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1014
약먹는 천재마법사 1014화
이정표(1)
“집체 정신망을 구축하는 대능력자의 자리에 공백이 생기면 영좌께서 인지하게 되지.”
천화만리향의 영역을 거두고, 술주의 생명권역을 불태운 직후 난입한 초능력자.
동시에 폐허 곳곳에서 강력한 정신파를 지닌 초능력자들이 레녹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미칼 젤리히와 오에돈 육좌가 무력화되며 아펠리아 영좌께서 깨어나셨고, 네 존재를 인지하셨거든.”
“…….”
“그래서, 좀 과격한 방법으로라도 너를 데려갈 필요성이 생겼다는 말이다.”
이능개화전단 소속, 그것도 소수정예로 움직이면서 단독작전을 수행하는 특수부대인가.
지금처럼 레녹의 눈앞에 나타난 것을 생각하면, 아마 강력한 초인을 사냥하고 척살하기 위한 도구로써 만들어진 이들이겠지.
“이능개화전단 13석, 뢰비드 아울러. 금계(金械)의 주인이자, 척살대의 이름으로 너를-”
주변을 돌아보는 레녹을 향해 은발의 남자, 뢰비드가 고개를 기울였다.
“아까부터 자꾸 어딜 보는 거지?”
“……!!!”
쩌어어엉!!
굵직한 철근이 드릴처럼 회전하자, 동심원을 그리며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폐허가 되어버린 시가지 사이로 레녹의 몸이 쭉 미끄러졌다.
살짝 고개를 숙인 레녹의 모습을, 뢰비드가 내려다보며 씩 웃었다.
“역시, 아까부터 반응속도가 굉장히 좋군. 마법사답지 않은데?”
“…….”
“위계가 높은 술사도 보통 이 정도로 기진맥진한 상태로는 경계심을 유지하지 못하거든.”
쿠구궁!!
헝클어진 은발을 쓸어넘기자, 사방에서 모여든 금속이 뢰비드의 등 뒤에서 회전하기 시작했다.
단단한 금속이 보여 뢰비드의 온몸을 감싸고, 얇은 경갑의 형태로 변했다.
금속을 조작해서 형태마저 자유로이 바꿀 수 있는 초능력자.
물질조작계에서도 다재다능함으로는 최상위에 손꼽힌다는 금속조작.
레녹 역시 올리닉을 통해, 금속조작이 얼마나 까다로운 힘인지 알고 있었다.
“아무리 정신력이 강하다고 해도, 육체가 한계에 몰리면 생각이 편협해지기 마련인데…… 너는 아무래도 그런 개념에서 자유로운 것 같군.”
“꼭 마법사를 여럿 죽여본 것처럼 지껄이는데.”
순식간에 상대의 정체와 소속을 알아본 레녹이 일어서며 말했다.
“영좌에게 나를 데려가기 위해 지금까지의 협력을 모두 무위로 돌릴 생각이었나?”
“협력?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뢰비드가 발을 굴러 뛰어내리자, 묵직한 굉음이 지면에 울려 퍼졌다.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온 남자가 레녹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
“이능개화전단에서 받아들이는 동포는 오직 같은 능력자뿐이야. 너처럼 축복받은 마법사는 애초에 고려대상도 아니지.”
“미칼 젤리히의 뇌를 회수해달라는 거래도, 처음부터 이렇게 처리할 생각이었군.”
“그 부분에 대해서는 버나드에게 미안하게 됐어.”
뢰비드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버나드와는 다르게 비능력자를 신뢰하지 않거든. 같은 아픔을 공유하지 않은 사람을 믿는다는 건 불가능하잖아?”
“…….”
“태어난 순간부터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취급을 받으면서 배척당하는 아픔. 그것이 바로 전단의 기원이자 본질이거든.”
선천이능력자들의 비능력자 차별. 짐작할 수 없던 것은 아니었다.
