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Mythic creator is a regressed player RAW novel - Chapter 193
수색 (1)
집무실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정보원이 남기고 간 충격적인 소식을 접한 그들은 하나같이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그 괴물 같던 황제가 서거하다니.”
영유제의 나이 올해 103세.
이 시대의 평균 수명을 고려하면 괴물이란 말도 결코 과장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보다 놀라운 것은 새로이 황위에 오른 자의 정체.
“강은이…?”
“그렇다고 하더구나. 삼십이 황자가 분명 너희들과 같은 학관 출신이라고 했지?”
“네, 아버지. 저번 장보도 사태 때는 저희와 함께 비동에 진입하기까지 했어요.”
공교롭게도 오늘 집무실에는 강은을 제외한 그 날의 동료들이 고스란히 모여 있었다.
나, 우희, 약빈이, 려군, 설이나까지.
하지만 난 그들이 모르는 한 가지를 더 알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강은의 성별이 여자라는 것.
툭 불거진 목젖마저 재현해내는 그녀의 역용술은 무림맹 장로들조차 깜빡 속아 넘어갈 만큼 정교했다.
나도 우연히 그녀의 옷 갈아입는 장면을 보지 못했다면 여태껏 진실을 알지 못했을 테지.
그나저나 강은은 어떻게 황제가 될 수 있었던 걸까?
중국 역사 상 여제가 없는 것은 아니나 드문 것은 사실.
더구나 그는 황위계승권에서 한참 떨어진 삼십이 황자가 아닌가.
“결과보다도 과정에 집중해야 한다. 황실에 제법 귀를 심어두었다고 생각했건만, 그가 황위에 오르기까지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했다.”
아버지의 말씀에 우희 또한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버님 말씀이 옳아요. 신비조와 거울 납품으로 황실과 연이 닿아 있는 조가장은 물론, 학사를 여럿 배출한 저희 가문도 별다른 조짐을 느끼지 못했어요. 그만큼 은밀하고 신속하게 황권 승계가 이루어졌단 거예요.”
“아무래도 삼십이 황자는 세간에 알려진 것 이상의 저력을 숨기고 있었나 보군.”
“이번 일이 강호와 저희 가문에 어떻게 영향을 끼칠까요, 아버지.”
“네가 본 삼십이 황자의 성품은 어떻더냐.”
“글쎄요….”
난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겼다.
학관에서 강은이 보인 선량한 언동들과, 지난 날 비동에서 사람들의 진입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그녀의 모습이 차례로 머릿속을 스쳤다.
그리고 그녀와 비동 안에서 나눴던 진솔한 대화들도.
‘가휘. 넌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해?’
그 때 이미 이번 사태가 예견되어 있던 걸까?
황제가 된 강은은 내가 알던 친구가 맞을까?
“황제에게 필요한 덕목을 제가 모두 알진 못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요. 강은과 함께 학관 생활을 하는 동안, 그가 타인을 홀대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어요.”
“심성이 여리고 나이마저 어린 황자가 그리 오래도록 황실을 비웠다. 헌데도 황위에 올랐다면, 아마 이번 일을 직접 계획하고 실행한 자는 따로 있다고 봐야겠지.”
그렇게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표정은 여러모로 심란해 보였다.
권력을 멀리하시는 아버지마저 이 정도인데, 특정 파벌에 가담했던 자들은 지금쯤 똥줄이 타들어 가는 기분일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무림세가들에도 비상이 걸렸겠지.
“자세한 건 좀 더 상황을 파악해봐야겠구나.”
한참의 침묵 끝에 아버지께서 내린 결론이었다.
그렇게 그 날의 회의는 별다른 소득 없이 막을 내렸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걸까?”
“저도 가문에 연락을 보내볼게요.”
각자 처소로 돌아온 뒤에도 고민은 계속됐다.
그렇기에 알아채는 것이 늦고 말았다.
집무실에서부터 한 마디도 꺼내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빈아, 어디 안 좋아? 표정이 왜 그래?”
“…할아버지 때문에.”
“아, 사부님.”
이렇게 무심할 수가 있나.
닷새에 한 번은 꾸준히 도착하던 사부님의 연락이 끊긴 지 벌써 열흘.
어제까진 단순히 연락이 지연되나 생각했지만….
“사부님 연락이 끊긴 곳이 하북 인근이라고 했지?”
“응.”
약빈이가 걱정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북과 북경 사이의 거리는 천 리가 채 되지 않으니.
