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Of the Unique Lineage RAW novel - Chapter 45
43. 한낱 개미
김동철 이사는 놀랐다.
가끔 이런 놈들이 있긴 했다.
혼혈이면서 육체 능력만 무식하게 발달한 경우가.
보통 이런 혼혈을 이레귤러라고 부르곤 했다.
그런데 아무리 이레귤러라고 해도 이건 좀 과했다.
“와, NS야?”
담당은 자신인데, 굳이 일정이 없다고 한 자리 차지하고 구경하던 사장이 말했다.
그의 눈앞에 놓인 모니터에 실시간으로 평가표가 올라오는 중이었다.
사장의 눈빛이 반짝였다.
신이 나 보였다.
그래, 사장이 찍은 놈이라고 했었지.
이사는 평가표를 훑었다.
각 클래스 기준이 보였다.
F는 낙제다. 하나만 있어도 바로 퇴사 처리다.
E는 낙제 직전이다. 두 개 이상 나오면 퇴사 고려다.
D부터는 다른 특기가 없다면 살아남기 어려운 클래스다.
C는 일반 불멸의 수준이고.
B부터는 특출났다고 할 수 있었다.
A는 그 특출난 불멸 중에서도 드문 재능을 가졌단 소리다. 기재와 영재의 수준이라 봐도 좋았다.
S는 하늘이 내린 재능이다. 즉, 천재다.
본래라면 S를 넘어서는 클래스는 없다.
유일하게 감독관 재량으로 파악하기 힘들 때 쓰는 게 NS, 규격 외 클래스다.
본래라면 10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그 NS.
그게 평가지를 수놓았다.
근력, 순발력, 반사신경, 유연성, 육체 내구도, 심폐 지구력, 근지구력, 반응속도.
“약물 검출 없고.”
사장의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불멸의 예민한 감각이 그의 감정을 읽었다.
역시 신났다.
“스니치 테스트를 3초 컷했네?”
사장이 중얼거렸다. 들으라고 하는 소리였다.
나도 알아.
“네, 대단한 인재군요.”
김동철 이사는 속으로 말하고 겉으로는 다른 말을 뱉었다.
겉과 속이 다른 것은 사내 정치의 기본 아닌가.
스니치 테스트는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착안한 거로, 황금색 공을 5평의 정육면체 공간에서 잡아채는 걸 말했다.
그것도 한 번에 두 개를 낚아야 성공인데.
그걸 3초 만에 클리어했다.
“이중봉 팀장 신기록이 몇 초였지?”
사장이 미소와 함께 물었다.
“4초 8입니다.”
비서가 답했다.
“우리 광익이는.”
“3초 9입니다.”
언제부터 우리 광익인가.
김동철 이사는 답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신기록이었다.
그 외 모든 기록을 갈아치운다. 이게 올림픽이고 생방송 중이었다면, 대한민국 국민 전부 떼창으로 광익의 이름을 외쳤을 것이다.
“피지컬 좋고.”
사장이 말했다.
김동철 이사는 그걸 보며 생각했다.
사실 기분 나쁠 건 없다.
‘저 정도 인재라면.’
불멸의 재능이 형편없어도 데려올 만했다.
사장이 찍었다고 해서 자신의 사람이 되지 말란 법은 없지 않나.
재능이 뛰어난 신입이다. 자신의 밑에 두면 좋을 것이다.
모니터 화면 너머로 광익이 육체 테스트 이후 감각 테스트에 들어가는 게 보였다.
여기서는 D클래스만 나와도 나쁘지 않겠지.
조금 욕심내면 C클래스다.
그리고 광익이 감각 테스트에 들어갔다.
멀티테스킹, 감각 분할, 통증 분리, 감각 세밀화.
몇 가지 테스트가 시작되고.
김동철 이사가 결과를 보며 손끝을 파르르 떨었다.
“너한테는 너무 커, 삼킬 욕심 내지 마라.”
사장이 말했다.
