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s Strategy to Conquer the Entertainment Industry RAW novel - Chapter (86)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86화
왤까.
팀 운이 망해서 그런가,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을 미완성인 채로 두고 와서 그런가.
이제는 익숙하게 경연 준비에 돌입하면서도 이전과는 다르게 썩 의욕이 나지 않았다.
‘진짜 번아웃이라도 왔나?’
그래도 이번 경연은 생방송으로 진행될 예정이었고, 무대를 보기 위해 온종일 서 있을 사람들을 생각해서라도 의식적으로 기운을 끌어 올렸다.
축 처지는 것과 반짝 힘을 내는 것을 반복하는 사이.
마지막 합숙도 이제까지와 다름없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하루는 우리를 응원하기 위해 유어스 멤버 유하나와 이샛별이 합숙소에 찾아와 짤막한 강연을 했다.
화려한 염색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는 등 점잖게 차려입은 두 사람은 데뷔의 갈림길에 선 연습생들의 고충을 담백하게 공감하며 도움이 될 만한 말을 해 주어 좋은 반응을 얻었다.
강연이 모두 끝나고, 연습생들이 점심을 먹기 위해 강연장 밖으로 우르르 나왔다.
그 틈에 끼어 식당으로 가려던 나는 작가에게 불려가 짤막한 인터뷰를 했다.
마지막 경연에서 서브 보컬3이 되어 파트가 적은 게 불만은 없냐고 아닌 척 돌려 묻길래, 없다고 했다.
아직도 이런 초보적인 낚시에 걸리는 애가 있나?
어쨌든 인터뷰를 마치고 뒤늦게 식당으로 향할 때였다.
“라온 씨.”
먼저 간 줄 알았던 이샛별이 나를 불렀다.
가녀린 인상의 이샛별은 아까 침착하게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강연하던 모습과는 다르게 왠지 불안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나는 일단 인사부터 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이샛별은 주위를 살짝 둘러보며 지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고는 내게만 들릴 만큼 작은 목소리로 빠르게 말했다.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요.”
“네?”
“라온 씨에게 중요하고,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에요.”
“저한테요…?”
“초면에 정말, 정말 죄송해요.”
다짜고짜 와서 뜻 모를 말을 하는 이샛별은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자기가 뭐라고 하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당황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갑자기 걸려온 전화를 받고 내 헛소리를 들어준 오촌 친척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아니에요. 일단 진정하세요. 괜찮아요. 저는 시간 많아요.”
자다 일어나서 내 땡깡을 받아준 오촌 친척의 자세를 본받아 나도 침착하게 대응했다.
[특성 ‘천생가련天生可憐’의 효과로 이샛별이 당신의 무해함을 확인합니다.] [심약한 이샛별이 안정감을 느낍니다. 이샛별 호감도 +1 현재 호감도 +8]이 특성은 죽지도 않고 또 왔다.
숨을 가늘고 길게 내뱉으며 내내 꽉 쥐고 있던 주먹을 편 이샛별은 여러 번 접은 쪽지 하나를 내밀었다. 내미는 손이 잘게 떨렸다.
“여기서 설명하기는 조금 그래요. 죄송해요. 되도록 빨리, 합숙 끝나자마자 연락해 주시면…… 그때 제대로 설명할게요.”
“네…?”
“죄송합니다. 꼭 연락 부탁드려요. 죄송해요.”
이샛별은 그렇게 나를 두고 황망히 가버렸다.
뭔가… 나비 날갯짓이 일으킨 가냘픈 바람에 제대로 휘말린 기분이었다.
펼쳐 본 쪽지에는 핸드폰 번호 열한 자리가 가지런히 적혀 있었다.
이걸 왜 줬을까.
일단 이샛별이 나를 좋아해서 이러는 것 같지는 않다.
내 인생의 장르는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로맨스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회빙환 중 빙의에 시스템창까지 있으니 굳이 따지자면 현대 판타지쯤 되지 않을까?
현대 판타지 주인공이라고 해서 모두 사랑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일단 나는 모른다.
할아버지한테 잔소리 좀 들었다고 갑자기 청춘사업에 관심이 생기지는 않는다 이 말이다.
아무튼 이샛별은 나에게 뭔가 다른 볼일이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래서 합숙이 끝나고 핸드폰을 돌려받자마자 쪽지에 적혀 있던 번호로 문자를 보냈다.
대체 무슨 의도로 이런 말을 한 건지 합숙 내내 생각해 봤는데, 내가 알 수 있는 건 나를 위한다는 이샛별의 태도가 대단히 진심처럼 보였다는 것뿐이었다.
만약 그게 연기였다면 이샛별은 아이돌이 아니라 배우를 해야 했다.