버나드를 만나기 위해 선술집을 찾았을 때, 다른 초능력자들이 그에게 보였던 미묘한 태도.
그때 앙헬이 얼버무리고 설명을 미룬 ‘사정’이, 비능력자에 대한 전단의 태도와 관련된 것이었겠지.
“전단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리지만, 아펠리아 영좌께서는 비능력자에 대한 처우는 현장에 판단을 일임하고 계시지.”
철컥!!
단단한 금속으로 팔을 휘감아 들어 올린 뢰비드가 말했다.
“에반 마르티네스. 명성은 익히 들어보았지만, 직접 확인할 수 있던 건 이 관문의 결전이 처음이라…… 그래서 넌 너무 위험해.”
물끄러미 시선을 기울인 뢰비드의 눈동자가 싸늘한 살기로 번들거렸다.
“견뢰에게 패배한 마법사가, 접합술주를 일대일로 싸워 죽이는 데 성공했다. 그 사실이 이 전선에 어떠한 파장으로 다가올지 넌 짐작이 가나?”
“…….”
“오에돈 육좌가 패퇴한 이 시점에, 네가 관문의 필두에 선다면 우리는 통제력을 잃게 될 거다. 그건 전단에 몸담은 동포들에게 있어서도 큰 위협이 되겠지.”
비능력자에게 우호적인 파벌과, 적대적인 파벌이 전단 내부에 혼재되어 있는 것인가.
전단의 11석 정도 되는 고위 간부가 뒤늦게 나선 것 그렇다면 이상한 일은 아닐 터.
아니, 오히려 이 시점에 개입한 것 자체가 반대로 저들의 능력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방증이다.
“처음부터 발락 오에돈이 패배하고, 교전이 소강상태에 접어드는 시점을 노리고 있었던 건가.”
“아이러니한 일이지. 그가 접합술주와의 교전에서 패퇴하며 이쪽에게도 개입할 명분이 생겼거든.”
우우우웅!!!
다른 초능력자들이 발하는 정신파가 일대 공간을 짓누르는 것이 느껴진다.
능력의 발동을 억제하는 수준을 넘어, 의념의 운용을 껄끄럽게 만드는 역장(力場)의 구축.
레녹과 대화하면서 지금까지 시간을 끈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나.
“오늘 이 관문도시에서 벌어진 일은 여러모로 중앙전선의 불문율을 어겼어. 그렇지만 덕분에 이쪽에게도 이런 기회가 생겼군.”
“…….”
“접합술주와의 교전이 끝난 직후. 자성영역을 거둔 이 시점. 마력을 바닥까지 긁어낸 지금이 아니라면 너 같은 괴물을 잡는 건 불가능하겠지.”
철컥!!
뢰비드가 주먹을 움켜쥔 순간, 사방에서 무수한 금속의 탄환이 떠올라 레녹을 겨누었다.
폐허가 된 거리 위에 홀로 선 레녹을 향해 당장이라도 쏟아질 것처럼 기울어진 정신력의 파동.
너저분한 레녹의 모습을 바라보며 뢰비드가 웃었다.
“부탁은 아니지만, 반항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영좌의 앞에 널 무릎 꿇리는데 꼭 사지가 멀쩡할 필요는 없을 테니까.”
“……그렇군.”
레녹이 그렇게 답하며 시선을 들어 올렸다.
이능개화전단은 중앙에서도 그 규모와 위상으로는 한 손 안에 꼽히는 초대형 세력.
그만한 조직을 하나의 잣대로 가늠하고 피아를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기에, 레녹 역시 전단의 악명에도 불구하고 그들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해 왔지만-
어두워지는 하늘을 말없이 올려다보던 레녹이 중얼거렸다.
“버나드와 약속을 지키겠다고 너희까지 눈감아줄 이유는 없지.”
[작염구(炸炎球)]퍼어어엉!!
거리 저편에서 피어오른 불꽃이, 엄청난 속도로 응집되어 초능력자의 머리를 터트렸다.