뒤를 돌아보니 서늘하게 빛나는 눈빛이 보인다. 김동철 이사는 침을 꿀꺽 삼켰다.
“뭐라고 하신 겁니까?”
“이 친구한테 얘기한 거야.”
사장 옆에서 비서가 주먹만 한 마카롱을 한입에 넣고 있었다.
더럽게 안 어울리는 장면이었다.
그와 동시에 김동철 이사는 생각했다.
‘전무님께 연락을.’
화림은 두 개의 파벌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사장, 다른 하나가 임원 무리다.
사장은 독고다이다.
혼자 모든 걸 처리하고 움직인다.
임원 쪽은 달랐다.
전무를 필두로 그 밑에 똘똘 뭉쳐 있었다.
김동철 이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응, 급하면 뛰어가고.”
사장의 말에 이사는 나가며 전화기를 들었다.
불멸의 청각으로도 들리지 않을 시점에서야 그는 몇 가지 단어를 조합해 메신저에 쓰고 전송 버튼을 눌렀다.
* * *
숨을 고르고 가늠한다. 멀티테스킹은 먹고 마시고 보고 느끼는 걸 동시에 하는 거였다.
감각을 자극하는 건 한순간, 그와 동시에 내가 먹고 마시고 만지고 느꼈던 걸 체크하면 된다.
과외 때도 한 적이 있는데 감각 컨트롤만 되면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난 컨트롤 쪽으로는 SNS계의 마크 주커버그 수준인지라.
“……통과.”
통과 소리가 칼 같이 들렸다.
그 뒤로는 감각 분할.
이건 다중 작업 능력 테스트와 반대로 모든 감각을 분리해 구분하는 것.
다중 작업 능력 테스트와 원리는 같지만, 처리하는 방식은 다르다.
고로, 감각 컨트롤을 잘하면 쉽다.
“통과.”
통증 분리야 말할 것도 없다.
칼날 구보와 교수형 훈련, 거기에 맨몸으로 칼날을 받아 내는 나날이 있었다.
과외 선생의 가르침은 뼈와 살을 가르는 시간이었다.
그와 비슷한 시간이 시작됐다.
찌르고 베인다. 통증이 극대화되는 부분을 골라서 들어오는 공격이다.
손톱 밑, 겨드랑이 안쪽, 명치, 무릎 인대.
다치지 않는 선에서 통증만 세밀하게 꽂아 넣는 솜씨가 기가 막혔다.
“잘 참네.”
앞에 선 남자는 전문가, 그러니까 인체를 완벽하게 파악한 고문 전문가다.
“더럽게 아픈데요.”
태연하게 답했다.
통증에 휘둘리며 제대로 싸울 수 없다. 그러므로 감각 중 통증에 관련된 부분을 차단하는 건 불멸 전투원의 기본기였다.
물론 그걸 얼마나 잘하느냐는 다른 문제다.
난 이걸 잘했다.
그것도 매우 잘했다.
“둔한 거냐, 아니면 컨트롤 능력이 좋은 거냐?”
고문 전문가가 감탄해 말했다.
“난 내부 보안 1팀의 심관문이다.”
“이름이 특이하네요.”
“화교 출신이야.”
“네.”
가끔 보면 이 회사 인간들은 보면 아이엠 그라운드를 너무 좋아한다.
왜 갑자기 자기소개하는지는 모르지만, 적당히 답해 주고 다음 테스트에 임했다.
감각 세밀화.
이제까지가. 자신이 가진 걸 얼마나 잘 조절하는가의 문제였다면.
여기는 가진 것이 얼마나 커다란지 보는 곳이었다.
“차이는?”
똑같아 보이는 다섯 장의 카드 뒷면을 보고 대뜸 묻는 말이다.
보는 것만으로 아주 사소한 차이를 구별할 수 있느냐의 문제였다.
페이크 카드였다.
속임수에 쓰는 카드, 다섯 장 중 하나가 다르다. 정확히는 왼쪽 귀퉁이에 있는 개미 손톱만 한 무늬가 달랐다.
