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Of the Unique Lineage RAW novel - Chapter 147
144. 될 것 같은데
“음.”
저기 혜민아?
쓰러진 사람을 꼼꼼히 살피던 혜민이가 고개를 저었다.
“이상하네.”
불현듯, 수능 400점 만점에 158점으로 제 키보다 낮은 점수를 받은 강혜민이 떠올랐다.
그런 애가 마법이라고 잘 쓸까?
주문이라는 거 머리가 좋아야 잘할 수 있다며?
“음, 진짜 이상하네.”
중얼거리는 혜민이를 보며 말했다.
“잘못 찍었냐? 말해, 괜찮아.”
괜찮다. 그저 사내 요원을 두들겨 패서 폭력 사건의 주범이 된 게 전부다.
뭐, 운 나쁘면 감옥 갈 거고, 운 좋으면 적당히 합의될 것이다.
괜찮다. 다 괜찮다.
“말해.”
난 마음의 준비가 끝났다.
혜민이는 나한테 말하는 대신 혼자서 중얼거렸다.
“되게 흐릿하네. 보통 이런 경우는 주체가 아니라 객체가 됐을 때고, 오브젝트가 아니라 사람 자체에 흔적이 남은 거니까 주문을 건 작자는 따로 있다는 건데.”
그러더니, 쓰러진 요원의 품을 뒤적거렸다.
“누가 보면 길에서 쓰러진 사람 지갑을 터는 것처럼 보인다는 건 알고 있지?”
“괜찮아, 오기 전에 인식장애술 걸었어. 어지간히 예민하지 않고서야 그냥 지나갈걸.”
그 어지간히 예민한 사람이 잔뜩 모인 회사가 여기서 고작 50m 거리에 있단다.
우리가 있는 곳은 적당히 한적한 골목길이었고, 앞뒤로 네온사인이 화려하긴 하지만 어둠이 적절히 스며든 곳이긴 했다.
인식장애술이라는 주문을 썼다지만, 그게 아니더라고 크게 주목받을 만한 곳이 아니긴 했다.
어쨌든 기다렸다.
“이 사람 매혹 주문에 걸렸어.”
품을 뒤적거리던 혜민이 말했다.
뭐냐고 묻자, 짧은 설명이 이어졌다.
이유 없는 호감을 느끼게 하는 것.
또는 그 호감의 정도를 진하게 하는 것.
주문에 노출되는 빈도수가 잦아지면 자기도 모르게, 상대를 향해 호감 그 이상을 품는 것.
“너 나한테 개수작 부리면 죽는다.”
다 듣자마자 말했다.
“사랑, 그거 이제 주문으로 사겠어. 얼마면 돼, 얼마면 되겠니.”
미친 또라이 강혜민의 드립을 들으며 적어도 얘가 내 호감을 사겠다고 주문을 남발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 따로 매개체나 오브젝트는 없는 것 같고. 흔적을 역산해서 하나하나 쫓아야겠는데?”
혜민이 말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통신기를 통해 사수에게는 상황이 끝났다고 말했고.
팬더 대리에게는 이 쓰러진 양반을 어떻게 하냐고 물었다.
대뜸 땅에 묻을 순 없잖아.
일단 이쪽도 뭔가 문제가 있으니까.
“털어야지. 10분만 기다려.”
팬더 대리는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일단 턱을 쪼개 놨다.
이 사람이 무혐의라면 이젠 내가 문제다.
기다리는 동안, 난 주문이란 게 무엇일까 생각했다.
왜 불멸자는 마법에 취약할까.
생각해 보니 당연하긴 했다.
오감을 비롯한 육감과 직감으로 무언가를 느끼는 건, 머리로 이해하진 않아도 경험과 지식을 통해 원인과 결과를 파악하는 과정이다.
가령, 상대의 오른 주먹이 내 왼쪽 볼을 향해 날아올 걸 예측했다면.
그 이면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 호흡의 달라짐, 시선의 변화 등을 종합해 한순간에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이런 걸 보통 직감이라고 부르는 거고.
하지만 마법은 구동 원리가 너무 달랐다.
발동 이유는 마나라는 특별한 에너지를 매개로 하는 것.
