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s Strategy to Conquer the Entertainment Industry RAW novel - Chapter (163)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163화
다만 기본을 지켰다는 건 내세울 만한 게 못 된다.
기본은 어디까지나 당연한 것이므로.
그렇듯 고경윤의 사고는 어쩐지 여든 먹은 노인처럼 고지식한 구석이 존재했지만 나오는 행동까지 그렇지는 않았다.
정해둔 선 안에서 이용할 수 있는 건 이용한다.
보잘것없는 옛정을 들먹이며 알아두면 좋을 이에게 친한 척 다가가는 것은 허용범위 내였다.
어쨌든 고경윤은 그 사소한 행동 하나만으로도 이미 그를 좋게 보고 있던 회사 어른들에게 “적응을 못 하는 동생을 챙겨주다니, 역시 경윤이는 착하네.” 같은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로 인해 회사 내에서 고경윤의 평판은 또다시 상승했다.
불쾌감을 잠깐 감수하기는 했지만,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인데 칭찬을 듣다니, 남는 장사 아닌가. 고경윤은 생각했다.
당시 온라온 역시 그의 행동에 적잖이 고마워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경윤에게 그 이상 다가가려 하지는 않았다.
온라온 또한 고경윤이 그에 대한 호의가 아니라 본인의 가치관에 기반한, 굳이 말 얹을 필요가 없을 만큼 지당한 행동을 했을 뿐이며.
괜히 이 일을 구실로 더 다가갔다가는 모처럼 저를 도와준 사람의 기분만 상하게 할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정답이었다.
만약 온라온이 눈치 없이 고경윤에게 들이대기라도 했다면 고경윤은 서슴지 않고 지금 무슨 착각 하는 거냐며 무안을 주었을 것이다.
다행히 온라온이 고경윤의 선을 지켰고.
얼마 뒤 방학이 끝나 학교에 다니기 위해 미국으로 다시 돌아간 덕분에 온라온을 통해 제 평판을 높이는 데 성공한 고경윤은 온라온을 ‘보고 있자니 기분은 좀 나빠도 눈치는 제법 괜찮은 녀석’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다.
고경윤이 봤을 때 대중에게 사랑받기는커녕 기분 나쁘다고 욕이나 안 먹으면 다행인 온라온이 아이돌로서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온라온이 춤 하나는 정말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예술적으로 추었기 때문에, 고경윤은 온라온을 계속 알아두어도 나쁘진 않겠다고 판단했다.
하여 고경윤은 트루를 나가기로 마음먹은 다음 방학 때 다시 보게 된 온라온에게 약간의 친절을 더 베풀었다.
그 결과 온라온은 고경윤이 회사를 나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보이게 된다.
온라온은 보기보다 냉정한 방향으로 생각할 줄 아는 이였으므로.
그나마 잘해주던 고경윤과 헤어지기 때문만 아니라 고경윤이 연습생을 그만둔 이후 자신에게 닥칠 일들을 막연히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고경윤의 위선적인 친절은 온라온에게 있어 양날의 검이었다.
온라온은 고경윤에게 약간의 편의를 받을 때마다 그 대가로 두 사람을 모두 아니꼽게 보던 연습생들(이를테면 오현진)에게 반감을 샀다.
그런 상황에서 일종의 울타리 역할을 하던 고경윤이 회사를 나간다면 그들이 온라온에게 어떻게 할지는 불 보듯 뻔했다.
“왜 울어?”
“[미안……. 네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어…….]”
온라온이 아는 사실을 고경윤도 물론 알았다.
하지만.
“나한테 네 일까지 책임지라는 거야?”
“[아니.]”
“네가 무책임하다고 날 욕하든 말든 상관없어.”
“[욕 안 해.]”
“그래? 나라면 할 텐데.”
“…….”
온라온의 시선을 받으며 근처에 있던 포스트잇에 제 휴대폰 번호 열한 자리를 휘갈겨 적은 고경윤이 말했다.
“네가 나한테 도움이 될 수 있을 때 연락해. 그땐 나도 널 도울 테니까.”
“응.”
