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s Strategy to Conquer the Entertainment Industry RAW novel - Chapter (96)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96화
범고래가 공중에서 제비를 돌며 금빛 모래들이 다시금 별가루처럼 낙하했다.
하지만 저게 과연 모래인가?
이 순간에 고작 부스러기에 불과한 것이 존재할 수 있나?
그런 의구심이 든 나는 손바닥을 가만히 가져다 대어 떨어지는 것 하나를 붙잡아 자세히 보았다.
‘……음표?’
모래인 줄 알았던 금빛 알갱이는 음표 모양을 하고 있었다.
땅을 들추어 보니 어떤 것은 쉼표였고, 어떤 것은 음자리표였다.
그 사실을 깨닫자 옴짝달싹 못 하던 발이 마법처럼 풀려났다.
가장 먼저 한 행동은 지금은 창공만큼이나 새파란 색으로 물든 범고래를 무턱대고 쫓아 달리는 것이었다.
저것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다.
땅에 발자국이 남으며 모래 같은 음표들이 튀어 오를 때마다 경쾌한 소리가 울렸다.
그것은 나도 저 범고래와 같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신이 난 나는 사막을 사뿐사뿐 걷기도 하고 그 위에서 춤을 추기도 하고 손가락으로 땅을 가볍게 헤집기도 하며 내 마음대로 소리를 만들어냈다.
펑펑 쏟아져 소복하게 쌓인 눈을 가지고 놀아도 이만큼 즐겁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 유달리 듣기 좋은 가락이 만들어졌을 때는 범고래가 덩실덩실 춤을 추는 것 같았다.
해가 몇 번이나 하늘에 포물선을 덧그리는 동안 나 역시 지치지도 않고 움직였다.
이 또한 현실이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종래에는 가까이 다가온 범고래의 꼬리를 타고 등으로 기어 올라가 장엄한 선율과 함께 석양이 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
마침내 해가 완전히 기울어졌다.
환상의 끝을 알리듯 범고래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짙푸르게 우는 것과 동시에.
잠에서 깨어났다.
‘이게 뭔 꿈이냐….’
아침 해도 안 뜬 시간인지 방 안이 어두웠다.
옆에 누운 두 사람은 아직 곤히 자고 있었다.
[퀘스트 [나를 찾아서>의 보상으로 특성 《창성의 총아》를 획득했습니다.] [특성 《창성의 총아》 – 일전 말하지 않았던가요? 당신에게는 창작자로서 무궁한 재능이 있습니다…….]졸려서 설명은 넘겼다.
대충 창작 활동을 할 때 순도 높은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며 효과를 받는 동안에는 체력의 한계를 무시할 수 있다는 내용 같았다.
특이하게도 효과가 후에 추가될 수 있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Tip! 특성은 당신의 잠재 능력에 기반합니다. 잠재 능력이란 말 그대로 잠재되어 있어 어느 세계에서는 죽을 때까지 깨닫지 못할 수도 있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시스템은 당신에게 있는 모든 능력을 온전하게 발휘할 수 있게 합니다. 어디 한 번만 더 무능하다고 지껄여 보시지….]졸려서 하품이 자꾸 나왔다.
‘응. 너 시스템 아니고 래리.’
나중에 강아지 키우면 이름 래리라고 지어야지.
[왈왈 그래요 저는 래리예요 ■■…. 의지 +1]몽롱한 상태로 거실에 나온 나는 핸드폰으로 초록창에 검색했다.
[꿈에 고래가 나왔어요]주르륵 나온 검색 결과 하나를 골라 읽었다.
‘대체로 길몽… 고래가 크면 클수록 좋다…….’
원래 이런 건 기분 좋아지기 위해 가볍게 보는 것이기 때문에 애매하거나 안 좋은 내용은 다 넘겨 버리고 좋은 내용만 골라 읽었다.
결론은 좋은 꿈이라는 것이다.
사실 그게 좋은 꿈이 아니라면 세상에 좋은 꿈이 어딨나 싶다.
아니, 잠깐.
나 지금 뭔가 괜찮은 걸 생각해 내기 직전인 것 같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점쟁이가 우리 애들이 바다를 건너서 새로운 지평을 여는 모습을 봤대요.’
범고래는 바다 생물이다.
크라켄과 죠스가 나온 마당에 범고래라고 안 될 것도 없었다.
