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s Strategy to Conquer the Entertainment Industry RAW novel - Chapter (321)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321화
제출용으로 임시로 붙여둔 가제는 가사도 제대로 붙지 않아 의미도 성의도 찾아볼 수 없는 “올리올리올리셩 올리리올리” 따위의 시답잖은 문장들로 가이드를 붙인 곡의 내용을 그야말로 완벽하게 반영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 곡이 흔히 알려진 이름이 비슷한 알리오 올리오라는 요리라든지, 그런 음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요컨대, 제목이 내포하는 것은 곡의 구성이었다.
그날 작곡가 리상이 내게 해주었던 조언은 이러했다.
– 네 머릿속에 있는 그것들, 다 때려넣어.
사실 조언이라고 봐도 되나 싶을 만큼 단순무식한 이야기였다.
– 네? 그건 좀…….
– 왜 안 되는데? 음악에 정해진 길은 없단다, 아가야.
– 아니, 그 아가라는 소리 좀 그만하시면 안 됩니까?
– 왜 그런 표정이야? 담배 심부름도 못 하는 아가가 아가가 아니면 뭐냐.
– 거기에는 지대한 사정이 있거든요.
– 지대는 무슨. 웃기고 자빠졌네. 이 선배님보다 한참 늦게 태어난 거 말고 무슨 사정이 더 있으려고. 아무튼 그래서, 왜 다 때려 넣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 아시잖아요. 그랬다가는 말 그대로 하나의 곡이 아니라 아무 연관도 없는 부분을 억지로 기워놓을 뿐인, 잡스러운 쪼가리가 될 테니까요. 잡탕처럼요.
– 그래. 그 잡탕이 원래 제일 맛있는 건데 사람들이 참 몰라준다니까. 맛있는 거 더하기 맛있는 거는 존나 맛있는 거 아니겠냐?
처음에는 그래도 존댓말을 쓰다가 내가 본격적으로 조언을 구하자 대번에 말을 편히 놓아버린 리상은 강지우가 들었으면 펄쩍 뛰며 고개를 가로저었을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다행히 당시 나를 괴롭게 하던 문제는 요리가 아닌 음악이어서 리상의 말은 건져 먹을 영양가가 아예 없는 헛소리는 아니었다.
– 네 머릿속에 콱 박혀 있는 몹쓸 짜임이든 형식이든 뭐든 다 무시해 버리라고. 애초에 너 그런 완성도나 짜임새 같은 걸로 정면 승부해서 가을이한테 이길 수 있어?
– 에이. 못 이기죠. 제가 어떻게 반가을 대표님을.
– 그렇지? 단순하게 생각해. 음악은 듣기 좋으면 그만이야. 그걸로는 너도 한번 가을이한테 승부를 걸어볼 만하지.
– 저를 너무 과대평가 하시는 것 같은데요.
– 천재는 천재를 알아보는 법.
– 일단 그렇다 치고……. 선배님, 설마 아까 그 나오는 대로 대충 던지신 말을 조언이랍시고 처음에 말씀하셨던 작곡 노예라는 대단히 위험한 발언을 추후에 제게 강요하실 생각은 아니시겠죠?
– ……아니, 사람을 뭘로 보고.
– 이상한 사람이요.
아무튼 그래서 그렇게 했다.
덕분에 완성된 캐럴은 간주 등도 생략하면서 짧고 단순하게 끝나는 것을 선호하는 최근의 대중가요 트렌드에 맞지 않게 4분이 훨씬 넘어가는 길이가 되었다.
리상의 조언에 따라 내 머릿속에 있는 음들을 곡이 되도록 엮으면서도.
누구보다 잘 아는 오르카를 비롯해 우리 회사 아티스트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진 목소리의 매력을 생각해서 파트를 충분히 분배하다 보니 곡 일부를 쳐내거나 압축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정말 잡탕 같은 곡이 됐으면 어떡하냐고?
어떡하긴.
못 뽑히는 거지.