이걸 얼마나 빨리 찾느냐의 문제였다.
아무리 둔한 불멸이라도 시간이 있다면 자세히 관찰해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난 이걸 1초 컷했다.
“왼쪽에서 두 번째 카드 무늬가 다르네요.”
“다음.”
매우 어려운 수준의 틀린 그림 찾기와 지나가는 공에 적힌 시구 읊기 등이 이어졌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쌀알보다 조금 큰 공이었는데 쌀알에 글씨를 새기는 장인이 왔다 갔나 싶었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입니다.”
“그건 안 물어봤다.”
네네, 압니다. 그냥 아는 척한 거임.
미각만으로 다른 맛 찾기.
눈 가리고 발가락으로 바닥에 놓인 물건 맞추기.
“출구는?”
길을 가려 놓고 미로의 출구 맞추기.
이건 좀 심했다. 어떻게 맞추나 싶었다.
단서가 있어야 답을 찾는 법 아닌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육감이 날 이끌었다. 육감과 직감의 영역 안에서 감각을 집중했다.
이번에 감각을 집중할 때 한 연상은 그물이다.
천망회회(天網恢恢) 소이불실(疎而不失)이라 했다.
하늘의 그물은 넓디넓어 엉성하여도 놓치는 게 없다는 말이다.
무협 소설에서 본 건데, 딱 그게 떠올랐다.
넓은 그물, 모든 걸 다 가둘 순 없다.
대신 내가 원하는 하나는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육감과 직감의 영역을 활용하는 법이다. 감각은 판단의 기준을 세워 준다.
정보를 제공하는 힘이다.
그 모든 걸 결론해서 선택하는 건 오롯이 나의 몫이니.
“여기요.”
육감으로 출구 찾기.
출구는 총 열여섯 곳으로, 보통 감각이 특출난 순혈의 경우는 다섯 번 내에 정답을 찾는다.
난 한 방에 찾았다.
“……한 번 더.”
감독관이 말했다.
직감과 육감은 우연이란 단어를 빼놓을 수 없는 감각이다.
그러므로 같은 짓을 세 번 했다.
난 세 번 다 출구를 한 번에 찾았다.
그렇게 모든 테스트를 끝내고 대련장에 섰다.
육체와 감각을 본 뒤에 남은 건 인상을 보고 종합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는지 보는 테스트뿐.
쉽게 말하면 대련이다.
신입끼리 서로의 재능을 비교하고 견주어 볼 기회였다.
아무리 훌륭한 감각과 재능을 가졌어도 실전에서 못 쓰면 무슨 소용인가.
급박한 상황에서의 판단력을 보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처맞으면서 얼마나 자신이 가진 걸 활용할 수 있을까 하는 그런 의미의 테스트다.
난 대련장에 들어가며 생각했다.
팀장과 두 번 싸웠고.
두 번 다 졌다.
처음에는 어떻게 하다가 졌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그걸 답습했고, 매일 어떻게 하면 따라잡을지 고민했다.
그렇게 두 번째 싸웠을 때, 깨달았다.
이기지 못하는 이유를 알았다.
경험의 농도가 달랐다.
이중봉 팀장은 시발시발거리면서도 능력만큼은 최고였다.
수없이 많은 상황에서 자기 몸을 굴려 본 사람이었다.
아무리 훔쳐 배워도 부족했다.
목숨을 건 상황이 아니니까, 그의 진면목을 볼 수 없었다.
난 본능적으로 그걸 느꼈다. 술 몇 잔을 마시고, 그 감정에 충실히 따른 거였다.
그래서 목숨 반 개쯤 걸고 덤볐고, 매일 하는 대련보다 그 한 번의 대련에서 많은 걸 느꼈다.
경험의 농도, 이해할 수 없는 팀장의 움직임, 전투 패턴, 부러진 팔을 휘두르는 극기.
그 모든 걸 종합해서 내린 결론이다.
난 아직 배울 게 많다는 것.
* * *
“원하는 상대는?”
