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s Strategy to Conquer the Entertainment Industry RAW novel - Chapter (203)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203화
오현진, 이은규, 한도경…….
그리고 기타 등등의 상종하기 싫은 새끼들.
옛 기억 때문인지 몸이 제멋대로 움츠려들려고 했지만, 저 새끼들한테 주눅 든 것처럼 보이기 싫어 의식적으로 어깨와 등을 곧게 폈다.
“안녕.”
서로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제자리에서 멈춰 버린 탓에 가깝다기보다는 먼 거리를 유지한 채로 헌트레드 쪽 리더가 먼저 애써 웃는 얼굴로 인사했다.
“네.”
서로 면상 오래 보고 있어 봤자 기분만 잡칠 테니 나는 길게 말하지 않고 그대로 가던 길을 갔다.
[이 자리에 있는 다수가 당신을 싸가지없는 놈이라고 생각합니다.]문득 그런 궁금증이 들었다.
요즘 연예계에서 가장 큰 이슈를 쟤들도 모르지 않을 텐데.
무슨 생각 하고 있을까?
쟤네도 자기가 한 짓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아무렴 쫄리겠지? 그렇겠지?
부디 훗날 찾아올 업보를 두려워하며 밤잠을 설치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좁은 복도에서 우르르 몰려 있던 녀석들을 통과하며 가장 바깥쪽에 있던 오현진과 어깨가 스쳤는데.
어디 몸이 안 좋기라도 한 것처럼 몸을 구부정하게 수그리고 있던 오현진이 고개를 돌려 내 쪽을 보았다.
“!”
찰나였지만, 오현진과 눈이 마주친 나는 순간 흠칫 놀랐다.
‘쟤는 렌즈를 뭐 저런 걸 꼈냐…….’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오현진의 두 눈동자가 불타 재만 남은 것처럼 새하얬다.
까만 동공까지 희끄무레한 빛으로 반투명하게 덮여 있어서 그런가, 왠지 모르게 피폐해 보이는 안색 때문인가.
제발 어디 가서 양기 좀 충전해 오라는 원성을 직원들에게 곧잘 듣는 이영민 이상으로 음산한 낯짝이었다.
‘얘네 이번 컨셉이 공포나 호러, 뭐 이런 쪽이었던가? 타이틀곡은 그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꿈에 나오기라도 할 것처럼 괜히 찜찜하다.
타이밍 좋게 주안에게 메시지가 연달아 왔다.
주안선배 [너네 멤버 학폭 진짜냐?]
주안선배 [아니지?]
어쩐지 이런 일 생기면 제일 먼저 관심 갖고 연락할 사람인데 잠잠하다 했다.
제 딴에는 예민한 사안이니 일단 한 번 참았는데, 오늘 우리 입장문 나온 거 보고 바로 연락한 모양이었다.
나는 자리에 멈춰 주안에게 보낼 답장을 썼다.
나 [아니에요ㅠㅠ]
나 [형인생걸고 절대 아님!]
주안선배 [넌 왜 내 인생을 거냐ㅡㅡ]
나 [제가 제 인생을 대신 걸 만큼 형 생각을 한다는거죠]
나 [(고양이가 강력한 하트 빔을 쏘는 이모티콘)]
주안선배 [ㅋㅋ]
주안선배 [암튼 아니라니 다행이네]
주안선배 [고생해라]
나 [네 감사합니다]
생각 없는 잡담을 했더니 나도 모르게 답답하게 막혀 있던 머릿속 환기가 좀 됐다.
도중에 구부렸던 무릎을 편 나는 다시 원래 가려던 곳으로 향했다.
내가 생각해둔 곳은 이전에 고경윤과 잠깐 만났던 초록색 그림 쪽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쪽에 있는 기둥 뒤.
문제는 그곳에 이미 선객이 있었다는 것이다.
‘와…… 여기서 연애한다, 연애한다,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네.’
지금 저 멀리 보이는 건 그다지 유명하지는 않은 남자 아이돌 한 사람뿐이었지만, 아마 저 기둥 뒤에 한 사람이 더 있을 것이다.
원래 저기서 시간이나 좀 때우나 가려고 했는데 안 되겠군.
상대가 누군지 궁금하기는 했으나, 어쩔 수 없이 아무것도 못 본 사람처럼 기둥 직전에 몸을 틀어 한 번도 들어가 본 적 없는 계단 쪽으로 목적지를 바꾸었다.
