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Dark Master become a Trash RAW novel - Chapter 252
제252화
‘다행히 저 해골바가지는 8성 이상의 엘더 리치는 아닌 것 같은데.’
크리스는 딱딱히 굳은 얼굴로 리치의 힘을 살폈다.
‘그래도 방심할 수 없어. 리치는 최소 7성 이상의 최고위 사령술사만이 될 수 있으니까.’
즉, 저 리치도 7성 이상의 힘을 지니고 있다는 뜻.
물론, 이곳 혈검 마가에 모인 전력이 힘을 합치면 저 리치도 상대할 수 있을 거다.
문제는 그 뒷일이었다.
‘저 리치와 싸우게 되면, 사왕성에서 지원군이 몰려오게 될 거야. 최악의 경우 아치의 홀로 도주하면 되긴 하지만.’
그러면, 사혈의 마왕을 암살하려는 계획은 무산으로 돌아간다.
[쥐새끼, 넌 누구이지?]리치가 텅 빈 동공에 일렁이는 마기를 번뜩이며 크리스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참고로, 현재 크리스는 성좌의 휘장으로 위장하고 있어 겉으로 봐서는 정체를 알아보기 어려웠다.
한 가지 다행인 건 크리스의 정체를 눈치채고 찾아온 건 아닌 것 같다는 점이다.
아마 은밀히 이드린느를 감시하던 중, 낯선 이가 등장하니 나타난 것 같았다.
“전 대공녀 이드린느 백작님을 치료하기 위해 찾아온 극독 마가의 치료사입니다.”
이렇게 된 이상, 별 충돌 없이 넘어가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마황 폐하께서 정하신 법령에 따라 치료사는 환자를 위하는 이유라면 자유로이 국경을 넘나들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리치는 호락호락 물러서지 않았다.
[믿을 수 없군. 일단, 날 따라오도록. 널 본성으로 데려가 심문해 보겠다.]음습한 음성이 이어졌다.
[갈기갈기 찢어놓으면 진실을 말하겠지.]크리스의 안색이 굳었다.
‘내 정체가 무엇이든 곱게 살려줄 생각 따위는 없군.’
그때, 옆에 있던 데보라가 차가운 눈빛으로 나섰다.
“닥쳐라, 해골. 이분은 본가의 귀한 손님이니 무례는 그만 집어치우고 꺼져.”
[큭큭, 우습군.]리치가 비웃음을 흘렸다.
[본좌가 너희 혈검 마가 따위를 신경 쓸 것 같은가?]“!!”
[잊지 말도록, 너희 혈검이 지금껏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우리의 자비인 것을.]혈검 마가를 완전히 발아래로 보는 이야기.
데보라를 비롯한 뱀파이어들의 얼굴이 분노로 달아올랐고, 사태는 일촉즉발 직전으로 치달았다.
그때, 크리스의 귓가로 데보라가 보낸 메시지가 들려왔다.
-이런 상황이 되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설마 감시당하고 있었을 줄은. 모두 저희의 불찰입니다. 저 해골은 저희가 책임지고 처리하겠습니다.
하지만 크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싸우면 안 돼. 후속 병력이 오면 사태를 걷잡을 수 없어.’
방법은 하나였다.
놈이 지원을 요청하기 전에 단번에 제거해야 했다.
크리스는 데보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저놈은 제가 처리할 테니,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십시오.
-대, 대공자?
-제게 방법이 있습니다.
당황한 음성을 무시하고 크리스는 리치를 향해 앞으로 나아갔다.
“당신께서 절 믿지 못하겠으면,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뭐지?]“지금 이 자리에서 직접 제 코어를 확인해 보십시오.”
모두 흠칫하였다.
그런 짓을 하면, 정체를 들킬 수밖에 없었다. 암흑 마기가 드러날 테니까.
아니, 그걸 떠나 생명줄을 맡기는 거나 다름없는 행위였다.
-대, 대공자? 그건?
하지만 크리스는 흔들림 없이 리치를 향해 말했다.
“이 정도면 의심을 거둘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큭큭, 좋다. 손을 내밀도록.]코어를 확인하려면, 직접 마기를 흘려 넣어 상대의 내부를 관조해야 한다.
앞서 말했듯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는 일.