목 위로 깔끔하게 소각당한 시체가 비틀거리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
역장을 펼쳐 의념의 운용을 제한하고 있음에도, 반응조차 하지 못할 초고속 영창.
그 비현실적인 속도에 다른 이들이 움찔거린 사이, 품 안에서 영약을 꺼내든 레녹이 말했다.
“이 일에 대해서는 차후 버나드를 추궁하도록 하고, 해야 할 일부터 처리할까.”
“천번……!!!”
“죽여주마.”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은 살인예고.
레녹의 섬뜩한 전언에, 심장이 꿰인 듯한 오싹함을 느낀 초능력자들이 뒤로 물러섰다.
그 모습을 본 뢰비드가 혀를 차면서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래. 대마법사를 사냥하는데, 이 정도 수고도 들이지 않으면 말이 안 되지.”
위이잉!!!
뢰비드의 손짓을 따라 떠오른 금속탄환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내가 앞장선다. 모두 움직여!!”
수백 발에 달하는 금속탄환이 레녹을 향해 사출되고, 그보다 더 빠르게 뢰비드가 가속한다.
사방에서 초능력자들이 펼친 역장 위로, 강화된 속성계열 초능력이 떨어져 내렸다.
탄환의 비와 온갖 초능력의 발동 속에서 레녹이 느릿하게 마력을 끌어올렸다.
레녹이 타오르는 장막을 등지고, 쏟아지는 살의를 향해 돌아선 그 순간.
“쯧…… 벌레 같은 것들.”
나직하게 혀를 차는 소리와 함께, 희끄무레한 무언가 엄청난 속도로 뢰비드의 몸을 들이받았다.
콰아아아앙!!!
음속을 뛰어넘은 질주. 마치 범프트럭이 사람을 들이받는 듯한 살인적인 중량.
뢰비드가 경이적인 반응속도로 강판을 퍼 올렸지만, 막을 수 없었다.
쩌적!!
발아래서 뽑아낸 강판이 박살 나며, 수척한 인상의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넌……!!!”
“다물거라.”
뢰비드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손뼉을 펼쳐 그의 옆구리에 가져다 댄다.
그것만으로 뢰비드의 갑주가 우그러지면서, 그 몸을 거리 반대편에 처박아 버렸다.
뻐어어어엉!!!
대기가 으스러지는 충격파와 함께 뢰비드를 날려버린 노인이 장포를 흩날리며 레녹의 앞을 막아섰다.
새하얀 장포를 입은 노인의 얼굴을 확인한 레녹이 중얼거렸다.
“……바르바리아.”
접합술주의 수술실에서 수술을 받았던 청의 눈 고위 주시자, 제벽 야니쿠스 바르바리아.
수술실에서 풀어주었던 카이우슈의 폭군이 아직 이 도시에 남아 있었던 건가.
“무슨 연유로 관문을 찾았나 했더니, 전단 놈들과 손을 잡았던 게냐.”
노인이 한심하다는 듯 레녹을 돌아보았다.
“같은 능력자 외에는 인간으로 여기지도 않는 선민의식만 가득한 종자들과 함께하다니, 네놈의 판단력은 그 무력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듯하군.”
“…….”
레녹을 마구 비하하는 듯하면서도, 그 실력 자체는 굉장히 높게 평가하는 괴상한 타박.
접합술주를 상대로 레녹이 싸워 승리했다는 사실을 그도 알고 있는 것인가.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얌전히 탈출하라고 했을 텐데.”
막 삼키려던 단환을 품 안에 집어넣은 레녹이 대꾸했다.
“아직 수술이 끝난 지 한나절도 되지 않았어. 죽고 싶은 건가?”
“하! 이깟 심장병. 이제 와서는 딱히 개의치도 않아.”
제벽이 코웃음을 치면서 자신의 가슴팍을 두들겼다.
“술주 놈에게 수술까지 맡겨보았으니, 여기서 죽는다면 그건 이제 내 천명이겠지.”