내가 점점 자기들 쪽으로 다가가자 불안한 눈치로 나를 자꾸 흘끔거리던 남자 아이돌은 내가 그쪽으로는 시선도 안 주자 안심해서 자기 애인과 신나게 재잘거렸다.
‘여기 너무 어두워서 약간 그렇기는 한데… 그래도 사람은 없으니까…….’
* * *
닫혀 있던 계단 문을 연 온라온은 코끝을 조금 찡그렸다.
‘아니, 대체 어떤 몰상식한 인간이 여기서 담배를 피워?’
냄새가 지속적으로 올라오는 걸 보니 지금도 저 아래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 같았다.
쉬려고 온 곳에서 오염 공기를 맛보게 된 온라온은 순간 혈압이 팍 오르는 것을 느꼈다.
화가 난 것을 알리듯 빠른 발소리가 조용한 계단에 선명하게 울렸다.
온라온은 그대로 담배 냄새의 원인을 찾아 아래로 성큼성큼 내려갔고, 곧 계단에 쭈그려 앉아 담배를 뻐끔거리는 이의 뒷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귀신이냐?”
체격이나 머리 길이 때문에 남자인 줄 알았는데, 목소리를 들으니 여자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닙니다.”
근처에서 멈춘 기척을 느낀 여자는 위쪽에 서 있는 온라온을 돌아보았다.
“…….”
온라온은 말없이 여자의 손가락 사이에 있는 담배에 시선을 주었다.
온라온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눈빛만으로도 충분히 전달됐을 텐데도, 여자는 오히려 천연덕스럽게 주머니에서 담배갑을 꺼내 보였다.
“너도 한 대 피울래?”
“목 관리 때문에 회사에서 담배 못 피우게 해요.”
“그래? 공범이나 될까 했는데.”
그럼 어쩔 수 없겠다며 여자가 담배갑을 도로 집어넣은 뒤, 피우던 담배를 바닥에 비벼 껐다.
다행히 담배 꽁초는 층계참에 아무렇게나 버려지는 대신 여자의 품에서 나온 휴대용 재떨이로 들어갔다.
“여기 귀신 나오는 계단이라는 소문 있는 건 알아?”
“아뇨……. 처음 들어보는데요.”
그 말을 듣고 보니 온라온은 안 그래도 어두침침해서 으스스하던 층계가 더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이쪽으로 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었군.’
“그럼 방송계에서 귀신 보면 대박난다는 소문은?
“그건 어디서 들어본 것 같아요.”
“그래서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야.”
“네?”
종잡을 수 없는 흐름에 온라온의 눈이 흔들렸다.
뭐지 이 사람.
대화를 하나도 못 따라가겠어…….
“내가 대박을 내면 우리나라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한다, 이 말이지. 네가 귀신인가 살짝 기대했는데….”
“아, 네.”
귀신이겠냐고.
‘실내 흡연하다 걸린 주제에 말이 쓸데없이 많으시군…….’
“그래서 너는 여기 왜 왔냐?”
“네?”
“여기까지 오는 사람은 보통 둘 중 하나거든. 미신이라도 믿고 싶을 만큼 절박해서 귀신 찾아오거나, 사람보다는 귀신을 더 반길 만큼 혼자 있고 싶었거나. 어느 쪽이야?”
여자는 호쾌히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참고로 나는 규칙적으로 오면 여기 어딘가에 있는 귀신도 나한테 적응해서 한 번쯤 얼굴 비춰주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에 토요일 정오마다 여기서 13주째 존버하는 쪽이다.”
아, 그러시구나.
“저는…….”
“저는?”
“담배 피우는 PD님 계셔서 실망한 쪽이요…. 그리고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 있나?”
여자가 워낙 생뚱맞은 말을 많이 해 긴장이 풀린 온라온이 조금 뚱한 표정으로 대꾸하자 여자가 푸하핫 웃음을 터뜨렸다.
“너 내가 PD라는 건 어떻게 알았어?
“그냥 찍어봤어요. 맞으세요?”
“맞아. 지금이라도 자리 비켜줄까?”
“담배 냄새 심해서 그냥 제가 가려고요. 그리고 여기서 담배 피우시면 안 돼요.”