실제로 리치는 크리스의 정체가 무엇이든 얌전히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코어를 망가뜨려 죽음에 이르게 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크리스는 척 손을 내밀었고, 모두 초조한 눈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지금에라도 말려야?’
데보라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하지만 우뚝 멈추어 선 것은 이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 유모, 친구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나?
이드린느가 했던 이야기다.
– 크리스티앙 대공자와 친구가 되고 싶은데 말이야.
데보라는 오랜 기간 이드린느를 모셨지만, 그녀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건 처음이었다.
‘크리스티앙 대공자는 아가씨가 인정한 분이야.’
그러니, 데보라는 섣불리 끼어들지 않고, 크리스티앙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윽고.
리치의 뼈로 이루어진 손이 크리스티앙의 손에 닿았다.
파앗.
백색 마기가 크리스의 몸에 들어갔고, 리치가 놀란 소리를 내었다.
[이건? 암흑 마기? 설마, 네놈은?]리치가 흥분하여 기세를 끌어 올렸다.
[감히 겁도 없이 본성에!! 당장 죽여주마!]“안 돼!! 멈추도록!!”
데보라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늦었다.
이렇게 마기 다툼이 시작되면, 무를 방법이 없었다.
보다 강력한 힘을 지닌 이의 마기가 상대의 코어를 짓뭉개 버리게 된다.
[어리석은 놈. 다른 마기에 우위를 지니는 암흑 마기의 속성을 믿고 마기 다툼을 유도한 것 같지만, 소용없다.]리치는 무려 100년이 넘게 마기를 쌓아왔다.
아무리 암흑 마기라도 절대적인 마기의 양에서 극복할 수 없는 차이가 있었다.
화아아악!
심유한 백색 마기가 마치 해일이 몰아치듯 넘실거렸고, 지켜보던 모두의 얼굴이 하얗게 질릴 때였다.
생각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뚝.
돌연 백색 마기의 범람이 멈추었다.
[무, 무슨?]리치의 입에서 당황한 음색이 흘러나왔다.
처음 느끼는.
기이한 기운이 리치의 백색 마기를 산산이 분쇄하고 있었다.
[이, 이 기운은?]암흑 마기가 아니었다.
100년을 넘게 삶을 이어온 리치도 전혀 알지 못하는 종류의 기운.
어둠의 기운인데, 마치 정명한 빛처럼 맑고 정순했다.
“아아, 이건 천독이라고 한다.”
[독…이라고? 이게?]크리스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래, 너 같은 역겨운 놈들을 잡는 데 특화한 독이지.”
[!!]리치는 발악하듯 힘을 끌어 올렸으나 천독 앞에서는 무의미했다.
삶과 죽음은 세상의 가장 절대적인 법칙.
따라서 리치란 존재는 부정명함의 극치였다.
천독은 단숨에 리치의 백색 마기를 흐트러트리더니 그대로 리치의 몸 안으로 새어 들어갔다.
그리고.
화아아아악!
정화하듯 리치를 불태워 버렸다.
[크아아아아!!]리치는 끔찍한 비명과 함께 소멸하여 사라졌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사왕성에 도움을 요청할 틈도 없었다.
그런데 끝이 아니었다.
파아아아앗!
갑자기 리치의 시신에서 거대한 힘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뱀파이어들이 하얗게 질려 외쳤다.
“악령 폭주입니다!!”
“피해야!!”
사령 마가의 네크로맨서들은 사령이나 게헨나의 악령, 언데드를 자신의 권속으로 부리는 존재이다.
‘데스 큐브’란 사령 마가 특제의 마도구에 권속들을 귀속해 다니는데, 이렇게 주인이 돌연 사망하게 되면 데스 큐브는 기능을 잃고 안에 갇힌 권속들이 폭주하게 된다.
“피하십시오, 대공자! 저희가 막겠습니다!”
그런데 크리스가 또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보였다.
“괜찮습니다. 진정하십시오.”
“무슨?”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크리스는 리치의 시신, 정확히는 데스 큐브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당장에라도 터질 듯 막대한 힘이 몰아치고 있었는데, 크리스가 손을 뻗자.
피시식.
갑자기 불길에 물을 끼얹은 듯 폭주하는 기운이 잠잠해졌다.
