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Dark Master become a Trash RAW novel - Chapter 95
제95화
“!!”
“그렇지 않나? 검술 명가의 버림받은 허수아비 왕자여.”
꽈드득.
과연, 에반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피가 맺히도록 강렬하게.
“닥…쳐라.”
“내가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닐 텐데? 애초에 암흑 마가의 영역에 투입된 것 자체가 죽을 패로 버려졌다는 뜻인 걸 모르지 않을 텐데?”
에반이 죽일 듯한 눈빛으로 크리스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막상 어떤 대꾸도 하지 못했다.
크리스의 말이 옳았으니까.
누구보다 위대한 핏줄로 태어났음에도 가문 어른들의 더러운 욕망에 희생당한 가련한 운명.
그게 에반이었다.
‘나랑 비슷하지.’
피식 실소하였다.
크리스도 누구보다 고귀한 혈통을 타고났으나, 끔찍한 누명을 덮어쓰고 비참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차이가 있다면, 크리스는 아버지가 살아 있었다는 것?
보다 정확히 말하면 크리스의 운명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이가 아버지라는 것?
크리스와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욕심 때문에 악마의 주구라는 누명을 덮어써야 했다.
‘뭐, 지금 와서야 중요한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크리스는 자신과 닮은꼴인 에반에게 어느 정도 동정심을 느끼고 있어 에반이 앞으로 겪어야 할 고통을 조금은 덜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말했다.
“살아남아 복수하고 싶지 않나?”
“!!”
크리스가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마치 악마가 유혹하는 듯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네 아버지를 모욕하고, 너와 네 어미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던 이들에게 말이야.”
* * *
에반은 한참이나 침묵했다.
어두운 달빛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무슨 말이지?”
“말 그대로야. 난 네가 살아남아 연합으로 돌아가기를 원해.”
“…검술 명가로 돌아가 그들을 치라는 건가? 무리다.”
에반이 무겁게 말했다.
“원수들은 내가 대적할 수 있는 이들이 아니야.”
맞는 말이었다.
에반이 바라보기에 까마득한 이들.
에반이 절망에 빠졌던 이유다.
하지만.
“아직은 그렇겠지.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달라지겠지.”
“!!”
“지금 바로 검술 명가로 돌아가 적들과 싸우라는 건 아니야. 아니, 넌 당분간 절대로 검술 명가에 돌아가서는 안 된다.”
크리스는 힘을 주어 말했다.
에반이 검술 명가로 돌아간다면 가까운 미래에 끔찍한 사달을 겪게 된다.
피하게 해야 했다.
“숨어 힘을 기르도록. 그래서, 검술 명가의 가식적인 놈들의 목을 베어라.”
검술 명가의 썩은 놈들의 목을 치는 건 에반의 개인적인 원한을 떠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었다.
그 빌어먹을 놈들 때문에 검술 명가는 대전 때 제 역할을 하지 못했고, 연합이 입었던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
‘원래는 내가 따로 하려고 했던 일이지만.’
에반의 시커멓게 죽은 영혼을 되살리게 하는 양분으로 삼게 하는 것도 좋으리라.
분노는 때로는 가장 큰 삶의 불길이 되니까.
“어차피, 네 지금 처지보다 더 비참해질 일은 없을 텐데?”
에반은 큭큭 웃음을 흘렸다.
깊은 한이 서린, 낮고 서늘한 웃음.
“그건 그렇군. 원수의 개 노릇을 하는 지금보다야 차라리 네놈의 노예가 되어 칼이 되는 게 나을 수도 있겠어.”
에반이 고개를 들어 형형한 눈빛을 보냈다.
“네 말에 따르겠다. 내가 어떻게 하면 되지?”
“일단, 살아서 이곳을 빠져나가야겠지.”
“…날 보내준다고?”
에반이 의아한 얼굴을 했다.
“그래, 너 여기 더 있다가는 죽어.”
사실이었다.
지금도 에반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 마인이 많았다.
크리스가 지켜주려고 해도 한계가 있으리라.
“그리고 나가야 내가 시킨 명령을 따르지.”
“…날 보내줬다가 내가 네 명령을 무시하면?”
주종의 각인을 새기긴 했지만, 그것만으로 에반을 강제하기에는 부족했다.
‘애초에 하등한 피의 각인은 이지가 없는 이를 권속으로 만들어서 부리는 술법이니까. 에반처럼 의지가 있는 존재는 마음대로 부릴 수가 없지.’
