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Of the Unique Lineage RAW novel - Chapter 451
36. 약혼자를 위하여 (2)
쳐들어가면서 광고할 것도 아니었으니 장옥에게 힘찬 발길질을 시키지는 않았다.
“힘으로 해 봐.”
내 요구 사항에 맞춰, 장옥이 손으로 더듬어 이음새를 찾아 나이프를 꽃더니 지렛대처럼 들어 틈을 만들곤 손을 집어넣었다.
이후 변신족의 괴력을 마음껏 뽐내며 문을 뜯어 냈다.
우득, 크그그긍, 뜨등!
사람 손에 의해 쇠가 뜯겨 나가는 걸 보고 있으려니, 변신족이 얼마나 비합리적인 존재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아, 물론 난 뇌안이 있어서 보이는 거고.
다른 사람 눈에는 투명한 무언가가 떨어져 나가더니, 허공에서 불쑥 튀어나와선 바닥에 떨어지는 걸 보게 되는 거였으니.
어찌 신기하지 않을까.
“억.”
“뭡니까?”
“여기에 뭐가 있는 거냐?”
채집팀과 구스타프가 번갈아 가며 놀랐다.
우득우득, 뜯어 낸 문이 사람 하나가 들어갈 크기가 되자 로니가 입을 열었다.
“사람.”
안쪽에 사람이 있다는 거겠지.
기다릴 게 뭐가 있나, 내가 먼저 들어갔다.
앞쪽에 두 명의 그림자가 보였다. 꺾어지는 통로 안이었다.
안으로 들어오니 투명화는 무의미했다.
이제는 주변이 다 보였다.
난 곧바로 염동력을 발동, 상대가 다가오는 걸음에 맞춰 목을 휘감는 사슬 형태로 염력을 만들었다.
곧 내가 만든 염력 사슬이 통로 건너편에서 나타나는 둘의 목을 휘감았다.
상대는 반응도 못 했다.
깔끔한 염력 발동이기도 했지만, 상대의 전투 능력이 형편없기도 했다.
이어 둘의 입도 막았다. 마스크 형태로 무형의 막을 만들어 붙인 것이다.
“끅.”
그렇게 소리를 막고 염력으로 둘을 띄워 데려왔다.
“음. 일반인?”
내가 볼 때는 특수종이 아니다. 뇌안이 눈앞에 잡힌 사람의 능력을 측정했다.
레벨 1 이하다.
둘 중 한 명의 목을 슬쩍 풀어줬다.
눈알을 좌우로 심하게 데굴데굴 굴리는 여자였다.
붉은 머리칼의 갈색 눈.
유럽계다.
내 뇌안이 유일하게 측정 못 하는 게 있다.
마법이다. 발동된 이후의 주문은 보이지만, 그전 몸에 지닌 주문력 따위는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마법력을 기반으로 하는 사람은 일반인처럼 보였다.
다만, 어릴 때부터 어머니에게 배우고 익혔던 걸 토대로 마나의 향은 맡을 줄 알았다.
마법사는 마나를 느끼는 과정에서 ‘마나의 향을 맡는다’라는 표현을 썼다.
뭐, 옛날에 유명했던 마법사의 일화에서 유래된 말이라는데 내가 알 바는 아니다.
결론, 상대는 마법사였다.
목을 슬쩍 풀어주고 바닥에 내려 줬는데도 그녀가 입을 열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대신 내가 말했다.
그녀가 내 가면 위흫 빤히 바라봤다. 나도 가면 너머에서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누구세요?”
여자가 물었다. 난 곰곰이 생각하다가 정체를 밝혔다.
“가면 쓴 거 보면 몰라요?”
“로이더?”
로이더는 또 뭐야.
하여간 못 알아들을 말 천지네.
난 팔짱을 끼고 고개를 모로 꺾었다.
“보안 신호를 뚫고 들어온 줄 알았더니.”
