저게 확실하다고 합니다.
-갑자기 신족을 택하다니 의아스럽네요. 마이클 조셉을 상대로 자기 메인 종족이 아닌 서브 종족으로 이길 수 있다는 뜻인지…….
-설마요. 1세트에서도 접전 끝에 패배했는데 그런 의미는 아니리라 봅니다. 아무래도 이제 승부를 포기하고 재미있는 경기를 보여주겠다는 의도인 것 같은데, 솔직히 그렇다면 좀 많이 아쉬운데요.
-팬들은 카이저와 마이클 조셉의 대결을 보고 싶었는데, 저건 좀 실망스러운데요.
술렁이는 관중들.
급기야,
?
-M.J: holy blood? really?
?
마이클 조셉이 채팅으로 물어보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신의 대답.
?
-Kaiser: yes. it’s not a joke.
-Kaiser: i’ll win.
?
“와아아아!”
이신의 채팅에 관중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하하, 장난치는 게 아니라는군요. 정말로 신족으로 이기겠다고 장담하는 카이저입니다.
-이러면 마이클 조셉의 머리가 조금 복잡해지죠. 당연히 인류 대 인류 전을 생각하고 왔을 거거든요.
-아무튼 흥미롭습니다. 카이저의 신족은 대체 어떤 플레이가 될지 궁금해지는데요?
지수민은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황홀감에 젖은 눈빛으로 영상에 잡힌 이신의 모습을 응시한다.
“아, 너무 멋져!”
누가 저기서 신족을 선택할 거라고 생각했을까!
대사제들의 채팅방도 난리가 났다.
?
-신님께간다: 헐;;;
-이신전심: 신족이다!
-신님의하녀: Player_SIN 모드로 변신! ㅎㅎㅎㅎ
-신께서보고계셔: 역시 신님♡♡
-이신교순교자: 신님 아니면 아무도 저런 짓을 못하죠!
-신님께간다: ㅋㅋㅋ부종으로 조셉 꺾으면 웃기겠다.ㅋㅋㅋ
-이신전심: 1세트의 복수로는 충분하죠!
?
그리고 2세트 경기가 시작되었다.
?
* * *
?
“신족? 진짜로?”
“미친 거 아냐?”
“못 이길 것 같으니까 그냥 자포자기 아냐?”
MBS 선수들과 연습생들도 술렁거렸다.
주디는 이신의 신족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방진호 감독은 달랐다.
그는 멍하니 신족을 택한 이신을 보더니,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역시 저 새끼 맞잖아!”
당연하게도 그는 최근 신족으로 전향한 온라인 신비 고수 Player_SIN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Player_SIN에게 농락당했던 것을 떠올리자 방진호 감독은 분노로 부르르 떨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특유의 싸가지는 바로 저 자식이었다.
“그럼 진짜 이신 코치님이 Player_SIN 아냐?”
“맞나 보네. 그럼 다 말이 되잖아. 개인방송으로 시작부터 몇 억씩 버는 클래스하며…….”
“근데 신족으로 마이클 조셉을 이길 수 있나?”
“몰라, 방송 보니까 Player_SIN 신족 실력도 장난 아니던데.”
선수들은 경악하면서도 기대 가득한 표정으로 경기를 지켜보았다.
?
* * *
?
“저 미친 새끼…….”
황병철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바라보았다.
미국 e스포츠 프로리그 개막전을 온라인으로 관람하고 있던 황병철은 욕부터 나왔다.
이신이라면 꼴도 보기 싫었다. 인터넷 브라우저도 켜지 못했을 정도로 노이로제에 시달려왔던 황병철이었다.
하지만 자신을 괴롭히던 장민재가 고향으로 내려가 버렸다는 소식을 접하고부터는 마음의 짐을 어느 정도 내려놓았고, 이제는 이신의 이벤트 매치를 찾아보게 될 정도로 멘탈을 회복했다.
하지만…….
‘악랄한 새끼.’
라이벌이자 누구보다도 이신에게 당한 게 많은 황병철이었다.
이신이 신족을 선택한 것을 보자마자 황병철은 그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예상치 못한 종족 선택으로 상대를 당황시킨다.
그리고 철저하게 박살 내 멘탈에 상처 입혀 다음 3세트까지 그 후유증에 시달리게 만들 셈이다.
마이클 조셉은 전성기 시절의 이신을 연상케 할 정도로 빠르고 강한 인류였지만, 이신과 달리 순간순간의 즉흥적인 전략적 판단에 약하다.
사전에 미리 준비된 전략이 아닌, 그때그때 판단을 내려야 하는 임기응변에 약한 면모를 보인다.
이신은 그 점을 파고들 의도였던 것이다.