“…아니?”
데보라를 비롯한 뱀파이어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크리스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흐트러지는 리치의 기운을 암흑 마기의 지배력으로 조작해서 술식을 강화해 데스 큐브가 무너지는 것을 막았지.’
자세히 설명하기도 그래서 짧게 말했다.
“뭐, 제게는 간단한 일입니다.”
“…….”
“어쨌든 이건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크리스는 데스 큐브를 손으로 낚아챈 후 휘파람을 불었다.
‘이게 웬 떡이야? 이런 고위의 사령들을 손에 넣게 되다니.’
만약 이게 제대로 된 전투였다면 이런 전리품은 획득하지 못했을 거다.
데스 큐브 밖에 나와 있던 권속들은 주인이 죽는 순간, 폭주 후 흩어져 사라지게 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데스 큐브가 얌전히 보존되어 있던 덕에 고스란히 크리스의 손에 들어오게 된 거다.
리치가 무려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모아온 권속들이었으니, 어마어마한 숫자의 사령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물론, 내가 당장 다룰 수는 없겠지만.’
사령 마가의 흑마법은 철저히 비밀에 싸여 있어서 크리스티앙도 전혀 문외한이었다.
하지만 언젠가 반드시 사령술을 익힐 계획이었다.
사령술은 일인으로 군단과 같은 전력을 발휘하는 게 가능한 힘이니까.
‘그때, 이 고위 사령들은 내 강력한 전력이 될 거야.’
크리스티앙은 데스 큐브를 자신의 마기로 단단히 추가 봉인하였다.
원래 주인을 잃은 악령들이 안에서 분노해 날뛰는 게 느껴졌으나, 봉인을 뚫고 나오지는 못할 거다.
그때, 옆에서 가만히 있던 마리가 불쑥 말했다.
[도련님. 제가 잠시 저 안에 있는 귀여운 아기들과 면담을 해도 될까요?]“네가?”
[오호호, 저 아기들에게 도련님이 얼마나 훌륭하고 위대한 분인지, 가볍게 가르침을 베풀고 오겠습니다.]“…그래.”
크리스는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따지고 보면, 마리도 밴시이니 저 안의 악령들과 비슷한 부류이긴 했다.
‘근데 이 안에는 7마(魔)급 악령도 있는 것 같은데. 그런 최고위 악령을 교육하겠다고?’
새삼스레 마리의 정체가 궁금해지는 크리스였다.
마리는 휙 데스 큐브 안으로 들어갔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크리스는 자신을 향해 경악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 뱀파이어들에게 말했다.
“이제 치료를 시작하죠.”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다.
사혈의 마왕을 죽일 때였다.
* * *
“대공녀께서는 저 결계 안쪽의 별채에 계십니다.”
장원의 깊숙한 곳에 강력한 결계가 쳐져 있는 별채가 보였다.
“이드린느 대공녀가 폭주하는 걸 막기 위한 결계입니까?”
“네, 미망의 찢어짐에 당한 이들은 결국 이성을 잃고 광인이 된 채 죽음을 맞게 되는지라.”
데보라가 급히 말을 이었다.
“물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가씨께서는 본인의 의지로 광폭화를 막고 계시니까요. 대공자께서 위해를 입을 일은 없으실 겁니다.”
그건 살짝 놀라운 이야기였다.
‘대법에 당한 지 꽤 시간이 지난 것으로 아는데, 아직도 이성을 붙들고 있다니. 대단하군.’
크리스의 놀람을 눈치챈 걸까?
데보라가 아련한 음성으로 말했다.
“아가씨께서는 절대 우리에게 해를 끼치지 않겠다는 의지로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고 계십니다.”
“…그렇군요. 들어가 보겠습니다.”
“네, 대공자님.”
발걸음을 옮기는데, 데보라가 머뭇거리며 물었다.
“희망이 있는 거겠죠?”
크리스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드린느를 향한 진심이 담긴 음성.
‘마음에 안 드는군.’
혈검 마가의 인물들이 이드린느를 위하는 마음을 느낄 때마다 속이 거북해졌다.
‘진실이 무엇인지는 곧 알게 되겠지.’
크리스는 의선경을 통해 만든 약을 손으로 어루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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