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s Strategy to Conquer the Entertainment Industry RAW novel - Chapter (126)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126화
체력적으로도 금전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약간은 무리해서 오늘 바로 팬 미팅을 잡은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내가 다친 곳 없이 멀쩡하다는 사실을 팬들에게 확실하게 알려주기 위해.
넘어졌을 때 나보다 더 놀라서 눈이 말 그대로 튀어나올 것 같던 팬의 표정과 목소리가 아직도 신기할 만큼 생생하다.
천만다행으로 손바닥만 조금 긁히고 말았다지만, 사실은 더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데뷔 후 첫 활동부터 발목 같은 데를 접질려 춤을 못 추게 되기라도 했다면…….
으, 생각만 해도 재수 없고 끔찍하다.
이제 그만 생각해야지.
아무튼 두 번째 이유는 지금부터 시작할 이야기였다.
“제가 넘어졌다는 얘기 듣고 많이 놀라셨죠.”
내 말에 여기저기서 동조하는 듯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마이크를 두 손으로 든 나는 오른손 엄지로 왼쪽 손바닥에 붙인 밴드 가장자리를 툭툭 긁어내듯이 남몰래 문지르며 다친 데는 없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렸다.
이제 본론이다.
“그런데 만약 제가 아니라 저희를 응원하러 와주신 분이 넘어졌다고 생각하니까 저도 겁이 나더라고요.”
일부러 여태까지 중에 가장 침착하게 말했더니 팬 미팅을 시작한 이후로 주위가 여태까지 중에 가장 잠잠해진 기분이 든다.
비싸 보이는 카메라들에서 계속 나던 소리도 지금은 좀처럼 들리지 않았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무시하지 않고 들어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뺨을 가르고 지나는 찬 바람 따위야 아무래도 좋아진다.
사람들이 내가 말하기를 기다려 주는 것은 픽하트 방송이나 데뷔 쇼케이스 등에서도 이미 겪어본 일이지만.
이렇게 거리낄 것 없이 탁 트인 장소에서 서로 눈을 마주칠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를 둔 상황에서는 처음이다.
나는 미리 생각해 두었던 단어를 조심히 골라가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팬들이 “뭔데?” 하고 하이톤으로 호응해 주었다.
지금쯤 와서는 내가 무슨 얘기를 꺼낼지 알아챈 사람이 많은 듯한데, 그럼에도 싫어하지 않고 계속 들어주니 고마울 뿐이었다.
“저희가 활동하면서 여러분과 얼굴 보고 만날 일이 정말 많을 텐데 앞으로도 이렇게 지금처럼 안전하게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침에 넘어진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펜스를 무리해서 뛰어 넘어오려던 사람과 규칙을 지키며 가만히 자기 가수를 찍고 있던 사람이 뒤엉켜 넘어져 고작 손바닥이 긁힌 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심하게 다쳤다는 말을 나중에 듣게 되었다.
두 사람 다 플루토 팬이었고, 규칙 잘 지키며 서 있던 사람은 대체 무슨 죄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게 나나 다른 멤버들을 아껴주는 사람들의 일이라고 생각해 보면, 말했던 것처럼 갈비뼈 안쪽이 절로 섬찟해진다.
길게 돌려 돌려 말한 감이 있지만, 여하튼 결론을 요약하자면 ‘질서를 지키자!’였다.
규모가 어느 정도 이상이 된 팬덤에서는 너 나 할 것 없이 질서 문제로 골치를 썩였다.
우리는 아직 아까 플루토의 경우만큼 심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안정된 상태도 아니었고.
통상적으로 보았을 때 앞으로 문제가 개선되기보다는 더 안 좋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직원분이 말씀해 주시기도 했었다.
물론 이 자리에 있는 팬들이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팬 미팅에 바로 와줄 정도면 다른 오프라인 스케줄에서도 마주칠 가능성이 제법 높다고 볼 수 있었다.
게다가 요즘 세상에 이런 일화는 하나하나 SNS나 커뮤니티에 올라갈 테니 내일쯤이면 내가 한 말을 모르는 팬보다 아는 팬이 많아지지 않을까.
“이 얘기를 할까 말까 고민이 많았어요, 저희끼리. 말 안 해도 이미 나는 잘하고 있는데, 거기에 괜히 다른 사람이 말 얹으면 힘 빠지잖아요.”
