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Dark Master become a Trash RAW novel - Chapter 191
제191화
세시아 백작이었다.
그가 눈동자를 잔인하게 빛내며 말했다.
“어차피 이 근방은 내 독의 영향권에 들어왔으니, 도망가기에는 늦었소. 말했던 대로, 당신의 팔다리를 독에 녹여버린 후 몸통만 살려서 인질로 삼아주겠소.”
스스슥.
크리스 일행의 발밑에 마치 그림자와 같은 어둠이 스며들었다.
세시아 백작의 독 기운이었다.
정확히는 ‘의념 독’.
세시아 백작이 손짓하는 순간, 발밑의 독은 뱀이 되어 크리스 일행을 덮치리라.
이미 늦었음을 깨달은 일행 모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을 때였다.
“멜린, 네게 시킬 일이 있어. 내가 세시아 백작을 쳐서 틈을 만들 테니, 흑기군을 이끌어 뒤로 물러나줘.”
“그럴 수는…?”
“도망가라는 게 아니야. 네가 해줄 일이 있어.”
크리스는 메시지 마법을 통해 속으로 모종의 명령을 내렸고, 멜린의 얼굴이 오묘해졌다.
“그 명령은…? 정말 승리하실 생각이군요.”
“그거야 당연한 것 아니야? 난 처음부터 진다는 생각 따위 한 적 없는데?”
멜린이 헛웃음을 흘렸다.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이건만, 크리스티앙의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니 또 이해할 수 없는 신뢰가 들었던 거다.
“알겠습니다. 대신, 전 아직 대공자님과 충분히 겨루어보지 못했으니, 반드시 무사하셔야 합니다.”
다음엔 새닌이었다.
“새닌, 넌 칼리아 백작을 맡아. 같은 6성 하(下)이니, 할 수 있지?”
크리스티앙은 삐딱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너한텐 벅찰 수도 있으니, 이기지 못해도 상관없어. 시간만 끌어. 버티고 있으면, 내가 세시아 백작을 쓰러뜨리고 칼리아 백작까지 처리할 테니.”
황당하다 못해 어이가 없어지는, 제정신이 아닌 듯한 허풍 같은 이야기.
하지만 크리스티앙의 눈동자를 본 새닌은 침음을 흘렸다.
진중하게 가라앉은 눈빛.
진심이었다.
“…대공자님의 손까지 빌릴 일은 없습니다. 칼리아 백작은 제가 책임지고 처리하겠습니다.”
마지막은 마리사.
“…넌 도움 될 것 없는데.”
“뭐, 뭐?!”
“농담이야. 멜린을 따라가서 도와줘. 독을 이용한 함정이 있을 수도 있으니, 네가 도움이 될 거야.”
마리사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여전히 염려를 떨치지 못하는 눈빛.
크리스는 피식하였다.
“그리고 아까 날 위해 나서준 거 고마웠다.”
“그, 그건 친구로서!!”
“알아, 알아. 오해 절대 안 해.”
“…….”
이야기는 여기까지.
크리스는 앞으로 나섰다.
새닌이 옆에 따라갔다.
칼리아 백작과 세시아 백작도 앞으로 나서며 자연스레 2 대 2의 구도가 만들어졌다.
“암흑 마가의 대공자가 이렇게 멍청하다니. 주제도 파악 못 하는 얼간이일 줄은 몰랐소.”
세시아 백작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특별히 고깝게 무시하는 투는 아니었다.
무시도 어느 정도 급이 비슷해야 하는 법이니까.
아예 격이 다른 아래의 존재를 보는 눈빛이었다.
“차라리 수하들을 제물로 바친 후 도망갔으면 티끌만큼이라도 희망이 있었을 텐데.”
“시끄럽네. 그나저나 너, 입 냄새나는 건 알아?”
“…뭐라고?”
“말을 할 때마다 썩은 악취가 여기까지 진동하는데, 이건 독 냄새도 아니고 뭐야? 똥 냄새? 혹시 너 똥 좋아하니?”
크리스는 이죽거렸다.
“하긴, 고라스 후작을 졸졸 따라다니며 똥 주워 먹는 똥개이니, 입에서 똥 냄새 나는 것도 당연하겠지.”
“네놈…!! 죽여주마!!”
화아아악!!
세시아 백작의 몸에서 독이 피어올랐다.
그와 동시에 칼리아 백작도 함께 독을 펼쳤다.
전투의 시작이었다.
* * *
새닌과 칼리아 백작은 서로 같은 6성 하(下)답게 호각의 전투를 펼쳤다.
칼리아 백작의 장기는 ‘집적 독’.
광범위한 학살 효과보다는 독의 위력을 한 점에 집중하여 강력한 살상 효과를 보이는 식이었다.
