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Of the Unique Lineage RAW novel - Chapter 20
18. 1등 따윈 필요 없어
“2위 정기남.”
단상 위의 교관이 말했다.
그 말을 들으며 난 지난 한 달 동안 깨달은 사실을 떠올렸다.
아버지에게는 듣지 못한 부분이었는데 그 첫째가 바로 순혈과 혼혈의 차이였다.
이 둘 사이에는 격차가 있었다. 혈통 우월주의 따위가 아니라, 어떤 피를 이었냐에 따라 편차가 있다는 거다.
순혈은 혼혈보다 회복 속도가 빠르고 감각이 더 예민했다.
그건 곧 불멸의 육체를 다루는 능력으로 이어졌고.
그 능력의 차이가 곧 훈련 성적의 차이로 이어진 건 당연했다.
그러니까 저 위에 단상으로 올라서는 정기남, 내가 잘생긴 개나리 새끼라고 부르는 놈은 순혈 중의 순혈.
이 땅에 있는 불멸 중에서도 가장 상위에 손꼽히는 세 혈통 중 하나였다.
다 전해 들은 얘기다. 저 새끼랑은 대화 따위 나눠 본 적이 없으니.
하여간 그래서 저놈은 제대로 잠도 못 자면서도 모든 훈련에서 상위 랭크의 성적을 거뒀다.
근접 격투.
체력 측정.
총기 관리.
인베이더 대응법.
불멸 육체 활용도.
모든 수업에 임할 때마다 무서운 집중력을 보여 줬다.
내가 보기에 능력도 능력이지만, 의지가 더 대단해 보이긴 했다.
눈 밑이 검은 채로 잘도 날뛰더라.
그러니 총 성적 2위는 당연한 거다.
“설마 내가 1위 아니야?”
귀태 형이 김칫국물을 거하게 자셨다.
“우리 귀태 형, 아픈 사람이었구나.”
그리 속삭여 주니.
“그래. 형은 아니지.”
요한 형이 옆에서 말했다.
난 이미 1등을 알고 있다.
난 아니다.
아마 훈련생 중 이미 눈치챈 놈도 꽤 있을걸?
“아오, 이런 것들도 친구라고.”
방귀태가 핀잔을 주는 사이, 단상에 있던 교관이 1등을 호명했다.
“우미호.”
“네.”
내 앞앞에 서 있던 여자가 앞으로 척척 걸어 나간다.
땋은 머리를 뒤로 늘어뜨린 관찰력 좋은 3조의 룸메이트다.
내가 셜록 홈즈 개나리라 부르던 여자였다.
키 165cm, 추정 몸무게 50kg.
공감 능력은 형편없고, 말하는 건 재수 없지만, 머리는 기가 막히게 잘 돌아가는 녀석이었다.
그녀는 철저하게 점수를 모았고 벌점은 줄였다.
상점과 벌점의 적용 방식을 파악했고, 그에 따른 프로세스로 움직였다.
“박수.”
교관의 말에 훈련생이 손뼉을 쳤다.
앞에 셋이 나란히 선 게 보였다.
1등 우미호, 2등 정기남, 3등 기효민.
그들을 보며 난 저 셋과 어떻게든 엮일 거란 예감이 들었다.
“내일 오후 2시까지는 자유시간이다.”
교관이 말했다. 이 말뜻이 뭐겠나.
이제 할 거 다 했으니, 뒤풀이하란 소리겠지.
훈련생은 삼삼오오 흩어졌다.
나도 귀태와 요한, 그리고 동갑내기 친구이자, 내가 비만 불멸자라고 불렀던 강푸름과 함께했다.
의외로 저 차디찬 정기남에게도 일행이 붙는다.
나와 이 셋을 제외한 나머지 룸메이트였다.
“마지막이네.”
“그래.”
“또 보겠지.”
“보겠지.”
냉정하지만, 그래도 대답은 한다. 바람직한 사회생활 태도라고 볼 순 없어도 의사소통은 원활한 편이다.
그리고 1등, 우미호.
별명 여우년, 사이코패스.
