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Of the Unique Lineage RAW novel - Chapter 244
241. 바로 말고 내일
눈을 감았다가 뜬 순간, 검은 그을음으로 구현된 그림자가 바닥에서부터 일어난다.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가 구현돼 눈앞에서 자라나기 시작한다.
작은 그림자가 불쑥불쑥 커진다.
하나가 아니었다.
총 넷.
초능국에서 만난 대장로의 칼이라는 더블 능력자가 하나.
그림자에 숨는 놈이 둘.
그리고 순혈 변신이 하나다.
상상으로 구현된 그림자가 날 노렸다.
난 몸을 틀고 땅을 박찼다.
사방으로 몸을 날리며 좁은 공간 안을 휘저었다.
몇 시간이고 주먹을 뻗고 다리를 휘둘렀다.
채찍처럼 휘어진 다리가 그림자 하나를 부순다. 의미 없었다.
그림자는 다시 자란다.
숨이 턱턱 막히고 전신에 땀이 흠뻑 젖을 때까지 움직였다.
중력 제어 장치 덕분에 몸이 무겁다.
그림자는 그런 것 따위에 영향받지 않는다. 이미지니까.
쉐도우 파이팅이 정점에 이른 순간, 몸에 두른 인듀어가 힘껏 몸을 더 조였다.
근육이 미세하게 찢어진다. 불멸자의 촉각은 그 모든 걸 잡아챈다.
인듀어의 조이는 힘.
중력의 압박.
쉐도우 파이팅의 재료.
모든 게 내 몸을 혹사한다. 낭떠러지 끝에 서 있는데 누군가가 등을 떠미는 듯했다.
몰아치는 통증과 고통 사이에서 희열이 느껴졌다.
몸의 움직임은 둔중해졌지만, 대신 공격의 동선을 짧게 하면 된다는 걸 깨달았다.
한 번의 공격을 두 번으로 나누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잽을 뻗고 회수하는 사이, 손가락을 펴 갈퀴처럼 긁는다.
변신족의 괴력이라면 뻗은 손을 당기는 것만으로도 단두대의 그것과 같은 위력을 낼 수 있었다.
“후아!”
호흡을 길게 들이마시고 뱉은 순간, 그림자가 사라졌다.
중력도 사라지고 인듀어 장치를 해제하니, 몸이 날아갈 것 같았다.
자잘한 통증이 전신 근육을 아리게 했다.
그게 내 훈련의 성과를 증명하는 기분이 들었다.
알찼다.
생각보다 알찬 경험이란 생각이 든다.
대장로 세력과 싸운 일이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덕분에 쉐도우 파이트 과정이 풍부해졌다.
그 양반, 잘 살아 있으려나.
훈련 시설 밖으로 나오니, 정직이가 수건을 들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너도 중력 훈련하게?”
“전 변신족 아닙니다. 형님.”
얘는 언제부턴가 날 형님이라고 부른다.
“여기 회사다.”
“네, 형님.”
대표라고 부르라는 말을 이리 받으니, 할 말이 없다.
뭐, 호칭이 그렇게 중요할까.
애초에 대표님 소리 들으려고 차린 회사가 아니다. 신경 쓰지 않았다.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정직이의 어깨를 쥐고 뒤로 던졌다.
반사적으로 놈이 광변환을 시도하려 하기에 발로 아킬레스건을 툭 찼다.
균형을 잃은 놈의 초능이 풀렸다. 그렇게 정직이가 중력 제어실 안으로 들어갔다.
텅.
“교관이 부재한 관계로 이 몸이 교관을 대행한다.”
문을 닫고 말했다.
문의 반이 유리다. 그 유리 너머로 정직이의 동공이 흔들리는 게 보였다.
나와 눈이 마주친 정직이가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이건 아니라고, 진짜 아니라고.
그리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가여웠다.
“올려요.”
그래서 더 가혹하게 하기로 했다.
사자는 자기 새끼를 절벽에서 떨어뜨린다고 했던가.
실제로 그런 사자가 있을까, 일종의 우화(寓話)다.
하지만 때론 이런 우화가 도움이 되지 않던가.