갑자기 손에서 불이 일어나고 뇌전이 터진다. 무형의 방어막을 만들기도 한다.
그 구현의 과정이 불멸자의 감각에는 그저 손가락을 까닥거리는 수준이란 거다.
문제는 하나다.
마나를 느끼지 못하는 것.
주문이란 게 공기의 파동을 일으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조가 정해진 것도 아니다.
주문을 쓰는 사람은 백인백색이라 했다.
손에서 불을 일으키는 주문을 쓸 때도 다 제각각 쓰는 방식, 구동 원리가 조금씩 다르다는 거다.
손짓 하나에 불멸자가 보기에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난다.
불멸자의 감각의 밖에서 노는 것, 그게 주문이었다.
그럼 진짜 주문의 전조를 파악할 수 없을까?
난 이제까지 주문이 발동하는 과정을 몇 번이고 봤다.
코트의 헥사곤 필드가 발동하는 것도 봤고, 장갑의 은하수 방어막이 발동하는 것도 봤으며.
오늘은 바로 옆에서 인식장애술을 거는 것도 봤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수 없다면, 다른 거로 느낄 수는 없을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끝이었다.
이제껏 배운 기척 활용, 감각 활용의 모든 기법이 머리를 스쳤다.
내 머릿속에서 그 모든 기법이 재구성되고 조합됐다가 분리됐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듦과 동시에 머릿속에서 스파크가 일었다.
뇌가 제멋대로 활동하며 결론을 냈고, 난 유레카라고 외치는 대신 중얼거렸다.
“될 것 같은데.”
“응? 뭐가?”
옆에 선 혜민이 물었다.
“아니다.”
굳이 말해 줄 필요는 없겠지.
오감의 영역 밖에서 노니는 힘이라면, 나 또한 그 영역 밖에서 느끼면 된다.
슬며시 감각을 조정했다.
주문이 전조가 없이 발동한다지만, 변화는 일어난다.
그 변화의 순간을 잡아내면 되지 않을까?
난 그렇게 했다.
눈을 반개하고, 육감의 영역을 넓혔다.
요령이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하다 보니 금세 됐다.
뭘 시도하면 뚝딱 되는 게 일상인지라, 이상하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난 주문의 흔적을 느꼈다.
그제야 왜 혜민이 상대를 특정했는지 알 수 있었다.
불멸자의 감각을 동원했는데, 변신족의 후각이 반응했다.
시큼한 향이 났다.
오렌지와 라임, 열대과일이 떠오르는 향이다.
이게 매혹 주문이구나.
냄새가 식욕을 당겼다.
그럼 인식장애술은? 딱히 정의할 만한 냄새는 아니다.
다만, 칙칙하고 꿉꿉한 공기의 냄새라는 생각만 들었다.
굳이 보고 싶지도 않고 가까이하고 싶지도 않은 그런 냄새.
표현하자면 장마철의 꿉꿉한 공기 냄새 같은, 자연스레 불쾌지수를 높이는 그런 거다.
재밌네.
냄새로 느껴지는 거라면 모든 변신족은 마법을 감지하는 걸까.
그런 얘기는 못 들어 봤는데.
“불멸은 마법으로 잡는다며? 그럼 변신 애들은 주문으로 못 잡아?”
혜민은 골목길에 기대서서 생각에 빠져 있다가 내 질문에 답했다.
“변신족은 둔해 빠졌어. 불멸자도 못 느끼는 걸 변신족이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해?”
“아니. 그럼?”
그래, 나도 그건 무리라고 본다.
“그냥 몸으로 때워. 어지간한 마법은 변신족의 몸을 못 뚫으니까.”
아.
그럼 되는구나.
굳이 마법의 전조 따위는 찾을 필요도 없었다.
보이는 순간 달려들 텐데, 그거 보고 침착하게 마법을 발동하긴 힘들겠지.
“야, 됐다. 그 친구, 1팀 작전 사항을 외부로 유출한 흔적 있다. 우리는 그걸 미리 찾은 거고, 사장님 직속으로 보고 올리면 끝.”
내가 턱을 쪼갠 친구는 다행히 진짜 범죄를 저질렀다.
“그럼 이송할까요?”
