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94
93화 타이밍(1)
“못 해먹겠군.”
모의전을 마친 뒤, 이극용이 투덜거렸다.
“어떠셨습니까, 아버님?”
이존욱이 물었다.
계약자와 사도의 관계였지만, 이존욱은 여전히 아들로서 그를 아버지로 공경하고 있었다.
이존욱의 연습을 위해 휴먼을 택해 모의전을 펼쳤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이길 수가 없었다.
“대체 왜 휴먼을 택한 건지 모르겠다.”
이극용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너무 약해. 시간만 충분히 주어지면 강한 군대를 꾸릴 수 있게 되겠지만, 어떤 상대가 그렇게 시간을 주겠느냐.”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이존욱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의 휴먼을 상대로 모의전을 해본 결과, 너무나 쉬웠다.
물론 이극용이 휴먼의 지휘에 익숙하지 않은 점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기기가 너무 쉬웠다.
“동태를 지켜보다가 일찍 끝내 버리든 방어 태세로 만들어놓고 이쪽은 마력 확보에 주력하든, 상황에 따라 둘 중 하나를 고르면 휴먼을 이기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못 이겼다는 것이다. 그게 문제야.”
이극용의 말에 이존욱은 골치가 아파왔다.
악마군주 그레모리의 새로운 계약자 이신.
그는 밑바닥까지 추락했던 그레모리의 서열을 무서운 기세로 끌어올리고 있었다.
‘계약자도 없는 상급 악마 나부랭이나 카사노바라는 건달 놈은 그렇다 치더라도, 조아생 뮈라에 사나다 마사유키에 우드스톡의 에드워드에… 만만찮은 이들을 격파했다.’
최하위권이라고는 하지만 전 인류 중에서 72명을 뽑은 것이 지금의 계약자들이라고 생각한다면 만만한 인물이 없다고 봐야 한다.
하물며 실력이 좋지 않은 계약자는 쫓겨나고, 실력이 좋은 계약자는 계속 남는다.
그런 적자생존이 지금까지도 계속 작용되고 있었다. 실력 있는 계약자의 서열은 나날이 올라간다.
하지만 휴먼 종족을 주로 택하는 계약자가 이렇게 상승세를 탄 경우는 처음이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계략에 능한 것 같습니다. 상대를 함정에 빠뜨려 큰 피해를 입힌 뒤에 우위를 차지하는 방식으로 이겨오지 않는 이상, 휴먼으로 연전연승을 거둔다는 건 불가능하지요.”
“내 생각도 그렇다. 그놈에게 휘둘리지만 않고 해야 할 일만 한다면 문제없으리라 본다.”
“네, 아버님.”
“네가 계약자로서의 신분을 계속 유지해야 나도 사도로 남을 수 있다. 꼭 이기도록 해라.”
“염려 놓으십시오. 저도 지옥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이존욱의 두 눈에 시퍼런 불길이 일렁거렸다.
그가 몸속에 지닌 마력이 투지에 반응하여 표출된 현상이었다.
표현 그대로 악마 같은 모습으로 이존욱은 이신과의 일전을 기다렸다.
그렇게 모의전을 몇 차례나 더 치르며 준비하고 있자니, 마침내 때가 왔다.
화라락!
두 사람이 있던 전장에 요란한 날갯소리가 천둥처럼 울려 퍼지면서, 거대한 그리핀을 탄 미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바로 악마군주 세에레였다.
“이존욱 공, 준비는 다 되셨습니까? 마침내 기다리던 손님이 왔습니다.”
악마군주 세에레가 공손하게 물었다.
달리 선량한 세에레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그는 예의 바르고 점잖은 악마군주였다.
이존욱을 계약자로 임명할 때도 그랬다.
악마군주 세에레는 지옥에서 고통받고 있던 이존욱을 모시다시피 정중하게 궁전으로 데려와 좋은 의복과 맛있는 식사를 주었다.
그리고 유비가 제갈량을 삼고초려 하듯이 매우 극진한 태도로 계약자가 되어 달라고 청했다.
그의 눈에는 악마가 아니라 자신을 구원해준 선인(仙人)으로 보였다.
