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s Strategy to Conquer the Entertainment Industry RAW novel - Chapter (358)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358화
뜨거운 여름을 슬슬 보내줘야 하는 9월이었지만 세계적으로 난리인 이상기후 때문인지 원래 이런 땅인 건지, 외지인인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이곳 뉴욕은 아직 가을이라기보다는 늦여름에 가까운 시간에 멈추어 있는 듯 해가 구름 틈에 숨어있는데도 여전히 후덥지근하기 짝이 없었다.
그나마 이곳 강변은 때때로 머리카락을 휩쓸고 지나가는 강바람이 쾌활하게 불어와 도심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선선한 느낌이 드는 편이었다.
앞에는 고요한 소리를 내며 흐르는 허드슨강이 있을 뿐만 아니라 밤사이 내린 빗물이 고여 진 웅덩이가 곳곳에 남아있는 만큼 사방에서 묘한 물 내음이 진동하는 것도 크게 이상하지는 않은 일이다.
피부에 끈적하게 달라붙는 습기 덕분에 도망칠 수도 없을 만큼 현실적인 이국의 공기 속에서 이제는 낯익은 얼굴을 보자 가장 먼저 반갑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멤버들과 떨어져 있던 시간은 실상 하루도 채 안 되었으니 반가움까지 느끼는 것은 좀 과한 일인데 말이다.
“라온아?”
서문결이 다시 한번 나를 불렀다.
나는 그전에 들은 질문에 어떤 답을 해야 할지 고민스러워 괜히 고개를 돌려 뒤에 있을 이영민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영민은 내 뒤를 따라 택시에서 내리는 대신 문을 닫더니 창밖으로 고개만 쑥 내밀었다.
“그럼 저는 개인적인 일 좀 보고 오겠습니다.”
그러더니 이영민이 탄 택시는 정말로 나나 서문결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붕 출발해 버렸다.
황당함에 입이 절로 벌어졌다.
‘이 자식, 서문결한테 대뜸 던져놓고 가면 다냐?’
사실 익숙한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놀라울 만큼 안정감을 되찾을 수 있던 건 맞지만.
괜히 민망해 반가움을 얼굴에 드러내는 대신 표정을 예사롭게 정돈하고 물었다.
“혼자 여기서 뭐 해? 다른 형들은?”
“오늘은 그냥 각자 자유 시간 보내기로 했어.”
들어 보니 아직 아늑한 숙소에서 꾸물거리는 반요한 같은 사람도 있는 반면, 서문결처럼 아침나절부터 부지런하게 돌아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서문결도 혼자 나온 건 아니고 안전 문제로 우리 스태프 중 한 명과 함께 나왔는데, 그 형이 조금 전 급하게 온 신호 때문에 근처 화장실을 찾으러 가는 바람에 혼자 남게 되었다는 모양이었다.
“윤석 형 기다리는데 내가 왔다고?”
“응. 너는?”
“난…….”
“응.”
“그냥 아까 봤던 것처럼 영민이 형이 갑자기 찾아와서 여기 버리고 갔어.”
내가 농담이라도 하는 줄 알았는지 서문결의 가지런한 얼굴에 약간의 웃음기가 엷게 번졌다.
“이왕 만났으니까 같이 다닐래?”
“그러든지. 내가 가이드 확실하게 해줄게.”
사실 미국은 처음이라 저 강 이름이 허드슨강이라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그건 대충 시스템의 내비게이션을 믿기로 하고 허세를 부렸다.
[자신은 내비게이션 따위가 아니라며 고오급 인공지능 시스템이라며 돈 주고도 못 사는 자동화 시스템이 격하게 항의합니다.]‘내비게이션 해주면 내가 나중에 네 상사 등짝 한 대 쳐줌.’
래리 녀석의 등짝을 대가로 손쉽게 목적을 달성하고, 제일 가까운 화장실도 상당히 멀리 있어 자리에 없는 스태프가 돌아오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릴 것 같다는 추가 정보까지 획득한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형, 근데.”
이내 찾던 벤치를 발견하고 손으로 가리켜 보였다.
“다리 아프니까 서서 기다리지 말고 저기 가서 앉아서 기다리자. 왠지 윤석 형 오려면 오래 걸릴 것 같아.”
“그래.”
서문결도 순순히 나를 따라왔다.
한국에서는 이제 어딜 가든 사람들이 나를 알아볼 정도의 인지도가 쌓여서 마음 편하게 돌아다니기가 어려웠는데 외국은 그런 게 확연히 덜했다.
물론 내 매력은 만국에서 통용되는지라 시선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그 정도는 가볍게 넘길 수 있었다.
강가에 가까이 위치한 벤치에 나란히 앉은 다음에는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꺼내 예쁘고 잘생긴 표정을 지으며 셀카를 남기는 우리였다.
일종의 직업병이었다.
찍은 사진들을 확인하며 여전히 실물을 반도 못 담는 내 셀카 실력에 자괴감을 느낄 떄였다.
“무슨 일인지 안 말해 줄 거야?”
아직 마음에 두고 있었는지 서문결이 처음 봤을 때와 같은 질문을 했다.
“뭐를?”
“말하기 싫어?”
“음…….”
솔직히 ‘말하기 싫다’까지는 아니었다.
서문결이라면 이런 얘기에 섣부르게 반응하지 않고 잘 들어줄 것 같고, 어디 말하고 다니지도 않을 테니 고민 상담 상대로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어디 가로막히기라도 한 것처럼 이야기가 혀끝을 영 넘어오지 못하니, 굳이 말하자면 말하기 싫은 것보다는 말하지 못하는 것에 가깝지 않을까.