현 상황에서도 유일하게 혼자 멀뚱히 패드를 조작하며 시간을 보내는 동기다.
아무도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고 그녀도 아무에게도 다가가지 않는다.
그게 이제까지 우미호의 포지션이었다.
이걸 보고 누가 나에게 저 친구는 왕따냐고 묻는다면, 난 그 반대라 말하겠다.
“후, 또 혼자네. 오늘이야말로.”
방귀태가 호흡을 가다듬고 미호의 앞으로 나아갔다.
“오늘 마지막 날인데…….”
예민한 불멸의 청각은 그가 쏟아내는 말과 우미호의 답을 그대로 내 귀에 전달했다.
“불필요하고 쓸모없는 시간 낭비는 그만두고 자신의 부족한 소양을 채워.”
방귀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두 번 당했어야지.
처음부터 우미호를 눈여겨보더니, 한 3주 차부터 줄기차게 들이댔다.
교관이나 파랑새도 그건 말리지 않았다.
따로 연애 금지란 말도 없었고, 오히려 훈련에 익숙해지고 서로 친해지는 걸 장려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방귀태도 용기를 냈었지.
“예쁘다. 너.”
“넌 아니야.”
난 분명히 기억한다. 이게 둘의 첫 대화였다.
이 말을 끝으로 우미호는 쌩하니 지나갔다. 그날 귀태 형은 충격으로 평소 먹던 것의 반만 먹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이 방귀태란 인간은 멘탈이 참 튼튼하다는 거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했다.”
“있어. 많아. 그런 나무.”
내가 의젓하게 조언했지만.
“안 들려.”
귀태는 무시했다. 우리 불쌍한 귀태는 그렇게 저 개싸가지에게 반했다.
우미호의 연수 성적은 1등이지만, 다른 면에서는 꼴찌였다.
합동 훈련에서는 점수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동기 내팽개쳐.
자기를 보고 접근하는 애들한테 그 시간에 부족한 능력이나 키우라고 해.
아니, 모든 훈련에서 개싸가지 우미호 양의 스탠스는 같았다.
사람을 필요와 불필요로 나눈다.
물론 모든 사람은 다 그런 경향이 있을 수 있지만, 쟤는 그걸 너무 티를 냈다.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태도를 보이니 다가오는 사람이 없고.
그걸 뚫고 저리 다가가는 사람이 있어도 쳐 내니.
당연히 혼자다.
영원히 혼자 살 것 같은 여자다.
“그래, 부족한 소양은 채울게. 그건 그거고 오늘 마지막인데 나랑 한잔할래?”
방귀태, 우리의 방귀태 선수는 오늘도 굳건합니다.
몸쪽 꽉 찬 직구를 날렸습니다!
안 그래도 다들 냉장고에서 맥주, 소주, 위스키 따위를 꺼내 마시고 있다. 전부 성인이고 마지막 날이니.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한 방귀태는 벌써 열다섯 번쯤 저 나무를 후려갈겼다.
하지만 나무는 굳건했다.
“알코올 섭취는 인지 능력을 떨어뜨려. 불필요해.”
아이고, 똑똑이 나셨네.
술을 뭐, 머리 좋아지라고 마시냐.
“16전 16패. 그것도 전부 KO.”
사내 방송에 버금가는 입 싼 요한이 말했다.
“그래도 용기에 난 박수를 보내겠다.”
내가 말하자.
“됐어.”
귀태가 몹시 우울한 얼굴로 돌아와 답했다.
처진 모습을 보니 보기 안쓰럽다.
까득.
“입사하면 다시 간다.”
귀태가 어금니를 꽉 깨물더니 말했다.
그래, 지치지 마라. 방귀태.
포기를 모르는 남자, 방귀태.
그 뒤는 적당한 곳에 모여 마시고 먹는 파티가 벌어졌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연스럽기도 하지.
파티라고는 해도 조용하다.
그저 소소하게 얘기나 나누며 지나간 날을 기억하는 그런 시간이었다.