‘물론 그건 저 새끼가 신족도 기가 막히게 잘한다고 가정했을 때의 이야기지.’
제아무리 수준 높은 1군 선수라도 부종족으로는 2군 선수도 이기기 힘든 게 보통이었다.
단축키와 유닛 컨트롤 방법이 다 다르고 빌드 오더와 전략 전술도 완전히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옛날에는 세 종족을 모두 잘해서 종족 선택을 랜덤(Random)으로 고르는 선수도 있었지만, 그건 말 그대로 옛날의 일이었다.
수준이 매우 높아진 지금은 한 우물을 파지 않으면 대성할 수가 없다.
마치 한국인에게 영어를 원어민처럼 말하라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난이도였다.
하지만 언어에 있어서도 8개 국어씩 통달한 천재가 있듯이, 이신도 여러 종족에 두루 능통할 수 있는 천재라면…….
‘정말 생각하기도 싫어지네.’
이신의 인류 하나도 골치 아프다.
하물며 이신이 신족을 택할 경우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해버린다.
너무나 많은 이신의 전략적 선택지!
그걸 무슨 수로 대비해야 한단 말인가?
황병철은 긴장된 마음으로 경기를 지켜보았다.
만약, 이신의 신족이 마이클 조셉을 꺾을 정도로 톱클래스의 수준을 구사한다면, 그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다.
인류에게 유리한 맵에서 인류를 택하고, 신족에게 유리한 맵에서 신족을 택할 수 있는 톱클래스의 선수를 무슨 수로 당해내야 한단 말인가?
?
* * *
?
‘날 놀려?!’
마이클 조셉은 분노에 차 있었다.
장난처럼 2세트에서 신족을 고른 이신에게 그는 매우 화가 났다.
그저 이벤트 매치라고는 하지만, 마이클 조셉에게는 매우 의미가 깊었다.
동경했던 이신과 실력을 겨룰 수 있는 기회!
비록 공평한 대결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마이클 조셉은 이 매치를 무척 기다려왔다.
절대무적 카이저의 명성은 명불허전이었다.
1세트.
비록 지긴 했지만 이신은 빈틈없이 준비된 전략을 구사하는 마이클 조셉을 상대로 후반까지 끈질기게 따라붙으며 접전을 펼쳤다.
2세트에서는 과연 어떤 플레이를 펼쳐 줄지 마이클 조셉은 기대가 컸다.
하지만 신족이라니?
자신을 무시하는 게 아닌 이상 이럴 수는 없었다.
부종족인 신족으로 자신을 꺾어서 웃음거리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내가 당신을 웃음거리로 만들어주겠어.’
이상한 무리수를 두었다가 맥없이 패배해 한국으로 돌아가게 만들어 주리라.
그렇게 이신이 망신을 당하면, 반대급부로 그를 꺾은 마이클 조셉의 명성은 한층 더 상승하는 것이다.
빠르게 병영을 건설하고 보병을 생산한 마이클 조셉.
보병 1명이 생산되자, 마이클 조셉은 그 보병은 물론 건설로봇도 대거 이끌고 공격에 나섰다.
치즈러시였다.
‘서브 종족인 만큼 컨트롤도 인류처럼 능숙하게 하지 못하겠지?’
이신을 상대로 초반 기습은 자살 행위였다.
역대 수많은 선수들이 이신을 이기기 위해 기습 전략을 펼쳐보았지만 결과는 참담한 패배.
춤을 추는 듯한 건설로봇들의 미친 블로킹과 사정거리를 정확하게 알고서 치고 빠지는 보병 컨트롤로 어떤 공격도 막아냈다.
하지만 신족은 인류와는 유닛이 전혀 다르다.
생산 유닛인 신도는 2칸 거리에서 공격할 수 있으나, 건설로봇만 한 체력이 없다.
광신도는 체력과 공격력이 두루 강하지만 보병처럼 원거리 공격을 하지 못한다.
이 괴리감에도 불구하고 컨트롤 싸움인 이 치즈러시를 막아낼 수 있을까?
‘상대는 나라고!’
마이클 조셉의 공격에, 이신 역시 신도들이 뛰쳐나왔다.
‘아직 광신도를 안 뽑았구나.’
마이클 조셉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헉!’
신도들이 삽시간에 넓게 진형을 펼쳐 덮쳤다.
그중 2명이 건설로봇들의 블로킹 틈새를 날렵하게 빠져나와 보병을 공격했다.
보병은 계속 도망가고 총 쏘고 도망가고를 반복했지만 신도 2기는 집요하게 따라붙었다. 기어코,
-으악!
비명과 함께 보병이 죽었다.
참호를 건설하기도 전에 보병이 허무하게 죽어버린 것이다.
마이클 조셉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이신의 신족 컨트롤은 마이클 조셉의 아래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