만약, 정말 에반을 강제하게 하려면 ‘복종의 인’을 따로 새겨야 했지만, 그것까지는 지금은 무리였다.
그럴 필요도 없고.
“그거야 간단하지. 이 단환을 먹도록.”
“…이건?”
“극독 마가의 비전 마단, 정사환(正死環)이다. 들어봤겠지? 몇 년 뒤 정해진 시간까지 해약을 먹지 않으면 죽음에 이르는 의념 독약이다.”
무려 수년 뒤에 독약의 효과가 나타나게 되는 ‘의념’ 극약.
심지어 정해진 해약 말고는 절대 해독이 불가능했다.
어떻게 이런 귀한 독약을 구할 수 있었냐면.
‘거짓말이지. 이거 그냥 말똥이니까.’
하지만 알 게 뭔가.
에반 놈이 독약의 맛을 아는 것도 아니고.
“먹어라.”
“…….”
본능적인 거리낌을 느낀 걸까.
에반은 주저하였다.
하지만 곧 눈을 질끈 감고 말ㄸ… 아니, 약을 삼켰다.
“…역시 극독. 지독한 맛이군.”
“…그래, 원래 독한 약일수록 맛이 쓴 법이니. 해약은 네가 내 명령에 잘 따르는 것을 확인 후 주도록 하지.”
“그래, 그런데 어떻게 암흑 마가에서 날 내보낼 거지?”
에반이 의아한 음성으로 물었다.
“네가 아무리 공자라도 날 내보낼 수는 없을 텐데?”
그 말이 옳았다.
하지만 늘 그렇듯 크리스에게는 방법이 있었다.
크리스는 에반의 귓가에 대고 자신의 계획을 말해주었고, 에반의 눈이 놀람으로 커졌다.
아낌없이 주는 호구, 마이삭을 이용할 차례였다.
* * *
크리스와 에반은 계획에 돌입했다.
일단, 에반이 크리스에게 진정으로 굴복하는 모습을 보여 모두의 눈을 속였다.
그리고 기회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슬슬 입질이 올 때가 되었는데.’
마침, 그렇게 생각할 때 다가오는 이가 있었다.
지금껏 크리스에게 아낌없이 퍼주기만 한 마마보이 호구 마인.
마이삭이었다.
“…크리스티앙.”
“엄마 치마폭 냄새 맡고 있지 않고 나한테는 무슨 일?”
의자에 기대어 앉은 채 일어설 생각도 않고 삐딱하게 대답하는 크리스티앙의 모습에 마이삭이 이를 바득 갈았다.
“저놈이 검술 명가의 놈인가?”
“…….”
“코딱지만 한 공을 세웠다고 기고만장하지 말아라. 조만간 네놈의 팔다리를 모조리 잘라 살점을 갈기갈기 찢어 개밥으로 던져줄 테니까.”
이제 어떤 감흥도 들지 않는 격 떨어지는 으르렁거림.
크리스가 대꾸도 하지 않고 심드렁하게 있을 때였다.
주변의 모두를 경악하게 할 일이 일어났다.
퍼억!!
육중한 소음이 울려 퍼졌다.
순간, 근처에 있던 모두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심지어, 소음의 주인공(?)이 된 마이삭까지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깨닫지 못했다.
그만큼 충격적인 일이었으니까.
옆에 가만히 서 있던 에반이 주먹으로 마이삭의 안면을 후려쳐버린 거다.
“이, 이?!”
뒤늦게 정신을 차린 마이삭이 분노에 찬 외침을 터트렸으나, 소용없었다.
단순 육탄 전투 능력만 따지면 크리스조차 능가하는 에반이었다.
무엇보다 검술 명가에서 온갖 산전수전을 다 겪은 에반과 엄마 폭에 싸여 곱게 자라온 마이삭은 전투 대응력 자체가 달랐다.
퍼억! 퍼억!
새하얀 마나가 담긴 망치 같은 주먹이 연달아 마이삭의 얼굴을 두드렸다. 그대로 곤죽으로 만들 기세로.
마이삭이 장기인 흑마법을 사용할 틈 따위는 당연히 주지 않았다.
크리스가 몇 발… 한 다섯 발쯤 늦게 외쳤다.
“그만!! 무슨 짓이지?”
“…이놈이 주인님을 모욕했습니다. 놈을 처단하는 걸 허락해 주십시오.”
한 손에 마이삭의 멱살을 쥔 에반의 다른 주먹이 새파랗게 빛났다.
성휘 4성.
마나 변환.
투권(鬪拳)이었다.