이 시간 동안 감각이 익숙해진 친구도 있었고 아닌 녀석도 있었다.
불멸이 모인 뒤풀이는 일반인 기준으로 보자면 조용했다.
먹고 마시고 적당한 시간을 보냈을 때다.
“48번 훈련생?”
파랑새 하나가 날 찾았다.
방에서 시시덕거리던 중이었다.
“네.”
“잠깐 면담.”
난 순순히 따라 나갔다. 중간중간에 이런 면담은 수없이 있었다.
뭐, 누가 가장 좋은 인상을 줬느니,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였느니, 따위를 묻는 그런 면담.
마지막까지 참 충실하기도 하지.
그런 면담이라 생각하고 숙소 뒤편으로 나갔다.
해가 져서 어둑어둑했다.
여긴 가로등도 없었다.
그래도 불멸의 눈이다. 약간의 빛으로 주변을 보는 건 문제 없었다.
내 앞에 선 파랑새는 담배를 하나 꺼내 물고는 슬쩍 담뱃갑을 들이밀었다.
“피우나?”
“안 피웁니다.”
“굳이?”
불멸자는 담배로 인해 몸이 상하지 않는다. 그러니 흡연의 이득은 취하면서 단점은 배제할 수 있다.
그래서 흡연자가 많았다.
“냄새가 별로라서요.”
“음. 뭐.”
파랑새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말했다.
“혹시 가고 싶은 부서 정했나?”
기본적으로 훈련생은 희망 부서를 적을 수 있었다.
화림은 인사, 파견, CS, R&D 총 네 개의 큰 분류로 팀을 나눈다.
패드를 보고 열심히 공부한 덕에 나도 잘 아는 사실이다.
“인사 쪽 어떠냐?”
담배를 문 채로 파랑새가 말을 이었다. 여기까지 끌고 오고 말을 건다는 건, 나한테 관심을 보인다는 거겠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난 대답을 미뤘다.
“그래? 잘 생각해 봐. 인사는 회사의 핵심이다.”
그렇게 말하고 파랑새가 떠났다.
다시 방으로 돌아오니, 이번에는 다른 파랑새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얘기 좀 하지?”
글래머 파랑새였다.
아까의 그 장소였다. 희미하게 담배의 잔향이 남아 있었다.
변신족의 후각으로는 느껴지지만, 불멸은 못 맡으려나?
다시 불멸의 귀로도 들리지 않을 만큼 멀어진 뒤, 난 두 번째 제안을 받았다.
“너 파견으로 올래?”
“파견이요?”
“관심 없어?”
아까와 같은 상황이었다.
“네, 고민해 보겠습니다.”
그래서 비슷한 답을 건넸다.
“……너 무슨 사고 쳤냐?”
돌아오니 요한이 물었다. 두 번이나 불려 나가는 걸 보니 이상하기도 하겠지.
“아니.”
사고는 무슨.
사실 예견된 결과지.
난 처음 들어온 날부터 이 오티를 왜 하는지부터 관심을 뒀다.
그냥 성적으로 줄 세우기라면 굳이 한 달이나 필요할까?
아니지. 그 한 달이란 시간이 참 애매했다.
굳이 한 달을 한곳에 모아 놓고 굴릴 필요가 있을까?
패드를 통한 정보와 간간이 떠드는 교관의 말을 종합해 본 결과.
어차피 입사해도 훈련은 계속된다.
굳이 이렇게 모아놓고 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이 회사가 바라는 건 무엇인가. 이 오티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합동 훈련, 단체 체력 단련 시간, 팀을 이뤄 싸우는 격투 훈련 따위를 하다 보니 자연히 알 수 있는 게 있었다.
대외적으로는 성적을 매기기 위한 자질 측정과 불멸의 기본 소양을 키우기 위한 오티였지만.
내심 이걸 계획한 사람은 다른 걸 바란다는 것.
신입 사원에게 가장 바라는 것.
그건 상점과 벌점의 적용 방식을 읽고 그에 맞춰 행동하는 게 아니었다.