“…….”
“일어서라. 내 친히 네놈을 관문도시 바깥까지 안내해 줄 터이니.”
사방에서 자신을 포위하는 초능력자들을 두고, 제벽이 돌아섰다.
“이 야니쿠스 바르바리아. 마땅히 부려야 할 천민에게 받은 은혜라 해도 잊지 않는다.”
화려한 장포를 펄럭이며 뒷짐을 진 그가 초능력자들을 노려보았다.
“네놈이 다시 한번 등대지기 놈을 만날 수 있도록, 마땅히 도와주도록 하마.”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제벽이 참전하는 것 자체는 상관없지만, 청의 눈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
쓸데없는 오해를 풀기 위해 레녹이 입을 열려던 그 순간.
“눈물겨운 유대감이군.”
콰앙!!
비스듬히 기울어진 선술집이 폭발하듯 무너지며 뢰비드가 걸어 나왔다.
“주시자들끼리 상처를 핥아주고 있는 꼴을 보자니 토가 나올 지경이야.”
단단한 강철을 거대한 뼈처럼 두른 뢰비드가 싸늘한 표정으로 제벽과 레녹을 보며 웃었다.
“야니쿠스 바르바리아. 당신 같은 인간이 등대지기의 사명에 함께한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나?”
“닥쳐라, 벌레 같은 놈.”
“…….”
느닷없는 제벽의 폭언에 뢰비드의 표정이 황당하게 변했다.
제벽이 그런 뢰비드를 깔아보듯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아펠리아 같은 미치광이에게 의존하는 것들이 감히 누구에게 훈수를 일삼는 것이냐.”
“이봐, 늙은이.”
아펠리아를 서슴없이 깎아내리는 제벽의 말에, 뢰비드의 표정이 차갑게 변했다.
“입조심 하는 게 좋을 텐데. 영좌께서 이곳을 지켜보고 계실지도 모른다는 거 몰라?”
“사팔뜨기가 된 눈으로 이쪽을 보고 있다 해도 아무렇지도 않군.”
한발 앞으로 걸어 나온 제벽이 비웃으며 말했다.
“제 팔다리도 간수하지 못하는 간질 환자 따위가 무서울 리가 있겠느냐?”
“……죽여주지.”
섬뜩한 얼굴의 뢰비드가 염파를 끌어올리고, 다른 초능력자들이 동조한다.
역장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인력을 남겨두고, 전원이 움직여서 전선을 형성한다.
두 사람을 앞뒤로 포위한 초능력자들이 간극을 좁히는 사이, 레녹이 입을 열었다.
“바르바리아. 저 금속능력자를 맡아라. 다른 능력자들은 내가 죽이지.”
“술주와의 교전이 버겁기는 했나 보군. 강한 놈을 맡을 배짱도 사라진 것이냐?”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전단의 조직원을 되도록 많이 죽여야 해서 말이다.”
미칼 젤리히는 의식병기를 인계받기 위해 전단원의 목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계과정에 소모값이 얼마나 필요한지 알 수 없는 만큼, 최대한 손을 써두는 것이 상책일 터.
마력을 반절 정도 회복하기는 했지만, 아직 몸은 모두 회복되지 않은 상황이다.
제벽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일이 훨씬 편해지겠지.
“뭐, 좋다. 마침 시험해 보고 싶은 물건이 남아 있었으니.”
코웃음을 친 제벽이 품 안에서 약병을 꺼내 들었다.
“네놈이 준 비약. 장담한 만큼 효과가 없다면 경을 칠 것이야.”
“……그걸 아직 아껴두고 있었나?”
레녹이 황당한 기색으로 대꾸한 찰나, 약병을 꺼내든 제벽이 내용물을 쭉 들이켰다.
빠르게 접근해 온 능력자들이 양손에 불길과 정신파를 쥐고 제벽에게 달려든 그 순간.
콰아아앙!!