난 사자와 새끼의 우화를 도움이 되는 쪽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저 친구 초능 특수종 아니냐? 애를 말려 죽이게?”
중력 제어실은 긍낙이 삼촌의 선물이다.
선물해 준 건 좋은데, 이후로 정말 자주 온다. 참 할 일이 없어 보이는 삼촌이다. 지금도 삼촌이 온 김에 중력 제어 장치를 조작해 주고 있었고.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삼촌인지라, 백수 한량처럼 보인다고 말하는 대신 보통은 꽤 반기는 편이었다.
“안 죽어요. 정직이는 사자의 새끼가 될 겁니다.”
“아니, 쟤 변신족 아니지 않냐?”
“아니죠.”
그게 문제가 되나? 눈을 깜빡이며 삼촌을 바라보자 삼촌이 고개를 저으며 중력 제어 레버를 움직였다.
“……모르겠다. 난.”
곧 안에서 곡소리가 났다.
“끄억, 이건, 아니, 아니지 않습니까르윽.”
까르륵까르륵 웃는 건가? 그럼 아직 여유가 있다는 거다.
중력을 더 올릴까 싶어 안을 살폈다.
정직이가 눈에 핏발이 선 채로 버티는 게 보였다. 적어도 행복에 겨워 웃는 게 아니라는 건 잘 알 수 있었다.
“버텨, 그게 시작이지.”
작대기 선생님이랑 통나무 선생님은 내가 정직이를 가르치는 방식을 보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애 잡을 생각 아니라면 관두라는 거다.
문제가 있다는 거고 난 내 문제를 금세 알아챘다.
내 기준이 너무 높은 거였다.
그래서 기준을 좀 낮췄다.
그렇다고 해서 만만하게 할 생각은 없지만.
“이 악마.”
정직이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귀에 선명하게 꽂혔다.
즐거웠다.
저리 말하니, 진짜 악마가 어떤지 보여 주고 싶은 생각이 들 만큼.
“삼촌, 초능 특수종도 훈련만 하면 변신족이나 불멸자랑 싸워 볼 만하지 않을까요?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애 잡겠다.”
삼촌이 혀를 찼다.
“몸에 체력은 좀 붙여 둬야죠.”
개인 능력을 올리는 건 중요하다.
습격자가 증명하지 않았나.
특수종 세상, 미친 자들의 세상에는 아직 힘숨찐이 많다고.
그럼 그에 맞는 준비가 필요한 법이다.
최소 전투력은 갖춰야 한다는 말이다.
폰을 들었다. 톡이 몇 개 와 있었다.
[불꽃 남자 알] 대장로 호위대가 골치 아팠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후, 염병, 그래도 개 같긴 해. 내 왕위 내가 차지한다는데 뭐 이렇게 걸리적거리는 게 많아?대장로와 장로원은 제압했지만, 그들 전력을 다 때려 부순 건 아니었다.
내가 떠난 이후 바람같이 즉위식을 마치고 왕의 권력을 찍어 누르는 중인데, 아직도 반항하는 애들이 많단다.
답장을 보냈다.
필요하면 가서 꿀밤이라도 한 방씩 먹여 주겠다고.
[불꽃 남자 알] 됐어. 다들 죽으면 안 되는 놈들이다.음? 꿀밤을 먹인다고 했지, 죽인다고는 안 했는데?
[불꽃 남자 알] 살인마야? 사람 머리통을 다 깨부수게? 바쁘다. 나중에 연락해.연락은 네가 했다. 왕자 새끼야.
알은 알, 여전히 마이 페이스다.
팬더 형한테도 연락이 와 있었다.
[팬더] 냄새가 고약해.대뜸 이렇게 보내면 오해의 소지가 깊지 않나.
팬더 형은 NS, 정확히는 나한테 보낸 도둑의 배후를 쫓는 중이다.
그 시간이 벌써 일주일이 넘었다.
아직 기다려 보란다.
팬더 형 아이들이 활약했다.
범죄 조직에 들어가든 말든 키운 애들은 좋은 정보원이었다.
그들은 이 바닥에서 떠도는 소문을 듣고 전했다.
