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s Strategy to Conquer the Entertainment Industry RAW novel - Chapter (271)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271화
조금 전, 숙소로 들어가는 길.
무슨 우연이었는지 온라온은 지난번의 1층 주민을 마주쳤다.
우연. 그건 정말 우연이었을까?
그는 반요한이 잃어버렸다던 반지를 제 손으로 돌려준 뒤부터 내내 마음 한구석에서 걸리던 것을 묻기로 했다.
– 혹시 이 반지, 정말 집 앞에 떨어져 있던 거 맞아요?
아무리 운이 좋다는 녀석이라고는 해도 잃어버리는 타이밍을 비롯한 일련의 사건에 그렇게까지 행운이 따르는 게 가능한가?
마음에 걸리던 것을 그냥 덮어두고 넘기기에는, 서로를 너무 잘 알았다.
온라온의 시선을 받은 주민은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 그게 사실은…….
* * *
“다 들었어.”
“…….”
“미안해.”
온라온이 다시 사과를 입에 담았다.
“그러니까 그 미안하다는 말을 네가 지금 왜…….”
“이런 일 꾸민 건 사람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 취급하는 게 얼마나 기분 나쁜지 너도 한번 알아보라는 뜻 아니었냐?”
반요한이 잃어버렸다던 반지에 얽힌 모든 상황을 이해한 다음에는 수치심과 분노로 화끈거리는 뺨을 진정시키느라 고생했다.
내가 쪼르르 반지 들고 달려오는 꼴이 저 새끼 눈에는 얼마나 웃겼을까.
“온라온.”
“배려심? 인품?”
1층 주민에게 넘겨받은 반지를 기세등등하게 내밀고, 그것을 반요한이 유쾌하게 받아 들던 그 날의 상황을 떠올리니 자신에 대한 모멸감이 머리끝까지 치솟을 뿐이었다.
“형한테는 그게 좋은 배려였고 훌륭한 인품이었어?”
“…….”
반요한의 머릿속에 ‘알았구나’ 하는 생각과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그 사람이랑 하하 호호 웃고 떠들면서 그런 웃기지도 않는 판이나 짤 시간에 그냥 나한테 와서 얘기하면, 안 됐던 거냐고.”
단어를 짓씹듯이 발음하는 말이 이어질수록 온라온은 가슴 어름에 분기가 차올랐다.
분노 자체는 반요한을 향한 것도 있지만, 자신을 향한 것이 조금 더 컸다.
“내가 지금 후회하고 잘못했고 그러지 말걸 그랬다고 생각하는 일은 그 자리에 형을 데려갔다는 거야. 그건 진짜 미안해.”
그 일의 원인을 제공한 것은 자신이었다.
일이 펑크가 나든 말든 반요한을 데려가서는 안 됐다.
자신이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책임을 너는 믿을 수 있다는 이유로 의사도 묻지 않고 남에게 지우지는 말았어야 했다.
“근데 내가 자존심만 있는 옹졸하고 못난 사람이라. 먼저 잘못한 사람은 나란 거 아는데도 그게 형이 다 꾸며낸 일인 거 알고 나니까 되게…….”
가라앉은 얼굴로 할 말을 찾던 온라온이 이내 조용히 문장을 완성했다.
“허탈하다.”
반요한에게는 사람 마음 하나 바꾸는 게 얼마나 쉬워 보이고, 또 실제로도 쉬운 일이었을까.
나한테는 그게 다른 무엇보다도 어렵고 힘들며 또 바라마지않는 일인데.
지난 일 이후로 문제가 생기면 다른 사람에게 기대도 괜찮을지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던 시간이 문득, 아무런 의미 없게 느껴졌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팀이 아닌 개인으로서 어떤 비현실적인 문제에 당면한다면, 다른 사람 도움받을 생각 같은 건 하지 말고 알아서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해결할 방법을 찾는 게 맞을지도 모르지.
“…….”
잠잠히 듣던 반요한이 입을 연 것은 그때였다.
“이제 화는 다 낸 거니?”
“형은 지금 이게 화내는 걸로 보여?”
“다행이다.”
“뭐?”
“이제 화내봐.”
“미친 새끼가…….”
그 즉시 비속어 필터링 페널티가 걸렸으므로 온라온은 어쩌면 앞으로 더 격해질 수 있는 갈등 속에서 더 심한 욕을 퍼부을 기회를 허망이 날려 버렸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욕을 하지 않고서는 못 배길 만큼 어처구니없는 말이었다.
화내보라니?
기껏 있는 대로 성질 죽여가면서 참고 있는데 거기에 기름을 붓는 격의 말이었다.
날 선 욕을 들은 사람답지 않게 반요한은 차분했다.
“이건 네가 화낼 만한 일이잖아.”
말의 내용보다는 평소처럼 부드럽게 웃지도 않는 반요한의 태도 자체가 이상했다.
“지금 무슨….”
마치 네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해 보겠다는 듯한 태도에 도리어 열이 조금 식은 온라온은 눈살을 찡그렸다.
너를 이해한다는 것과 이제부터 이해하려 노력하겠다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적어도 온라온에게는.
“얼른. 나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순수하게 네 입장에서만 말해보라고.”
“갑자기 왜 이러는데?”
“약속해. 이제부터 네가 얼마나 이기적으로 굴든 너 안 싫어할게. 저번처럼 함부로 말하지도 않을 거고.”
그러니까 이 새끼는 지금, 무슨 개 같은 소리를 하는 거야?
* * *
그로부터 1시간.
슬슬 아파져 오는 발을 떨어뜨리는 일 한번 없이 제자리에 못 박힌 듯 꼿꼿이 선 두 사람의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틈을 침묵만이 채우고 있었다.
