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s Strategy to Conquer the Entertainment Industry RAW novel - Chapter (131)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131화
첫 번째 회의는 명확한 대책을 마련하기보다는 실태를 파악하는 차원에서 끝났다.
“그럼 다음 회의 때까지 각자 맡은 부분 잘 조사해서 오도록 합시다!”
과제를 부여받은 멤버들의 표정이 묘하다.
그리고 나도 저 녀석들과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을 것 같았다.
‘말로만 듣던 조별 과제가 이런 건가.’
대학 생활을 한 번이라도 꿈꿔본 적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체험까지 해보고 싶은 건 아니었는데.
아무튼 나와 견성하가 맡은 것은 ‘할 말 없을 때 꺼낼 얘기 100개 생각해 오기’였다.
50개도 아니고 60개도 아니고 80개도 아니고 하필 100개인 이유는 단순하다.
팬 사인회에 오는 사람이 100명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런다고 꼭 한 사람당 하나의 질문을 쓰는 것은 아니었다.
이 사람한테 했던 질문을 저 사람한테 할 수도 있는 거고, 이야깃거리를 많이 가져온 사람의 차례에는 준비한 질문을 하나도 안 쓸 수도 있는 거고.
“78번. 기회가 있다면 저희 회사에 지원하실 생각이 있으신가요!”
“연계 질문으로 79번. 일주일에 한 번씩 등산을 가는데도 여전히 오실 생각이 있으신가요?”
“……그거 실장님이 절대 말하고 다니지 말랬는데.”
“그럼 앞에 만약 붙여. 참고로 제 답변은 미남을 얻고 싶다면 산을 버려라, 입니다. 내가 사기당해서 산 타던 생각만 하면 아주 그냥 계약서를!”
“……미남이라는 걸 네 입으로 말하냐?”
“내가 다른 건 부끄러워해도 얼굴 칭찬은 안 부끄러워 해.”
눈가를 파르르 떤 견성하는 나를 인정하는 동시에 무시하고 “80… 80…….” 하면서 고민에 빠졌다.
“으, 아무리 생각해도 100개는 너무 많아…!”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지 견성하가 바닥에 배 깔고 뉘었던 몸을 반 바퀴 굴리더니 머리를 괴롭게 쥐어뜯었다.
30번대에서 한 번, 50번대에서 한 번 쥐어뜯겼던 견성하의 머리카락이 또다시 비명을 질렀다.
‘저, 저… 머리카락과 두피 소중한 걸 모르는 놈을 봤나.’
얘도 탈색 몇 번만 하면 저런 불경한 짓은 두 번 다시 못 하게 될 텐데.
“내가 대신해 줄게. 80번. 성하의 머리카락을 뽑을 기회가 온다면 몇 가닥 뽑으실 건가요? 내 대답은 80가닥. 이유는 80번이니까.”
“……81번. 라온이를 괴롭힐 수 있는 합법적인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수단을 택하실 건가요.”
“와, 형이 되어가지고 동생을 앞장서서 괴롭히려고 하네.”
어쨌든 우리는 겨우겨우 100가지를 채웠다.
오늘 뭐 타고 왔냐, 불러줬으면 하는 노래 있냐, 요즘 좋은 일 없냐, 보고 싶은 컨셉 있냐…… 등 나름 의미가 있던 초반과는 달리 뒤로 갈수록 비생산적인 것만 한가득 나오기는 했으나.
생산성을 따진다면 애초에 비생산성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팬 사인회에 오지도 않았을 테니 우리는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끝났다!”
“이거 설마 외우라고 시키는 거 아니겠지?”
“말도 꺼내지 마.”
그러나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반요한은 나와 견성하가 만들어 온 리스트를 슬슬 웃는 낯으로 쭉 보더니.
“그래. 이왕 진흙탕에 뒹굴 거면 손잡고 사이좋게 구르는 편이 낫지.”
……라는 평과 함께 리스트를 복사해 나머지 멤버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러고는 우리에게 질문 암기를 시켰다.
“근데 왜 네 건 안 뽑냐?”
“다 외웠단다.”
허세가 아니라 더 얄미운 말을 들으며 강지우가 재수 없어 죽겠다고 중얼거렸다.
나랑 같이 만들어 놓고도 정작 견성하가 암기를 어려워해서 겸사겸사 강지우와 서문결까지 불러 놓고 오랜만에 《주입식 눈높이 교육》 스킬을 사용하기도 했다.