내 말이 끝나고 침묵이 완전히 내려앉기 전에 내게서 마이크를 받아 간 반요한이 너스레를 떨었다.
특유의 느슨함 덕분에 의도치 않게 진중해지기까지 하려던 분위기가 금세 가벼워졌다.
“그래도 꼭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저희도 여러분도, 아무도 안 다치는 게 제일 중요하니까요.”
서문결의 마이크를 받아 강지우가 주위에 민폐가 되지 않을 만큼만 활기차게 외쳤다.
“여러분 질서 잘 지킬 수 있죠!”
팬들이 한목소리로 그러겠다고 답했다.
데뷔 2일 차에 불과한 우리는 감사하다고 연신 꾸벅거렸다.
말하는 우리도 듣는 팬들도 이게 말한다고 단숨에 해결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면 모든 사람이 ‘만수르가 실수로 제 통장에 10억 달러만 이체시키고 귀찮다면서 도로 찾아가지 않게 해주세요’ 따위의 말들을 중얼거리며 다니겠지.
어쨌든 나는 팬들이 나를 걱정했던 만큼 나도 그들을 걱정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다.
* * *
윤선우를 비롯한 팬들은 온라온의 진심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저게 가식이면 연기해야지.’
방청을 갔던 픽하트 생방송 때도 느꼈지만, 온라온은 일견 서툴러 보일 만큼 다정했다.
‘질서…….’
윤선우가 좋아하는 가수의 말을 이루어주기 위한 방법을 궁리하는 동안, 멤버들은 따끈따끈한 붕어빵과 음료를 팬들에게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질서를 잘 지켜 달라는 말을 조금 전에 들은 덕분에 팬들이 먹을 걸 받기 위해 늘어선 줄은 감탄이 나올 만큼 깔끔했다.
“맛있게 드세요!”
수월하게 먹거리를 나눠준 멤버들은 더 어두워지기에 앞서 팬들과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몸을 돌렸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끝까지 보고 가기로 마음 먹고 내내 한자리에 앉아서 얼굴도 안 보이는 멤버들의 이야기에 빠져 있던 시민은 그제야 얼굴이 특히 궁금했던 하얀 머리 남학생의 앞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툭. 품에 인형처럼 안고 있던 쇼핑백이 중력 때문에 비스듬히 기울어지더니 땅에 떨어졌다.
쇼핑백 안에서 귤 여러 개가 데굴데굴 굴러 나와 시민의 발치에 이리저리 채였다. 몇 개는 멈출 때를 모르고 멀리도 굴러갔다.
“?”
사진을 찍기 위해 얼추 그 방향을 보고 있던 온라온을 비롯한 멤버들도 귤 여러 개가 길가를 굴러가고 일부는 도로까지 떨어진 모습을 보았다.
귤들이 굴러다니는데 정작 귤 주인은 신경도 쓰지 않고 자기들 쪽만 바라보는 기묘한 광경에 호기심을 가지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앞쪽에 앉아 있던 팬들도 시민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한 시간이 훌쩍 넘게 온라온을 비롯한 멤버들을 마주 보고 있었지만, 아직도 제각각 다른 매력을 발산하는 얼굴들에 적응이 안 된 사람이 수두룩했다.
온라온의 눈이 아래로 굴러가 연주황색 귤을 향했다가 이내 오롯이 시민을 담았다.
저거 안 줍냐는 듯 소매 아래로 비죽 튀어나온 소심한 손가락질과 함께.
그제야 시민은 추위 때문인지 부끄러움 때문인지, 그도 아니라면 갑작스럽게 마음이 끌려가듯이 출렁였기 때문인지 취한 것처럼 불그스름해진 낯으로 황망하게 귤들을 주워 담았다.
그때.
낮은 조도를 인식한 가로등 불이 팟 하고 점점이 들어왔다.
사실은 그저 도시를 인공적으로 밝히는 과학 기술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고, 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마법 같기도 한 광경에 자리에 있던 모두가 크고 작게 감탄했다.
시간이 흘러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잠시 잊어버린대도….
어느 날, 어느 밤에라도 우연히 가로등에 불이 점멸하며 들어오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차근한 논리보다 마음이 앞서서 누군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에 겨웠던 시절을 생생히 떠올리게 할 것이다.