더구나 사부님께서 지니신 물건이 어디 보통 물건인가.
혹여 사부님께서 흡성대법을 맡기기로 하신 오랜 친구라는 게 황실 사람이라면.
그러고 보니 옛날에 황실에도 침투하신 적이 있다고 들었는데.
“내가 가볼게.”
“휘 랑?”
왠지 상황이 심상찮게 흘러가는 기분이다.
아무래도 직접 나설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빈아. 금방 모셔올게.”
“…나도 갈래.”
“너도?”
“할아버지의 안가가 중원 곳곳에 퍼져 있어. 휘 랑은 어딘지 잘 모르잖아. 난 할아버지 따라다니며 위치를 기억해뒀으니까.”
하긴 스승께서 만일 그런 장소에 은거해 계시다면 나로선 찾는 것이 불가능할 테니.
“그래, 같이 가자.”
그렇게 약빈이와의 동행이 결정됐다.
아쉽지만 다른 여인들은 이번 여정에선 제외됐다.
려군은 임신 중인데다, 내 생존 소식을 듣기 전까지 병상에 누워 있던 홍사강도 아직 완쾌라고 보기엔 무리였다.
그리고 우희에게는 보다 중요한 임무가 있었다.
“조가장에 설치해둔 진법을 완벽히 다룰 수 있는 건 저밖에 없어요. 려군 언니의 성취가 놀랍긴 하지만, 혹시 모를 암중세력의 습격에 대비해서라도 그리 오래 자리를 비울 수는 없어요.”
“고마워, 희야.”
“이곳은 제 집이기도 하니까요. 부디 조심해서 다녀와요. 무리하지 말고.”
“응. 혹시 그 전에 사부님께 서신 도착하면 하오문 통해 연락주고. 려군과 사강도, 다녀올게요.”
이른 작별인사를 건네는 내게 우희가 한 가지 조언을 덧붙였다.
“아예 이번 여정에 맹주를 뵙고 오는 편이 좋겠어요.”
“응. 그렇잖아도 생각하고 있었어.”
무림맹이 있는 하남은 위치 상 북경으로 가는 길목에 존재한다.
마침 맹주께 감사 인사도 드릴 겸 향후 협력을 요청할 계획이었으니, 가는 김에 들르는 편이 도움이 되리라.
게다가….
‘존명이 녀석도 떠봐야 하고.’
그간 워낙 많은 일이 있어 깜빡했지만, 비동에서 수상한 움직임을 보였던 녀석을 빼놓을 수는 없었다.
녀석은 어떻게 벽력탄이 터질 것을 미리 알고 금라희를 대피시키려 한 걸까.
녀석이 아직도 학관에 있다면 내게 그것을 밝혀야만 할 것이다.
***
이틀 뒤 아침, 하북으로 향하는 일행은 계획과 달리 넷으로 늘어나 있었다.
새로운 참가자의 정체는 다름 아닌 북해빙궁의 설이나와 하영영.
혈마의 비동을 빠져나온 뒤 한동안 조가장에서 머물던 그녀들은, 이제 북해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며 지난 밤 조용히 내 처소를 찾았다.
갑작스런 헤어짐이 아쉽긴 하지만, 빙궁의 소궁주로서 더 이상 외지에 머물 수는 없었으리라.
그러나 지난 밤 그녀가 내게 전한 말은 그것뿐이 아니었다.
-설 소저, 어제는….
“이제 마을을 벗어났으니 슬슬 경공을 펼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럴까요?”
우리 사이에 흐르는 어색한 기류를 읽은 걸까, 약빈이가 슬그머니 전음을 보내왔다.
-어제 밤에 나가서 무슨 일 있었어?
-아니, 딱히.
-근데 설 소저 표정이 왜 저래. 너 설마…?
-무슨 생각하는 거야. 나 금방 돌아왔잖아.
-전적이 워낙 화려해서.
-그런 거 아니야.
따끔거리는 시선을 모른 체하며 난 경공을 서둘렀다.
그로부터 사흘 뒤, 우린 부지런히 달린 끝에 호북과 하남의 경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부님 소식은 어때?”
“없었어.”
“집에서 따로 도착한 것도 없고?”
“응. ”
“…진짜 황궁에 가신 건 아니겠지?”
나와 약빈이의 입에서 동시에 한숨이 쏟아져나왔다.
이동 경로 상에 존재하는 하오문 지부와 개방 분타를 닥치는 대로 방문하며 사부님의 행방을 수소문했지만 말짱 헛수고였다.