반면, 새닌은 환검술사.
환술과 검술을 시의적절하게 사용하며 독에 대응했다.
단기간에 승부가 나지 않을 모양새.
한편, 크리스티앙과 세시아 백작 쪽은 양상이 조금 달랐다.
세시아 백작의 장기는 ‘광범위 독’이었다.
광범위 독은 다수의 약자를 학살하는 데 특화되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소수의 강자를 상대로 약한 면모를 보이는 건 아니었다.
일점(一點)에 독의 위력이 집중되지는 않지만, 마치 맹수를 덫에 몰이하듯 옴짝달싹 못 하는 독의 덫에 빠뜨려 무너뜨린다.
하지만 이런 덫은 크리스티앙과 상성이 좋지 못하다는 게 문제였다.
“이놈…!!”
사방위에서 독의 안개가 휘몰아친다.
하지만 그건 속임수일 뿐, 진짜는 그림자에서 튀어나오는 독이었다.
다른 이였다면, 꼼짝 못 하고 허를 찔렸을 한 수였지만, 크리스티앙은 유유자적 독의 마수를 피했다.
‘내가 수 싸움에서 밀릴 리가 없으니까.’
그건 상대가 6성 마스터 클래스라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나도 피하는 게 고작이지만.’
천재적인 두뇌로 요리조리 위기를 벗어나고는 있지만, 크리스가 유리하다는 건 절대 아니었다.
앞서 모두가 누누이 말했듯, 지금 크리스와 6성 중인 세시아 백작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격차가 있으니까.
간신히 위기를 모면하고는 있지만, 이대로라면 결국 한계에 봉착하게 될 거다.
‘하지만 괜찮아. 이 싸움은 내가 이겨.’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자신감.
‘일단, 세시아 백작을 내 의도대로 흔들어야 해.’
크리스는 계속 입을 털었다.
“6성 중이라더니 별것 없군. 혹시 6성인 건 거짓말이고, 영주 자리는 고라스 후작의 똥을 주워 먹으며 얻은 것 아니야?”
“이놈!!”
“똥 냄새 나니 입 다물라니까?”
번뜩!
찰나, 빈틈을 노린 흑강기가 날아들었다.
정확히 세시아 백작의 입을 향해.
더러우니 닥치고 입 다물라는 듯.
물론, 흑강기는 세시아 백작의 방어에 막혔다.
어떤 타격도 주지 못했지만, 세시아 백작은 잔뜩 분노한 얼굴이었다.
“이놈….”
크리스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연달아 흑강기를 날렸다.
똑같이 세시아 백작의 입을 향해.
마치 놀리기라도 하듯.
세시아 백작의 얼굴이 터질 듯 달아올랐다.
그런데 어느 순간이었다.
돌연 세시아 백작이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멍청한 놈. 이 몸을 상대로 감히 빈틈을 보이다니.”
연달아 흑강기를 날리느라 희미한 빈틈이 노출된 거다.
“쥐새끼처럼 도망 다니는 것도 마지막이다. 죽여주마.”
파아아아앗!!!
세시아 백작으로부터 어둠이 뻗어 나와 크리스티앙 주변을 어둠으로 물들였다.
독기를 머금은 마기의 그물이었다.
그물은 점점 더 촘촘해지더니, 크리스티앙을 완전히 에워쌌다.
“대공자!!”
옆의 새닌이 놀라 외쳤다.
새닌은 저게 어떤 수법인지 잘 알고 있었다.
‘세시아 백작의 의념 독인 ‘함거(檻車)의 벽’!’
이름처럼, 독으로 결계를 만들어 상대와 시전자를 외부와 격리하는 의념 독이었다.
갇힌 순간 절대 벗어나지 못하고, 사방에서 휘몰아치는 독에 철저히 농락당하다가 핏물이 되어 죽음을 맞게 되는 끔찍한 수법이었다.
‘구해야…!’
하지만 새닌도 칼리아 백작을 상대하느라 손을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세시아 백작에게서 뻗어 나온 그물은 완전히 감옥 같은 벽이 되어 세시아 백작과 크리스티앙을 외부로부터 유리해 버렸다.
‘안 돼!!’
끝이었다.
하지만 새닌이 모르는 게 있었다.
크리스티앙이 독의 벽에 갇히기 전에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승리의 미소였다.
* * *
한편, 세시아 영지가 내려다보이는 야산.
뜻밖의 한 인물이 크리스티앙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은빛 머리칼의 아름다운 외모, 셰라드였다.
“흐응, 이거 어떻게 하나?”
원래 그는 기회를 봐서 크리스티앙을 죽이려고 했다.
