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Of the Unique Lineage RAW novel - Chapter 122
119. 누나의 리드
“정찰입니까?”
내가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김동철 이사가 팔짱을 끼곤, 의자 등받이를 젖히며 허리를 세웠다.
날 바라보기에 눈을 마주치고 마저 말했다.
“특이종의 개입으로 일이 터졌으니,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원인?”
아니, 뻔한 걸 왜 자꾸 묻나.
“특이종 찾아야 하지 않습니까?”
특이종의 발현.
그로 인해 발생한 인베이더 무리의 습격.
그럼 현 상황에서 가장 급한 일은?
기지의 안전이다.
그럼 기지의 안전을 유지하려면? 원인을 제거하면 된다.
원인은 특이종.
다만, 특이종의 출현이라는 건 아직 추측의 영역이다.
그러므로 지금 할 일은 정찰이다.
특이종의 존재를 찾고, 두 눈으로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오래 생각할 일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건 놀랄 일이 아닌데.
“……오.”
뭐냐, 이 침묵과 감탄사는.
“보기와는 다르군.”
김동철 이사가 말했다. 눈썹을 휘며 말하는 걸 보니, 정말 인상적이었나 보다.
내가 어떻게 보이길래?
“제가 좀 인텔리하게 생겼죠.”
“하하, 올해 제일 크게 웃은 거다. 좀 웃겼다.”
이게 그렇게 웃을 일이야?
이 양반은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단순하고 힘자랑을 좋아하는 불멸자?
이건 다 시발 팀장 때문이다.
툭하면 사무실에서 치고받고.
결투장이라 부르는 보고서로 다투는 걸 너무 많이 보여 줬다.
뭐, 내가 한 일도 조금은 영향을 줬겠지.
팀장이 시켰다곤 해도, 사이오닉 협회가 관리하는 화이트홀에 들어가서 난리 쳤고.
호랑이 가면 쓰고 머니 & 세이브 지점을 탈탈 털기도 했다.
구한다는 명목하에 왕자를 납치한 적도 있으니.
내가 봐도 거참 앞뒤 안 가리는 불멸자로다.
“그래, 정찰 임무다. 임무 목적은 특이종의 위치 파악과 외형 파악이다.”
예상한 대로였다.
“네.”
그리고, 새로운 임무였고.
* * *
버릇이란 건 참 무섭다.
어릴 때부터 정해진 루틴.
열여덟 이후로 어머니를 따라다니며 생긴 버릇.
아침에 일어나면 좀 뛰어줘야 몸이 풀린다.
하다못해 줄넘기라도 하면 좋고.
그래서다.
밖으로 나가서 뛰었다.
푹푹.
이곳의 땅은 발을 삼키듯 가라앉으며 뛰는 걸 방해한다.
걸쭉하지만 건조한, 전혀 다른 표현이지만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질감의 땅이다.
평소처럼 뛰면 불필요하게 과한 체력이 소모된다.
뛰는 발을 가볍게, 평소보다 발목을 더 튕기듯 쓴다.
양발의 보폭을 평소의 반으로 줄인다.
땅을 딛는 시간을 최소한으로 한다. 그럼 발이 덜 잠기고, 체력 소모가 적어진다. 효율적이다.
기지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뛰었다.
왼발을 디딜 때 호흡을 들이마시고, 오른발을 디딜 때 참는다.
다시 왼발에 마시고 오른발에 참고.
이걸 열 번 반복, 이후 오른발을 디딜 때 호흡을 뱉고 왼발에 참는다.
똑같이 열 번 반복한다.
변신족의 폐활량은 상식을 뛰어넘는 법이다.
구보를 끝내고 들어가는 길.
기지 입구를 지키며 위병 근무를 서는 1급 사원 하나가 물었다.
“왜 굳이 밖에서 뛰어요?”
“오늘 날씨가 상쾌해서요.”
이계의 태양은 회색빛이다.
밝긴 한데, 대지 위에 칙칙한 빛을 뿌린다. 오래된 형광등 불빛 같은 날씨다.
개척 4팀 사원이 하늘을 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게 상쾌해?”
환경에 그냥 적응하는 것과 익숙해지는 건 다른 문제다.
난 적응하는 거로 만족하지 않았고, 익숙함을 넘어 능숙하게 활동하는 걸 원했다.
그래서 운동도 할 겸, 어차피 이 땅을 돌아다니며 정찰 임무도 할 테니 겸사겸사 뛰었다.