여자가 내 뒤쪽을 보며 말했다. 이내 문이 뜯긴 걸 보더니,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눈썹을 씰룩인 여자를 향해 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내 친구 어디 있습니까?”
대화 속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채집팀 리더가 불쑥 끼어들었다.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여전히 나만 바라봤다.
눈치가 비상하네.
이 상황을 주도하는 게 누구인지 확실히 아는 것 같았다.
“추방자가 무리틀 이뤘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이런 규모의건물은 처음이군요.”
뒤에서 이삭 형이 나섰다. 그러곤 주변을 둘러봤다.
유선형으로 이어진 통로는 어느 연구기관의 그것처럼 보였다.
저길 넘어가면 실험실과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이 잔뜩 나올 것 같은 그런 분위기다.
그런데 정작 여기서 잡은 사람은 크리쳐 가죽을 두르고 있다.
누린내가 나진 않지만, 얼핏 보면 야만인처럼 보인다.
그런 사람이 이런 현대적인 연구 시설에 있으니, 어색하긴 했다.
사실 말을 길게 나눠 봤자 뭐 하겠나.
“안이나 둘러봅시다.”
남자의 목을 반쯤 틀어 숨통을 막으니, 그대로 기절이다.
그걸 쓰러뜨려 바닥에 내려 두고 앞으로 성큼성큼 걸었다.
뇌안을 열고 주변을 본다.
여기에는 사람이 없었다. 1단, 레벨 1 이하의 마법사 둘을 빼면 아무도.
그게 퍽 이상했다.
아니,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인가.
수문장으로 세워 둔 특수종 하나는 크리쳐를 통제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아주 독특하고 특별한 능력자라 할 수 있었다.
그는 혼자서 이 일대를 통제할 수 있었다. 실수로라도 건물 근처에 오는 놈들을 걸러 낼 것이고.
근처에 왔다고 하더라도 보이지 않는 건물을 잡아챌 수준의 특수종이 아니라면 걸리지 않을 테니.
건물 내부에는 딱히 경비를 두지 않아도 될 듯했다.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지만.
성큼성큼 들어가서 옆에 나오는 문이다.
또 열리지 않는 문이다.
“문 좀.”
여자한테 요구했다. 여자는 내 염력에 붙들려 바닥에 동동 뜬 채로 끌려왔다.
“열어 주면 살려 줄 겁니까?”
추방자라고 해도 제 목숨 소중한 건 당연하다. 당연한데, 난 어째 이 여자가 진짜 살려 달라고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여자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보고 난 눈살을 찌푸렸다.
왜 불안해하지?
잡혔으니까?
그런 것치고는 좀 과한 것 같은데.
“살려준다고 약속하면요.”
“구씨.”
약속하기 싫었다. 그냥 기분이 그렇다.
장옥이 나서서 문을 발로 찼다. 이제는 숨길 것도 없기에 소리 따위는 무시했다.
뻥!
문이 뜯기며 안으로 튕겨 나갔다. 튕겨 나간 두툼한 쇳덩이가 퉁퉁하고 바닥을 때리며 불똥을 튀겼다.
안은 어두웠다.
“불.”
내 말과 함께 허공에 불빚 몇 개가 떠올랐다.
서치 라이트라는 미니 드론을 띄운 덕분이다. 머리 위로 주먹 반 개만 한 드론이 날며 광원을 만들었다.
빛이 사방으로 퍼지자 주변에 놓인 게 보였다.
이건 또 뭔가.
연구 자료로 보였다. 자세한 건 나도 모르겠고.
대부분 종이 뭉치였다.
“다음 방으로 갑시다.”
꽤 넓은 연구 시설이었는데 방은 고작 두 개였다.
여기는 연구 일지 따위를 모아 둔 곳 같고.
다음 방도 같은 방식으로 뜯으려니.
“제가 열게요.”
여자가 순순히 나섰다. 난 염력으로 그녀의 목을 그러쥔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주문으로 개수작을 부리면 바로 꺾어 버릴 참이었다.