감격한 이존욱은 당연히 청을 수락했고, 그렇게 계약자가 되어서 지금껏 열심히 활약을 했다.
‘그때는 몰랐다.’
이존욱은 웃는 낯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세에레를 보며 과거를 회상했다.
‘그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를…….’
세에레는 지금까지도 한 번도 그를 질책하거나 지면 지옥에 돌려보내겠다고 윽박지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시간이 흐르면서 이존욱은 악마군주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마치 아이가 말을 배우듯이 자연스럽게 말이다.
인간으로서 악마를 이겼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악마에게서 승리한 인간은 소원을 요구할 수 있다.
그것은 서열전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며, 다만 한 악마에게 하나씩 소원을 빌 수 있다.
그 율법에 따라, 이존욱은 이길 때마다 마력을 얻었다.
악마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높은 신분의 악마가 되어서 더 이상 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고 싶었다.
그렇게 지닌 마력이 쌓이고 쌓일수록, 자신의 악마군주 세에레에게서 전과 다른 느낌이 들었다.
세에레의 태도는 언제나처럼 똑같았지만, 이존욱이 보다 많은 마력을 가질수록 실체가 보였다. 아는 게 많을수록 세상사를 더 잘 알 수 있듯이 말이다.
더없이 흉포한 존재감!
친절하게 웃고 부드럽게 말하는 외견의 이면에, 폭력적으로 꿈틀거리는 막대한 마력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리고 깨달았다.
존재 자체로 공포인 자는 굳이 남을 두렵게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을.
세에레는 언제든 이존욱을 지옥에 던져 버릴 수도, 그보다 훨씬 더 무서운 짓을 할 수도 있었다.
차라리 몰랐으면 좋으련만, 그의 실체를 볼 수 있게 된 지금은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준비됐습니다, 군주님.”
이존욱이 공손히 답했다.
살아생전에는 그가 남에게 자주 들었던 말이었다.
“그럼 가지요. 악마군주 그레모리와 계약자 이신 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
이존욱은 고개를 숙였고, 세에레는 그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사도인 이극용은 소환 해제되어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이존욱 공.”
문득 세에레나 낮은 음성으로 그를 불렀다. 이존욱은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예, 군주님.”
“저를 좀 더 높은 곳으로 이끌어주십시오. 그리하면 이존욱 공은 원하는 바를 얻으실 수 있을 겁니다.”
“…예!”
이존욱이 원하는 것은 세에레의 계약자가 아닌, 세에레의 가신(家臣)이 되는 것.
계약으로 묶여 있어 언제든 계약과 함께 파기될 수 있는 관계가 아닌, 세에레를 섬기며 그의 군단에 속한 진정한 의미의 악마가 되는 것이었다.
***
“마음 단단히 먹으세요.”
세에레의 궁전.
그레모리가 나직이 당부했다.
이신은 두려움이 일었다.
이번엔 또 얼마나 무시무시한 악마이기에 경고를 할까?
악마군주를 직접 대면해야 한다는 것은, 배짱이 좋은 이신조차도 부담스럽게 했다.
“그는 한없이 겸손하고 극진하고 친절한 존재로 보일 거예요. 하지만 절대로 그에 대하여 좋은 인상을 품어서는 안 돼요. 그건 절대로 그의 실체가 아니니까요.”
“알겠습니다.”
남에게 좋은 인상을 품지 말라니,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마침내 악마군주 세에레와 이존욱이 나타났다.
거대한 그리핀을 탄 채로 위풍당당하게 나타난 세에레.
그는 뒤에 탄 이존욱이 쉽게 내릴 수 있도록 그리핀으로 하여금 날개를 펼쳐 내리막길처럼 만들게 했다.
이존욱은 날개를 디디며 내려왔다.
뒤따라 내린 세에레는 그레모리와 이신을 번갈아보며 웃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악마군주 그레모리여. 그리고 반갑습니다, 이신 공.”
‘공?’
왜 그런 칭호를 붙이는지 이신은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그레모리가 어째서 그런 경고를 했는지는 알 것 같았다.
