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144
“단장의 상처를 치료할 방법은 이것뿐이다.”
짧은 금발의 머리를 쓸어넘기며 다가온 남자가 연기를 줄줄 흘리는 레녹을 바라보며 말했다.
“원래라면 경매장에서 약선의 부적을 얻기만 한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을 일이었다. 설마 경매장의 감정사들이 그 부적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고 1층 진열대에 놔두었을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지만, 우리에게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지.”
“………”
“모든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 대천사의 연민까지 가져와 유치한 자작극까지 벌이며 시선을 끌었는데, 설마 입찰이 끝나기도 전에 누군가 그 물건을 빼돌릴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지.”
분노로 푸들푸들 떨리는 입가를 주체하지 못하고 남자가 말했다.
“이 더럽고 추잡한 도시에 어울리는 일처리야.”
레녹은 남자의 심정이 어느정도 이해가 갔다.
원하는 물건을 손에 넣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끝마치고 작전에 들어갔다고 생각했는데, 상상도 못한 변수로 일이 틀어졌을때 심정이란.
심지어 그 물건이 다른 이들에게 크게 주목받지도 않고 있고 있었다면 그 허탈감은 배가 될 터.
리암의 작은 호의가 이런 식으로 돌아올거라고는 이 자리의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으리라.
크게 심호흡을 한 남자가 중얼거렸다.
“약선의 부적을 다오. 줄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내놓겠다.”
“………”
레녹은 말없이 연초를 피우는데 집중했다. 마치 계속 말해보라는 듯.
“깔끔하게 거래로 끝날수만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 지금 일어난 모든 일을 없던 걸로 하고 서로 제 갈길을 가면 그만이다. 저기 차안에서 바쁘게 전화를 돌리고 있는 저 여자도 상처하나없이 끝낼 수 있어. 서로에게 좋은 일이 아닌가?”
“………”
“돈이라면 얼마든지 주겠다. 어차피 그쪽도 모종의 방식으로 물건을 빼돌린 건 마찬가지 아닌가. 특별히 약선을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현금으로 보상받는걸 더 선호할테지.”
“하고 싶은 말은 다 끝났나?”
레녹은 연초끝에 매달린 재를 털어내고 코트 옷깃을 매만졌다.
차가운 밤공기에 까칠해진 손끝이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느긋한 태도에 결국 참지 못한 남자가 물었다.
“….도대체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건지 모르겠군. 우리가 과격한 방식으로 접근한 것에 대한 사과를 바라는건가?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해줄 수 있다. 제발, 우리에게 단장을 치료할 수 있는 기회를 줘…!!”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무릎까지 꿇고 고개를 푹 숙였다.
뒤에 서 있던 다른 탐사단의 멤버들은 그 모습에 제각기 다른 표정을 지었지만, 남자를 말리지는 않았다.
그만큼 탐사단장 이리나 페스필드를 구하는 일이 그들에게 중요하다는 말이겠지.
“이리나 단장은 발칸 시정부에게 공식적으로 협력요청을 받을 만큼 유적발굴에 있어서는 유능하고 없어서는 안될 사람이다. 이런 재능을 가진 사람이 뜻하지 않은 부상에 휘말려서 죽는다는건 말도 안되는 일이야! 제발..!! 원하는 거라면 뭐든지 해줄 수 있어!!”
처절하기까지 한 남자의 절규.
하지만 레녹은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렇게까지 말하면 내가 무슨 피도 눈물도 없는 악당처럼 들리잖나.”
“결코 그럴 생각은…..”
“이름이 뭐지?”
“……브룩. 브룩 파웰이다.”
“브룩. 이제 대충 모일 사람은 모두 모인건가?”
“뭐라고?”
“뭔 말같지도 않은 소리를 지껄이면서 이 일대에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있잖아. 내가 그걸 몰라서 지금까지 그 헛소리를 듣고 있었다고 생각하는건가?”
레녹의 말을 들은 브룩의 표정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하지만 레녹은 피식 웃으면서 그의 뒤쪽에 서 있는 다른 동료들을 가리켰다.
“너는 연기력이 좋지만, 뒤에 서 있는 놈들은 표정관리가 안되고 있다고. 아직도 모르겠어?”
“그게 무슨….!”
브룩이 무심코 그 말에 반응해서 고개를 돌렸지만, 그 순간 브룩은 자신이 레녹의 말장난에 넘어갔음을 깨닫고 혀를 찼다.
애초에 같은 탐사단의 멤버들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고개를 돌렸다.
방금 그걸로 레녹의 말에 확신을 더해준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레녹은 반경 수 킬로미터를 망라하는 방대한 마력감지능력으로 다가오는 기척들을 확인하고 웃었다.