머리 좋은 우리 꺾이지 않는 나무, 우미호 양은 여기까지는 머리를 굴린 모양이지만.
이건 사회성의 문제다.
내가 어릴 때부터 여기저기 구르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과 매가 함께한 가정 교육을 통해 체득한 것이다.
다른 사람과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보고 싶고, 그걸 익히게 해 주고 싶단 거다.
그러니까 대외적으로 밝힌 줄 세우기 성적보다 중요한 건, 사실 성적표 뒷면에 적힌 교관의 한 줄 평이란 거다.
“덕분에 그동안 잘 잤다. 적응도 빨랐고.”
1조 문신남을 시작으로.
“밖에서 한번 보자.”
연락처를 적은 쪽지를 주는 2조의 여자.
“이런 말 하기 좀 그런데, 우리 아버지가 이미 화림에 있어. 또 보자.”
제 아버지의 소속을 몰래 밝히고 호감을 밝히는 동기.
참으로 많이도 날 찾았다.
1등? 점수를 많이 따서 할 수 있는 거? 마음만 먹었으면 일도 아니다.
하지만 그딴 게 중요하지 않다는 걸 눈치챘으니 굳이 거기에 연연할 필요가 없지.
그래서 우리 비만 불멸 친구 강푸름을 두들겨 일으켜 이끌었고.
감각을 컨트롤하는 법도 공유했으며.
그래도 못 자는 놈들을 꿈나라로 보내 줬다.
전부 다 계산하고 한 짓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예상한 일이었다.
이게 계획이었다.
난 오티 기간에 깊은 인상을 남긴 훈련생으로 남은 채로 입사하면 되는 거였다.
동기에게도 점수를 와장창 따 놨으니 나중에라도 도움이 될 것 같고.
기왕 하기로 한 거 제대로 할 생각이었다.
그리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이다.
“전원 주목.”
낮고 조용한 목소리가 방안에 울린다.
어라? 언제 들어왔지?
열 명 전원의 이목이 한곳으로 모였다. 아무리 긴장감을 풀어 놨다고 해도 이제 어느 정도 감각을 조율하는 불멸자 10명이다.
순혈과 혼혈이 섞여 그 감각의 예민함이 다르다지만, 그 열 전부를 속이고 방 안에 몰래 들어온다?
보통내기는 아니었다.
난 반사적으로 상대가 쓴 기술을 알았다.
불멸 비전, 기척 죽이기.
과외 선생에게 배운 기술이었다.
말쑥한 정장 차림의 남자였다. 금테 안경을 쓴 채로 뒤를 향해 말했다.
“여깁니다.”
슬쩍 뒤를 보니, 누군가 있었다.
이번에는 기척을 숨기지 않은 상대다.
이건 또 뭔데.
뭔가 싶어 보고 있으니, 누군가 또각또각 구둣발 걸음으로 들어왔다.
나이는 30대 중반 정도로 보인다.
빼어난 미모의 얼굴은 불멸임이 분명했다.
그러니 보는 것보다는 나이가 많겠지.
“이번 기수에는 훌륭한 인재가 많다고 들었다.”
그가 말했다. 다들 멀뚱히 보자, 그가 말을 잇는다.
“아, 내가 누군지 말 안 했구나.”
남자가 사람 좋은 웃음을 흘린다. 모두가 눈을 깜빡이며 말을 잇지 못하는 상황에서 홀로 말을 이었다.
“내 이름은 남명진.”
어, 어디서 많이 본 이름인데.
“일동 기상.”
그의 뒤에서 파랑새 하나가 나서서 말했다. 그 작은 목소리가 모두의 귀에 닿았고.
나를 비롯한 전부 일어났다.
“경례.”
파랑새가 말하고 우리는 거수경례를 했다.
말이 회사지, 이곳은 군대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그리고 난 왜 이 작자의 이름이 익숙한지 알았다.
패드에서 봤으니까.
직속 상관 맨 꼭대기에 있던 이름이었다.
남명진.
현 올드포스 한국지부의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불멸자이자.
화림정보통신의 사장이었다.
그러니까, 거물의 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