“내 머리가 이렇게 좋을 리가 없는데?”
자신의 성취에 감격하는 학생을 보니 피로도를 갈아 가르친 나도 절로 뿌듯해졌다.
“와, 너네 이걸 진짜 외웠어?”
이 여우 새끼가?
말도 안 되는 과제를 내놓고 이걸 진짜 다 해왔냐고 말하는 교수님 같다며 강지우가 치를 떨며 괴로워했다.
“성하야, 처리해라.”
“네, 형.”
말 잘 듣는 견성하에 의해 반요한이 납작하게 찌그러졌다.
서문결도 견성하를 딱히 말리지 않더라.
저 인간 역시 좀 조용하고 얌전하게 이상해졌다니까?
아무튼 우리가 질문 100개를 쥐어짜 내는 동안.
서문결은 모범적인 팬 사인회 대응으로 꼽히는 사례들을 조사해 왔고, 강지우는 그와 반대로 절대 하면 안 되는 행동 및 팬 사인회 도중에 발생할 수 있는 돌발 상황을 생각해 왔다.
“우리 진짜 이렇게까지 해야 해?”
“그럼, 해야지. 할 수 있는데 안 하면 안 되지.”
그렇게 말하는 강지우의 눈빛에 약간의 후회가 스친 것 같은데, 내 착각이겠지.
우리가 모아온 자료를 꼼꼼히 본 반요한은 그 모든 것을 바탕으로 최종적으로 실전 모의 면접, 이 아니라 실전 모의 팬 사인회를 주재했다.
3학년 1학기 중간고사를 날려 먹는 바람에 못 쓴 수시 원서의 한을 여기서 풀려는 것 같았다.
“오빠, 저 팬싸 처음이에요.”
팔에 소름이 오소소 돋을 만큼 간드러진 말소리에 반요한과 식탁에 마주 앉은 강지우가 이면지에 사인할 준비를 하다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름…… 므르그 즉어 드를까요.”
지금 ‘적어 드릴까요’라고 한 거겠지. ‘죽여 드릴까요’가 아니라?
“하니요. 옆에 하트도 그려주세요.”
저 새끼는 그냥 즐기는 것 같았다.
“오빠, 제 이름은 미친놈이 아닌데요?”
“하…….”
“네. 하니요.”
“하하… 하하하…….”
“말을 못 하네. 오빠도 많이 떨리시나 봐요!”
거실에 있는 소파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며 그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나와 견성하는 끔찍한 현장에서 도망치지 않기 위해 서로를 절박하게 붙잡고 있었다.
“와, 저걸 참네.”
“보살은 따로 있었네.”
우리는 반요한의 입에 종이를 구겨 쑤셔 넣지 않는 강지우의 인내심에 과연 리더감이라며 감탄했다.
모의 팬 사인회를 끝내고 만신창이가 된 강지우와 교대하는 서문결의 표정은 평소보다 냉정해 보였다.
대단하다 반요한.
한참 뒤.
사람 미치게 하는 컨셉과는 별개로 나름 착실하게 실전 모의 팬 사인회를 마친 반요한은 그것을 바탕으로 개별 컨설팅에 들어갔다.
이쯤 되니 이게 팬 사인회 준비인지 면접 준비인지 정말로 모르겠다.
“일단 성하. 너는 사람이 앞에 오면 일단 웃고, 중간중간 생각날 때마다 계속 웃어.”
냉미남의 표본인 견성하는 눈웃음을 지으면 말 붙이기 어려울 만큼 서늘하던 인상이 대번에 말 잘 듣는 개처럼 유순해진다. 그 위력은 보는 사람의 경계도 확 풀어지게 할 정도였다.
이후로도 반요한은 서문결에게 잘 들어주는 것도 좋지만 먼저 말을 거는 것도 중요하다거나, 가려는 사람을 그냥 보내주는 게 아니라 조심히 붙잡고 한마디라도 더 해보라거나 하는 등.
누가 보면 자기는 팬 사인회를 30번쯤 해본 것처럼 정교한 피드백을 해주었다.
“이 형은 뭔데 이렇게 자연스럽지?”
“너희와는 다르게 타고났다고 해야 하나.”
“……성하야, 놔라.”