오르카의 첫 번째 미니 팬 미팅이 끝났다.
* * *
괜찮을 거라 생각한 건 아니지만, 역시 무리를 한 것은 맞다는 것처럼 차에 도착하자마자 기가 막히게 피로도가 100에 도달했다.
그와 동시에 《의지의 한국인》 스킬로 계속 유지하던 의지 효과가 사라지며 몸에 더더욱 힘이 쭉 빠졌다.
게다가 피로도 관리 실패 페널티 때문에 머리가 그야말로 깨질 것처럼 아프기 시작했다.
가느다란 철사로 머릿속을 헤집는 것 같은 감각 때문인가, 눈을 감아도 잠이 안 왔다.
심지어는 수면 설정을 언제나 나를 강제로 잠들게 하던 피로도 회복 모드로 돌려놔도 잠이 안 와서 나는 조금 당황했다.
‘차라리 지난번처럼 코피만 잠깐 나고 말았다면 이런 끈질긴 고통은 없었을 텐데….’
사실 그때도 그렇게 만만한 코피는 아니었던 것 같지만, 원래 기억은 미화되는 법이다.
페널티와 동시에 시야 한구석에 모래시계가 생겼으므로, 아마도 저것이 이 빌어먹을 페널티의 남은 시간을 표시하는 것일 테다.
유감스럽게도 모래는 그렇게 금방 줄어들 것 같지 않았다.
“어디 아파?”
옆자리에 앉아 있던 서문결이 물었다.
안 그래도 내가 갑자기 하자고 한 팬 미팅 때문에 피곤할 텐데.
“아니. 그냥 피곤해서.”
곧 괜찮아질 일로 굳이 티를 내지는 말자고 마음먹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서문결은 약간 미심쩍어하는 낌새였으나, 두통은 내가 인상이라도 찡그리지 않는 한 겉으로 드러나는 종류의 문제가 아니었으므로 이내 시선을 뗐다.
숙소에 도착한 우리는 잘 자라는 인사를 할 여유도 없이 샤워한 순서대로 각자 방에 들어가 지친 몸을 누였다.
나는 누워서 자는 척만 했다가, 피곤했을 두 사람이 고르게 숨 쉬는 소리가 들리자 조용히 이불을 걷고 방을 빠져나왔다.
유리창 너머로 부는 12월의 바람 소리가 스산하게 느껴졌다. 밖은 추울 것이다.
머리를 밖으로 내밀면 피부가 꽝꽝 얼어서 안쪽의 통증이 좀 둔해질까. 아니야. 위험하겠지. 그럼 대신 냉장고 문을 열고 그 안에 들이밀면 되잖아?
……미친 생각 그만하자.
“으….”
나는 이제 정말 위쪽의 모래가 얼마 남지 않은 모래시계를 노려보았다.
한 점에 집중하니 두통이 조금이나마 덜해지는 기분이었다.
‘곧 있으면 잘 수 있다.’
그때, 누군가 큰방에서 거실로 나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자다가 물이라도 마시러 나온 강지우 아니면 반요한이겠지.
내가 소파에 가만히 웅크리고 있던 탓에 상대는 부엌 불을 딸깍하고 켜고 나서야 내 존재를 알아챘다.
“……깜짝이야.”
자다가 일어났는지 다소 부스스한 상태의 반요한이 깜짝 놀랐다는 것치고는 별 대수롭지 않게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평소에는 제일 먼저 자면서. 안 자고 뭐 해.”
“생각할 게 있어서. 이제 자려고 했어.”
그는 수긍한 듯 낮보다 느릿한 동작으로 물을 찾아 마셨다.
물을 꼴깍꼴깍 들이켜고 나자 흐리멍덩했던 반요한의 눈빛이 한결 맑아진 것이 보였다.
반요한은 바로 들어가는 대신 부엌 쪽 전등을 켜 둔 채로 내 쪽으로 다가왔다.
“온라온.”
나는 고개를 돌렸다.
나지막한 소리로 나를 부른 반요한은 옅게, 그러나 감출 생각 또한 없이 경계하는 낯으로 말했다.
“너, 팬들을 너랑 동등한 개인으로 생각하면 안 돼.”
이 새끼는 갑자기 또 무슨 헛소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