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s Strategy to Conquer the Entertainment Industry RAW novel - Chapter (132)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132화
오르카의 첫 팬 사인회는 도서관 열람실처럼 정숙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그 틈에서 팬들 사이에서도 유쾌한 일화로 알려진 일명 ‘미팬 귤 사건’의 주인공 금규리는 인생 첫 팬 사인회를 앞두고 날뛰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아까부터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개를 슬며시 들어 온라온을 볼 때마다 기껏 약간 가라앉혔던 가슴은 도로 요동쳤다.
‘아니, 진짜…… 어떻게 저런 사람이 존재하지?’
금규리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어 봤지만.
‘와…….’
반하지 않을 수 없는 황홀한 분위기의 소년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그녀는 이윽고 결단했다.
‘안 본다고 진정되는 것도 아니고 아까우니까 저 얼굴이나 실컷 보자.’
내가 여기를 또 언제 오겠어?
좋아하는 아이돌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볼 기회가 그렇게 많지 않음을 알아차린 금규리는 이내 온라온을 직시하기 시작했다.
한 번도 아이돌을 깊이 좋아해 본 적 없던 금규리의 사고방식으로는 같은 앨범을 여러 장 사는 것은 전적으로 낭비에 불과했다.
평소였다면 똑같은 앨범을 10장씩이나 사는 과소비는 절대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처음 들이켜는 도수 높은 사랑은 그녀의 사고를 순간적으로 휘젓고 흐트려 놓았다.
음반점에서 카드를 긁고 나올 때가 되어서야 정신을 차린 금규리는 이게 무슨 낭비냐며 후회했지만, 그때는 이미 환불도 불가능했다.
다행히 당첨되었으니 망정이지 만약 떨어졌다면 그룹에 대한 정도 조금 떨어졌을 것 같았다.
알고 보니 10장으로 당첨된 것은 상상 이상으로 대단한 행운이었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그녀의 몇 배를 사고도 탈락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
절약정신 투철한 금규리에게 나름 큰 금액이었던 10장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두 번은 못 와…….’
탈락한 사람이 들인 금액을 계산해 본 금규리는 질린 표정으로 생각했다.
어쨌든 한 번은 운 좋게 왔으니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자는 마음으로 온라온에게 줄 편지를 쓰거나, 오는 길에 급하게 포스트잇을 사서 멤버별로 질문할 것도 적어왔다.
제일 먼저 긴장한 기색이 하나도 안 보이는 반요한이 즐거워 보이는 미소를 띤 채 금규리를 맞았다.
“와, 안녕하세요.”
내내 온라온만 보고 있어서 몰랐는데, 반요한도 그녀의 일상에서는 마땅히 찾아볼 수 없는 화사한 미청년이었다.
“아, 아, 안녕하세요.”
말을 더듬은 금규리의 뺨이 창피함으로 화끈거렸다.
“뭐라고 적어드리면 될까요?”
간신히 이름을 말하고 나니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망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하지만 빠르게 사인부터 마친 반요한은 망한 팬 사인회 후기에 이름을 올릴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팬싸 처음이세요?”
“네, 네.”
이런 상황에서 “네”라고 말하는 것은 가장 쉬운 일 중 하나에 속했기에 금규리는 기껍게 고개를 끄덕였다.
매끄럽게 웃은 반요한이 말했다.
“저도 처음이에요. 누나, 저번에 미니 팬 미팅 때 귤 떨어뜨리신 분 맞죠.”
“네에… 어, 어떻게 알았어요?!”
금규리가 무의식중에 긍정하다가 깜짝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저 사람 얼굴 잘 외워요. 그리고 뿌리고 오신 향수도 귤 향이고 뭔가 알아봐 달라고 하는 것 같아서.”
“아아…….”
그런 의도가 정말 있기는 있었지만, 막상 알아봐 주니 좋으면서도 부끄러워 얼굴이 다시 빨개지는 듯했다.
“저 프루티하고 가벼운 향수 좋아하거든요. 규리 누나 것도 상큼해서 좋은 것 같아요.”
“네가 더 상큼해요…!”