붉은빛의 마력이 폭발하듯 터져 나오면서 순식간에 초능력자들을 뒤로 밀어냈다.
“크윽……!!”
“무슨 압력이……!!”
갑작스러운 마력의 방사에 능력자들이 대처할 새도 없었다.
붉은 안광을 휘감은 제벽이 초능력자들 사이를 스쳐 사라진 차란, 그 손길이 닿은 이들의 사지가 비틀리듯 꺾여 버렸다.
우드드득!!
카이우슈를 지배하던 폭군. 야니쿠스 바르바리아는 8레벨에 도달한 육체능력자.
그 중에도 맨손을 이용한 박투술과 관절기를 사용해 경지에 이른 무투가다.
육체를 무기로 삼아 시전하는 모든 기술이 인간의 몸을 찢어발기는 살인기.
쩌저저적!!
사람의 몸을 만지는데, 고목나무가 비틀리며 쪼개지는 끔찍한 소리가 난다.
사방에서 초능력자들이 처절한 비명과 함께 그 자리에서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악!!”
“다, 다리가……!!”
“더 소리쳐 봐라. 벌레 같은 놈들……!!”
제벽의 입가에는 어느새 아이처럼 순수한 웃음이 활짝 피어나 있었다.
인간의 몸을 주물러 부숴 버리는 이 순간 자체가 즐거워 견딜 수 없는 듯한 모습.
타고난 성정 자체가 사람을 죽이는 것을 좋아하는 악인에 가까운 손속.
순식간에 십수 명의 능력자들을 뭉개버린 제벽이, 남아 있는 이들을 향해 손을 뻗은 순간.
묵직한 금속기둥이 제벽의 앞뒤로 떨어지며 뢰비드가 제벽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콰아앙!!
펄럭이는 화려한 장포 너머로, 제벽과 뢰비드의 시선이 동시에 맞닿았다.
“다 죽어가는 노친네라고 들었는데 쌩쌩하기만 하군. 아까 처먹은 약의 효과겠지?”
“새파랗게 어린 핏덩이를 죽일 때면 기운이 펄펄 솟아나서 말이다.”
“언제까지 노망난 헛소리를 지껄이는지 볼까……!!”
터터터텅!!
뢰비드와 제벽을 둘러싸고, 수십 개가 넘는 금속기둥이 내리찍혔다.
두 사람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금속의 우리 속에서 제벽과 뢰비드의 주먹이 격돌했다.
콰앙!!
뢰비드의 몸을 보호하는 금속갑주가 폭발하고, 피멍이 든 맨살을 드러낸다.
날카로운 금속의 탄환이 난사하며 제벽의 장포를 찢어발겼다.
팔과 어깨가 밀착하듯 충돌하며 튕겨 나갔다, 순식간에 다시 거리를 좁히며 얽혀든다.
우두두둑!!
그때마다 서로의 몸에서 관절과 뼈, 인대와 근육이 끊어지는 끔찍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
“늙은이!! 고작 이 정도냐?”
안색이 창백해진 제벽과, 제벽을 격렬하게 밀어붙이는 뢰비드의 모습.
다른 초능력자들의 몸에 폭염을 떨구던 레녹이,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육이나 인대의 손상은 참아도, 뼈의 골절까지는 오래 버틸 수 없을 터.
하지만 뢰비드는 제벽의 관절기에 온몸이 박살 나면서도 전투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설마, 자신의 뼈를 모두 금속으로 개조해 둔 건가?”
콰앙!!
제벽을 몰아붙여, 그 몸을 금속기둥 사이로 밀어 튕겨낸다.
새하얀 장포 위로 주먹을 내리찍어 노쇠한 육체를 두들겼다.
“심장병이라고 했지? 맥박이 좀 약해 보이는데, 내가 심폐소생술 좀 해줄까?!!”
“쿱……!!! 웃기지도 않는 소리……!!”
쾅! 쾅!!