“아무튼 난 간다.”
3년 전, 늦여름의 일이었다.
* * *
최근에 공사를 했는지, 새것 특유의 냄새가 나는 체육관의 공기를 맡으며 나는 불현듯이 떠오른 고경윤의 말소리를 곱씹었다.
– 네가 나한테 도움이 될 수 있을 때 연락해. 그땐 나도 널 도울 테니까.
그리고 오피스텔에 있는 책상 구석에 붙어 있던 노란 포스트잇이 연달아 떠올랐다.
대체 무슨 번호인가 했더니 얘 번호였나 보다.
“연락하라더니. 네가 먼저 연락했네?”
“너야말로 기억 안 난다더니.”
“지금 그 말 하나 생각났어.”
“다른 것도 기억해 주면 좋을 텐데.”
콕 집어서 새끼 여우를 닮은 반요한과는 달리 통상적으로 ‘여우상’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에 한없이 가까운 고경윤의 얼굴은 차분하게 웃고 있는데, 저게 진심으로 하는 말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갑자기 말은 왜 놨냐?”
“원한다면 계속 높일게요. 선배라고도 계속 불러 드릴까요?”
……약간 소름 끼치려고 했다.
“됐어. 그냥 동갑인 걸로 하자, 경윤아.”
“그래.”
그때, 곽상현에게 언제쯤 오냐고 문자가 왔다.
별 이야기를 한 것 같지도 않은데 시간이 꽤 흘러 있었다.
“나 매니저 형이 불러서 가봐야 할 것 같은데.”
“그럼 가야지.”
따로 할 얘기가 있던 것도 아닌지, 붙잡지도 않았다.
대체 왜 부른 거지.
“넌 안 가?”
“체육관에 계신 선생님 뵙고 가려고.”
“그래.”
그대로 방을 나가려는데 고경윤이 “라온아.” 하고 나를 불렀다.
“내가 했던 말은 아직 유효해.”
제 도움이 필요하다면 연락하라고, 고경윤이 특유의 분명한 발음으로 강조하듯 말했다.
* * *
견성하네 가족과 식사를 마친 뒤 숙소로 돌아와 고경윤에 대해 알아보는데.
찾아보면 찾아볼수록 리프틴의 회사가 아무 생각 없이 고경윤을 추가 멤버로 투입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이런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파생된 그룹의 성패는 새로 합류한 멤버가 얼마나 제 몫을 하느냐에 달려 있기도 하다.
기존에 인기 있던 멤버 몇이 새로운 그룹 전체를 언제까지나 견인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르카는 비 픽하트 출신 멤버들이 아주 많이 잘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아무튼, SNS에 셀카를 올렸을 때의 공유 수나 무대 직캠 조회 수, B앱 라이브 방송 하트 수와 조회 수 등의 지표로 보았을 때 고경윤은 쟁쟁한 연습생들을 모아놓은 리프틴에서도 인기 상위권에 속했다.
그런 고경윤이 나와 오현진을 불러서 하고 싶은 말이 뭐였을까.
고경윤의 위치, 나의 위치, 오현진의 위치.
“…….”
리프틴.
아무리 잘나간다 해도 리프틴은 시한이 정해진 그룹이다.
몇 년 뒤 그들은 정해진 절차대로 해체할 것이다.
이제 막 데뷔했는데 뭐 벌써 해체를 생각하냐 싶을 수 있지만, 그게 여러 소속사가 눈앞에 있는 이익을 위해 뭉쳐 만든 그룹인 그들의 씁쓸한 현실이었다.
그래. 회사란 이익을 생각하는 집단.
짧게 잡혀 있는 계약 기간이 끝난 뒤에도 리프틴이 화제성과 수익성을 유지할 가능성을 보인다면…….
여러 생각 끝에 나는 고경윤에게 전화를 걸었다.
“도와줘.”
– 내가 왜?
흡사 내가 무슨 이득이 있어서 굳이 그러겠냐는 투라 듣고 있자니 참 재수가 없었다.
“신인상 받고 싶잖아.”
– …….