시종일관 상냥하게 말을 거는 산뜻한 인상의 청년 앞에서 금규리는 그만 반사적으로 대꾸하고 말았다.
제정신이라면 절대 소리 내어 하지 않았을 말이었다.
그 이후로는 말문이 어느 정도 트여 반요한과 향수 이야기를 하다 보니 다음 차례로 넘어갈 시간이 되었다.
“다음에 또 봐요.”
“네…!”
반요한이 언제 잡혔는지도 잘 모르겠는 손을 놓아주었다.
다음 차례인 서문결에게 사인받을 페이지를 찾기 위해 앨범을 넘기려다가 뒤늦게 반요한의 포스트잇 답변을 확인한 금규리는 속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 제일 좋아하는 과일 적어주세요!
귤^^
‘와, 여우.’
반요한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긴장이 풀어질 대로 풀어져 한여름 아이스크림처럼 사르르 녹아버린 기분이었다.
덕분에 유난히 앞에 앉은 팬들의 체류 시간이 길어 보이는 서문결의 앞에 앉아서는 그나마 떨지 않고 인사를 건넬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엄마야….’
금규리는 서문결이 사인을 해주는 사이 도로 날아가려는 정신을 가까스로 붙잡았다.
그의 예민하고 날카로워 보이는 인상쯤이야 팬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서문다정’이라는 별명을 생각해 보면 그리 무섭게 느껴지지 않았다.
‘안 무섭다… 떨지 말자…….’
오히려 오르카에서 가장 무디고 만만한 사람이 서문결 아니겠는가!
그리고 사인과 포스트잇 답변을 마치고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는 서문결의 눈빛은 꿀이 뚝뚝 떨어지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람의 명치 부근을 괜스레 간질거리게 할 만큼은 부드러웠기에 금규리는 이내 완벽하게 무장 해제 되었다.
반요한처럼 뚜렷이 웃는 낯은 아니었지만 아주 살짝 휘어진 맵시 있는 눈매가 그녀를 실없이 설레게 했다.
– 픽하트 촬영하면서 라온이랑 있던 일화 있나요? (방송에 안 나온 것 중에!)
첫 합숙 때 수건 빌려준 것
이번에는 포스트잇 답변을 늦지 않게 확인한 금규리가 그리 특별해 보이지 않는 일화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수건이요?”
“첫 합숙 때 라온이가 샤워를 하러 갔는데 수건을 안 가져와서, 제가 가져다줬어요.”
“아…… 원래 알던 사이였어요?”
“아뇨.”
고개를 저은 서문결이 당시 상황을 조금 더 자세히 설명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금규리는 감탄했다.
‘처음 본 사람한테 수건을 빌리다니, 역시 인싸…….’
그녀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포스트잇과 관련한 이야기가 종결되며 대화의 맥이 끊길 뻔했으나 서문결이 늦지 않게 다른 화제를 꺼내 금규리는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과묵한 줄 알았는데 의외네.’
게다가 서문결은 스태프가 이동하라고 하는 바람에 하던 말을 중간에 멈추고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금규리를 붙잡고 끝까지 들어주기까지 했다.
내내 맞잡고 있던 손이 여전히 따뜻했다.
‘결혼하자고 할 뻔…….’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금규리가 마침내 제 앞에 앉자 저 사람이 언제 오나 발을 동동 구르던 강지우는 반색하며 그녀를 반겼다.
서로 다른 의미로 다른 세계 사람 같았던 반요한과 서문결과는 달리, 머리에 소담한 화관을 쓴 강지우는 어쩐지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사인을 마친 뒤 그녀의 두 손을 덥석 잡은 강지우가 연락이 끊겼던 친구를 10년 만에 다시 찾기라도 한 것처럼 어마어마하게 살갑게 다가왔던 것이다.
두 손을 잡고 위아래로 자꾸 흔드는 통에 거리감이 단숨에 좁혀졌다.
“밥은 먹고 왔어요?”
식사 이야기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자주 불려 나오는 멘트 1이었지만, 왜 강지우가 하니 이리도 진심처럼 느껴지는지는 모를 일이다.