죽이지는 않더라도 뒤통수률 때려서 뇌률 흔들어 줄 생각도 있었다.
여자는 순순히 문을 열었다.
오른손에 이식 기어를 박아 놨는지, 벽에 손을 대자, 주문에 관련된 몇 가지 문양이 떠오르며 문이 열렸다.
이쪽은 실험실로 보였다.
당연하게도 일반적인 실험실은 아니고.
“크리쳐 양성?”
“그런 목적입니다.”
이삭 형이 혼잣말하듯 되물었고 여자가 답했다.
구스타프가 혀를 찼다.
“누구는 크리쳐를 죽이려고 용을 쓰는데, 만들고 있다고?”
“성공한 적은 없어요.”
여자는 더없이 순종적이었다.
하긴, 나라도 그러긴 하겠다. 내 염력이 계속 목을 쥐고 있으니까.
“재밌네요. 이 정도 실험 시설을 만들려면 어쨌든 본래 세계에서 장비나 기어를 이송해야 할 건데, 그런 것치고 복장은 독특하네요?”
“장비 이송은 잘 모르지만, 지금 걸친 옷은 방검방탄이 기본이자, 카모플라쥬 기능이 포함된 기능성 방호복입니다.”
로니가 고개를 가웃했다.
“묘한데.”
뭐가 묘하다는 걸까.
난 실험실을 둘러봤다.
크리쳐를 만들기 위해 이들은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그래,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웅아!”
채집팀 리더가 갑자기 외치며 앞으로 튀어 나갔다.
놀랄 정도로 빠른 건 아니지만, 막을 수도 없었다.
사람을 담율 만한 긴 욕조 같은 통이 보였다. 진득한 젤 형태의 녹색 액체가 가득했고, 그 안에 사람이 누워 있었다.
“안 돼!”
채집팀 리더는 욕조 안에 든 남자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
이미 죽었구나.
그럼 생체 신호는 어떻게 나오는 거지?
“시신을 액체에 담가 두면 계속 살아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하는 거다, 이거 레이엘 제품이네.”
이삭 형이 아는 척을 해 왔다.
자세한 건 모르지만, 레이엘이란 이름은 어디서 들어 본 적 있었다.
꽤 유명하고 건실한 기어 제조 기업이다.
언제 한번 뉴스에서 유신의 아버지, 그러니까 기어 제조 회사로서 최고봉인 푸름 삼촌의 회사를 따라잡을 기업 중 하나로 꼽은 곳이라는 걸 봤다.
이거 보통 일이 아니겠는데.
그런 느낌이 왔다.
죽은 시신이 필요한 이유는 뭘까 하고 보는데.
이삭 형이 주변을 쪽 둘러보더니 말했다.
“크리쳐를 제조하기 위해 인간의 시신을 연구했군요. 그것도 불멸자의 재생력을 깊게 파고들었어.”
말하는 이삭 형이 기분이 좋아 보이진 않았다.
“개 같은 짓이로군.”
특수종 세상의 인체 실험은 오래된 화두다.
한때 어설픈 능력의 불멸자는 자신을 감추고 살아야만 하는 시절도 있었다.
그걸 깨부순 게 내 아버지였다.
매드 사이언티스트, 미친 과학 집단을 다 때려 부수고 테러 단체를 소탕하니, 이제는 그런 일이 참 드물었다.
걸리면 곱게 죽을 수도 없는 일이니.
“아는 건 다 말했어요.”
여자가 말했다. 당당한 태도가 마음에 틱틱 걸렸다.
그래서 살려 달라는 건가.
로니가 그런 내 팔을 붙들었다.
“기분이 너무 안 좋아.”
얘는 또 왜 이래. 난 뇌안을 최대치로 발동했다. 뭔가 이상했다.
로니는 불멸자다. 그런 불멸자가 제 기분 좀 틀어졌다고 날 붙들고 얘기할 리는 없다.