처음의 소란을 느낀 몇몇 직원들이 “뭐야, 뭐야…”나 “애들 싸워?” 같은 말을 중얼거리며 사무실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못 본 척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거나.
막 들어오는 사람도 두 사람 눈치 슥 보고는 분위기를 파악해 조용히 지나가 회사 입구 근처는 더할 나위 없이 적막했다.
반요한과 온라온에 대해 알 만큼 아는 직원들도 두 사람의 마찰에는 대체로 ‘터질 게 터졌구나’ 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래도 일찍 터진 게 그나마 다행이다.”
“맞아요. 서로 감정 더 쌓였으면 나중에 가서 푸는 건 더 힘들어졌을 테니까.”
“둘이 이제 알고 지낸 지 1년 반쯤 됐나요?”
“네, 네. 딱 그 정도일걸요.”
그때까지만 해도 온라온과 반요한이 정말로 틀어질 것을 크게 걱정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저러다 흥분해서 저번 주에 컴백한 거 까먹고 얼굴 때리는 일은 없어야 하는데.’
……정도의 걱정이 그나마 심각한 축에 들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다시 30분이 지나고 나서도 대화가 재개될 기미가 없자.
둘의 갈등에는 신경 쓰지 않고 당장 쌓여 있는 제 할 일이나 바쁘게 하던 사무실 내에서도 걱정하는 목소리가 점차 커졌다.
“쟤네 아직도 아무 얘기도 안 하고 있어요?”
“네. 계속 저러면 다리 엄청 아플 텐데…….”
“진짜 어떻게 되는 거 아닌가, 신경 쓰이기는 하네요.”
“저러고 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시원하게 주먹다짐이라도 하는 게 나을 것 같지 않나요. 가서 한번 싸워보라 할까.”
“방금 뇌에 쌈박질밖에 안 든 발언 누굽니까.”
“농담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근데 라온이는 저러다 다음 날 몸살 날 수도 있겠다…….”
“애 큰일 겪은 지 얼마 안 됐는데… 지금은 요한이가 좀 형답게 봐주지.”
“둘이 왜 저러는지 우리가 확실히는 모르는 일인데, 괜히 말 얹진 말죠.”
“그래도 어떻게 상현 씨가 지금이라도 가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래도 상현 씨 말은 좀 들을 테니까…….”
“쉿….”
자리에서 일어나 살짝 열린 문틈을 내다보며 바깥 분위기를 파악하던 직원이 속삭였다.
“애들 지금 뭐라고 하는 것 같아요.”
* * *
말하란다고 진짜 말하고, 화내란다고 정말 화낼 만큼 자존심이 없지 않았던 탓에 온라온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비속어 필터링이 풀리고도 남는 시간이 흘러가는 내내 자세를 한 번도 안 바꾸고 제자리에 오래 서 있던지라 종아리와 발목, 발 등 허리 아래가 다 지끈지끈 아파져 왔다.
숙소에서 챙겨온 짐이 든 가방과 직원들 주려고 사 온 간식까지 한 보따리 들고 있는 온라온은 특히나 더 죽을 맛이었다.
픽하트 때부터 보아온 온라온의 체력을 익히 아는 반요한이 흘러간 시간이 생각보다 길다는 사실을 뒤늦게 자각했다.
아무래도 싸울 때는 시간이 보통 때의 곱절로 빨리 흐르는 것 같았다.
“다리 아프지.”
“아니.”
“그럼 짐이라도 내려놔. 무거워 보인다.”
“괜찮아.”
“……여기서 우리가 계속 서 있는 것도 다른 사람한테 민폐야. 자리 옮기자.”
그 말에는 온라온도 순순히 따랐다.
안 그래도 오가는 직원들이 자기들 눈치 쓱 보고 지나가는 거나, 사무실 안에 있을 직원들이 내내 마음에 걸렸던 참이었다.
회사 내에서 사람 눈에 안 띄는 곳을 찾던 두 사람은 연습실로 들어갔다.
다른 멤버들은 임시 숙소에 있어 연습실은 휑했지만, 바깥에서 안쪽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보컬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상대방 얼굴을 포함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으로부터 오는 편안함을 느낀 온라온은 이제야 예전에 보컬 연습실에 틀어박혀 울던 견성하가 불을 켜지 말라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 불을 켤 생각이 없는 것은 온라온만이 아니었다.
반요한도 굳이 불을 밝히지 않고 어두컴컴한 보컬 연습실의 한쪽 벽면에 자리를 잡았다.
“그냥 앉아서 얘기하자. 나 다리 아파.”
그러고는 온라온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편하게 기대앉았다.
저리던 다리를 마음껏 쭉 펴고 가볍게 두드린 반요한은 온라온이 여전히 불편하게 다리를 구긴 자세로 앉은 것을 알아차렸다.
“너도 다리 펴. 나만 펴니까 좀 그래.”
평소에 다른 사람이 이러든 말든 신경도 안 쓰던 반요한이 저렇게 말하니 온라온은 다소 어이가 없었지만.
안 하던 짓을 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무언가의 노력을 하고 있음을 의미했다.
반요한이 “아니면 나랑 닿는 것도 싫니?” 같은 말을 하며 자기 한쪽 다리를 가볍게 잡아당겨 억지로 펴게 하자, 온라온도 마지못해 다른 쪽 다리를 폈다.
좁은 보컬 연습실에서 쭉 편 다리는 어떻게든 닿을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보이는 것은 거의 없었지만, 조금 전처럼 간격을 벌린 채 멀거니 서 있는 게 아니라 이렇게 가까이 마주 앉으니 그제야 대화할 분위기에 가까워진 것 같았다.
“너 나랑 얘기할 마음이 있기는 해?”
“대뜸 화내라고 하면 대체 누가 화내는데? 그게 형이 생각하는 대화야?”
……아마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