내가 사람 보는 눈 하나는 정확하….
[특성 《세믈리에Semmelier》를 획득했습니다.] [특성 《세믈리에Semmelier》 – 살다 보면 논리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본능적인 감각을 느낄 때가 있죠. 그 직감들이 모두 참인 것도, 그렇다고 모두 거짓인 것도 아닙니다만, 적어도 당신의 촉은 ‘진짜’입니다. 불순한 의도를 가진 것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Tip! 특성 효과는 랜덤하게 발동한다는 걸 잊지 마세요.] [특성 《세믈리에Semmelier》가 이샛별에게서 악의를 감지하지 못했습니다.]……이 새끼가 된소리 없애서 그럴듯한 설명만 붙이면 다인 줄 아나?
* * *
시간이 흘러 픽하트와 관련된 모든 사람이 예민할 대로 예민해져 있는 생방송 바로 전날이 되었다.
평소보다 몇 배나 빠듯하게 느껴지는 생방송 리허설을 모두 마치고 연습생들이 각자 집이나 숙소로 돌아가 쉬고 있던 저녁.
모 커뮤니티에 글 하나가 올라왔다.
[온라온 성장캐(X) 사기캐(O)](동영상)
트루있을때 영상인데 춤 개잘춤
성장캐 이미지 잡으려고 멘토평가때 일부러 제대로 안춘거ㅇㅇ
그리고 얘 검머외임 미국인
걍 인생이 사기ㅋㅋ
짧은 글이었지만, 다들 예민하게 곤두선 시기답게 반응은 즉각적으로 터져나갔다.
– 뭐야 미친; ㅈㄴ영악해ㅋㅋㅋ 순진해보였는데 배신감 쩌네 ㅋㅋㅋㅋ
– 엌ㅋㅋㅋㅋㅋㅋㅋㅋ 온 무해ㅋㅋ성장캐로 밀던 온프들 애새끼한테 통수 제대로 맞았죠ㅠㅠ
– 이건 뭔 신박한 논란이냐ㅋㅋㅋㅋㅋ 아같잖고 비웃긴다 걍 얘는 첫방 때 나대는것부터 존나 비호감이었음 ^_^… #기만자_온라온_OUT
– 저정도로 추는거면 끡핱에서도 거의 뭐 원탑이라 성장서사(ㅋㅋ) 필요없었을 것 같은데 머가리 어설프게 굴리다 망했네ㅋㅋㅋㅋ
– 저런 애새끼 빨아준 온프들 능지 수준 알만하다 그애미에 그자식 예쁜 사랑하세요^^!
– 원래 좀 이상했음ㅇㅇ 한공예 실용무용과에서 유명했다는데 첫방때처럼 이상한 춤 박자 무시하고 추는건 말이 안되지
┗ ㄹㅇ 인어ㅇㅈㄹㅋㅋㅋㅋㅋㅋ
┗ 그거 나름 잘추던데 ㅋㅋㅋ
– 근데 춤 개잘춘다 이거 언제임? 온 비공개연습생이라 과거 영상 하나도 안 나왔잖어
– 미국인이면 군대 안가도 돼서 팬들 개이득아님?
– 아니 자기가 한국인이라고 말하고 다닌 것도 아니고 미국인인게 뭐가 문제
┗ 본명 안쓰고 한국인처럼 온라온이라고 하고 나왔잖아 그래놓고 얼쑤같은 국뽕무대하고ㅋㅋㅋㅋ 어딜봐도 기만이지ㅋㅋㅋㅋㅋㅋㅋ
┗ 외모 보면 그래도 한국계 같은데? 아예 안쓰는 한국 이름을 여기 나온다고 갑자기 만들어 나오진 않았을거 아니야
┗ 본인 어서오고
– 와 근데 이걸 생방 전날에 터뜨리냐? 온 원픽 아닌데 의도 투명해서 좀 역겹다
– 얘 어떡함? 연생들 sns도 금지고 얘는 특히 회사도 없어서 해명도 못 할 텐데…
┗ 걍 ㅈ된거지
– 데뷔조 한자리 비었다^^
난데없이 떨어진 폭탄에 온라온의 팬들은 비상이 걸렸다.
논란의 수위 자체는 약한 편에 속해 조인수 PD가 주는 고난과 시련을 악착같이 견뎌온 팬들 중 사회면에 올라가지도 않을 일로 흔들리는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시기가 안 좋아도 너무 안 좋았다.
이미 안티들이 붙어 문제의 심각성을 인위적으로 부풀린 논란을 여기저기 퍼뜨리고 있었고, 언제나 방어는 공격보다 어려웠다.
* * *
생방송이라는 중노동을 대비해 일찍 잠들었던 나는 아침이 되어서야 논란이 된 글을 확인했다.
