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s Strategy to Conquer the Entertainment Industry RAW novel - Chapter (413)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413화
뜻밖의 말에 온라온이 눈을 둥글게 떴다.
“제가요?”
“네. 제가 사실 이런 곳에서 일하거든요.”
반정원이 명함 한 장을 내밀었다.
두 손으로 받아서 든 명함에는 반정원의 영어 이름과 함께 온라온도 몇 번 들어본 음반사 이름이 적혀 있었다.
[스페이스 레코드]“어… 제가 명함이 없어서.”
“괜찮아요.”
산뜻하게 웃은 반정원이 물었다.
“혹시 어떤 회사인지 아세요?”
“네. 들어봤어요.”
스페이스 레코드는 전 세계 최대 규모의 레코드 레이블 그룹인 얼리얼 뮤직 그룹에 속한 자회사 중 하나로 곽상현이 만나러 간 음반사 목록에도 있었다.
“오가는 얘기를 들은 바로는 라온 씨네 회사에서 제시하는 조건이 꽤 세던데요.”
“아, 그래요?”
“오르카라는 그룹에는 확실히 긍정적인 가능성이 잠재해 있지만, 당장 메이저 레이블들에서 그 조건을 받아주기는 어려울 거예요. 시드 엔터테인먼트는 해외 음악 업계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소규모의 회사고, 이건 엄연히 사업이니까요.”
“그런가요.”
온라온은 반정원의 냉정한 분석을 잠자코 들었다.
무례의 소지가 있는 분석이었지만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까닭이 따로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제가 이래 봬도 좋은 데모곡을 선별하는 감각을 회사에서 꽤 인정받고 있어서요. 그 곡을 듣자마자 느낌이 강하게 왔어요. 데모곡의 퀄리티를 유지하면서 전체 곡이 완성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예요.”
“그런 말씀을 저한테 하시는 이유는…….”
“라온 씨가 이 곡을 온전히 완성만 해준다면 제 보스에게 시드에서 내민 조건을 수락해 달라고 개인적으로 밀어붙여 볼게요.”
반정원의 목소리에는 당연하다는 듯한 확신이 가득했다.
그냥 하는 허언은 아닌 것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만큼 큰 회사에서 자리를 잡기에는 아직 어려 보이는데.’
미심쩍어하는 순간 반정원과 눈이 마주쳤다.
반요한의 친척이자 저렇게 영혜한 눈을 한 반정원 또한 범재는 아닐 것이다.
사소한 일에 대해서는 금세 이해를 마친 온라온이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하지만 이건 그 녀석이 정원 씨에게 개인적으로 보낸 곡이잖아요.”
“뭐 어때요. 그런 이유로 저 혼자만 듣기에는 아까운 곡이라는 생각밖에 안 드는걸요.”
그건 그렇다.
온라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이 곡을 완성해서 정원 씨한테 알리기 전에 다른 음반사와 계약하게 된다면요?”
“그럼 뭐… 어쩔 수 없고요. 인생은 타이밍 아니겠어요.”
“네. 타이밍.”
“사업적으로 욕심이 안 나는 건 아니에요. 이 곡이 언제든 세상에 나오기만 한다면 분명 성공할 거라고 믿어요. 다만… 다른 무엇보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 애를 배척하던 세상에 대고 내 친구가 이렇게 잘났다고, 있는 힘껏 자랑하고 싶어요.”
다감한 우정이 선명하게 묻어나는 반정원의 말을 들은 온라온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곳에도 널 이렇게나 생각해 주는 사람이 있었다.
어쩌면 내가 떠나온 세계에서도…….
“정원 씨를 위해 그 애가 쓴 곡인데 제 업적이 되어도 괜찮겠어요?”
반정원의 입이 시원스러운 호를 그렸다.
“나라면 그런 건 물어보지도 않고 냉큼 받아먹었을 텐데, 라온 씨는 정정당당하네요.”
“꼭 그렇진 않아요.”
“문제없다고 봐요. 라온 씨가 하제고 하제가 라온 씨인걸요. 완성해 준다면 반절 이상의 지분은 라온 씨에게 있는 거고 그 애도 싫어하지 않을 거예요.”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고마워요. 사실 이대로 두고 싶지 않았거든요.”
“왜요?”
입술을 잘근 깨문 반정원이 답했다.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꼭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 같아요.”
의도적으로 말을 끊은 반정원은 흘러내린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표정을 감추었다.
입매를 끌어올려 표정을 가다듬은 반정원이 부탁했다.
반정원이 한숨을 쉬는 것처럼 웃는 모습을 온라온은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 애는 내게 미안해할 필요가 없는데도요. 거창한 얘기는 아니고, 누구나 자기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잖아요. 같은 선택의 갈림길에 섰을 때 나도 똑같이 했을 거예요. 그 애는 그냥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간 것뿐인데. 이 노래 속에서 내내 울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에 안 들어요.”
이 곡이 본래 들어야 할 사람에게는 그렇게 들렸구나.
불현듯 찾아온 깨달음에 미완성이던 곡이 머릿속에서 재구성되고 있었다.
“그러니까 라온 씨가 그 애를 웃게 해주세요.”
반복 재생을 해두었는지 여전히 ‘Alien friend’가 흘러나오는 반정원의 휴대폰을 흘긋 본 온라온이 입술을 달싹였다.