팬더 형은 그걸 종합해 추리하고 결론을 내리며 소문도 좀 뿌렸다.
NS가 탈탈 털렸다고.
그런 적 없다.
털리긴 뭘, 서버실에 발을 들이기도 전에 마리가 머리통을 반쯤 깨 놨다.
나도 걔들 봤는데, 더 심문할 것도 없더라.
보자마자 눈물과 콧물의 이중주로 빌었다.
“살려 주십시오!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시킨 놈 제가 잡아 오겠습니다!”
경찰에 잡힌 놈들을 마주한 순간에 들은 말이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고.
눈으로 지혜 팀장에게 물으니.
“경찰 쪽에서 힘 좀 썼어요.”
범죄자 인권 이런 거 안 챙기고? 우리나라 그런 거 민감하지 않나?
“왜? 나 잘했죠? 잘했으면 데이트?”
빤히 바라보니, 이런 소리나 하더라.
인권 따위는 요만큼도 걱정 안 하는 것 같아서 그러려니 했다.
알아서 하겠지.
내가 한 일도 아니고.
하여간 이런저런 일들로 일주일이 지났다.
그사이 또 다른 도둑은 없었다. 또 털러 왔으면 신나게 여기저기 몸 구석구석을 털어 주고 싶었는데 아쉽다.
도둑 대신 스티븐 최가 안 좋은 소식을 가져왔다.
“이 바닥이 소문에 좀 민감한 곳인 건 알죠?”
“왜?”
스티븐 최는 능력이 있다. 사람을 구하는 쪽에서는 비교 불가의 프로다.
일전에 프로메테우스 쪽으로 날 헤드 헌팅하려고 하지 않았나.
그거 보통 간덩이로는 못 할 짓이다.
발 한번 잘못 디뎌서 테러범으로 찍히고 잡혀가면, 그때부터 얘는 없는 사람이다.
정부가 그리 만만한 집단이 아니다. 테러범으로 잡히면 미래가 불투명한 수준이 아니라 까맣다.
뭐, 그런 면에서 나름대로 대비책은 마련해 뒀다고 듣긴 했다만.
법보다 가까운 주먹은 언제나 무서운 법이니까.
스티븐 최는 자신만의 신념도 투철했다.
왜 그렇게까지 목숨 걸고 일하냐고 하니.
자기는 이 일이 좋단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알아보고 그 사람이 자리를 옮겨 활약하는 걸 보는 게 즐겁단다.
그게 특수종 전문 헤드 헌터가 된 이유라니.
“그러는 대표님도 굳이 회사까지 차려서 이런 일을 할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난 있지.”
“뭔데요?”
“내 위에서 누가 명령하는 게 배알이 꼴려.”
다른 이유가 많지만, 이것도 이유 중 하나다.
그 말에 스티븐 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가 진짜, 이런 회사에…….”
이런 중얼거림도 들렸다.
어쨌든 이 투철한 직업 정신의 능력자가 고개를 저었다.
“NS에 들어오면 제명에 못 산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이거 진짜 안 좋습니다. 일이 안 들어오는 것보다 더.”
“맞는 말이다.”
중고 형도 거들었다.
난 사무실 파티션에 등을 기대고 눈으로 되물었다.
이게 무슨 말인지 설명을 해 줘야지.
“어떨 때 보면 진짜 천재 같은데, 지금 보면 또 아니란 말이지.”
날 보며 중고 형이 중얼거렸다.
난 가끔 진짜 궁금한데, 이 두 양반은 내가 불멸자인 걸 까먹는 건가.
“다 들려요.”
“알아.”
이렇게 뻔뻔하게 굴어서 더 뭐라고 할 수도 없다.
둘은 이어 설명했다.
간단한 일이다.
도둑이 들고 습격을 받은 이 일은 방아쇠였다.
그 방아쇠는 NS의 약점을 들췄다.
테러 단체와의 불화.
특히 프로메테우스랑은 철천지원수다.
전향한 테러범까지 품에 안은 판이다.
프로메테우스와는 진즉에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마주 보는 사이다.
이게 끝도 아니다.