이미 ‘픽하트3 온라온, 부정행위 아닌 부정행위’ 같은 제목을 단 연예 뉴스까지 여럿 나가 픽하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일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와, 망했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이번만큼은 일을 온건하게 수습할 방법이 생각이 안 났다.
이러다가 행동 한두 개 더 잘못해서 최악의 상황까지 가면 앞으로 연예계 생활 자체를 못 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세상이 나한테 이제는 막살면 안 된다는 교훈을 주는 건가? 정말 노래방 반주 만드는 쪽으로 진로를 틀어야 하나? 오늘 생방 때 뭐라고 해명하지?’
온갖 생각이 휘몰아치는 와중에 나를 신경 쓰이게 하는 것은 하나가 아니었다.
바로 새벽에 픽하트 제작진이 보낸 문자였다.
[…작가입니다 조인수피디님이 논란 수습해주시겠다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셨어요(후략)]이런 상황에 가만히 있으라고 하면 할수록 더 격렬하게 무언가를 하고 싶어지는 게 사람이라는 걸 조인수 PD는 모르는 것 같았지만.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실제로 많지 않았다.
막말로 오피스텔에서 찾은 우울증 진단서를 가지고 가서 생방송 카메라 앞에 들이밀기라도 한다면 상황이 조금 달라질 수도 있겠으나.
그런다고 확실히 해결된다는 보장도 없는데 걔가 힘들었던 일을 방패로 내세우고 싶지는 않았다.
달리 상의할 수 있는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상황이 좀 나았으려나.
그런 사람은 마땅히 없으니 별 의미 없는 가정이었다.
‘뭐… 처음 겪는 종류의 일도 아니고.’
일단 밥부터 먹자.
나는 싸우러 갈 때는 배를 든든하게 채워야 한다는 강 선생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아침을 꼭꼭 씹어 먹었다.
오늘은 종일 버티는 게 가장 큰 일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이렇게 부어 보일 걱정 없이 많이 먹는 것은 생방송이 시작하는 밤 9시쯤에는 배가 다 꺼질 것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더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귀환자|온라온
레벨: 18 경험치: 26.99%
HP: 190/190 피로도: 0
체력: 46 힘: 38 민첩: 128
지능: 67 지혜: 81 매력: EX
행운: 72 명성: 724
의지: 203 연기력: 45 직감: 55
잔여 스탯 포인트: 10
밤사이 일어난 것은 논란뿐만이 아니었다.
[매력이 한계치에 도달했습니다.] [잔여 매력 포인트는 백업됩니다. 또한 초기 동기화 과정에서 벌어진 관리국의 중대한 실책을 인정하는바, 예상되는 위화감을 대폭 경감 중입니다.]드디어 매력 동기화가 끝났다.
* * *
경연장까지는 오늘도 곽상현의 차를 타고 갔다.
운전석에서 내게 인사하던 곽상현은 내 얼굴을 똑바로 보자마자 입을 쩍 벌렸다. 서문결과 반요한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얼굴이 갑자기 잘생겨졌다는 것에 놀랐다기보다는, 잘생긴 얼굴 자체에 놀란 것 같았다.
시스템은 참 무능하지만 이번 일은 어떻게 잡음 없이 잘 처리해 준 것 같았다. 아마도.
가는 동안 내 사정을 (조금 왜곡되기는 해도) 알 만큼 아는 세 사람은 예의 그 논란에 대해 별다른 말을 꺼내지 않았다.
“…….”
차 안은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아 오히려 유별나게 조용하기까지 했다.
경연장에 도착한 우리는 “그동안 너희 진짜 고생 많았다”로 시작하는 곽상현의 짤막한 격려사를 듣고 차에서 내렸다.
에어컨 덕분에 시원했던 차 안에서 나와 습하고 더운 바깥으로 한 걸음을 내딛자 숨이 한순간 턱 막혔다.
꼭 날씨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람.
사람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
서리라도 앉은 것처럼 차게 식어내리는 피부.
의혹이나 비난에 찬 눈초리가 언젠가처럼 아프게 나를 향했다.
“!”
믿을 수 없는 것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한차례 거세게 흔들린 시선들은 그대로 매료됐다가… 차마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처럼 살짝 일그러졌다.
물론 그런다고 멀쩡한 내 얼굴이 같이 찌그러지는 것은 아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묘한 눈길들 사이를 비집고 걸어갈 때가 되어서야.
나는 비로소 이곳이 정말로 내 현실이라고 인정할 수 있었다.
그러자 언젠가부터 습관처럼 그렸던 옅은 미소가 입가에 자연스레 떠올랐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게 얼마 만이더라.’
이제 나도 안 진다 이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