더없이 아름다운 외모와 우람한 그리핀 때문에 더욱 돋보이는 고귀한 모습의 세에레가 이토록 공손하니, 그 매너 있는 모습에 나직이 감동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자신이 남자가 아니었더라면 단숨에 깊은 사랑에 빠졌을 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하니 섬뜩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첫 모습조차도 이토록 마음의 틈새를 파고들어 버리는 악마군주였다.
그레모리가 손을 잡아주고서야 이신은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오랜만이구나, 악마군주 세에레.”
“악마군주 그레모리여, 소식은 들었습니다. 잠시 찾아온 시련을 딛고 이렇게 제게 도전할 자격을 갖추실 정도로 성세를 회복하셨으니, 감탄스럽고 기쁩니다.”
“쓸데없는 미사여구로 대화를 길게 끌지 말고 본론에 들어가자꾸나. 너에게 도전하겠다.”
“예, 마신께서 선포하신 율법에 따라, 그 도전을 받겠습니다.”
겉보기에 존대를 하는 세에레와 하대를 하는 그레모리는 두 악마군주의 격차를 나타내는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악마군주들에게 그런 외형적인 모습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설령 무릎 꿇고 비굴한 태도를 취하더라도, 그것은 본심도 실체도 아니기에 악마들 사이에서는 의미가 없었다.
악마에게 중요한 것은 마력.
오직 그것만이 악마의 명예를 증명해 준다.
“전장은 제5 전장, 이블 홀로 하겠습니다.”
제5 전장 이블 홀, 일전에 사나다 마사유키와도 겨룬 바 있었던 바로 그 전장이었다.
마물과 휴먼의 대결에서는 마물에게 지리적으로 많이 유리한 전장이었다.
세에레는 웃으며 덧붙였다.
“그리고 배팅할 마력은 1만으로 하겠습니다. 무서운 상승세를 타신 악마군주 그레모리와 이신 공을 상대로 많은 마력을 배팅할 용기가 나지 않는군요.”
“알겠다.”
“그럼 저희가 먼저 가서 기다리겠습니다.”
세에레는 이존욱과 함께 사라졌다.
“제가 왜 경고했는지 조금은 깨달으셨나요?”
“예.”
“제가 보호하지 않았다면 그는 카이저의 마음을 파고들었겠지요. 카이저는 자기도 모르게, 서열전에서 그를 꺾는 것을 미안하게 여기게 되었을 거예요.”
“…….”
“하지만 제가 있는 동안은 걱정 말아요.”
“모든 악마가 다 저렇습니까?”
이신은 빤히 그레모리를 보며 물었다.
그레모리는 이신과 눈을 마주한 채로 잠시 눈빛을 교환하더니, 활짝 미소를 지었다.
“예외도 있어요. 악마는 그 자체로 천차만별이고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도 제각각인걸요.”
그 웃음은 어찌나 아름답던지, 이신은 또다시 심장이 뛰었다. 심장 박동 소리를 들킬까봐 걱정될 정도로 말이다.
이신은 그녀에게서 시선을 뗐다.
나직이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추스를 틈도 없이,
덥석.
오른손에서 그녀의 손의 온기가 느껴졌다.
“자, 우리도 가요.”
“…예.”
파앗!
두 사람 또한 제 5 전장 이블 홀로 텔레포트를 했다.
[악마군주 그레모리 님과 계약자 이신께서 제5 전장 이블 홀에 도착하셨습니다.]전장에 들어서자 공기가 달라졌다.
이신과 이존욱은 서로를 응시했다. 두 사람 다 결전을 앞두고 긴장을 한 모습이었다.
[악마군주 그레모리 님과 악마군주 세에레 님의 서열전입니다. 전쟁의 승패가 서열과 마력에 영향을 줍니다. 마력은 2만이 배팅됩니다.] [마력 2만이 마력석이 되어 전장에 유포됩니다.] [종족을 선택해주십시오.]“휴먼.”
“마물.”
그렇게 대결이 시작되었다.
[서열전이 시작됩니다.]지금껏 치른 수많은 서열전 중 하나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 서열전의 결과로 자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이신은 짐작조차 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