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s Strategy to Conquer the Entertainment Industry RAW novel - Chapter (412)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412화
방 안에 있던 하프로 추정되는 여자의 둥글둥글한 이목구비나 빤히 바라보는 색소 옅은 눈동자에 담긴 호기심 같은 것들은 온라온에게 있어 확연히 낯익은 요소였다.
낯익다 못해 어떤 이름 하나를 곧바로 떠올리고 말았으니, 누구와 닮은 건지 긴가민가할 것도 없었다.
바로 오늘 아침에도 얄궂게 뺀질거리는 얼굴을 보고 나오지 않았던가.
‘그러고 보니 하프를 한국어로 바꾸면 반이 되고….’
온라온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설마?
세상이 아무리 좁다지만.
‘에이, 설마.’
지나치게 오래 입을 다물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온라온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마주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메일 보낸 온라온입니다.”
“아.”
이 상황에 긴장이 전혀 안 되는지 생글생글 웃기까지 하며 얼떨떨해하던 온라온의 말을 기다리던 여자는 특별한 것도 없는 인사에 충격을 받은 것처럼 입을 살짝 벌렸다.
하얀 얼굴에 난해한 감정이 잘게 물결치는 것을 온라온은 물끄러미 지켜봤다.
“왜 그러세요?”
“아뇨. 정말 떠났구나 싶어서…….”
또렷하던 목소리가 먼 곳에서 들려오는 뱃고동 소리처럼 흐리게 내려앉았다.
“네?”
갈피를 잡지 못하여 반문한 온라온은 이어진 말에 찬물을 맞은 듯한 기분이 되었다.
“먼 곳으로 간 거죠?”
안개 너머의 형상을 고스란히 꿰뚫어 보는 듯한 하프의 시선은 이내 확신을 품었다.
먼 곳.
사건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가진 온라온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당황을 정돈하고 반문했다.
“어떻게 알았어요?”
반쯤 의무적으로 털어놓아야 했던 가족 외에 비밀을 알아차린 사람이 나타난 것에 감격인지 혼란인지 모를 복잡한 감정을 느끼며 온라온이 재차 물었다.
“온라온이 하제인 걸 언제부터 알았어요?”
중의적인 질문이었다.
당신과 편지를 주고받던 하제의 정체가 온라온이라는 것을 언제 알았느냐.
또 온라온과 온하제의 영혼이 바뀐 것은 언제부터 알았느냐.
“내 펜팔 친구의 이름이 데미안이라는 건 꽤 오래전부터 추측하고 있었어요.”
생각을 고를 시간이 필요하지도 않은지 하프의 답은 매끄럽게 흘러나왔다.
“아, 일부러 알아낸 건 아니에요. 그런 걸 싫어하는 걸 아는걸요.”
자신의 정체를 알아내려는 하프의 시도를 향한 ‘하제’의 거부감이 극명히 느껴지던 편지를 떠올린 온라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애는 그런 것치고 그렇게 치밀하지 않았거든요. 편지에 담긴 정보는 내밀한 만큼 분명했고 정신을 차려보니 퍼즐 조각 대부분이 손에 들어와 있었죠.”
“그랬군요.”
온라온은 쉽게 수긍했다.
하프가 외모뿐만 아니라 지능까지 반요한과 비슷하다면 편지 친구인 하제의 정체를 알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영혼의 교환을 밝히는 것은 별개였다.
지난 몇 년 동안 바로 옆에 있던 반요한도 감조차 잡지 못했는데, 이렇게나 멀리 있는 하프가 정확한 정답에 도달하기에는 지나치게 난해한 문제였다.
온라온이 약간의 의심을 감추는 동안 하프는 침착하게 설명했다.
“소식이 끊긴 뒤에도 내 쪽에서 일부러 찾지는 않았어요. 말했듯 그런 걸 싫어할 거라는 걸 알았고, 때가 되면 찾아올 거라고 믿었어요. 믿었다기보다는… 바랐다고 해야 하나. 내 쪽에서만 원하는 건 자존심 상하잖아요.”
언뜻 듣기에는 사근사근하면서 예리한 말씨는 누군가와 똑 닮아 있어 온라온은 낯선 공간과 미지의 사람 앞에서 몸에 배어들었던 긴장이 점차 풀리는 걸 느꼈다.
“하제가 보낸 메일은 언제 봤어요?”
“얼마 전에요. 평소에는 잘 쓰지 않는 메일이라서요. 편지를 더 이상 주고받지 않게 된 뒤로 한동안은 주기적으로 확인했었는데 그 메일을 보냈을 때쯤에는 먼저 연락할 거라는 기대를 거의 접은 상태였어요.”
“왜 이제서야 보게 된 거예요?”
“그건…….”
내내 특유의 자신감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하던 하프가 한풀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한 달 전에 그 애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꿈에 나왔어요.”
‘그 애가 나온 게 아니라, 그 애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라고?’
미묘한 표현의 차이를 감지한 온라온이 자기도 모르게 눈썹을 찡그렸다.
“새하얀 머리카락이 된 그 애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했어요.”
“!”
“먼 곳에서 온 낯선 영혼이 내가 좋아했던 애의 몸을 차지했다고 했죠. 추억 속 그 애와 같은 모습을 했을지라도 전혀 다른 사람일 거라고 말했어요. 그리고 그건 그 애가 나를 포기하고 자기 행복을 선택한 결과라고도 이야기했어요.”
“헛소리예요!”
