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Of the Unique Lineage RAW novel - Chapter 452
37. 요리의 신
10년 전, 최초의 추방자는 스스로를 메시아라 칭했다.
메시아는 자신을 널리 알렸다.
물론 아는 사람만 아는 별명이었다.
메시아는 이계에 뿌리를 내렸다. 그들만의 세계를 이룩하려 했다. 당연하게도 그게 쉬울 리는 없었다.
이후, 추방자 무리는 네 갈래로 갈라졌다.
비약의 힘으로 자신을 지키겠다는 로이더.
마도와 과학을 합친 마도과학집단, 마이스터.
살기 위해 무엇이든 먹을 수 있다는 이터.
크리쳐의 신을 모신다는 미친 광신도 집단 블라인드 페이쓰.
이계는 크리쳐의 땅이다. 그곳에 사는 건 절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도망자임과 동시에 개척자가 되었다.
그중 하나, 마이스터를 이끄는 네 명 중 하나가 혀를 찼다.
“허.”
크리쳐의 뼈와 가죽으로 만든 의자에 앉아, 팔걸이에 손을 올린 채였다.
그의 앞으로 세 명의 남녀가 고개를 숙였다. 셋의 몸이 파르르 떨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만한 사고가 있었다.
“그래서?”
“자폭 장치가 발동했습니다.”
“그래서?”
화가 났을 때 같은 말을 반복하는 건 마이스터 간부의
버롯이었다.
“아무래도 정부 또는 NS의 팀이 개입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남은 게, 큼, 남은 게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나선 남자가 말하는데 목이 잠겨 삑사리가 났다.
남자는 헛기침을 하며 말을 마쳤다.
“그 연구 기지의 가치가 너희 셋보다 더 높다. 그건 알고 있나?”
간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우득우득 하고 손잡이 부근이 쩍쩍 부서지기 시작했다.
레드 등급 크리쳐의 뼈로 만든 의자 팔걸이에 금이 갔다.
골좌에 앉은 남자에게서 사나운 기세가 어렸다. 곧바로 셋의멱을 틀어쥐고 꺾어 버릴 것 같았다.
나란히 선, 셋의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이계의 땅, 추방자의 세상이다.
간부의 마음이 틀어지면 세 명도 죽은 목숨이었다.
“선처를.”
중앙에 선 여자가 말했다. 크리쳐의 가죽을 뒤집어써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흑단 같은 긴 머리카락이 밑으로 축 늘어진 건 보였다.
무릎 밑, 정강이까지 당는 머리카락이다.
“좋아. 좋아. 대신 알아 와. 누가 했는지. 그 새끼 낯짝 한번 보자.”
이들이 이곳에 사는 이유가 무엇인가.
거두절미하고 잘라 말하면 딱 한 명 때문이다.
세최특.
그런데 지금 주요 연구 기지를 부순 놈을 잡으려면 바깥 세계로 나가야 한다.
목숨을 반 개쯤 내놓고 다녀야 한다는 소리다.
셋은 침중한 마옴으로 고개를 숙였다.
‘분명 NS 쪽일 테지.’
‘정부일 수도 있다.’
‘흔적이 남지는 않았지만, 그때 들어온 의심스러운 팀이 있다. 얼굴을 감췄어.’
셋이 속닥였다. 얼굴을 가린 탓에 정체를 알아낼 수 없는 이들이 범인이었다.
꽈릉.
속닥이는 그들의 머리 위로 붉은 벼락이 지나갔다. 검은 하늘에 붉은 벼락이 나뭇가지처럼 뻗으며 주변을 밝힌다.
이곳은 이계, 붉은 벼락이 치는 땅이었다.
* * *
“넌 한 번 나갔다 하면 사고구나.”
유신이 말했다. 우리 둘 앞으로 홀로그램 뉴스가 한창 떠드는 중이었다.
최근 이계에 기묘한 일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겉으로는, 그러니까 대외적으로는 지진과 기상 이변으로 알려졌다.
추방자의 존재는 일반인에게 알리지 않았다. 하물며 나도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규모를 보니까 그냥 넘어갈 정도는 아니던데.
아, 우리는 이계를 빠져나오자마자 바로 복귀했다.
채집팀원이야 입막음을 당해야 하니, 곧바로 정부 요원한테 끌려갔지만.
우리 팀은 남기주 아저씨가 다 막았다.
“제가 책임집니다. 추방자 건 터지면…….
네, 안 터질 겁니다.
그래도 터지면?
아니, 씹, 그걸 왜 여기다 따져? 솔직히 알 사람들은 다 알잖아? 개척팀 중에 추방자 모르는 애들이 어디 있어? 거, 눈 가리고 아웅 하지 맙시다. 우리 쪽에서 나올 일은 없을 거요.
이쪽은 내가 만든 비밀 병기요. 추방자랑 상관없어! 없다고! 내 왼 손목을 걸지.
뭐? 내 손목 필요 없다고?
하여간 내 쪽 팀이요. 비밀은 절대 말 못 해!”