범고래가 영어로는 킬러 웨일이라는 살벌한 이름이지만, 뭔가 조금 더 세련된 명칭이 하나 더 있던 것 같았다.
아는데, 분명 아는데 가물가물했다.
[범고래] [학명: Orcinus orca]“!”
이거다.
앞에 건 발음하기 힘드니까 잘라서 오르카.
더 찾아보니 범고래가 무려 해양 생물 중 가장 강한 포식자라는데.
뜻은 뭐….
대충 연예계라는 험난한 바다에서 범고래처럼 강한 팀이 되겠다, 정도로 만들면 되지 않을까?
나는 어제 나왔던 이름 후보들을 머릿속으로 나열해 보았다.
크라켄, 씨펄, 그리고 오르카.
하… 끝내주는 이름이었다.
오르카라는 이름이 대중적인 기준에서까지 괜찮은 건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미 크라켄과 죠스, 씨펄 따위를 거쳐온 나는 객관적인 시선을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원래 사람이든 동물이든 뭐든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계속 보다 보면 대체로 예쁘고 괜찮아 보이니까, 씨펄과 크라켄 수준만 아니면 오르카든 뭐든 괜찮을 것 같았다.
누가 내 머릿속에서 이 망할 진주와 문어를 좀 쫓아내 줬으면 좋겠다.
자꾸 빨판마다 진주가 알알이 붙어 있는 문어 같은 괴생명체가 떠올라서 환장하겠다.
“일찍 일어났네.”
하나 있는 욕실에서 나온 서문결이 소파에 늘어져 있던 나를 발견하고 말을 걸었다. 세수라도 했는지 뽀송한 얼굴이었다.
“형도 일찍 일어났네.”
“안 피곤해? 아직 더 자도 돼.”
“눈이 그냥 떠졌어. 첫날이라 그런가 봐.”
하지만 졸린 건 졸린 거라 하품이 계속 나오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다시 자기는 뭔가 아쉽고.
“형, 지금 할 일 없으면 앉아서 내 얘기나 좀 들어줘.”
그 꿈은 아직 감각이 생생하게 남아 있을 때 누구에게라도 전해두고 싶을 만큼 멋진 경험이었다.
“되게 신기한 꿈 꿨거든.”
서문결은 진지하게 내 이야기를 들어줬다.
이야기 중간에 강지우가 큰방에서 졸린 얼굴로 나와 거실 바닥에 드러누웠다.
간간이 꿈틀거리며 내 얘기에 “우와.” 혹은 “나도 들어보고 싶다….” 같은 식으로 반응을 보이는 걸 보니 자지 않고 듣는 모양이었다.
“마지막에 범고래가 길고 낮게 울면서 깼어.”
“좋은 꿈이네. 원래 그런 꿈 자주 꿔?”
“어렸을 때는 꽤 꿨던 것 같은데 크면서는 그냥 꿈 자체를 잘 안 꾸게 되더라고. 이런 꿈을 꾼 것도 진짜 오랜만.”
“부럽다…. 나는 맨날 개꿈이나 꾸는데.”
강지우가 늘어지는 목소리로 투덜거리다가 돌연 고개를 바짝 들어 나를 보았다.
“그래도 그거 엄청 좋은 꿈은 맞는 것 같다.”
“그래?”
“어엉. 우리가 가순데, 너는 꿈에서 좋은 노래를 어엄청 많이 듣고 온 거잖아.”
강지우가 기분 좋게 웃으며 말했다.
“내 생각에 너는 완전 넝쿨째 굴러온 복덩어리다. 그냥 복덩어리도 아니고 고래만큼 큰 복덩어리.”
“…갑자기 뭔 이상한 소리야?”
“와줘서 고맙다는 거지.”
느긋한 어조로 말한 강지우가 하트 어택의 ‘후회하지 않게 해줄게’ 부분을 듣기 좋은 목소리로 흥얼거리다가, 나와 서문결이 그래도 탈락자라는 걸 떠올렸는지 은근슬쩍 입을 다물었다.
“와줘서 고마워. 잘해줄게.”
서문결까지 저러자 나는 참을 수 없이 민망해져서 다른 얘기를 찾았다.
“아, 잘해준다고 하니까 생각난 건데, 픽하트 하면서 첫 합숙 때 나랑 요한이 형이랑 같은 방 썼거든.”