“어제 나랑 걔랑 같이 부른 건 어느 쪽이랑 함께 가면 좋을까, 재려고 그런 거지?”
– 맞아.
고경윤이 순순히 인정했다.
– 그리고 이왕이면 너랑 같이 가고 싶었어.
진심인지 아닌지 모르겠고 이 녀석이랑 대화할 때는 그 여부가 별로 중요한 것 같지도 않다.
“지금 헌트레드에서 푸시 받는 멤버는 누가 봐도 오현진이야.”
대체 트루가 과거와 현재가 다 별로고 미래 또한 별로일 놈을 왜 그렇게까지, 그야말로 온 힘을 다해 밀어주는지는 모르겠다.
참고로 트루는 픽하트 때 생긴 오현진의 친일파 논란을 ‘혹독한 연습생 기간을 버텨낸 끝에 참가한 서바이벌에서 좋은 성적으로 데뷔할 뻔했는데 조작 이슈 때문에 불발된 불쌍한 아이’라는 서사로 완전히 덮어버렸다.
그것도 그냥 덮은 게 아니라 화제성으로는 픽하트에서 감히 최고라고 말할 수 있는 나와 엮어서.
언론 플레이 잘하더라.
사람들이 뭐라고 그랬지.
기억나는 것만 말해보자면.
온라온이 정신적으로 힘들어할 만큼 혹독하고 빡센 트레이닝을 견디다니, 역시 트루에서 그만한 실력파 아이돌이 나오는 이유가 있다.
오현진도 이제까지 온라온이랑 같은 시스템 아래에서 힘들게 버틴 거 아니냐.
그럼 오현진은 괜찮은 거냐.
아니, 생각해 보면 끝까지 버틴 오현진 쪽이 더 대단한 거고, 못 버티고 퇴사한 온라온 쪽은 그냥 의지가 부족한 게 아니냐.
……뭐, 자체적으로 수위 조절을 해서 저 정도지, 고소 각이 슬슬 보이는 댓글도 꽤 많았다.
무리해서 나와 엮는 글에는 에어리들이 단체로 가서 무슨 헛소리냐고 대신 화내주기는 했지만…….
내가 돈만 벌면 아주 그냥 다 고소해 버릴 거야.
어찌 됐든 이제 알 만한 사람은 트루가 조작을 주도한 뮤직박스와 한패였다는 사실은 다 아는데도.
현재에 이르러 오현진은 조작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무력한 일개 연습생으로 포지셔닝되었다.
총체적인 진실을 알고 있는 입장에서 보자면 아주 기가 막힐 만큼 뻔뻔하기 그지없는 대처였다.
‘트루 망해라. 오현진 망해라.’
“아무튼 오현진이 무너지면, 그것도 그냥 무너지는 게 아니라 대중적으로 가장 불편할 형태로 무너지면.”
고경윤이 내 말에 여느 때보다 신중하게 귀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쪽은 신인상은 고사하고 당분간 내부 정비에나 신경 써야 하겠지.”
– 그 팀의 다른 멤버들은 어쩌고? 나 때문에 그렇게 되면 꽤 미안할 것 같은데.
“걔들이 어떻게 되든 관심도 없으면서.”
내가 가식적인 말에 곧바로 반박하자 정답이라는 듯 잔잔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게 왜 너 때문이냐? 오현진이랑 걔 친구들 때문이고, 책임도 걔들이 져야지.”
– 맞는 말이야.
이제 이 녀석이 어떤 사람인지 어느 정도 알 것 같았다.
계산적이고, 냉정하고, 이해타산 잘 따지고, 미래지향적이며, 한없이 정치적인.
“신인상 후보로 셋은 많아. 둘로 좁히자.”
– 못 보던 사이 더 바보 같아진 줄 알았는데, 많이 똑똑해졌네.
나는 고경윤의 거만한 말을 알아서 넘겼다.
“내가 널 돕는다면, 확실하게 처리할 수 있지? 네 성격에 이런 일에 대비를 안 해뒀을 것 같지는 않은데.”
– …….
잠시간의 침묵 뒤에.
– 그래. 할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