“스물…. 아니, 서른 정도. 마력량은 별볼일 없는걸보니 여차하면 도주로를 막는 용도로 다른 프리랜서들을 고용한 모양이군. 이 도시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하더니 하는 짓거리는 음흉하기 짝이없어.”
“어디까지나 이야기를 제대로 나누기 위한 조치였을 뿐이다. 그만큼 우리는 그 물건이 정말로 필요해. 단장을 구하고 싶다는 마음은 거짓이 아니다.”
브룩이 빠르게 반박했지만, 레녹은 그런 변명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들이 노리던 것이 약선의 부적이라는 깨달은 시점에서 거래라는 건 결코 존재할 수 없었다.
“내가 꼭 말로 설명을 해줘야만 인정할건가?”
“그게 도대체 무슨…..!”
브룩의 항변을 단칼에 끊어버린 레녹이 말했다.
“다른 실력있는 치유술사들을 두고 하필 환자의 비밀을 절대 발설하지 않는다는 약선을 찾는 이유라면 뻔하지. 이리나 페스필드의 부상이 결코 밝혀져서는 종류의 것이거나, 어쨌든 외부로는 발설되서는 안되는 사정이 있기 때문이잖나.”
“………..”
“그런 약선을 만나기 위해 경매장을 통채로 혼돈에 빠트렸으면서….. 이제와서 우리를 멀쩡히 돌려보낸다고?”
그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참고 들어주기도 힘들었다.
레녹이 싸늘한 비웃음을 머금고 탐사단의 멤버들을 돌아보았다.
“처음부터 죽여서 입을 막을 생각밖에 없었으면서, 주둥이가 너무 길잖아.”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어벙하던 브룩의 표정은, 어느샌가 한없이 차갑게 굳어있었다.
탐사단 (2)
이상한 일도 아니다.
경매장에서 보여주었던 그 훌륭한 자작극을 생각하면, 원래부터 연기력이 탁월한 편임이 틀림없었으니까.
차가운 살기가 줄줄 흘러나오는 눈으로 레녹을 노려보던 브룩이 물었다.
“모두 알고 있었으면서, 우리를 가지고 논거냐?”
흘러나오는 목소리에는 이제 다른 어떤 감정도 담겨있지 않았다.
“멀쩡히 운전하는 차 위로 돌덩이를 던진 놈들에게 그딴 말을 듣고 싶지는 않은데.”
“후우……”
깊은 한숨을 내쉰 브룩이 고개를 내저었다.
“고통없이 죽여주려고 나름 노력한건데, 자기 발로 걷어차다니…. 어리석기 짝이 없군. 아니, 머리가 좋기 때문에 오히려 미련한 선택을 하는건가. 어느쪽이든 굳이 진실을 알고 죽을 이유는 없을텐데.”
“……..”
“뭐, 됐다. 이제와서 같잖은 연기를 하는것도 기만이겠지. 널 죽이고 약선을 만나러 가겠다. 해야 할 일은 그것뿐이야.”
“그래. 처음부터 그렇게 나왔으면 얼마나 좋아?”
이제서야 본색을 드러낸 브룩을 보면서 레녹이 웃었다.
“이런 일을 고작 너희 독단으로 저질렀을리는 없으니, 이리나 페스필드도 소문과는 달리 굉장한 냉혈한이라고 생각하는게 맞겠군.”
“……..”
레녹은 침묵하는 브룩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이해한다. 유명한 탐험가가 다른 사람의 희생따위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냉혈한이라는 것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 순간 손가락 끝에 매달린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고속으로 움직이며 브룩의 뒤편을 순식간에 스치고 지나갔다.
서걱!!
살점과 근육이 통채로 갈라지는 선명한 소음.
브룩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일즈라고 불렸던 청년의 목이 깔끔하게 절단되어 떨어져내리고 있었다.
“부대, 장…..?”
죽는 순간까지 자신이 왜 죽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
레녹이 그 모습을 바라보며 웃음기가 싹 가신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렇게 쓸데없이 찜찜한 감정을 느낄 일도 없고 말이야.”
“아아아악!!”
“마, 마일즈가!!”
“안돼, 안돼!!”
“마일즈으으으!!”
동료의 죽음을 확인한 탐사단의 반응은 격렬하기 그지없었다.
울부짖으면서 마일즈의 이름을 부르짖는 이들과, 분노로 점칠된 표정으로 레녹을 노려보는 다른 사람들.
그 중 한명은 마일즈와 친분이 깊었던 모양인지 눈물을 흩뿌리면서 그의 시체를 향해 뛰어나갔지만, 브룩이 기겁한 얼굴로 소리쳤다.