그 사이에도 이별의 순간은 착실히 다가오고 있었다.
“우린 이쯤에서 북상하겠다.”
“벌써…. 제가 행방불명돼서 늦게 돌아오는 바람에 마음 편히 머물지도 못하고.”
“아니다. 그대가 무사하여 천만다행이다.”
“…….”
잠시 침묵이 흘렀다.
으레 이별을 앞둔 이들이 겪는 아쉬운 침묵이다.
그러나 결국에는 겪어야만 하는 일.
“부디 조심해서 가요. 도착하면 연락하는 것 잊지 말구요. 하영영 소저도요.”
“고맙다. 그럼 이만….”
“설 소저!”
“응?”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는 그녀에게 난 정중히 포권했다.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 불러요. 우린 친구니까요.”
“…알았다. 그대의 마음에 감사한다.”
자신의 머리카락처럼 눈부신 미소를 남긴 채, 그녀의 모습이 갈림길 너머로 멀어졌다.
***
“정말 이대로 가시려구요?”
“뭐가?”
“화화공자, 좋아하시잖아요.”
“짝이 있는 사내야.”
“하지만….”
“영영은 조 공자를 싫어하는 게 아니었어?”
그녀의 물음에 영영은 두말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학관에서부터 염문을 달고 다니던 사내니까요. 아가씨께서 고생하실 것이 뻔한데 제가 어떻게 저 자를 좋아하겠어요.”
“그런데 지금은 왜?”
“곁에서 지켜보고 있기 안타까워서 그러죠. 차라리 시원하게 고백이라도 하시지 않고.”
“했어.”
“네?”
설이나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배웅하는 가휘와 약빈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어젯밤에 했어. 단칼에 거절당했지만.”
“아니, 지가 뭐라고 아가씨를 거부해요?”
“영영 말처럼 내가 너무 뜸을 들였나 봐. 내가 워낙 내성적이잖아.”
자조적인 웃음과 함께 그녀는 과거의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반 년 전, 북해의 새하얀 눈밭 위에서 그와 재회했던 순간을.
“북해에서 봤던 검후 교관님의 모습, 기억해?”
“벽 여협이요?”
“응, 당시 조 공자 일행 사이에 흐르던 불편한 기류가 무엇인지 그 땐 몰랐어. 근데 직접 겪으니까 알 것 같아. 그녀도 나처럼 조 공자를 좋아했지만 거절당했던 거야.”
“하지만 지금은….”
“그래. 혈마의 비동에서 생환한 두 사람은 심상치 않은 사이가 되어 있었지.”
낮게 가라앉아 있던 그녀의 눈에 작은 불꽃이 피어났다.
“그리고 그를 위해 목숨을 던진 마교의 홍사강이란 여인도.”
“아가씨….”
“영영이 내게 그랬잖아? 내 외모가 중원의 여인들과는 사뭇 달라 무릇 사내들의 관심을 독차지 할 거라고.”
실제로 천무학관 입학 초기만 해도 그녀의 미모에 혹해 추파를 던지는 남자 수련생은 한둘이 아니었다.
허나 그녀의 몸에서 풍기는 지독한 악취를 겪은 뒤에도 그녀 곁에 변함없이 남아준 것은 가휘가 유일했다.
더구나 종래에는 체취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까지 하지 않았나.
그 순간부터 이미 그녀의 마음은 가휘에게 기울어 있었다.
그 뿐인가.
외모면 외모, 무공이면 무공.
더구나 조가장에 머물며 겪은 그의 가족과 친구들 역시 마음에 쏙 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자신과는 친한 친구 사이인 그의 여인들까지도.
“자존심은 조금 상하지만 못 잡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아.”
“어떻게 하시게요?”
“다행히 그가 색을 멀리하는 것 같지는 않으니, 그에게 은혜를 입힐 기회가 있으면….”
그녀는 빙궁에 고이 모셔진 빙정을 떠올렸다.
사실 암중세력을 몰아내는 과정에서 발견한 빙정은 하나가 아닌 두 개였으니.
그 중 하나는 궁주가 흡수하여 성취를 보았고, 다른 하나는 차기 궁주인 그녀의 몫으로 남겨졌다.
세상에 이 사실을 아는 자는 부친과 자신, 오직 둘 뿐.
“힘을 기르고 기다리면 기회가 올 거야.”
자신이 떠나온 길을 바라보는 설이나의 눈이 결연히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