후보 중에는 반가을 대표가 냈을 보석 같은 곡이 있을 테니까 걱정할 필요 하등 없다.
그리고 드디어 단체 톡방에 자체 투표 결과가 발표되었다.
반가을 대표님 [2018 시드 크리스마스 캐럴 자체 투표 결과 발표합니다.
2. Wishes – 9표
6. Olio(가제) – 3표
그 외 득표한 곡 없음
따라서 2번 곡 ‘Wishes’로 결정되었습니다. 이후 일정은 매니저 통해 전달하겠습니다.]
반가을 대표님 [올해도 소중한 한 표 감사합니다 직원 일동 여러분. (웃는 이모티콘)]
장고 선배님 [ㅡㅡ]
반가을 대표님 [어허 장고씨 파트 압수]
장고 선배님 [아잉]
반가을 대표가 저런 말을 하고 장고 선배가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걸 보니 역시, 듣자마자 좋다는 생각이 들었던 2번 곡이 반가을 대표의 곡이었나 보다.
그나마 명확히 갈린 표 일부라도 내가 받았다는 사실을 좋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결아, 라온아.”
“대표님.”
나와 서문결을 찾아온 반가을 대표가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을 고르는 게 느껴져 내가 선수를 쳤다.
“저희 실망 안 했습니다.”
“저도요.”
“그래?”
“네. 저부터가 대표님 곡에 투표했는데요.”
그제야 반가을 대표는 조금 펴진 얼굴로 말했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도전하라고 말한 게 나기는 하지만…… 막상 결과가 기대한 대로 안 나오면 실망할 수밖에 없으니까 혹시 우울해하지 않을지 걱정했는데.”
“아니에요. 저희 우울해요!”
“어?”
“우울하고 슬프고 마음이 아프니까 고기 사주세요!”
내 진심 어린 말을 농담이라고 생각했는지 완전히 풀어진 분위기 속에서 “그럴까?” 하고 고개를 기울인 반가을 대표가 살짝 웃으며 우리를 칭찬했다.
“안 그래도 스케줄 때문에 바빴을 텐데 두 사람 다 잘했어.”
“동정과 위로와 칭찬은 모쪼록 한우로…!”
“만약 나한테도 투표권이 있었으면 라온이 네 곡에 한 표 던졌을 거야.”
1차 심사까지는 직원들이 개입하지만, 최종 투표는 전적으로 아티스트들 손에만 맡겨진다.
아티스트가 아닌 반가을 대표는 그 투표에 개입할 수 없었다.
“대표님… 좋은 말씀 감사한데 말씀드렸다시피 그런 말보다는 한우가 조금 더… 제 우울함을 낫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결아, 네 곡도 좋았어.”
“감사합니다.”
“두 분 제 목소리가 혹시 안 들리시나요?”
“그런데 시드 캐럴보다는 오르카에 훨씬 더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멤버들 노래를 자주 듣다 보니 영향을 받았나 봐요.”
쳇.
저번 추석 때 반가을 대표 카드 받아다가 거나하게 먹었더니 이런 거 잘 안 아끼는 사람이 안타깝게 변해 버렸다.
근데 서문결이 낸 곡은 어떻게 된 거지.
아예 1차 심사도 못 통과한 건지, 아니면 2차 투표 후보에는 있었는데 표를 받지 못한 건지.
아무리 둔한 서문결이어도 이런 걸 함부로 물어보기는 조금 그랬다.
“그렇지? 그래서 나중에 너희 겨울 앨범 낼 때, 그때 손봐서 타이틀로 내든지 다른 기회에 수록곡으로 넣든지 하면 좋을 것 같아서 보라 씨랑 상의해서 따로 빼뒀어.”
아예 후보에 없던 쪽이었군.
잠시 생각하던 서문결은 사욕 없이 차분하게 답했다.
“수록곡으로 넣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저희 타이틀 생각은 안 하고 만든 곡이라.”
“그래. 그렇게 하자. 고생했다.”
그러고 나서 반가을 대표의 시선이 다시 내 쪽으로 향했다.
