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348
약먹는 천재마법사 348화
2인 1조(4)
이 사흘간 두 사람이 화살과 탄환에 쓰러진 적들의 숫자만 수백.
적을 많이, 또 빠르게 죽이는 것에 집중하는 대신 이곳에 모여든 조직의 리더격에 해당하는 인물을 집중적으로 노린 결과다.
단순한 저격이라고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의 사격이 번갈아 이어진다면 이쪽에 신경이 분산되는 것은 당연한 일.
자연스럽게 다른 주시자들이 미궁 근방에서 선택할 수 있는 움직임의 가짓수가 달라진다.
이쪽을 직접 요격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멀지만, 무시하기에는 너무나도 날카롭게 들어오는 저격의 이지선다.
레녹과 이벨린은 그 절묘한 거리를 선점한 뒤로 끊임없이 근방의 적들을 쏘아 맞히고 정리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끼리릭……!!
[조준보정 : 4단계] [궤적유도 : 2단계] [지정사격 : 2단계] [격발가속 : 3단계] [충격강화 : 2단계] [반동제어] [탄환예열] [대구경 탄환 장전 완료] [풍속 측정, 풍향 보정] [기압 및 온도 보정 준비] [사격한도거리 계산 완료]11중첩 사격보조마법을 때려 박은 초장거리 지정사격.
다비의 연산능력까지 빌려 궤도를 보정하고 사격능력을 펌핑하고 나서야, 이벨린이 보여주는 신기의 일부나마 따라 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라이플의 길쭉한 총신 위로 중첩된 보조마법이 일제히 회전하며 연동.
톱니바퀴처럼 맞아떨어지며 그대로 탄환을 총구 밖으로 밀어낸다.
소리의 속도를 뛰어넘은 탄환이 총구를 뛰쳐나오는 것과 동시에 한 번 더 가속.
허공에 마력으로 수놓인 레일을 따라 미끄러지며 정확하게 레녹이 원하는 방향으로 휘어졌다.
쐐애애애액!!
바람을 가르다 못해 찢어버리는 묵직한 소음.
수천 미터를 뛰어넘은 탄환이 그대로 차가운 북대륙의 공기를 뚫고 정확하게 목표물에 닿는다.
퍼억!!
코끼리를 닮은 소환수 위에 서서 사방을 지휘하던 소환사의 머리가 수박처럼 터져나가며 피를 흩뿌린다.
소환사의 몸을 지키던 실드와 각종 아티팩트를 힘으로 밀어내고 표적을 터트릴 정도의 위력.
주위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다른 초인들의 안색까지 창백하게 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씨, 씨X……!!”
“그놈이다, 총잡이가 이쪽을 보고 있어!!”
“화, 활잡이는 어디야? 지금 어딜 쏘고 있는지 확인해!!”
미궁 근처에서 보낸 사흘동안 레녹과 이벨린 두 사람이 사방에 끼친 영향력은 결코 무시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양보다는 철저하게 질을 추구하며 이곳에 모인 조직의 핵심 구성원들만을 꾸준히 저격해온 결과.
이 전장에 모인 초인들은 저격수가 총과 활 두 사람이라는 것까지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인을 잃은 소환수가 눈이 뒤집혀서 날뛰고, 순식간에 그쪽 전장이 어지럽게 변하는 것을 확인한 레녹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 혼자서는 이 정도 규모의 피해를 끼치는 건 어렵겠지만, 이벨린이 함께한다면 다르지.’
레녹이 이만한 수준의 저격을 하기 위해서 쌓아 올리는 보조마법과 마력소모는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기본적으로 8중첩을 넘어서면 효율이 감소하는 보조마법을 억지로 연계시켜 쌓아 올려 거리를 늘리고 위력을 강화.
거기에 소모되는 마력량을 따지자면 6레벨의 군위마법 중에서도 최상급.
컨디션에 지장이 가지는 않더라도, 결코 무시할 수는 없는 소모량이다.
거기에 이 정도 위력의 저격은 라이플의 내구성을 생각해서라도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하는 상황.
하지만 이벨린은 다르다.
그녀의 화살은 레녹처럼 바람을 찢는게 아니라 부드럽게 타고 들어가며, 기류의 흐름을 타고 쏘아진 속도보다 더 빠르게 가속하며 적을 꿰뚫는다.