그런데 크리스티앙이 암흑 마군과 동행하며 기회를 잡지 못했다.
“이런, 곤란한걸. 크리스티앙은 내가 죽여야 하는데.”
셰라드는 크리스티앙이 의념 독에 갇히는 모습을 보며 눈썹을 찌푸렸다.
‘내가 얼마나 크리스티앙을 죽이는 날을 고대해 왔는데.’
셰라드는 크리스티앙이 자신의 얼굴에 흉터를 새길 때의 장면을 떠올렸다.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쩌릿 떨렸다.
이런 미친 듯한 살의를 품게 된 건, 크리스티앙이 처음이었다.
당장에라도 크리스티앙을 갈가리 찢어발겨 손에 그의 피를 잔뜩 묻히고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모순적인 생각도 들었다.
아직은 죽이고 싶지 않다는.
크리스티앙은 앞으로 얼마나 더 강해질까?
지금도 이렇게 살 떨리게 매혹적인데, 시간이 지난 후 크리스티앙이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미친 듯 요동쳤다.
‘어쨌든 다른 놈에게 죽게 놔둘 수는 없지.’
셰라드의 눈빛이 스산하게 가라앉았다.
고작 저렇게 허무하게 죽는 꼴을 보려고 이토록 크리스티앙과의 만남을 고대해왔던 게 아니다.
셰라드가 움직이려는 찰나였다.
“흐음…?”
셰라드의 눈동자에 이채가 떠올랐다.
독에 휩싸인 내부에서 무언가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던 거다.
셰라드는 악마에게 받은 축복, ‘식귀(食鬼)’ 권능의 능력을 이용해 의념 독 내부의 상황을 살폈고, 곧 커다란 웃음을 터트렸다.
크리스티앙이 또 미친 짓을 벌이고 있었다.
“역시 나의 크리스티앙.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구나.”
셰라드는 혀를 내밀어 크리스티앙이 새긴 흉터를 핥았다.
“믿을 테니, 절대로 죽지 마.”
크리스를 보는 셰라드의 눈동자에 짙은 갈망이 서린 광기가 일렁였다.
“널 죽이는 건 반드시 내 몫이니.”
* * *
함거의 벽.
독의 벽을 이용해 적을 외부와 완전히 분리해 가둔 후 농락하는 끔찍한 의념 독이었다.
‘갇히는 순간, 살아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할 수 있지.’
방법은 하나.
더욱 강력한 힘으로 의념을 무너뜨리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무리 크리스의 절대의 강기라도 6성 중의 마인이 펼친 의념을 능가할 수는 없었다.
과연, 세시아 백작은 이미 승패가 마무리되기라도 한 듯, 잔혹한 음성으로 선언했다.
“그래도 암흑 마가의 체면을 봐서 죽이지는 않으마. 대신, 차라리 죽는 게 나은 처지로 만들어 주마. 손발을 모조리 녹인 후, 잘난 얼굴도 독으로 짓뭉개주마. 숨구멍과 입의 구멍, 귀도 모두 독으로 짓이겨 간신히 목숨만 유지할 수 있는 처지가 되게 해주마.”
끔찍한 선언.
하지만 빈말이 아니었다.
함거의 벽에 갇힌 이상, 이제 크리스티앙은 거미줄에 걸린 벌레의 신세가 된 것과 마찬가지였으니까.
“지금이라도 내게 무릎 꿇고 구걸하면, 조금은 고통을 줄여주도록 하마.”
“닥쳐.”
“…뭐?”
“내가 아까부터 계속 말했지? 너 입에서 똥 냄새 나니 닥치라고.”
세시아 백작은 순간 멍한 얼굴을 했다.
이런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까지 크리스티앙이 망둥이 같은 발언을 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거다.
“네놈… 지금 네가 어떤 처지인지 모르는 거냐?”
“아아, 알지. 이 함거의 벽이란 의념이 대단하다는 거잖아. 확실히 마인으로서의 내 힘으로는 이겨내기 어려울지도.”
남의 일을 이야기하듯 한가로운 음성.
세시아 백작은 버럭 화를 내며 손짓했다.
“직접 당해보면 깨닫겠지! 몸이 녹아내리는 고통 속에서 네놈의 건방짐을 후회해라!”
화악!
벽에서 시커먼 독이 크리스의 양발을 노리고 튀어나왔다.
사방에 갇힌 상황이라 회피는 불가능한 상황.
세시아 백작이 곧 울려 퍼질 끔찍한 비명을 생각하며 진득한 미소를 짓는 순간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이변이 일어났다.
파앗!!
크리스티앙의 몸에서 한 줄기 빛이 뿜어져 나왔고, 독이 산산이 흩어져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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