기사의 마나 블레이드를 응축시킨 힘.
바위마저 박살 내는 저 파괴의 힘이 얼굴에 꽂히면 마이삭이 어떤 꼴이 될지는 뻔했다.
“으… 으….”
진짜 죽는다.
에반의 눈빛에 흐르는 진득한 살기에 마이삭은 신음을 흘렸다.
“놓도록. 저리 못난 놈이어도 본가의 공자이니.”
“…알겠습니다.”
에반은 더러운 것을 털듯 멱살을 쥔 손을 놓았고, 마이삭은 힘이 풀려 쿵 쓰러졌다.
“에반, 너는 물러나 있도록. 주제 모르고 나선 죄를 묻겠다.”
“…죄송합니다.”
크리스는 한숨을 내쉬고는 마이삭에게 다가갔다.
“괜찮아?”
“!!”
바닥을 기어도 자존심은 살아 있는 걸까?
마이삭이 엉망으로 뭉개진 얼굴로 와락 으르렁거리려는 순간.
크리스가 낮은 음성으로 비웃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형편없네. 내가 부리는 노예만도 못하다니. 머저리 같은 놈. 앞으로는 엄마 치마폭에서 나오지 않는 게 어때?”
“!!”
마이삭의 자존심을 짓밟는 비웃음.
하지만 마이삭은 한마디도 대꾸하지 못했다.
크리스의 눈빛이 그를 짓누르듯 내려다봤던 거다.
강한 이가, 약한 이를 내려다보는 위압감.
“오래 살고 싶으면 당장 엄마의 치마폭으로 꺼져!”
마이삭은 부르르 손끝을 떨었으나.
끝끝내 어떤 말도 못 한 마이삭은 비루한 개의 몰골로 사라졌다.
둘만 남게 되자, 에반이 말했다.
“너무 심했던 것 아닌가?”
“존댓말.”
“…너무 심한 것 아니었습니까? 시키는 대로 하긴 했습니다만.”
뜻밖의 이야기.
에반이 나선 게 크리스의 각본이었다는 거다!
“가만히 있지 않을 눈치입니다만. 지나다니며 얼핏 듣기로, 제법 강력한 뒷배를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크리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마이삭 놈의 복수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
크리스는 피식 말하였다.
“그걸 노리고 한 일이니까.”
그렇다.
오늘 일은 마이삭에게 던진 낚싯밥이었다.
분노에 가득 찬 마이삭은 크리스의 의도대로 움직여줄 것이고, 크리스는 그런 마이삭을 희생시켜 에반을 탈출시킬 계획이었다.
* * *
때가 다가왔다.
프레시아 후작 부인이 그를 불렀다.
프레시아가 하나도 반갑지 않은 싸늘한 얼굴로 인사했다.
“오랜만이구나. 반갑구나.”
“네, 저도 반갑습니다. 그런데 마이삭은 없군요.”
크리스는 과장된 표정으로 고개를 휙휙 돌렸다.
“마마보이라 늘 백모님 곁에 있는 줄 알았는데?”
“…너!”
“아, 모자간에 사이가 좋아 보여 드린 말씀인데, 혹시 기분이 상하셨나요?”
프레시아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하지만 프레시아는 더 화를 내지는 못했다. 용무 때문이었다.
“네게 임무를 내릴 게 있어서 불렀다.”
“무엇입니까?”
“근래 골드 크로스 놈들의 동태가 심상치 않다고 한다. 법국으로 흐르는 브렉시스 강 쪽으로 가서 동태를 살피고 오너라. 단독 임무이니, 너 혼자 가거라.”
크리스는 속으로 휘파람을 불었다.
‘지나치게 노골적인데.’
브렉시스 강은 암귀대의 주 활동 영역이었다.
마이삭과 암귀대를 움직여 크리스를 죽이겠다는 의도.
심지어 다른 이와의 동행도 허락하지 않겠다니.
시커먼 속이 너무 훤히 보여 우스울 지경이었다.
그만큼 크리스를 죽이길 간절히 바란다는 뜻이리라.
함정임이 뻔하지만.
“네, 알겠습니다. 임무를 받아들이겠습니다.”
크리스는 선선히 답했다.
‘이건 내가 바라던 임무이니까.’
프레시아는 알까?
자신이 크리스가 던진 미끼를 물었다는 것을.
“단, 하나만 요청해도 되겠습니까? 검술 명가의 노예를 동행토록 해주십시오.”
“노예를?”
“네, 위급 상황에 희생양으로 써먹을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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