화살을 당기고 쏘는 데 소모되는 마력은 레녹의 11중첩 초장거리 저격에 비하면 절반 이하.
거기에 그녀가 쥐고 있는 장궁의 내구도를 걱정할 필요조차 없다.
레녹이 특유의 감각으로 목표를 지정하고 선공을 넣으면, 이벨린은 그 뛰어난 눈썰미로 기민하게 반응하는 몇몇을 골라 저격한다.
반응이 남다르게 빠른 이들일수록 이 전장에서 위협적인 실력을 보유한 자들임은 자명한 바.
지금 수천 미터는 떨어진 곳에서 보여주는 저 혼란스러운 반응이, 사흘간 이 간단한 이지선다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자행되었는지 증명하고 있었다.
“이벨린, 아직 마력은 괜찮아?”
“아직까지는?”
활시위를 끝까지 쭉 당기자, 그녀의 슈트가 자연스럽게 동작을 보조한다.
시위를 당기는데 가장 필요한 것은 당연하지만 강력한 근력.
하지만 궁술의 결과를 좌우하는 것은 결국 궁사의 눈과 기술에 달린 일이다.
협곡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설산 언저리. 근처에 텐트를 치고 꼬박 사흘을 보냈는데도 그녀의 눈과 집중력은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레녹은 품 안에서 마력회복제 묶음을 꺼내 그녀의 옆에 놓아둔 뒤 일어섰다.
“미궁 근방 격전지는 대충 정리했으니까, 그거라도 먹으면서 좀 쉬고 있어.”
그 말을 듣고서야 이벨린이 고개를 돌렸다.
“어디 가려고?”
“근방에 결계 쳐놓은 거, 유지보수 좀 하고 오지.”
아무렇지 않게 대꾸하는 레녹을 이벨린이 물끄러미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흔적, 전부 지우면 안 되는 거 잊지 마.”
“……그래.”
말은 이렇게 했지만, 이벨린도 대충 눈치채고 있는 모양이다.
레녹은 쓴웃음을 지으며 대충 장비를 챙겨 들고 설산 아래쪽으로 움직였다.
미리 쳐둔 결계 언저리로 나오자, 희미한 진동과 함께 묵직한 소음이 울려 퍼진다.
그와 동시에 사방에서 느껴지는 수십이 넘는 강렬한 마력들.
“이 근처, 맞지?”
“하루 종일 잠도 안 자고 하늘을 보며 확인한 결과다. 바람의 방향 때문에 계산이 어려웠지만, 틀림없어.”
“드디어 찾았구나, 이 개새끼들이……!!”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장비를 들어 올리는 그들의 표정은, 쉽게 보기 힘들 정도로 노골적인 분노로 물들어 있다.
눈 덮인 구덩이 사이에 숨어 그 모습을 바라보던 레녹은 그들의 심정을 어느 정도 이해했다.
직접 저격을 행한 레녹이나 이벨린은 모르지만, 저격을 당한 이들의 분노가 얼마나 클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았으니까.
예로부터 저격수는 사로잡히면 가장 잔혹한 죽음을 맞이한다고 했던가.
그만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가오는 죽음의 위협은 쉽게 보아넘길 것이 아니다.
이 전장에 모인 초인들 중에서도, 미궁에 진입하는 일보다 당장의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두 사람을 찾아 나설 이들이 있을 거라는 사실은 레녹도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렉을 죽이다니……. 절대 용서 못 해……!!”
“먼저 찾으면 연락하는 거 잊지 마. 사지를 찢어 갈아서, 미궁 꼭대기에 걸어놓아야 하니까.”
“포위망이 완성되면 곧바로 돌입한다. 그때까지는 결계 절대 건드리지 마. 들켰다간 그 새끼들 화살이 여기까지……!!”
퍼억!!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일행 한가운데 서 있던 마법사의 머리에서 피보라가 솟아오른다.
얼굴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처참한 사망. 주위의 다른 전사들이 곧바로 움직였다.
“빌어먹을, 벌써 눈치챘어!!”
“이 새끼가, 이미 주변 경계도 소홀히 하지 않고 있었구나!! 개 같은 놈이……!!”
“어떡하지? 지금 당장 들어가야 하나?”
“아니, 물러나! 이쪽을 눈치챘으면서도 이 시점에서 선공을 걸었다는 건……!!”