온라온은 그 말대로 담배 냄새를 피해 도로 쪼르르 올라가 버렸다.
다시 혼자 남은 여자는 골똘히 생각에 빠져 들었다.
‘어려 보이는데 눈치 빠르고, 잘생겼고, 사람 끌고. 잘되겠네.’
그러다가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머리를 쳐들었다.
‘아, 그러고 보니 걔…… 그 기획사 출신이던가?’
한편, 방송을 시작하기 전 뮤직팡팡 PD가 하는 수 없이 대기실로 돌아가 박혀 있던 온라온을 따로 부르는 일이 있었다.
“라온아, 시사 교양 쪽에 또라이 PD 하나 있거든.”
이 사람도 다른 스태프들처럼 견 씨 남매에 관한 얘기를 하려나 싶어 흘려들을 준비를 하던 온라온은 다소 뜬금없이 느껴지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
“아니. 사실 그쪽 인간들은 다 이상하기는 한데, 특히 제정신 아닌 것 같은 지독한 인간이 하나 있어. 천해경이라고. 칼침 맞고도 취재하다 실려가서 죽을 뻔한 걸로 유우명한 피디.”
천해경. 온라온은 일단 그 이름을 기억해 두었다.
“그런데 그 얘기는 갑자기 왜……?”
“아니, 그 인간이 뭐 때문인지는 몰라도 요즘 나이 어린 연예인들 찾아다닌다던데, 너도 돌아다니다가 괜히 잘못 걸리지 않게 조심하라고. 나쁜 사람은 아닌데… 엮이면 골치 아파. 덩치 큰 여자 피디 만나면 가던 길도 돌아가라.”
“네. 주의할게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쩐지 이미 마주친 것 같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하람 씨 없어서 힘들겠지만 잘해보자고.”
“네.”
* * *
견하람 없이 어찌어찌 이세준과 둘이서 뮤직팡팡 촬영을 무사히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저 입구에서 내려주세요. 편의점 좀 들렀다 가게요.”
“편의점? 알았어. 난 회사 바로 가니까 기자나 사생 조심하고.”
“둘 다 뭐……. 어쩔 수 없죠.”
“그렇기는 한데.”
단지 입구에서 내린 나는 편의점에 들러 강지우가 부탁한 우유와 간식거리 조금을 사들고 나왔다.
“…….”
“…….”
아, 어떻게 오늘은 되는 일이 없냐.
내가 걸음을 갑자기 멈추자, 뒤따라 오던 사람도 우뚝 멈춰 서는 게 느껴졌다.
“…….”
“…….”
그러기를 몇 번.
“저기요. 왜 따라오세요?”
참다 참다가 뒤돌아서 물으니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상대방은 오히려 자기가 더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저 몰라요?”
“누구신데요?”
“저 문결이 형 동생이요.”
“아, 문결이 형 동생이시구…… 네? 누구 동생이요?!”
서문결한테 동생이 있었어?
근데 왜 결이 형 아니고 문결이 형이라고 불러?!
알고 지낸 지 약 1년 만에 처음 알게 된 사실에 나는 바보같이 입을 쩍 벌렸다.
이제 보니 녀석은 ‘서주원’이라는 명찰을 달고 있었다.
“어, 우리 형 몰라요? 서문결이요. 같은 멤버 아닌가? 아직 그것도 모르면 그쪽은 우리 형이랑 별로 안 친한가 봐요?”
얘 뭐지.
미묘하게 속 긁는 말에 순간 빈정이 상하려 했지만.
“아닌데. 저랑 결이 형이랑 친해요.”
호감도 창을 열어 어느덧 90에 가까워진 서문결의 호감도를 확인한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그랬더니 자칭 서문결 동생의 표정이.
“…….”
썩었다.
호감도까지 5나 깎였다.
일단 형제끼리 성격이 참 극과 극으로 다르다는 건 잘 알겠다.
“근데 왜 왔어요?”
“아, 우리 형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해서 왔죠.”
“잘 살고 있는데요?”
“그쪽도 친하다면 알겠지만 형이 좀 손해 보고 사는 타입이잖아요.”
성격은 좀 안 좋아 보이지만, 그래도 형 생각은 많이 하는 편인가 싶었는데.
“그런데 일진일지도 모르는 사람이랑 같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하니까 걱정이 너무 돼서…….”
“야.”
“네?”
“너 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