“들었어.”
“그때 그 형이 다짜고짜 나 바닥에서 재우려고 한 거 알아?”
“…뭐라고?”
생각해 보니 새삼 빡쳤다.
“나중에 가위바위보로 다시 정하기는 했는데 반요한이 처음에 나 바닥으로 그냥 쫓아버리려 해서 그때 이 형 뭐지 했잖아.”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벌떡 일어난 강지우가 성큼성큼 큰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잠시 뒤, 손바닥으로 등짝을 내려치는 게 분명한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소리를 들어보니 강지우의 손맛은 음식 할 때만 좋은 게 아니라 친구를 때릴 때도 좋은 것 같았다.
자다가 난데없이 봉변을 당한 반요한이 비명을 내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지우 미쳤냐?!”
“미친 건 너겠지. 동생을 바닥에서 재워? 네가 그러고도 형이냐? 네가 사람이야?”
반요한이 사람 아닌 것으로 가차 없이 매도당하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냉장고에서 시원한 우유 두 갑을 꺼내 와 눈을 동그랗게 뜬 서문결과 승리의 축배를 들었다.
아침부터 속이 다 시원했다.
* * *
여름방학이 아직이라 학교에 간 견성하를 제외한 고졸 넷은 지하 연습실로 직행했다.
“라온아.”
나와 반요한이 보컬 레슨을 받는 사이 강지우와 함께 영어 회화 수업을 듣고 온 서문결이 나를 부르더니 노트 한 권을 내밀었다.
전에 얼쑤얼쑤 무대를 구상하며 봤던 안무 노트와 같은 디자인에 색만 다른 노트였다.
하얀 연습장에는 범고래 한 마리, 사람 하나, 그리고 사막이 훌륭한 솜씨로 그려져 있었다.
꼭 필요한 만큼만 사실적이면서도, 꿈이라서 가능했던 과장성을 자연스럽게 포착한 일러스트였다.
“와…….”
“네 얘기 듣고 어떤 모습이었을지 궁금해져서 잠깐 쉬면서 그렸어. 비슷해?”
서문결이라는 단어가 사전에 있으면 뜻은 1번이 보살이고 2번이 재능 낭비일 것이다.
“형도 나랑 같은 꿈 꾼 거 아닌가 싶을 만큼 똑같다. 이거 다 연필로 그린 거야?”
“응. 물감 같은 게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이만큼 잘 그려놓고 아쉬워하는 것도 재주였다.
앞장에는 연습 삼아 그려봤는지 상대적으로 자그마한 범고래 여러 마리가 다양한 스타일로 그려져 있었다.
“이거 나중에 폰으로 사진 찍어 가도 돼?”
노트를 아예 주려는 서문결을 말리다 보니 쉬는 시간이 다 갔다.
그때쯤에는 반요한도 강지우에게 내 꿈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었다.
그리고 견성하가 오전 수업만 듣고 회사로 오자 어제와 같은 주제로 회의가 열렸다.
연습생들도 간이 의자를 가져와 회의실 한구석에 자리했다.
아무래도 이런 부분은 연습생들의 의견도 수렴하자는 분위기여서.
사실 직원이 워낙 적어서 ‘맞댈 머리를 한 명이라도 더 늘려보자!’에 더 가까운 것 같았다.
오늘 회의에서도 별달리 좋은 이름이 나오지 않으면, 일단 ‘시드 보이즈’ 같은 가칭으로 데뷔조 공개부터 하자고 반가을 대표가 제안했다.
‘와, 진짜 촌스럽다.’
물론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만큼 간이 큰 사람은 없었다.
아무튼 직원들이 각자 생각해 온 이름을 차례로 발표했다.
크라켄과 씨 펄을 나쁜 의미로 뛰어넘는 건 다행히도 나오지 않았지만 ‘이거다’ 싶은 것 없이 미묘한 반응들이 주를 이뤘다.
그나마 주열음 이사가 생각해 온 ‘넵튠’이 가장 반응이 좋았다.
그리스 신화의 포세이돈에 대응하는 로마 신화의 넵투누스를 영어식으로 읽은 거라나.
내 생각에는 이놈의 바다가 문제였다.
“너희는 뭐 생각해 본 거 없어? 연습하느라 바빴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