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s Strategy to Conquer the Entertainment Industry RAW novel - Chapter (414)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414화
늦은 오후.
솜사탕 같은 구름을 덮고 반쯤 레몬색으로 물든 하늘은 과연 명성대로 근사한 빛깔을 띠어서 자꾸만 고개를 들게 했다.
유난히도 평화로운 공기가 여유롭게 걷는 사람들을 부드럽게 에워쌌다.
데뷔한 뒤로 가까이할 일이 거의 없던 순전한 여유가 이곳에선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분위기 너무 좋다.”
“그러게. 낮잠 자기 딱 좋아 보인다.”
“어떻게 이런 날씨에 밖에 나가서 걸을 생각이 아니라 실내에서 잘 생각을 하는지 난 이해를 못 하겠다.”
“나도 너 이해 못 해.”
강지우와 반요한은 현지에 대기하고 있던 차에 타고 나서도 늘 그랬듯 티격태격했다.
‘기운들도 좋다.’
“너 왜 조용하냐?”
옆자리에 앉아 아기자기한 핸드폰 게임을 하던 견성하가 이 땅 어딘가에 맞닿아 있을 바다 속 해초처럼 흐느적대는 내게 말을 걸었다.
내가 할 말은 정해져 있었다.
“졸려.”
“눈 감고 자.”
“어.”
맏형 둘이 서문결까지 끼워서 너는 누구 편이냐며 아웅다웅하는 소리를 백색 소음 삼아 졸았다.
“다 왔다. 내려.”
“네에.”
리허설을 위해 도착한 공연장에서는 뜻밖의 반가운 얼굴들을 마주쳤다.
“와, 안녕하세요!”
“형들!”
바로 바인의 퇴출과 함께 새로 태어난 리프틴이었다.
그룹 자체가 위태롭게 흔들릴 만큼 큰 사건이 있었는데도 그걸 잘 극복하고 오히려 잘 먹고 잘 잤는지 얼굴빛이 좋아 보였다.
엄한 매니저 눈치를 보느라 쭈뼛거리던 이전과는 다르게 저쪽에서 먼저 선뜻 다가오니 우리도 편안한 마음으로 녀석들을 맞이했다.
“야, 오랜만이다.”
“여기서 볼 줄은 몰랐네. 리프틴도 내일 공연해?”
“그러니까. 어. 우리도 내일 해.”
오랜만에 만나기도 했고 그사이에 충격적인 교통사고까지 있었다 보니 서로 안부를 묻는 시간이 평소보다 길었다.
“이렇게 만나니까 좋다. 그동안 잘 지냈어?”
“당연하지. 너희는 몸 괜찮아?”
“완전 괜찮지. 쉬었더니 팔팔해.”
그런 뒤 조금 더 친한 사람들끼리 흩어져서 재잘재잘 떠들기 시작했다.
“성하는 요새도 쿠퀸덤 해?”
“어. 조금씩 꾸준히 하고 있어.”
“조금씩은 무슨. 쟤 얼마 전에도 왕창 과금했어.”
“너 길드 어디 들어가 있냐?”
그때였다.
애들과 시답잖은 얘기를 주고받는 나를 응시하던 고경윤이 잠시 뒤 내 옷을 잡아당겨 조용히 내 주의를 끌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다른 애들과 거리를 벌렸다.
“응. 왜?”
“선배, 안색이 좀 안 좋으신 것 같은데.”
“어?”
“괜찮으세요?”
고경윤의 물음에 별다른 메이크업을 하지 않은 얼굴을 괜히 한 번 손으로 쓸었다.
“한국 오래 떠나서 있어서 그런가? 기분이 약간 가라앉은 건 맞는데, 괜찮아. 티 많이 나냐?”
‘하지만 너는 미국인이잖아.’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본 고경윤이 찬찬히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냥 선배 분위기가 조금 걸려서 물어봤어요.”
“심한 건 아니야.”
약간 부담스러울 정도로 내 얼굴을 빤히 보던 고경윤이 입을 열었다.