금규리가 귤 사건의 당사자라는 사실을 밝히자, 한동안 귤로 할 수 있는 온갖 요리에 대해 설명해 주던 강지우는 시간이 다 되자 아쉬워하며 다음에 또 보자는 말과 함께 그녀를 보내주었다.
“안녕하세요.”
혼자서 물을 마실 때는 서문결보다도 냉하고 뚱한 인상이다 싶던 견성하는 금규리가 제 앞에 앉자 미리 연습했던 대로 재깍 눈을 접어 웃었다.
그는 약간 떨고 있는 것도 같았다.
‘귀여워…. 쓰다듬고 싶어…….’
긴장이 풀려도 과하게 풀린 거 아닐까.
금규리는 멤버에게 닿을 수 있는 것은 손까지라는 사실을 상기하고 자신의 삿된 욕망을 간신히 제어했다.
“소, 손 잡을래요?”
“네!”
견성하는 손이 얼마나 큰지 아주 작지는 않은 그녀의 손을 고스란히 감쌀 정도였다.
그 와중에도 잡힌 손을 통해 떨림이 전해져 왔다.
‘많이 떠네. 내가 더 많이 얘기해야 하나…….’
금규리의 그런 고민은 아무 쓸모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주말에 산을 갔는데 쓰레기가 너무 많은 거예요. 그거 보고 너무 좀 그런 거예요. 저는 살면서 길에 쓰레기 버린 적 진짜 한 번도 없거든요. 무조건 쓰레기통 보일 때까지 들고 가고…….”
“아, 진짜요…?”
견성하는 떤 것치고 말이 많았다.
랩이라도 하는 것처럼 줄줄 흘러나오는 견성하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넘어갈 시간이 다 되었다.
‘드디어 라온이…….’
금규리는 마침내 마주한 최애 앞에서 준비해 온 말을 다 하고 말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안녕하세요!”
그러나 온라온의 얼굴을 지극히 가까운 거리에서 보니 까닭 없이 울컥해서 말도 안 나올 지경이었다.
멀리서 볼 때는 그저 감탄만 나왔는데 가까이서 보니 반짝이는 눈동자에 홀려 그 감탄조차 안 나왔다.
그녀의 멘탈이 2차 탈색되었다.
앞선 팬들도 금규리와 유사한 반응을 보이는 바람에, 그새 정신을 못 차리는 이들에게 대단히 익숙해진 온라온이 “우리 손 잡을래요?” 하고 오른손을 내밀었다.
머뭇거리면 온라온이 손을 거둬가기라도 할세라, 금규리는 반사적으로 덥석 잡았다.
혼자 있을 때 온라온이 열심히 두 손을 비벼 열을 냈으나 끝으로 갈수록 찬 기운이 남아 있는 손이 금규리의 정신을 약간 일깨웠다.
검지가 12호라더니, 과연 깍지 낀 온라온의 손이 그녀만큼이나 고와서 약간의 패배감까지 불러일으켰다….
“와, 그거 저 주시는 거예요?”
금규리가 내내 소중히 들고 있던 편지를 말하는 것이었다.
“네, 네……!”
허둥지둥하던 그녀는 너무 꽉 쥐는 바람에 한쪽 귀퉁이가 약간 구겨진 편지를 두 손으로 건넸다.
“고마워요.”
마찬가지로 편지를 두 손으로 받은 온라온이 나중에 꼭 읽어보겠다면서 작게 웃었다.
그 미소와 함께 그녀 안에서 무언가 툭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성이 반쯤 휘발된 금규리는 준비한 이야기를 반드시 하고 가겠다는 일념으로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사실 좀처럼 알아듣기 힘든 말소리였으나, 눈을 동그랗게 뜬 온라온은 당황하지 않고 그녀의 이야기를 최대한 들어주었다.
“살면서 제가 아이돌에 관심이 있던 적이 없어서… 다른 애들이 다 유피테르 좋아할 때도 저는 관심 없었거든요. 아, 이게 아니라…! 아, 알게 된 지는 얼마 안 됐지만 제가 라온이 진짜 사랑하고…….”
그때까지 고개를 끄덕여 가며 들어주던 온라온이 멈칫한 것은 그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