인상을 찡그린 온라온이 왈칵 성을 내며 외쳤다.
제로의 짓이었다.
어쩐지 순순히 물러나나 했더니, 끝까지 이런 일을 꾸미고 가다니.
‘그 녀석에게 하프는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의미 있는 사람이었어.’
그런 사람에게 미움받게 하다니.
악질이다.
하프가 들은 게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그것만이 아니라고요….”
치미는 것을 꾹 참는 온라온의 목소리가 괴롭게 흘러내렸다.
하프는 그 조용한 몸부림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물론 워낙 허무맹랑한 말이라 완전히 믿지는 않았어요.”
“…….”
“하지만 매체 속의 모습에서 느껴지던 이질감의 원인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죠. 오르카로 데뷔해서 활동하는 모습을 가끔 봤거든요.”
하프가 쌉싸름한 미소를 머금었다.
“무엇보다 그쪽이 들어와서 한 말이 내가 상상하던 첫인사와는 너무 달라서 부정할 새도 없이 믿어버렸네요.”
하프의 태도에 담긴 정서가 부정적인 감정과는 거리가 멀어서 온라온은 우선 입을 꾹 다물었다.
화면 속 온라온은 천상 연예인처럼 뻔뻔하고 명랑했는데, 이렇게 차분한 공기 속에서 마주 보고 있으니 어리고 미숙한 애티가 난다.
그게 오래전 막연히 그리던 소년의 모습과 닮은 듯해 하프는 선뜻 웃었다.
“저희 그럼 일단 뭐라도 좀 시킬까요?”
* * *
주문한 음료가 나오는 동안 각자 생각을 정리하던 두 사람은 뒤늦은 자기소개를 했다.
“온하제였던 온라온입니다.”
“하프, 아니, 반정원입니다.”
“저 근데 반씨라면 혹시…….”
하프, 반정원은 쓴웃음을 지었다.
“흔하지 않은 성씨긴 하죠. 같이 활동하는 반요한이랑은 친척이에요.”
“역시…….”
“오늘 저랑 만났다는 건 반요한한테는 말하지 말아주세요.”
“알았어요.”
반정원이 부탁하지 않아도 온라온 역시 죽기 전까지 숨길 생각이었다.
온라온의 (일단은) 첫사랑 상대가 그와 똑 닮은 친척이라는 걸 알면 얼마나 놀려댈지 감도 안 잡혔다.
“그 애에게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 조금 더 자세히 들려줄 수 있어요?”
“사실 꿈에서 들으셨다는 이야기랑 크게 다르지는 않아요….”
“사실만 따지면 그렇겠죠. 그래도 이왕이면 본인한테 정확히 듣고 싶어서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게요.”
“말해도 미친 사람 취급 받을걸요.”
“그런 얘기 좋아해요.”
반정원이 장난스럽게 눈을 찡긋거리며 답했다.
“알았어요.”
그리고 온라온이 긴 이야기를 풀어내는 동안, 반정원은 시킨 체리 에이드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으며 집중했다.
마침내 쉼 없이 이어지던 온라온의 말이 끝났을 때 반정원이 처음으로 꺼낸 말은 이러했다.
“그럼 반요한은 라온 씨가 외계에서 왔다는 걸 아나요?”
마치 그러지 않길 바라는 듯한 어조였다.
다른 것은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듯한 태도에 살짝 긴장한 채였던 온라온은 마음을 놓았다.
“전부터 이상한 걸 느끼고 궁금해하기는 해요.”
“아하하, 걔라면 그럴 만하죠. 이왕이면 끝까지 알지 못했으면 좋겠는데.”
반정원이 눈썹을 늘어뜨리며 말을 마쳤다.
“개인적으로 안타깝게도 라온 씨가 영원히 감추지는 않을 것 같네요.”
“글쎄요…….”
온라온은 길게 말하는 동안 몇 번이나 홀짝이느라 바닥을 드러낸 레몬차가 담긴 잔을 만지작거렸다.
“솔직해져 봐요. 갑자기 튀어나온 내가 아니라, 더 가까운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죠?”
“성격이 짓궂으시네요….”
익숙한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화법이었다.
“제발 반요한이랑 닮았다고는 하지 마요.”
“저는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젠장.”
반정원이 체리 에이드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반요한이랑 사이 안 좋으세요?”
“네.”
“그 인간이 잘못했죠?”
“뭐, 지난 일이고 걔도 어린애라 그랬다는 걸 이해는 하지만 얼굴 볼 때마다 열받는 건 어쩔 수 없네요. 라온 씨도 당한 적 있어요?”
온라온은 그러는 당신 얼굴이 반요한과 똑같이 생기지 않았느냐는 말을 힘겹게 참고 답했다.
“뭐, 저는 쌍방이었어서.”
“진짜요?”
“개인적으로는 반요한 과실이 7이고 제가 3이라고 생각하는데 저쪽 생각은 어떨지 모르겠네요.”
“으하하! 그런 것치고 불화설 없이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네. 잘 지내요.”
“오.”
평온한 확답에서 아득한 곳으로 떠난 친구도 잘 지내고 있을 거라는 사실을 깨달은 반정원은 빙그레 웃었다.
잠시간 안락한 정적이 흐른 뒤.
“만나서 해야 할 얘기는 이제 끝난 건가요?”
“아, 하나 더 있어요.”
눈을 동그랗게 뜬 반정원이 핸드폰을 조작해 음악을 틀었다.
‘Alien Friend’였다.
“라온이 이 곡을 완성해 줬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