“선배 혹시.”
“왜.”
“……아니에요. 힘드실 만도 하죠. 정신적인 것도 중요하니까 쉬면서 하세요.”
하려던 말을 주워 담는 것은 뭐든 얇은 철사로 토막 낸 찰흙처럼 엄격하게 구는 고경윤답지 않은 일이었지만 굳이 캐물을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래. 신경 써줘서 고맙다.”
소리 없이 웃은 고경윤이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그리고 바인 마약 건 알려 주신 거 다시 한번 고맙습니다. 선배 덕분에 재계약 전에 빠르고 확실하게 처리할 수 있었어요.”
“대체 몇 번을 고맙다고 하는 거야. 이제 그만 말해도 돼.”
“알았어요.”
“저번에도 보니까 일하는 솜씨가 끝내 주던데.”
“선배도 보내고 싶은 사람 있으면 말씀만 하세요. 사유만 타당하면 성심성의껏 도울게요.”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르겠는 말에 비슷한 톤으로 든든하다며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라온 형!”
누군가 내 뒤에서 나를 와락 들이받았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키가 좀 더 큰 것 같은 징샤오였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대기하는 동안 합동 비앱 고?”
“비앱?”
유창한 한국어로 훅 들어온 제안에 고경윤이 끼어들었다.
“그건 매니저 형한테 허락받아야 할 텐데.”
“받았어.”
“그럼 이건 제안이 아니라 통보네?”
고경윤의 뼈 있는 말에도 징샤오는 애교스럽게 히히 웃었다.
무심결에 저게 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 * *
오르카와 리프틴은 리허설 준비가 모두 끝났다는 말을 들을 때까지 온갖 단체 게임을 하며 지루한 대기 시간을 보냈다.
“아, 요한이 형 라이어 게임 너무 잘해!”
“온라온 밥 먹고 할리갈리만 했냐? 너무 빨라.”
“인간적으로 리츠랑 샤오보다 훈민정음 못한 사람은 반성문 쓰자.”
“왜 외국인 리스트에서 난 빼요?”
“왜겠냐고.”
“와, 고경윤 의사로 마피아 게임 찢었다. 화타야 화타.”
“온라온은 대체 안녕 클레오파트라 같은 이상한 게임을 어디서 알아 오는 거야?”
“지우 형 게임 너무 못해서 뭐라도 좀 이기게 해주고 싶어서…….”
“성하야. 옆돌기해. 최강 오렌지 가자.”
“하겠냐고요!”
“그런 말을 돌 준비 하면서 하는 건 좀 웃겼다.”
약 3시간 만에 방송이 종료되고, 오르카와 리프틴은 각 그룹의 스태프들에게 황당해하는 시선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놀았다.”
“오늘 재밌었어. 리허설 잘하고 내일 보자.”
“어. 또 봐!”
리프틴과 헤어진 뒤 강지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진짜 웃긴 애들이야.”
“저쪽에서도 형들한테 똑같은 말 하고 있을 거라는 데 견성하 게임 계정 걸 수 있어.”
“형들? 은근슬쩍 넌 빠진다?”
“야, 왜 내 계정을 거는데?”
그새를 못 참고 다시 와글와글해지려는 멤버들을 곽상현이 말렸다.
“얘들아, 기운 그만 빼고 이제 리허설하러 가자. 바로 다음이 우리야.”
“네엡.”
게임으로 끌어올린 기세를 그대로 유지해 첫 번째 리허설을 순조롭게 마친 멤버들은 대기실로 돌아갔다.
“나 손 씻게 화장실 좀. 바로 앞이니까 혼자 갔다 올게.”
“그럼 나도 같이 가자.”
강지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래.”
빠르게 손만 씻고 나온 온라온은 강지우를 기다렸다.
한 칸뿐인 화장실이다 보니 줄 서 있는 사람이 꽤 있어 강지우가 나오려면 오래 걸릴 듯싶었다
“[이봐.]”
핸드폰을 꺼내 연락을 확인하려는데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던 서양인 남자가 그에게 접근했다.