“‘Olio’는 리상 오빠한테 조언 듣고 쓴 곡이지?”
“네.”
“그게 네 곡이었어?”
서문결이 조금 놀란 눈으로 말했다.
“응.”
“나 그 곡에 투표했어.”
“진짜? 고마워.”
곡이 신선한 게 딱 서문결 취향일 거라고 생각하기는 했다.
“이대로 버리기에는 아깝다는 말들이 많았어.”
“감사합니다.”
어차피 뽑힌 것은 반가을 대표의 곡이었고 세상에 나갈 것도 그녀의 곡이었으므로 나는 단순한 위로에 가까울 말에 별 의미를 두지 않고 답했다.
“진지하게 들어봐. 꼭 한 곡만 발매하라는 법은 없잖니.”
하지만 이러면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잠시 생각한 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면 일 년에 한 번 발표하는 시드 캐럴만의 화제성이 떨어질 텐데요. 형평성 문제도 있고요. 이제까지는 한 번도 안 그랬다가 특정 가수, 그것도 아이돌을 밀어주기 위해 대표님이 억지로 월권을 사용한 그림이 되니까 내부에서도 외부에서도 그다지 좋은 말은 안 나올 것 같고…….”
솔직히 순간 혹하기는 했지만.
여러 가지를 고려해 봤을 때 차라리 서문결처럼 우리 수록곡으로 써먹는 게 나을 것이다.
“그래서 네 곡은 선공개 곡으로 공개할 생각이야. 재미있어서 사람들 흥미도 끌 것 같고.”
내가 손수 끓인 잡탕이 어그로 잘 끌 것 같다는 소리다.
“그게… 될까요?”
보통 캐럴은 대목을 놓치지 않기 위해 12월 초, 늦어도 12월 중순에는 발매하니까 우리에게는 약 한 달이라는 기간이 남은 셈이다.
그러니 선공개를 한다고 치면 부족한 곳 많은 ‘Olio’를 완성하고, 가사를 붙이고, 완성한 곡을 다른 가수에게 전달하고, 녹음과 뮤직비디오 촬영을 하는 등 이 모든 작업이 늦어도 지금으로부터 보름 안에는 이루어져야 한다는 건데.
“이런 말씀 드려도 될지 모르겠는데…… 자신 있으세요?”
급박한 일정만 걱정하는 건 아니다.
선공개.
얼핏 들으면 괜찮은 홍보 전략 같지만 나중에 본 앨범이 발표돼도 먼저 듣고 있던 선공개 곡을 타이틀이라고 오인하고 계속 듣다 보니 화력이 분산되는 경우가 많았다.
반가을 대표의 곡이 좋은 것과는 별개로 정작 주목받아야 하는 곡의 성적이 잘 안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말 비열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너희 팬들이 대단하더라. 너희 이름이 올라있는 이상 차트인은 무조건 가능하지 않겠니. 그거면 됐지 뭐.”
오묘한 나와 서문결 표정을 본 반가을 대표가 가볍게 웃으며 덧붙였다.
“이건 농담이고. 나도 한 번쯤 망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 꽤 해.”
단순히 재수 없는 자랑이 아니라, 얼핏 씁쓸하게 들리기도 하는 소리였다.
하긴. 캐럴 명가다 뭐다 하면서 매년 난리인데 얼마나 부담이 크겠는가.
차라리 망해서라도 내려놓고 싶다는 마음이 아예 없지는 않을 것이다.
언제 쓴웃음을 지었냐는 듯, 평소처럼 차분한 표정이 된 반가을 대표가 말했다.
“그럼 허락으로 알고 준비할게. 어차피 다른 가수들 동의만 구하면 되는 일이고 그 부분은 문제없어. 너 비는 시간 상현 씨 통해서 전해 주면 바로 같이 작업해서 마무리 짓자.”
나는 고민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기회였다.
* * *
그러나 내가 지금 한가하게 남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곧 밝혀졌다.
대망의 연말 시상식 시즌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