여자의 얼굴을 봤다. 식은땀을 흘리던 여자가 미소를 보인다. 그건 뭔가를 달성한, 만족한 사람이 보일 만한 표정이었다.
이런 미친.
드드드드드드.
곧 땅이 떨리기 시작했다.
자폭이었다.
예상치 못한 한 수이기도 했다.
“지웅아, 지웅아.”
채집팀 팀장은 약혼자률 위해 구하기로 했다면서 대성통곡 중이고.
여자는 입가로 피를 흘리며 후련한 표정으로 먼저 저세상으로 갔다.
혀를 깨물었어?
독하네.
쿠그그긍.
“형, 지진인가 봐요.”
장옥이 말했다.
“자폭이야. 지진이 아니고.”
“나온 길로 돌아서…….”
구스타프가 뒤를 향해 말하는데 펑 하고 폭음이 터졌다.
반사적으로 내가 무형의 장막을 쳤다.
넓고 등글게, 반듯한 방패는 힘을 흘릴 수 없으니.
둥근 형태로 만든다.
괜히 마법사들이 핵사곤 필드니, 트라이앵글 필드니 해서 모양을 만드는 게 아니다.
다 이유가 있는 거다.
쿠화하하학!
불길이 장막 너머에서 흘렸다. 화끈한 폭염이었다.
안쪽에 있는 우리 피부가 화끈 달아오률 정도로.
“세상에는 미친 놈들이 참 많단다.”
새삼 아버지가 한 말이 머릿속을 스쳤다.
아버지 말이 맞네요.
걸렸다고 곧바로 자폭하는 미친 여자가 있어요.
그것도 이세계에서 살고요.
“뒤쪽 막혔어!”
구스타프가 외쳤다. 로니가 눈을 감았다. 탈출 루트를 찾는 중일 것이다.
“시작부터 억세군요.”
“우리도 살려 주세요!”
채집팀 팀원 중 하나가 말했다.
“퇴로가 없어.”
로니가 말한다.
“힘으로 뚫어 볼까요?”
장옥이 말한다.
변신족의 돌파력이라면 살아남을 수도 있을 것이다.
자폭한 바람에 기지가 여기저기서 막 터져 나가고 있지만.
난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뇌안을 열자, 열기와 폭발의 흔적이 내 눈에 선명히 보였기에.
이런 상황에서 안전하게 빠져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미 터진 곳을 뚫으면 된다.
“거위, 나랑 뚫는다.”
코드명 거위, 구스타프다.
이런 때야말로 범용성 최강이라는 염동력이 필요한 순간이 아닌가.
드드드드드.
흔들리는 기지 앞, 우리는 염동력으로 길을 내기 시작했다.
위에서 무너져 떨어져 내리는 건 쳐내고 앞을 막는 건 부숴서 던져 버린다.
그렇게 퇴로를 열고 나아가는 우리 앞을 가로막는 건 없었으니.
이 정도로 죽을 만큼 나도, 우리 팀도 허약하지는 않았다.
하물며 탈출하며 채집팀 전원을 쟁겨 오기도 했다.
꽈르르릉.
연구 시설 하나가 폭삭 무너지자, 폭음과 폭연이 위로 훅 솟았고 투명화 기능이 사라진 기지 자리에는 잔해가 가득했다.
정말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땅이 흔들렸다. 폭발이 여파였다.
우리는 밖으로 빠져나온 뒤, 무너진 기지를 봤다.
“추방자 애들 독하네요.”
내가 말했다.
“독하죠, 우리 땅에서 몰리고 몰려 결국 도망친 독종들이니까요.’’
이삭 형이 답했다.
추방자라, 난 불멸자가 아님에도 그들이 내 앞길을 막을 것임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아마도 이 일을 계속하려면 부딪쳐야 할 테니.
하, 정미랑과 결혼하는 일은 참으로 멀고도 길구나.
미인을 쟁취하는 건 역시나 어려운 일이다.
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