박혁을 때려죽인 덕분에 세계 곳곳에 퍼진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뒷배라는 테러 단체 이시스에게도 찍혔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더 있다.
순혈 정가와 사이가 나쁘다는 말도 돈다.
정부와 단군그룹과 사이가 좋긴 하지만.
“애초에 NS는 시작이 다르니까, 그 특출남과 특이함을 다들 꺼리는 거지.”
중고 형이 말했다.
테이블 위에 턱을 괸 형의 눈 밑이 까맸다.
“중요한 건, 초능국의 왕자가 일을 줘도 제대로 처리할 인원을 구할 수가 없다는 거지.”
NS에 소속되면 여러 가지 불이익이 있는 것처럼 말이 퍼진 거다.
테러 단체의 타겟이 되고.
국내에 있는 기득권 중 날 싫어하는 이들이 많으니, 불이익은 뻔하고.
그럼 일하기 어렵고.
하, 이것 봐라?
직감이 말한다.
딱 봐도 누가 제대로 작업 들어온 거다.
생긴 지 석 달도 안 된 회사에.
개수작이다.
부르르.
폰이 울렸다.
팬더 형이었다.
“잠시만.”
둘에게 손바닥을 보이고 전화부터 받았다.
“일이 더럽게 됐다.”
팬더 형이 대뜸 말했다.
“왜요?”
“꼬였어. 상대가 좀 나쁘네.”
“누군데요?”
“……약속해라. 바로 들이받지 않기로.”
누굴까.
이 정도로 주저하는 거 보면.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단군그룹을 무조건 아군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요즘 계속 제 회사 출근 안 하고 내 회사로 출근 도장 찍는 삼촌의 모습이 머리를 스쳤다.
“약속해요.”
말하고 답을 기다렸다.
팬더 형은 주저 없이 말했다.
“순혈 정가.”
불멸자의 직감이 항상 정답은 아니다.
긍낙이 삼촌은 진짜 그냥 놀러 온 거였나 보다. 되게 할 일 없어 보이니까 그러지.
그러면서 사내 평가는 또 최고라는데.
거참, 모를 일이다.
“그리고”
음? 순혈 정가가 끝이 아니야?
팬더 형이 마저 말을 이었다.
“불멸교.”
허허, 이거 참.
“산뜻한 이름이 둘이네요.”
하나는 마윤 상무와 개수작을 해서 어머니의 신변을 위협하던 축 중 하나고.
다른 하나는 나한테 씨를 뿌리려는 불멸자를 사육하는 개장수다.
“소문은 들었죠?”
대뜸 지금 들었던 말을 했다.
팬더 형은 이미 아는 내용일 터였다.
“이런 수작질은 본래 정가의 특기야.”
회사를 망하게 하는 법? 힘으로 안 되면 머리를 쓰면 되는 법이다.
어떻게 보면 스타일리쉬한 공격이었다.
도둑을 보내 문제가 터지면 좋고, 그게 안 되면 이렇게 소문으로 조지면 되는 거다.
진짜 기가 막히네.
누가 머리에서 나온 작전인지는 몰라도 꽤 괜찮네.
감탄했다.
“들어오세요. 준비하셔야죠.”
“바로 들이받지 않기로 했잖아.”
“네, 그랬죠.”
“근데 뭘 준비해?”
생각은 짧았고 결심은 빨랐다.
순혈 정가는 뭘 믿고 이럴까?
권위다. 이 땅에 뿌리내린 그 시간을 믿을 것이다.
그래서 알려 줄 셈이다.
난 그딴 거 모르겠다고.
“바로 말고 내일 가게요.”
일주일, 팬더 형이 배후를 캐는 동안 난 출격 준비를 끝마쳤다.
“이 또라이.”
틀린 말은 아니잖아. 바로 들이받지 말라는 말에 그 바로의 기간을 정하진 않았으니까.
“나도 모르겠다. 밑에서부터 할 거지?”
어째 팬더 형, 내 이런 반응을 예상한 것 같았다.
“네.”
“내가 하나 치고 간다.”
“혼자요?”
“상대가 재미없게 구는데 우리도 똑같이 가야지.”
팬더 형이 말했다.
마음에 쏙 드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