마지막으로 소리친 전사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이 자리에서 가장 빠르고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잠재적인 리더. 그 존재를 확인한 레녹이 망설임 없이 교체한 샷건의 방아쇠를 당겼으니까.
그때 팔머의 작업장에서는 보여주지 못했던 세 가지 마력의 반발.
서로 다른 마력이 충돌해서 빚어내는 부작용을 그대로 총신에 담아낸 충격이 가감 없이 결계 밖으로 터져 나온다.
타아아아아앙!!
눈보라 사이로 묻혀들어간 샷건의 굉음. 열이 넘는 육편이 사방을 나뒹굴고, 공포에 젖은 초인들이 울부짖었다.
“흐아아아악!!”
“안돼, 안 돼!!!”
“살려줘어어!!”
한 번의 선공으로 상대측 전력을 반파시키고 나면 일은 간단하다.
레녹은 뇌전의 줄기를 뽑아내 숨이 붙어있는 이들까지 처리하고 곧바로 자리를 옮겼다.
남은 것은 사방에서 연락이 끊기면서 패닉을 일으키는 초인들에게 선공을 걸고, 그 혼란을 가중시켜 쓸어버리는 일의 반복.
순식간에 설산 근처에 모여든 수십이 넘는 초인들을 싹 정리한 레녹이 코트에 달라붙은 눈을 털어낸 뒤 결계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이벨린의 말대로 이 근처에 모여든 이들의 흔적을 완전히 없애지는 않았다.
거의 천명에 달하는 초인들이 설원에 모여 아웅다웅하고 있는 협곡 근방.
오히려 지나칠 정도로 깨끗하게 흔적을 정리하는 건 수상해 보이기 십상이다.
차라리 이런 시체들을 근방에 던져놓고 착각과 공포를 동시에 던져두는 게 바람직하겠지.
레녹은 그렇게 생각하며 이벨린의 짐에서 빼온 화살대를 시체의 미간에 박아넣고 손을 놓았다.
설산 아래쪽으로 떨어져 내리는 시체를 내려다보던 레녹이 곧바로 걸음을 돌렸다.
주시자들끼리 팀을 짜서 제각기 움직이기 시작한 지 사흘.
그 사이 레녹과 이벨린을 추적해 죽이기 위해 찾아온 이들은 이걸로 여섯 번째.
“자리를 한 번 더 옮기는 게 좋으려나…….”
레녹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곧바로 이벨린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끝났어?”
“그럭저럭.”
그녀의 발치에 놓아두었던 마력회복제. 하나도 먹지 않았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쉬지 않은 채 저격에 열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꾸준한 저격을 통해 초장거리에서 쏘아지는 화살과 탄환의 위험이 최대치로 쌓인 시간.
이 시점에서 두 사람의 영향력을 가장 전장에 잘 떨칠 수 있다는 것을 이벨린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
파앗……!!
한창 저격에 열중하던 이벨린이 느닷없이 방향을 휙 돌려 완전히 다른 곳으로 시위를 놓는다.
그녀의 손에 쥐여 있던 화살대 두 대가 그대로 탄성을 받아 허공을 내달리고.
비슷한 높이의 설산에서 대기하던 저격수 두 명의 미간을 정확하게 관통했다.
퍼버버벅!!!
“……!!!”
“꺽!!”
“후우…….”
그제서야 단단하게 쥐고 있던 장궁을 내려놓은 이벨린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레녹이 가만히 그녀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고생했어.”
“확실히 가면 갈수록 쉽지 않네.”
제 자리에 앉아서 목을 이리저리 돌린 그녀가 푸념했다.
“저격이 어느 정도 효과를 본다는 걸 깨닫자마자 원거리 사수가 확 늘었어. 게다가 그 하나하나가 만만치 않은 수준이니…….”
레녹도 이벨린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대충 알고 있다.
기본적으로 저격수끼리의 대결은, 아무리 실력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신경을 갉아먹기 딱 좋은 일.
상대 역시 기본적으로 관련 경험이 있다면, 기척과 사격 위치를 숨기고 접근해 올 테니 더 까다롭다.
심지어 이쪽은 사흘 동안 쉬지 않고 저격을 퍼부어대며 상대적으로 위치와 주목도를 끌어올렸으니 더 조심해야 하는 상황.