“참아요! 지우 형 마음은 이해하지만!”
“난 오늘 꼭 저 자식 입에 마늘을 처넣어야겠다! 저게 다 사람이 덜돼서 그래!”
“흑마늘즙 주문할까?”
“결이까지 이럴 정도면 반요한 너어는 진짜 반성 좀 해!”
그 난장판 속에서 나는 톡식 활동 때 팬 사인회를 해봤다는 묵혜성에게 톡으로 조언을 구해봤는데.
나 [쌤!!]
나 [혹시 팬싸 때 어떻게 해야 팬분들이 좋아하실까요?]
묵쌤 [물만 마셔도 좋아하던데.]
나 [앗넹]
딱히 도움은 안 됐다.
별개로 정말 묵혜성이 물만 마셔도 그의 팬들이 좋아하는지는 궁금했다.
나중에 위튜브에서 그의 팬 사인회 영상을 조금 찾아봤더니, 과연 틀린 말은 아니더라.
묵혜성이 물을 마셔도, 마신 물병을 내려놓아도,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도, 다시 입어도, 그냥 뭘 하기만 하면 묵혜성의 팬들은 일관되게 행복해하는 소리를 내었다.
‘우상 숭배가 이런 건가…….’
어쨌든 그렇게 우리의 팬 사인회 대비는 마무리되었다.
* * *
팬 사인회장으로 가는 차 안.
그렇게 비정상적으로 치열하게 준비해 놓고, 견성하랑 강지우는 대체 왜 저렇게 떨고 있는지 모르겠다.
‘사실 이해가 아예 안 가는 건 아니지만.’
열심히 준비했으니까 더 떨리는 거겠지.
아무 생각 없이 있었다면 아무 생각 없이 갔다가 아무 생각 없이 망하고 왔을 테고.
팬 사인회가 열릴 목동의 한 홀에 도착한 우리는 메이크업을 수정하고 현장 스태프에게 마지막으로 주의사항을 들었다.
“터치는 손까지만. 얼굴 같은 데 만지려고 하면 저희가 바로 제지할 거예요. 이상하다 싶은 거 있어도 저희가 개입할 거니까 너무 걱정 말아요.”
아무래도 첫 팬 사인회다 보니 걱정 때문에 길게 이어지는 설명을 불만 없이 들은 멤버들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그만큼 준비했으니까 잘하겠지?
* * *
팬 사인회 시작을 앞두고 팬들이 모두 입장을 마쳤다.
착석한 팬들 사이에는 고민 없이 수십 장을 지르고 당첨된 윤선우와 10장밖에 안 샀지만 손으로 추첨한 덕분에 운 좋게 당첨된 미니 팬미팅 귤 사건의 주인공도 있었다.
조용하면서도 어딘지 들떠 있는 분위기.
그때, 멤버들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동시에 카메라 셔터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인사 먼저 드리겠습니다.”
“On and on, ORCA! 잘 부탁드립니다!”
단체 인사를 한 멤버들은 첫 팬 사인회에 와주셔서 감사하다 등의 말을 몇 마디 하다가 제비뽑기로 자리에 앉는 순서를 정했다.
반요한, 서문결, 강지우, 견성하, 그리고 온라온 순이었다.
“와, 다행이네요.”
자리에 앉은 강지우가 마이크에 대고 작게 한 말이 카메라 셔터음 외에 조용하던 실내에 잔잔히 울려 퍼졌다.
“뭐가요?”
“아, 라온이가 마지막이잖아요. 저희가 앞에서 어떤 실수를 해도 막내 앞에 앉으면 다들 말끔하게 잊어버리실 테니까 마음이 이제 좀 놓이네요.”
근심 걱정을 내려놓은 강지우가 산뜻하게 웃었다.
팬들은 속으로 ‘저 주접을 실제로 보다니!’ 하면서 즐겁게 웃음을 터뜨렸다.
다만 멤버들의 속은 조금 달랐다.
이건 단순한 편애가 아니라…….
‘이 자식 진심인데.’
‘맞는 말.’
‘이 형 완전 진심인데.’
‘저 형이 미쳤나.’
덕분에 온라온을 제외한 멤버들은 턱 막힌 속에 소화제라도 들이부은 것처럼 긴장이 확 풀렸고.
“1번부터 5번까지 올라와 주세요.”
팬 사인회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