“옌슨!! 가까이 가면 안돼!!”
“늦었어.”
서걱!!
달려가던 자세 그대로 상반신이 통채로 절단 당하는 옌슨.
피를 흩뿌리며 경련하는 그의 얼굴에는 마일즈와는 달리 끔찍한 격통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었다.
“꺼, 꺼어억…!!”
제대로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꿈틀거리다가 절명하는 옌슨의 모습을 확인한 탐사대의 멤버들의 안색이 싹 변했다.
그제서야 마일즈가 죽은 자리 근처에 보이지 않는 함정이 쳐져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던 것이다.
“두 명을 낚았다면 기대 이상이군.”
레녹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장갑을 낀 손을 흔들어 연결되어있던 수십발의 마력사를 일제히 끊어냈다.
파아아앙!!
그 순간 마일즈의 주위로 단단하게 고정되어있던 마력사가 일제히 풀려나면서 사방을 휘젓고, 날카로운 예기의 소용돌이를 그렸다.
주위에 서 있던 다른 탐사단의 멤버들이 거기 휩쓸리는 건 필연적이었다.
“꺄아악!”
“파, 팔이…!”
“조심해!! 보이지 않는 칼날이다!!”
이상을 알아차린 다른 사람들이 재빠르게 두 사람의 시체 주변에서 거리를 벌렸지만, 그 와중에도 가벼운 찰과상을 입는 건 피할 수 없었다.
“모두 방심하지 마라!!”
이를 악문 브룩이 벌컥 소리를 질렀다.
“놈은 조작계열 마법사다. 여태까지 대화에 어울려주면서 마법을 준비할 시간을 벌었던 거야!! 모두 철저하게 주위를 조심하고 경계해라!”
“……..!!”
그래도 전투경험이 모자란 이들은 아닌지, 브룩의 다독임 한번에 빠르게 동요를 가라앉히고 집중하기 시작한다.
시선에 깃든 단호한 살의로 보아 저들 역시 적지않은 사람을 죽여본 전투의 달인들일 터.
그리고 고작 그 잠깐 마력사를 전개한 것을 알아보고 레녹을 조작계열 마법사라 판단한 브룩의 안목도 상당하다.
하지만 레녹이 준비한 수는 고작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걸 눈치챘다면 지금 당장 꽁무니를 뺐어야지.”
쩌저저적!!
다섯 손가락을 쭉 펴는 것과 동시에, 차 옆에 내려앉았던 거대한 바위가 꿈틀거린다.
동시에 마치 오래전에 미리 잘라놓기라도 한 것처럼 수백개의 절단면을 가지고 무너져내리고.
경악한 다른 이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레녹이 손가락을 움직였다.
콰아아앙!!
폭발하듯이 앞으로 쏘아진 수백개의 돌덩이들이 순식간에 어두운 밤거리를 뒤덮었다.
그 모든 돌덩이에 일일히 붙어있는 마력사를 확인한 브룩의 표정은, 아까와는 달리 처참하게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가볍게 뻗은 손을 움켜쥐면서 중얼거린다.
[터져라.]흘러나온 말은 영창의 형태로 변해 언령으로 화하고.
무수히 갈라져 뻗어나간 돌덩이에 담겨져 있던 마력이 그대로 반응하면서 거대한 연쇄반응을 일으켰다.
폭발한다.
콰과과과과!!!
새빨간 폭염의 파도가 드넓은 차선을 뒤덮고 불바다를 만들었다.
“아아아악!!”
마력으로 만들어진 화염이 끊이지 않고 사방을 불사르며 살아있는 모든 것을 불태웠다.
공간을 통채로 장악하고 터져나온 폭발을 예상한 이가 누가 있을까.
폭발이 끝나고 난 뒤 모습을 드러낸 탐사단의 모습은 엉망진창이었다.
“으으윽….!!”
“당장 죽여야 해. 지금 당장!!”
추가로 죽은 멤버는 많지 않지만,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들 이제는 단순한 살의가 아니라, 간절함을 담아 제각기 무기를 뽑아들고 레녹을 노리기 시작했다.
단지 입을 막는 수준에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이 자리에서 레녹을 죽이지 못한다면 오히려 자신들이 죽을수도 있다는 사실을 절절하게 실감하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멀쩡한 안색으로 불길속에서 걸어나온 브룩 역시, 허공에서 새파란 빛의 검을 뽑아들면서 마력을 끌어올렸다.
“타이밍을 놓치지 마라.”
활활 타오르는 시선으로 레녹을 노려보던 브룩이 말했다.
“마수를 사냥할때처럼, 차근차근 가는거다.”
“인간을 사냥할때 처럼이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