안으로 들어와서는 벤치 프레스, 데드 리프트, 풀업, 고중량 스쿼트.
운동하는 머리로는 생각을 이어 나갔다.
팀장이 알려 준 기술.
내가 보고 배운 것.
인베이더 무리 사이에서의 내 움직임.
실수를 되새기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다.
멀티 태스킹은 내 특기였다.
무게를 치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는 데는 이미 익숙했고.
아침 운동을 끝내고 샤워를 마치니,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었다.
이게 바로 사는 맛이지.
점심 메뉴가 마음에 들었다.
직접 갈아서 만든 토마토소스 파스타와 햄버그스테이크, 리코타 치즈 샐러드와 드레싱, 수제 피클까지.
우적우적.
다진 고기를 신나게 씹는데 애주가 여자 과장, 도원결의의 삼 남매 중 막내가 내 옆에 앉았다.
“광익 씨는 사실 사이보그지?”
“네?”
“인베이더랑 싸웠을 때 실혈도 꽤 하지 않았어?”
피? 꽤 많이 흘리긴 했다.
부러진 곳도 있었고.
물론 지금은 전부 완벽하게 나았다.
우적우적.
대답하긴 했지만, 일단 입에 넣은 음식은 다 씹어야 할 거 아닌가.
먹으면서 대답하는 건 아니라고 배웠다.
빤히 바라보며 씹고 있자, 애주가 과장이 주머니에서 힙 플라스크를 꺼내 식판 옆에 세웠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보던 아이템이다.
금속으로 만든 휴대용 술병.
꿀꺽.
그걸 들어 한 모금 삼키고 권하기에 고개를 저었다.
우적우적.
여전히 음식은 씹으면서.
“피를 그렇게 흘렸으면서 그런 트레이닝을 해?”
불멸자는 피를 많이 흘리고 다치면, 체력을 많이 잃는다. 그럼 지치기 마련이고.
자연스레 평소보다 더 피로감을 쉽게 느끼기 마련이다.
아무리 긴급 수혈팩인 블러드 젝을 꽂고 살아도 제 몸에서 스스로 만든 피가 제일 좋은 법이다.
보통은 최소 일주일, 길게는 한 달, 불멸자의 회복 기간이다.
물론 그건 일반 불멸자의 얘기고, 난 좀 상황이 다르지.
변신과 불멸, 환상의 콜라보인지라.
“사이보그가 아니면 혹시 좀비야? 안 지쳐?”
꿀꺽.
물으며 다시 한모금.
코끝을 스치는 주향.
변신족의 예민한 후각은 상대가 마시는 술이 최소 40도가 넘는 독한 술이라는 걸 알려 줬다.
꿀꺽.
나도 씹던 걸 삼켰다. 달콤한 토마토 내음이 입안을 감돌았다.
“제가 좀 특이 체질이라서요.”
이레귤러라고 다 소문난 마당이었으니.
나름 훌륭한 핑계였다.
“아.”
애주가 과장이 짧은 탄성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아침부터 그렇게 마시면 안 취해요?”
“나도 특이 체질이라.”
그렇게 말하며 낄낄 웃는데, 여자로 보이는 것보단 되게 능청스러운 선배 같은 느낌이었다.
“너 괜찮다. 같은 특이 체질끼리 잘해 보자.”
“네.”
점심 이후에는 브리핑 시간이었다.
정찰대는 4인 1조로 구성됐고.
출발은 일주일 뒤였다.
리더 정호남 과장.
베테랑 사수 김유미 과장.
베테랑 부사수 이순창 대리.
근접전 스페셜리스트, 초소의 수호자, 왼손 수련 유행을 선도한 남자, 유광익.
이렇게 넷이 한 팀이었다.
회의실에 들어가니, 정호남이 기다리고 있었다.
정호남은 까칠했다.
눈빛이 그랬다.
날 향한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저 양반은 나를 왜 싫어할까.
소문으로는 뭐, 혼혈을 싫어하는 혈통 우월주의라고 하는데.
내가 본 정호남 과장은 그렇지 않았다.
반쯤 일에 미쳐 있고,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내달릴 뿐.
순혈이고 혼혈이고 간에, 방해되는 건 가리지 않고 갈구는 것 같기도 하고.
근데 이상하게 날 싫어하는 티를 팍팍 낸단 말이지.
내가 딱히 뭘 한 것도 없는데.