‘내가 이 곡을 완성해도 은하를 몇 개나 건너뛰어도 닿지 않는 곳에 있는 그 녀석에게는 닿지 않을 텐데….’
미처 소리가 되지 못한 그 말을 들은 것처럼 반정원이 눈꼬리를 구부리며 웃었다.
“그래도요.”
“…….”
“여기엔 저도 있고 라온 씨도 있어요.”
하필이라고 해야 하나.
떠난 녀석에게 가장 중요하게 남았을 두 사람이다.
온라온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기다릴게요.”
책임감을 넘어 사명감마저 품게 되어 더욱 무거워진 마음이 싫지 않은 것은 어째서인가.
* * *
여러 가지 수확이 있던 반정원과의 대담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는 비가 내렸다.
빈손으로 와서 어떡하나 했는데 다행히 매니저 형이 챙겨온 우산을 쓰고 근처 가게에서 우산 두 개를 더 사와 젖지 않고 호텔로 돌아올 수 있었다.
비는 눅눅하고 질척하기보다는 차라리 시원하게 쏟아져 속이 탁 트이는 것 같았다.
“기분 좋아 보인다? 어땠어?”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반요한이 쪼르르 다가와 관심을 보였다.
반질반질한 녀석의 얼굴 위에 조금 전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던 반정원의 차분한 낯이 어쩔 수 없이 겹쳐 보여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형은…… 아니다.”
“왜… 왜 기분이 나쁘지?”
난데없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은 반요한이 억울해했다.
“쟤가 요한이 형을 굉장히 한심하게 보는 게 저한테도 느껴졌어요. 정상이에요.”
“뭐가 정상이라는 건데? 기분 나쁜 게 정상이라는 거야, 한심하게 보는 게 정상이라는 거야?”
“노코멘트할게요.”
견성하가 반요한을 두 번 죽였다.
하지만 반요한은 두 번 죽이면 세 번 되살아나는 남자였다.
여러 감정이 남아 일렁거리는 내 낯에서 무언가를 읽어낸 건지 반요한은 흥미를 거두지 않고 곁에서 알짱거렸다.
나는 일부러 화제를 돌렸다.
“상현이 형은? 이따가 같이 나가서 저녁 먹기로 했는데.”
“미팅 갔어. 음반사들이랑 얘기가 잘 안 풀려서 고생하는 것 같더라.”
“그거 말인데….”
무심결에 반정원이 건넨 솔깃한 제안에 대해 말할까 하던 나는 입을 다물었다.
아직 일이 확실해진 것도 아니고, 구체적인 성과가 나온 뒤 이야기하는 게 나아 보였다.
“아니다.”
“뭐야?”
“안무 연습이나 하자고.”
* * *
줄기차게 쏟아지던 비는 뉴욕을 떠나는 비행기에 오를 때까지 그치지 않았다.
처음에는 시원하게 느껴졌던 빗줄기였지만 차츰 가냘파져 추적추적하게 내리니 슬슬 밑단을 아래로 잡아끄는 늪처럼 불쾌해지고 있었다.
우중충한 날씨를 따라 다른 곳으로 떠나는 사람들이 모인 기내 공기도 착 가라앉은 듯했다.
“비행기가 뜰 수는 있겠지?”
“그 정도로 많이 오는 건 아니야. 곧 뜨겠지.”
다행히 비행기는 15분 정도 지연된 끝에 이륙했다.
어젯밤부터 긴장 상태를 유지해서 그런가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있는 이어폰을 귀에 꽂자마자 잔잔한 편이던 소음조차 멀어지며 정신이 꺼져갔다.
“라온아, 자?”
“어…….”
나는 그렇게 혼곤한 잠에 빠져들었다.
-……런 것도 못 해?
“일어나. 도착했어.”
옆에 앉아 있던 서문결이 나를 흔들어 깨웠다.
눈을 뜨기 전에 누군가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언뜻 들린 것 같았는데, 그게 꿈이었는지 다른 무엇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흙탕물에 젖은 바지 같은 불쾌함이 한동안 찝찝하게 남아 있었다.
“날씨 좋다.”
강지우의 감상대로 샌디에이고 공항에 도착해서 비행기 창문 밖으로 내다본 하늘은 거짓말같이 화창했다.
핸드폰으로 뉴욕 날씨를 확인해 보니 거긴 여전히 흐린 채여서, 서로 다른 곳의 날씨가 다른 것은 당연한 현상인데도 마음속에서 미묘한 어긋남이 느껴졌다.
“여기가 바로 그 캘리포니아잖아. 사시사철 날씨 하나는 완벽하다.”
“여기서도 자유시간 있어요?”
들뜬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물에 잠긴 것처럼 멀게 느껴졌다.
그 유리를 통해 내 컨디션이 썩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감긴가?’
어딘지 멍한 머리로 생각하며 몸에 은총을 휘감았다.
신성한 기운은 전보다 훨씬 강력해졌건만 기분이 썩 나아지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몸이 아니라 기분 문제인 거라도 알았으니 됐다.’
적어도 스케줄 수행에 지장이 있진 않을 테니까.
기억나지 않는 꿈이 어지간히 기분 나쁜 것이었나 보다, 생각하며 비행기를 벗어나 땅을 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