“아니, 내부 감사팀에 요청했다. 곧 팀장님 가실 거다.”
팬더 대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뒤쪽에서 자박자박 걸음 소리가 났다.
“그쪽이 마법사 신입?”
박다람 팀장이다. 그 뒤쪽에는 감사 팀원 둘도 함께였다.
뒤쪽 둘이 키가 훌쩍 커서 박다람 팀장을 지키는 장승처럼 보였다.
물론 실제로 싸우면 박다람 팀장 손에 저 둘의 뼈가 조각조각 나겠지만.
“네, 신입 사원 강혜민.”
혜민이 말하고 눈을 빛냈다.
그 순간, 난 반사적으로 마법의 전조를 느꼈다.
밥 먹으면서 보안 3팀에 흔적이 있는지 찾았다더니, 이런 방식이구나.
슬그머니 바늘 같은 걸 들고 찌르는 그런 느낌이다.
거기에 반응하는지 안 하는지 지켜보는 거고.
이번에는 혀끝으로 쇠를 핥은 것처럼 알싸한 향이다.
팀장은 그 탐지 주문에 반응하는 대신 내 어깨를 툭 쳤다.
“잘해 줘. 이제 갓 스물 된 것 같은데.”
“알아서 잘 크는 타입이더라고요.”
“원래 알던 사이라고?”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나와 혜민이의 사이는 이미 사내에 소문이 파다했다.
“네 옆집, 앞집 전부 특수종인 거 아니니?”
박다람 팀장이 농담을 건네며 손짓했다.
뒤에 있던 두 명이 감사 팀원이 쓰러진 아웃사이더 요원의 전신을 칙칙한 회색 천을 둘렀다.
저 특수 재질의 섬유는 돌돌 말면 꽤 단단한 막대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저렇게 감싸고 가장자리를 돌돌 말면 훌륭한 들것이 된다.
곱게 잘 접으면 손바닥 크기로 소지 가능하니, 참 유용한 물건이다.
그걸 슬쩍 보는 사이, 혜민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설마요. 저는 아주 특별한 경우라서요.”
“그 특별한 경우가 뭔데?”
내가 물었다.
“그건 비밀. 마법사와 여자는 비밀이 많을수록 좋은 건데, 전 마법사고 여자니까. 신비주의 덩어리랍니다.”
말하며 찡긋 한쪽 눈으로 끼를 부리기에.
나도 모르게 주먹이 나갔다.
가볍게 뻗은 잽을 혜민이 스웨이로 피했다.
“아, 왜.”
“나도 모르게 주먹이 나갔다.”
진심으로 친 건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무슨 마법사란 애가 몸을 이렇게 잘 쓰나.
장난삼아 뻗은 건 맞는데, 그렇다고 이게 피하기 쉬운 건 또 아닌데.
“신원 파악하고 구금하겠습니다.”
요원 하나가 말했다.
“그래, 광익.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분위기가 뒤숭숭해. 몸조심해라.”
“네, 팀장님도요.”
우리 사이는 꽤 좋다.
누가 첩자인지 모른다고 했지만, 박다람 팀장은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사장 직속 기밀 작전 진행 중이라는 거로 박다람 팀장은 나한테 아무것도 묻지 않고 떠났다.
“아니지?”
떠난 뒷모습을 보며 물었다.
“마법 흔적은 없지만, 뭐 나한테 숨길 정도로 능숙하면 나도 모르는 거고.”
“너 씨, 일 제대로 하는 거 맞지?”
“아, 그럼 제대로 하지, 대충하냐고.”
분명 프로의 냄새가 났는데.
말하면 할수록, 왜 이렇게 막 나가는 애 같냐.
“몰라, 밥이나 사줘. 소고기 먹고 싶어.”
“니가 알아서 사 드세요.”
“돈 많다며 치사하게 굴래?”
“어디서 신입 나부랭이가 대리한테 말을 까?”
“난 파견 나온 거지, 공식적으로 님 회사 소속이 아니에요.”
“어쨌든 지금은 불특대잖아.”
“아, 진짜 짜증 나.”
혜민이 씩씩거리며 나갔다.
“내일 보자고.”
매일 같이 저녁 먹고 그런 사이는 아니잖아, 우리가.