“[안녕. 오르카의 라온, 맞지?]”
“[맞는데. 누구세요?]”
남자가 명함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온라온은 그것을 받아 눈으로 훑었다.
[굳웰 레코드]처음 들어보는 곳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음반사 직원인 듯싶었다.
‘근데 이걸 왜 매니저 형이 아니라 나한테 주지.’
의아한 시선이 남자를 향했다.
“[사업 얘기라면 저희 매니저와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우리 회사 높은 분이 네게 관심이 있어.]”
“[……뭐?]”
“[모르는 척하지 마. 그런 거 있잖아. 한국에서 팝 가수를 하면 모르지 않을 텐데?]”
친근한 말투로 위장한 모욕적이고 인종차별적인 폭언이 온라온의 머리를 후려쳤다.
아름다운 레몬빛 하늘도 왁자지껄한 웃음소리도 한순간에 멀어졌다.
“[오르카가 미국에서의 파트너를 찾지 못해 곤란하다고 들었어. 좋은 조건으로 맞춰줄 테니까 생각 있으면 내일까지 명함에 있는 번호로 연락해.]”
오래전 자신과 사회의 연결고리를 난폭하게 파괴했던 충격이 다시금 전신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역한 토기가 올라왔지만, 적어도 이 자리에서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발, 국적 불문하고 웬 × 같은 새끼들이 인생을 꼬박꼬박 고달프게 해….”
“시… 시바?”
“[어, 엿이나 처먹어 개새끼야.]”
다른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게 낮게 내리 깐 목소리로 욕설을 내뱉은 온라온은 남자가 보는 눈앞에서 명함을 갈기갈기 찢었다.
손에 남은 종이 쪼가리들을 상대의 얼굴에 향해 매섭게 내던지자 지나던 사람이 무슨 일인가 싶어 흘긋흘긋 보았다.
“꺼져.”
한국어로 나온 말을 용케 알아들은 남자는 화를 삭이지 못해 씨근대는 온라온을 노려보더니 상황이 제게 불리한 것을 느끼고 자리를 피했다.
남자가 사라지자 분노한 나머지 눈가가 붉어진 온라온에게 행사 스태프 몇 명이 다가왔다.
“[저기, 무슨 일 있어요?]”
“[경찰 부를까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괜찮아요. 곧 일행이 올 거예요.]”
“[안 좋은 말을 들은 것 같은데 이거라도 마시고 잊어요. 새 거예요.]”
“[감사합니다.]”
차가운 생수를 억지로 받아 든 온라온은 사람들의 불필요한 관심을 차단하기 위해 다시 핸드폰을 꺼내 들어 작은 액정에 시선을 처박았다.
“×발…….”
그림자처럼 쫓아오는 것 같던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해 폐가 터질 것 같을 때까지 달리던 새벽의 서늘한 공기가 어깨 위로 무겁게 쏟아졌다.
그런 일이 있었다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두려움에, 수치심에, 분노에 떨어야 했던 오랜 밤들이 아무리 벗어나려고 애써도 저 아래로 끌어내리는 늪처럼 진득하게 되살아났다.
-회사를 가족처럼 생각하라고. 가족을 위해 이런 것도 못 해?
가족.
이제는 진짜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사람들.
나 때문에 헥사곤 스테이지 우승을 놓치는 바람에 우리 멤버들도 상현이 형이나 회사 사람들도 그렇게 고생하는데.
-너 지금 이렇게 가면 다신 이쪽에는 발 못 붙일 줄 알아.
혹시 방금 실수한 거 아닐까.
알고 보니 방금 날 이쪽 업계에서 알아주는 거물이라서, 앞으로 미국 데뷔 같은 건 꿈도 못 꾸게 되면 어떡하지.
진탕된 머릿속에서 비합리적이고 온당하지 못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때였다.
“나 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든 온라온의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식은땀을 발견한 강지우가 덜컥 놀란 얼굴을 했다.
“막내야, 무슨 일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