“안녕하십니까, 슨배님.”
정중하게 인사하자.
“술 냄새.”
정호남 과장이 말했다.
“저 아닙니다.”
나만 보고 말하기에 답하니.
“저한테는 이게 모닝 사과 주스 같은 거라서요.”
김유미 과장이 대수롭지 않게 옆에서 말하고 자리에 앉았다.
회의실에 모인 건 넷.
“임무 목적은 다 알 것 같으니 김유미 과장, 숙지해야 할 것들을 알려 주시죠.”
“무전이 원활하지 않으므로 서로 시계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 그 외는 리더의 재량에 맡겨야죠.”
이계의 환경은 예상할 수 없고.
우리가 찾으려는 건, 지금껏 확인하지 못한 형태의 특이종이다.
임기응변이 중요한 임무였다.
“작전 형태는 서칭 에어리어.”
정호남 과장은 홀로그램도 띄우지 않고 말했다.
‘서칭’ 임무는 무언가를 찾는다는 거고, ‘에어리어’는 일대 구획을 나눈다는 거니, 쉽게 말해 그 지역을 샅샅이 뒤져본다는 뜻이다.
“다만, 지형 파악하며 움직이는 형태이니, 적을 찾으면 트레이싱으로 변동. 그 본거지를 추적·확인하는 거로 하겠습니다. 이의 있습니까?”
“없습니다.”
김유미 과장이 대표로 말했다.
“출발은 일주일 뒤, 개인 정비 시간은 충분하다고 봅니다. 준비는 각자 알아서 기본 탐사 장비는…….”
“광익 씨 물건은 제가 챙기겠습니다.”
김유미 과장이 중간에 손을 들고 말했다.
“그러시죠.”
정호남 과장은 그 말을 끝으로 나갔다.
전에도 느꼈지만, 브리핑이 지나치게 깔끔하다. 제 할 말만 하고 간다.
사이보그가 달리 있나. 저게 사이보그지.
사람이 정이 안 느껴지잖아.
“동생 바보라던데, 그냥 봐서는 전혀 모르겠네.”
옆에서 애주가 과장이 말했다.
“누가요?”
“에이스 과장님.”
“저 양반이 동생 바보라고요? 호남평야 과장님이?”
실수로 나 혼자 생각한 별명을 말하자, 애주가 과장이 키득키득 웃었다.
“호남평야, 그거 귀에 들어가면 진짜 죽일 듯이 노려볼 것 같은데. 호남 과장이 제 동생 애지중지하는 거 몰랐어? 알 사람은 다 알아.”
“설마요.”
에이, 설마.
엄청 까칠하던데?
꿀꺽.
말하다 말고, 애주가 과장은 어느새 다시 힙 플라스크를 꺼내선 술을 한 모금 삼켰다.
자꾸 그렇게 마시니까 왜 맛있어 보이냐.
“줄까?”
“한 모금만 마셔 볼까요.”
“어어, 광익 씨, 그거 독한데.”
이순창 대리가 말했다.
알지, 독한 거.
이미 냄새로 안다.
김유미 과장이 건넨 술통을 잡고 딱 한 모금만 넘겼다.
곧 식도를 타고 뜨거운 열기를 품은 액체가 위장을 휘저었다.
“후아, 독하네요.”
“그게 끝이야? 술 세구나. 광익 씨.”
“적당히 세죠.”
이건 아마도 어머니 덕분이겠지.
아버지 앞에서야 맥주 한 잔에 취한 척하시지만, 어머니는 양주 세 병을 들이켜도 거뜬한 분이니.
가끔 출장이 잦은 아버지를 원망하며 드시는 것도 봤다.
물론, 내가 본 걸 아버지에게 전할 수는 없었다.
난 오래 살고 싶었다.
“진짜 괜찮은데. 혹시 여자 친구 있어?”
사실 난 희대의 대도일까.
루팡의 화신일까.
왜 보는 여자의 마음을 다 훔쳐 버리는 걸까.
나란 남자는 그저 살아 있는 게 죄인 걸까.
“죄송해요. 많아요.”
“와, 많다고 대답하는 건 또 처음이네.”
“신경 쓰지 마요, 광익 씨. 과장님은 원래 처음 보는 남자한테 다 이래. 나한테도 그랬어.”
“아니, 괜찮습니다. 다 이해합니다.”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내가 죄인인 것을.