그러한 내 상태를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 역시 과한 투정처럼 느껴져 나는 그저 괜찮아 보이길 바라는 얼굴로 고개만 가로저었다.
“나는.”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서문결이 말문을 뗐다.
“어렸을 때는 지금보다 더 말수가 적었거든.”
“지금보다 적었다고?”
새로 알게 된 사실에 나는 정직하게 놀라워하는 반응을 내보였다.
‘그 정도로 말이 없는데 일상생활은 가능하냐.’
하지만 보통 때처럼 짓궂게 놀리기에는 너무나도 차분한 목소리로 서문결은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나 다른 중요한 말을 해야 할 때도 좀처럼 말하지 않고 입을 다물고 있어서, 아빠는 내 생각을 알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했어.”
아빠라면…….
“저번에 뵈었던 분?”
물으면서도 왜인지 아닐 것 같다는 막연한 예감이 들었다.
‘아빠’ 이야기를 하는 서문결의 분위기가 골치 아픈 서씨 집안 얘기를 할 때와 다르게 저 앞에 흐르는 강처럼 사뭇 평온했기 때문이다.
“아니. 친아빠.”
서문결이 먼저 자신의 친아버지 이야기를 꺼낸 것은 우리가 알고 지낸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의 단정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돌아가셨어.”
“아… 미안.”
내 사과에 서문결이 고개를 저었다.
“네가 왜 미안해해. 내가 먼저 한 얘기인데. 그리고 어렸을 때 일이라서 나는 잘 모른다고 해야 하나, 지금은 오래된 일처럼 느껴지니까 신경 쓰지 마.”
길게 말한 서문결은 괜한 이야기를 꺼낸 자기가 더 미안하다는 듯 눈썹 끝을 내리며 미소 비스름한 것을 지어 보였다.
“응. 그래서 어떤 방법을 찾아내셨는데?”
화제를 돌리기 위한 질문이었지만, 실제로 궁금하기도 했다.
서문결 아버지가 어떻게 이 표정 변화 없고 의사 표현 안 하는 아들의 생각을 알아냈는지 말이다.
서문결은 대답 대신 자기 손을 잡으라는 듯 내밀었다.
그새 해가 구름 사이로 나왔는지 서문결의 손에 끼인 은색 반지가 햇빛을 반사하며 반짝거렸다.
“왜?”
나는 의아해하면서도 마디가 도드라진 손을 잡았다.
“손을 이렇게 짧고 세게 한 번 잡으면 그렇다는 뜻이고. 약하면서 조금 오래 잡고 있으면 아니라는 뜻이야.”
서문결은 직접 힘을 주며 시범을 보여주었다.
“우리가 하던 얘기랑 무슨 상관인지 잘 모르겠기는 하는데, 일단 알았어.”
“이제 내가 물어보면 알려준 대로 대답해 봐.”
“응.”
“아침 먹었어?”
“어, 가 아니라.”
습관적으로 소리 내어 대답한 나는 서문결이 가르쳐 준 대로 손에 힘을 짧고 강하게 주어 대답했다.
“피곤하지는 않아?”
미국에서 얼마나 있었다고 영어식으로 답해야 하나 한국식으로 답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서문결 아버지가 유학파는 아니실 것 같아 그냥 안 피곤하다는 의미로 손에 앞선 것과 같은 정도의 힘을 주었다.
그러자 서문결이 잘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는 거야.”
나는 금세 뜨거워진 손을 빼며 모호하게 대답했다.
“알 것 같기도 하고.”
“복잡한 걸 물어볼 때는 스무고개처럼 여러 번 질문해야 하지만, 그 과정이 하나의 놀이처럼 느껴지고 아빠가 내 마음을 맞춰주는 재미도 있어서 어렸을 때는 그렇게 많이 했어. 말로 하나하나 설명하는 것보다는 손에 힘을 주거나 안 주는 게 훨씬 쉬우니까.”
“좋은 아버지셨네.”
“응. 그래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아빠나 나중에는 엄마한테 가서 손을 잡았어. 어렸을 때 얘기지만.”
어린 서문결이 그러는 걸 상상해 보니까 왠지 귀여운 것 같기도 하고.
“너도 해볼래?”
나는 잠시 갈등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다시 손을 잡았다.
“무슨 일 있어?”
세게 한 번.
“내가 알면 안 돼?”
약하게 지그시.
“가족이랑 관련된 일이야?”
“…….”
정곡을 향해 이번에는 망설였지만, 서문결 말대로 대답 대신 손에 힘을 주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부모님이 너를 힘들게 해?”
다시 세게 한 번.
그와 같은 방식으로 서문결은 서서히 내 고뇌에 가까워져 왔다.
초반에 가족 문제라는 것을 단번에 짐작하고 물어본 것처럼 서문결 스스로도 내 문제를 이전부터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던 것 같았는데 덕분에 고민거리에 다가가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결국 서문결은 숨겨왔던 재능을 발휘해.
‘그동안 나를 신경 안 써주던 부모님이 이제 와서 나한테 관심을 보이는데, 그렇다고 가족들한테 100% 과실이 있는 건 아니고,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났는지 나로서는 가족보다는 안면 있는 남처럼 느껴지는 와중에 내 얼굴을 볼 때마다 나와 비슷하게 힘들었을 그 사람들을 아예 미워하지는 못하겠고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라고 요약할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하게 내 사정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렇구나.”
‘미친, 이 인간 이 정도면 내 표정 하나하나 다 읽고 있는 거 아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