통신으로 일을 마무리하고 내일 다시 주문의 흔적을 쫓기로 했다.
그렇게 헤어지고 기숙사로 가다가 편의점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서 물었다.
녹차맛 바 아이스크림이다.
달달하고 쌉싸름한 맛의 조화가 일품이었다.
반쯤 먹은 뒤, 옆 골목으로 슬쩍 몸을 넣었다.
냐-앙!
제집인 양, 어둠에 몸을 숨긴 고양이가 놀라서 털을 바짝 세웠다.
“미안.”
사과하고 몸을 돌렸다.
골목길 반대쪽, 빛을 등진 자리에 까만 얼굴이 보였다.
“이제 한국에서 자리 잡기로 한 거야? 혹시 한국 남자랑 결혼한 거니?”
날 따란따도라 부르는 프로메테우스의 간부다.
이전에 노필두를 잡은 덕분에 불을 들고 인류를 구원한다는 미친 테러 집단이 날 노릴 거라는 말은 들었지만, 여기서 날 덮치려고?
회사가 코앞인데.
“이거 마지막 제안이다.”
먹던 아이스크림을 한입에 넣었다.
우적우적 씹고 삼킨 뒤, 감각을 개방했다. 주변에 몇 명이나 있으려나.
“뭔데, 들어나 보자. 프러포즈할 거면 미리 거절하고.”
“시발 새끼.”
언어는 욕부터 배우라는 거라더니.
찰지게 잘도 한다.
“너, 전향해라. 대우 잘해 줄 거고, 원하는 거 다 줄 거다. 마지막이라고 했다.”
“솔직히 내가 안 들을 거 알고 있지?”
“후회할 거다.”
“후회는 개뿔, 지금 영사기 들고 온 놈한테 내가 할 말이지. 왜 저쪽 앞잡이 노릇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툭, 땅을 박차고 내 앞을 가로막은 따란따도 여자의 몸을 통과했다.
지잉.
홀로그램이기에 그 모습이 순간 흩어지고 그 뒤에 영사기를 가동한 작자의 얼굴이 보였다.
“언젠가 또 볼 줄 알았지.”
반가운 얼굴이었다.
스티븐 최.
이전에 나를 따란따도와 노필두 앞에 대령한 작자로 스카우터가 본업이란 작자다.
그런데 왜 자꾸 프로메테우스 앞잡이로 나서냐고.
놀란 스티븐 최가 눈을 동그랗게 뜬 사이 난 그의 멱살을 쥐었다.
“억, 잠시만요, 잠시만, 할 말이 있습니다. 중요한 얘기입니다.”
스티븐 최가 쉴 새 없이 말했다.
물론 난 그 말을 들어줄 생각이 없었기에 주먹부터 쥐었다.
“일단 한 대 맞고 시작하자.”
“진짜 중요한 얘기입니다.”
퍽.
응. 일단 맞고 시작하자니까.
정확하게 폐를 관통하는 펀치를 날렸다.
복부를 맞은 스티븐 최의 안색이 파래지더니, 곧 컥컥거리다 바닥에 엎어졌다.
“후회, 후, 회회회회회회, 하르하아아아아아아아알 거르르릇릇릇.”
스티븐 최가 엎어지며 몸으로 영사 장치를 깔아뭉갰는지, 뒤에서 영사기에 투사된 따란따도가 속사포 랩을 쐈다.
“당신은 저와 함께할 수 없습니다.”
난 그녀에게 목걸이를 선물하는 대신 거절의 말을 던진 뒤, 영사기를 찾아 발로 찍었다.
쿵.
곧 뒤에서 듣기 싫은 랩을 지껄이던 따란따도의 모습이 사라졌고.
“우리 얘기 좀 할까?”
내 눈앞에는 스티븐 최가 있었다.
“아니, 대뜸 주먹부터…….”
헐떡이면서도 스티븐 최는 할 말 다 했다.
“응? 한 대 더 치고 시작할까?”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냥 시작하죠. 전 준비가 됐습니다.”
상대가 대화할 준비를 끝냈다. 난 기꺼운 마음으로 물었다.
“너 뭐야?”
일단 정체부터 까발려 볼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