“야, 내가 금사빠냐? 뭘 처음 보는 남자한테 다 그래.”
“그럼 아닙니까?”
“시끄러워. 광익이 이리 와.”
애주가 과장이 순창 대리의 정강이를 걷어차며 말했다.
대리는 정강이를 부여잡고 깨금발을 뛰며 물러났다.
보통 친한 사이가 아니구나.
“아오, 진짜.”
이순창 대리가 이리 말하자.
“뭐, 진짜 뭐 싸우자고?”
“됐어요.”
“제대로 달린 자식이 빼기는. 덤비고 싶으면 언제든 환영이다. 침대든, 대련장이든.”
“그만 좀 하시라고요.”
이순창 대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물러났다.
“장비 정비하러 갑니다.”
“가. 가 버려, 다시는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마.”
“우리 정찰 같이 나가야 합니다.”
“그럼 그때까지 나타나지 마.”
아니, 이 두 사람 콩트라도 하는 건가.
절로 웃음이 나온다.
이순창 대리가 훌쩍 떠나고.
“평소에도 이래요?”
내가 물었다.
“스트레스받고 근무 서는 것도 서러운데, 일 안 할 때라도 웃어야지.”
애주가 과장이 말했다.
개척 4팀이 분위기 하나는 진짜 끝내주는구나.
“넌 장비 손 안 봐도 돼? 스펠 기어도 가지고 있다며? 저번에 싸우고 탄은 다시 수급했어?”
이계에 있기에, 이들은 실탄을 보유하고 총기를 소지한다.
“아직 못했어요.”
제가 쓰는 탄이 조금 특이해서.
“자식, 누나가 리드한다. 누나만 믿고 따라와. 장비 정비하러 가자.”
“지금요? 네, 뭐.”
어차피 해야 할 일이었다.
내가 지닌 무기의 특이성 때문에 수리는 힘들겠지만.
뭐, 글록 17탄이라도 채워 넣어야 하니까.
“이쪽.”
애주가 과장이 손목을 잡고 날 이끌었다.
통로를 지나는데, 맞은 편에서 오던 두 명의 요원이 지나쳐 갔다.
“광익 씨, 과장님 조심해. 동정 킬러야.”
“애한테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서른이 넘어 보이는 요원 둘이 입을 털었다.
“좀 꺼져.”
과장은 거침없이 둘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광익 씨, 나 그런 사람 아니야.”
그렇게 순진무구한 표정만 안 지으면 될 것 같은데. 그런 표정 지으니까 몹시 불길한 사람 같잖습니까.
“둘이 벌써 그런 사이야? 아쉽다. 나도 노렸는데.”
고양이상의 미녀가 말했다.
혼혈로 보였다.
“그런 사이 아닙니다.”
부인했다.
고양이상의 미녀는 들은 척도 않고는, 허공에 왼손 잽을 툭툭 치고 지나가며 말했다.
“왼손 훈련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저한테도 기회 줘요.”
이 사람들이 정말.
“신경 쓰지 마. 다들 심심해서 저래.”
까칠이 동기도 그렇지만, 여기 사람들은 나사가 하나씩 빠져 있는 것 같다.
과장님이 날 안내한 곳은 기어 엔지니어가 있는 곳이었다.
혼혈 불멸자 엔지니어가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넓은 공간을 공방처럼 쓰는 곳이었다.
화약 냄새와 쇠 냄새 따위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필요한 거 있으면 다 말해. 팀장님 특별 지시로, 어지간한 건 다 해 주래. 우리 엔지니어 솜씨는 일류야. 그리고 여기 장비, 밖에서도 못 본 것들 천지일걸.”
진짜 그럴까? 애주가 과장의 말에 기대에 차서 물었다.
“혹시 스펠 기어도 손보십니까?”
“전 퓨어 엔지니어라서 그건…….”
기어는 두 종류.
마법이 가미된 스펠 기어.
순수 과학기술로 만든 퓨어 기어.
고로, 엔지니어도 두 종류다.
“그럼 혹시 아다만티움탄은 있나요?”
“……무슨 탄이요?”
“이게 제 기어인데.”
그렇게 말하며 4번 타자를 꺼내고, 정글도를 꺼냈다.
날이라도 갈까 싶어서 칼날도 같이 보여 주니.
“아다만티움으로 만든 총이랑 칼이네, 아니, 어떤 미친 작자가 이런 걸 만듭니까?”
엔지니어가 당황했다.
몹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