진짜다. 내 앞에서 전화를 붙잡고 저렇게 쏘아 대더라.
전화를 끊자마자, 봤냐고 이 정도는 해야 먹힌다고 믿으라고 말하는데.
절로 믿음이 생겼다.
저 정도로 목숨 걸고 덤비는데 어떻게 믿음이 안 생기겠나.
그렇게 유유히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외출 복귀 신고를 한 두I, 며칠 쉬고서 유신의 방에 모인 참이었고.
최근에 유신의 룸을 아예 내 훈련장 옆에 연결했다.
얘가 내 훈련장 찾아오는 애들한테 제가 만든 음식을 먹이더라고.
이것저것 만든 음식을 버리는 것보다야 효율적인 일이긴 했다.
“내가 친 사고는 아니지.”
내가 말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게 맞지.”
로니가 거들었다.
“짜릿하긴 했어.”
구스타프가 고개를 끄덕였고.
“오늘은 뭐 먹어요?”
장옥은 유신이 철판을 꺼내 설치하자, 침을 흘릴 기세였다.
“안심 철판구이, 기대해라. 드라이 에이징 해 둔 거다. 숙성 고기야.
그래, 네가 친 사고는 아니지만, 그래도 사고는 사고다 이거다.
바람 잘 날 없겠어. 의심은 안 받고?”
“기주 아저씨가 내년 남우주연상을 받을 것 같다.”
유신의 말에 내가 답하니, 로니가 킥킥 웃었다.
“재있어.”
그리고 단출하게 제 감상을 표현한다. 그걸 내 눈을 빤히 보면서 말하니, 내 심장이 가끔 제멋대로 뛰었다.
야, 심장 새끼야. 정신 차려.
미랑이가 알면 내 심장을 칼로 후벼 파서 협박할 거다.
“그 아저씨, 보기보다 능력자네.”
구스타프가 유신의 부탁으로 자른 파인애플 따위를 염동력으로 들고 오며 말했다.
섬세한 움직임이 필요한 일이다.
최근 구스타프가 훈련할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기도 했다.
세밀한 염동력 제어.
나도 왜 몰두하는 분야다.
무식하게 후려치는 것만 잘해서야, 쓸모가 적다는 생각이다.
내 몸을 쓰는 것도 훈련이 필요한 법.
염동력을 세밀하게 쓰는 건 태어나 처음 젓가락을 쓰는 것과 비슷하다.
젓가락을 던져 누굴 맞추고 쥐고 찌를 수는 있지만, 그거로 콩을 집기란 요원한 일이다.
하지만 콩을 집을 수 있다면.
그러니까 염동력을 보다 섬세하게 다룰 수 있다면 위력이 배가되는 건 당연할 것이다.
“후.”
구스타프가 참았던 숨을 토했다.
아무래도 세밀한 조절은 왜 힘든 것 같았다.
그럴 수 있었다.
보통 사이오닉 에너지를 타고난 애들은 섬세한 조절 능력을 익히는 걸 어려워한다.
나? 나는 그냥 되더라고.
그래서 어렵지 않았다.
“하여간 걸리면 여럿 피곤해진다. 조심해라.”
“그러고 있다.”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며 기다리자, 유신이 달궈진 철판 위쪽 허공에 손을 대더니 각진 지방 덩어리로 철판 위를 문질렀다.
치이이이이익.
고소한 향이 코를 찌른다. 지방 타는 냄새다.
그 뒤 연갈색 고기를 올리자, 치이이이이익 하고 연기가 피어올랐다.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고소한 향이 주변에 퍼졌다.
그대로 고깃덩이를 앞뒤로 익히더니, 칼도 아니고 헤라 같은 거로 고기를 대충 뚝뚝 끊어 냈다.
유신이 끊어 낸 고기를 앞쪽으로 툭툭 쳐 냈다.
우리는 한 점씩 집어서 입에 넣었다.
우적.
씹는 순간, 고소한 향이 입안을 감돌고 코끝을 때렸다.
동시에 뇌를 후려치며 말했다.
“음메-”
소다. 이것이 바로 소고기였다. 훌륭한, 아니 훌륭한 걸 넘어섰다.
“이건 아이스크림?”
“솜사탕?”
구스타프와 장옥이 번갈아 말했다.
“녹아.”
로니도 감탄했고.
난 신중히 말을 골랐다. 고작 아이스크림이나 솜사탕으로 맛을 표현할 순 없었다.
“이건, 음, 이건 그야말로 천국이야, 천국이다.”
극찬이 쏟아지니, 유신이 웃음을 보였다. 이마 위로 두른 두건과 손에 든 요리 도구.
고기 한 점에 내 눈에 유신은 세상 제일 잘생긴 불멸자로 보였다.
실제 외모도 뛰어나지만, 아예 그의 뒤에서 후광이 밀려 나오고 있다.
이것은 무엇인가.
맛이 만들어 준 신비인가.