연무장, 훈련장 중에 제일 큰 곳이었다. 그 가운데에서 감독관이 물었다.
인상, 향상심, 위기의 순간에 나오는 실전 감각.
이 모든 걸 판별하기 위한 테스트는 직접 싸워 보는 거였다.
어지간하면 죽지 않는 불멸이기에 할 수 있는 과격한 대련이 마지막 테스트였다.
감독관의 물음에 내가 입을 열었다.
앞선 차례에 몇 명이 대답했고, 이젠 내 차례였다.
“전 음, 제 한계를 시험해 보고 싶습니다.”
감독관의 물음에 적절한 연기를 보이며 내가 말을 이었다.
“신입 최고의 에이스, 정기남과 싸워 보고 싶습니다.”
“그다음은?”
싸우고 싶은 상대는 둘을 정할 수 있었다.
“오티 때 보고 이 친구는 참 이기기 힘들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번째는 우미호 하겠습니다.”
시발 팀장과의 대련 이후 깨달은 사실 하나 더.
사실 난 엄청나게 약할지도 모른다.
정기남, 우미호와 비교하면 개미일지도 모른다.
팀장도 매일 기남과 미호가 오길 바라며 나에게 반푼이라 하지 않나.
난 허약한 개미다.
그러므로 둘을 상대하게 되면 최선을 다할 작정이었다.
주먹에 혼을 실어서 후려치리라.
“좋아.”
감독관이 말하고 신입을 정렬시켰다.
화림 내에 남은 신입 숫자는 서른여섯.
그중 가장 싸우고 싶은 상대로는 김요한과 강푸름이 뽑혔다.
한 명은 떠벌이요, 다른 하나는 다이어트 중인 비만 불멸자다.
둘 다 오티부터 인연이 이어져 온 동기였다.
가장 싸우기 싫은 상대로는 정기남과 내가 뽑혔다.
순혈 중의 순혈 정기남.
혼혈이지만, 수더분한 성격에 동기에게 인기 많고 정기남처럼 차가운 인상이 아니라 따뜻한 도시 남자인 나.
이유는 분명했다.
한쪽은 싸우면 이기기 어려웠고.
한쪽은 굳이 싸우고 싶지 않은 상대였다.
“에, 그럼 처음은…… 정기남, 유광익. 둘이 서로 찍었네.”
이심전심 마음이 통한 둘이라는 감독관의 설명이 들렸다.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기남아, 오랜만이다.”
“친한 척 말 걸지 마라.”
정기남은 내 현 테스트 과정을 볼 수 없다.
동기끼리는 누구도 서로의 과정을 볼 수 없다.
그러므로 그는 몰랐다.
이전 작전에서도 그는 내가 싸우는 걸 못 봤다. 봤어도 의미는 없었을 테지만.
미안하다. 기남아. 지금까지의 나랑은 조금 다를 거다.
이제까지는 적당히 감추고 숨겼다.
변신인 걸 걸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오만했다. 마음먹고 나서면 여기 있는 불멸의 그 누구보다 내가 더 나으리라는 오만함.
아니다. 틀렸다.
노력이 필요했다. 난 그래서 노력했고.
피 터지게 운동하고 훈련한 뒤, 팀장을 보고 깨달았다.
최선을 다해도 변신인 걸 걸릴 일은 없다. 한계를 알아서 그 한계를 넘을 수 있는 법이다.
그러므로 최선을 다하리라.
난 이번 테스트를 하며 세웠던 마지막 목적을 장식하기 위해 주먹을 쥐었다.
“후, 우리 기남이.”
난 말하며 조용히 숨을 가다듬었다.
“미친.”
기남이 중얼거렸다.
일단 저 주둥이부터 후려치…….
아, 깜빡했네.
나는 개미, 어디서나 짓밟히는 개미다. 팀장한테 쥐어 터져서 자신감을 잃은 한낱 개미.
그러니까 형이 최선을 다했다고 삐지기 없기.
기남의 전신에 노이즈가 어리듯 기척이 사라지고.
그걸 본 난 땅을 박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