들썩이는 육체를 추스를 생각도 하지 않고, 제벽이 뢰비드를 내려다보았다.
미친듯이 타격에 집중하는 뢰비드를 보는 제벽의 눈에, 숨길 수 없는 조소가 어려 있었다.
“네놈의 저열한 발상으로는 거기까지가 한계겠지.”
“뭐?”
뚜둑!!
그 순간, 뢰비드의 목이 시계 반대방향으로 회전하며 뚝 부러졌다.
“끅……!!”
“뼈만 금속으로 만들어 보호하고 수복하면 될 일이라 믿었더냐.”
주저앉은 뢰비드의 목을 움켜쥔 제벽이 흉악한 미소를 지었다.
“근육을 문질러 수축시키고, 신경을 뒤틀면 골격이 아무리 단단해도 버티지 못해. 무투술을 잘못 배웠군.”
“……!!”
“거리를 벌리고 금속조작으로 응수했어도 모자랄 판에, 감히 내게 접근전으로 덤벼?”
콰아앙!!
금속기둥을 대번에 박살 내고 뢰비드를 걷어찬 제벽이 말했다.
“목을 뽑아주마.”
“뢰비드 님……!!!”
레녹에게 속절없이 밀리던 초능력자들이 다급히 그의 이름을 불렀지만, 막을 방도가 없었다.
목이 반대로 돌아간 충격에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 뢰비드가 이를 악문 찰나.
“아~ 모두 동작 그만.”
후욱!!
나른한 여성의 목소리와 함께, 제벽의 몸이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거대한 박쥐의 날개가 펄럭이면서 하늘을 뒤덮자, 순식간에 지상이 어둡게 변했다.
“다행이다. 늦지는 않았네요?”
초능력자들의 시체가 널브러진 폐허.
금속기둥이 꺾여 부러진 전장에서, 한 여성이 제벽의 어깨에 아무렇지도 않게 팔을 툭 둘렀다.
전장에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화장. 눈가에 마스카라처럼 새빨갛게 덧칠한 피.
“아니, 근데 관문에 도착했는데 천번이 아니라 이상한 할아버지가 싸우고 있는 거야.”
여성이 깔깔 웃으면서 제벽을 향해 고개를 기울였다.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는 설명을 해줘야 할 거 아니에요? 안 그래?”
“……누구냐.”
천천히 여성의 팔을 뿌리친 제벽이 이를 악물고 고개를 돌렸다.
부상당한 몸이라 하지만, 제벽 본인이 그녀의 접근을 눈치조차 채지 못했다.
등에 장장 수십 미터 크기의 박쥐날개를 달고 있음에도, 비정상적인 은밀한 기동력.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음에도 같은 인간처럼 느껴지지 않는 기묘한 위화감.
방금 막 태워버린 초능력자의 시체를 던져버린 레녹이, 굳은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너는…….”
처음 보는 얼굴.
하지만 저 화려한 화장을 한 여성을 보자마자, 오른쪽 손목에 새겨진 성흔이 쑤시고 있다.
신녀 세이나 나이드리가 남긴 제사장의 권한. 그 증거로서 자리한 성흔이 반응한다는 것은-
“짜잔~ 사도랍니다~”
후욱!
제벽의 멱살을 움켜쥔 여성이 그대로 그의 몸을 집어 던졌다.
동시에 목이 돌아간 뢰비드의 배를 걷어차 날려 버린다.
콰아아아앙!!
양쪽으로 수십 미터 넘게 날아가, 폐허 뒤로 처박힌 두 초인을 뒤로하고 여성이 활짝 웃었다.
“귀도 교단 산하 7사도, 라리아타 아르무슈. 본단의 명령을 받고 등장!”
“…….”
“그리고 당신은…….”
천천히 레녹을 향해 돌아선 7사도의 눈이, 순간 싸늘한 증오를 머금었다.
“우리 귀여운 동생, 암리타를 죽인 사도살해자 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