유신은 거기서 끝내지 않았다. 이 친구는 할 때는 하는 친구.
텅.
“오십 킬로그램이다.”
숙성 소 덩어리를 꺼냈다.
치이익.
다시 굽는다. 우리는 미친 뜻이 먹었다.
사실상 오늘 이 자리는 날 위한 자리였다.
노 페이스 팀으로 처음 한 작전이었다.
많은 일이 있었지만, 살인이 나한테 왜 크게 다가왔다.
며칠 악몽을 꿨다.
그렇다고 해서 괴로움에 치를 떨진 않았다. 덤덤히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유신이 보기에는 걱정이 됐는지, 고기 파티를 열어 줬다.
띠-잉.
그리 먹고 있는 사이 누군가 벨을 울렸다.
“누구야?”
“동기.”
1학년 동기다. 이름은, 음 까먹었다.
“진수네.”
구스타프가 아는 척을 해 왔다.
“알아?”
“불멸자, 상위 레벨이잖아. 경쟁자는 미리 알아 둬야지.”
그러냐?
진수가 안으로 들어오더니, 냄새에 코를 씰룩였다.
“뭐. 음, 뭐 먹는구나.”
“뭐 먹지.”
“그, 음 대련하러 왔는데.”
불멸자는 자신의 감정을 잘 컨트롤한다. 특히나 음식에 무너지는 불멸자는 흔치 않다.
지금 로니를 보라.
고작 고기 몇 점에 흔들리는 모습 따위는 어디에도 없다.
비록 허겁지겁 고기를 입에 넣느라 기름 묻혀가며 먹고 또 먹고 있었지만, 그래도 난 얘가 고기에 취하진 않았다고 믿는다.
멀뚱히 진수란 불멸자를 보고 있자니, 진수가 잠깐만 하더니 도로 나갔다.
“재 뭐냐.”
“몰라.”
5분도 안 돼서 진수가 돌아왔다. 손에 갈색 물이 든 병을 들고서.
“위스키, 아버지가 주조 공장 하시거든.”
한국에서 만든 위스키다.
지금은 예전처럼 오크통에 수년 동안 묵히는 게 아니라 급속으로 위스키를 만든다.
그런데 그 맛이 옛 방식으로 만든 것만큼이나 좋았다.
그리 유명한 주조 회사의 한국 지사장이 진수 아빠였다.
“마실래?”
그가 초롱초롱 눈을 빚내며 말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곧 이 친구가 합류하고 술과 고기를 먹고 마셨다.
매일 대련만 하고 어떻게 사나.
사람이 숨은 쉬고 살아야지.
진수 뒤에 또 서넛이 찾아왔다.
본래 자주 있는 일인데 오늘은 더 많이 찾아왔다.
최근에 외출로 자리를 비운 덕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번에 대련을 원한 동기가 좀 많았다.
그들은 먹고 마시는 우리를 보더니 꿍쳐 둔 비장의 무기를 하나씩 들고 왔다.
“버섯인데, 이거 구우면 맛 죽어, 다 죽어.”
한국말을 덜 배운 러시아 변신족 친구다. 고가의 버섯이 철판에 올라갔다.
다들 잘도 먹었다.
“너 이름이 뭐라고?”
내가 술을 좀 마시고 여덟 번째 같은 질문을 하자, 러시아 친구가 콧김을 뿜었다.
“나사로크!”
“그래, 너 나중에 이계 넘어가서 나랑 놀래?”
난 취했다. 나도 처음이었다. 이렇게 취해 본 건.
나사로크는 그 말에 얼얼 웃었다.
“벌써 나 스카웃? 좋다! 허약한 일등!”
이 새끼는 근데 한국말을 더 배워야겠네.
이렇게 시작한 파티는 가움의 단비였다.
나도 이렇게 될 줄은 정말 몰랐는데.
술 파티는 닷새 동안 이어졌다.
먹을 게 늘고 내 훈련장에 오는 이들이 점점 늘었다.
왔다가 가는 친구도 있었다.
술이 깨서 곧바로 제 훈련에 임하는 친구도 있었다.
와서 구경만 하고 가는 친구도 있었고.
결론만 말하자면.
남기주 아저씨한테 죄를 지었다.
내가 취해서 몇 명을 팀에 더 꼬셨더라고.
근데 생각해 보면 이게 꼭 나쁜 건 아니지 않아.
계속 같은 멤버가 사라지면 누군들 의심하지 않겠나.
노 페이스 팀의 정체가 사실 나와 내 친구들이라고.
분명 처음에는 날 경쟁자로 여기며 비난하던 애들도 섞여 있었던 것 같은데.
술과 고기, 계속 대련을 줄기차게 하다 보니 우리는 다 친구가 되어 버렸다.
이후 일주일 중 육 일은 훈련에 매진했고.
하루는 먹고 마셨다.
이 일에서 제일 신난 건 우습게도 유신이었다.
“요리의 신!”
다들 그를 이렇게 불렀다. 유신은 그게 퍽 만족스러워 보였다.
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