그렇기 때문에 레녹과 이벨린은 협곡 아래쪽을 조준하는 사이에도 지속적으로 다른 저격수들을 신경 쓰고 있었던 것이다.
사흘 동안은 주로 이런 일을 레녹이 도맡아 처리해 왔지만, 이벨린 역시 계속해서 살피고는 있었겠지.
“좀 쉬고 있어라. 나머지는 내가 처리하지.”
레녹은 그렇게 말한 뒤, 이벨린이 자리잡고 있던 절벽에 올라 라이플을 꺼내 들었다.
철컥!!
이미 선공을 이쪽에서 제압했으니, 위치가 발각된 다른 사수들을 처리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다.
레녹과 이벨린을 따라 원거리 사수들을 배치한 이들은 꽤 되지만, 그들만한 실력과 능력을 동시에 갖춘 이들은 극소수.
중요한 것은, 이런 사수들끼리의 대결은 단순히 위치가 발각되었다고 끝나는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평범한 지정사수들이야 사각지대에서 날아오는 총알 한 발에 그대로 목숨을 잃는 일이 많겠지만, 레녹이나 저편에 숨어있는 사수나 모두 멀쩡한 탄환이나 화살 정도는 어렵지 않게 받아낼 수 있는 초인들.
그렇기 때문에 명중을 확신한 순간, 그 방어까지 박살내 버릴 수 있도록 힘을 제대로 실어야 한다.
이 눈덮인 설원에서, 온갖 보조마법으로 다각화된 레녹의 저격은 그런 사수들의 예상을 박살 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알맞았다.
“어억……!!”
“힘이……!!”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알 수 있다.
레녹의 육안으로는 제대로 거리감조차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먼 거리.
그 사이에서 탄환에 방어구째로 짓뭉개진 시체가 뜨거운 피를 흘리고 있음을.
보이는 것보다 먼 곳을 가늠하고, 손이 닿는 거리보다 떨어진 자리를 노리는 것.
어쩌면 이벨린과 같은 사수가 가진 진정한 재능은…….
“…….”
이벨린은 눈밭에 앉아서 차분한 표정으로 레녹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타아앙!!
“대충 이걸로 정리됐군. 이렇게까지 손을 썼으니 한동안은 괜찮을 거다.”
라이플을 수납한 레녹이 아까보다는 훨씬 더 편해진 안색으로 언덕을 걸어 내려왔다.
쪼그리고 앉아 있던 이벨린이 그런 레녹을 보면서 손을 흔들었다.
“사흘 동안 옆에서 지켜보면서 생각했지만, 기대했던 것보다 너무 잘하는데. 언제 그렇게 사격이 늘은 거야?”
“저격수들 간의 대결은 오히려 그렇게까지 힘들지 않은 편이다.”
레녹이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며 이벨린의 옆에 앉았다.
“결국 중요한 건 서로의 위치를 어림짐작으로 가늠한 상태에서 벌이는 심리전이니까.”
그런 영역에서 레녹은 다른 이들에게 결코 뒤처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사수 간의 심리전, 서로의 위치를 가늠하고 때려 맞추는 머리싸움에서 패배하지 않는다면 남은 것은 가능한 탄환수를 줄여서 최적의 효율을 찾아내는 것뿐.
수천 미터 저격을 위해 적지 않은 마력을 소모할 때보다는 차라리 할 만하다고 말해야 할까.
이벨린은 말없이 텐트에서 장작을 꺼내 불을 붙이는 레녹의 모습을 보며 픽 웃었다.
“이래서 실력 있는 마법사랑 같이 작전을 하면 편하다니까. 머리도 좋고, 할 줄 아는 것도 많고 말이야.”
“이제 와서 말인가?”
“빈말 아니다? 물론 에이전트에서 오래 일하면서 실력 있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또 오래 일하다 보니까 이런 편의가 좀 더 살갑게 다가오는 거라고.”
스스럼없는 이벨린의 말에 레녹도 희미하게 웃었다.
도시의 음지에서 이리저리 구르며 뼈가 굵은 베테랑인 그녀가 무슨 의미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는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추위를 이기기 위해 모닥불을 피우는 것 자체가 이벨린과 같은 사수들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하지만 레녹은 설산 근방에 결계를 치고, 육안이나 마력감지로 확인할 수 없는 영역을 줄임으로써 상대적으로 편한 환경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이런 설산지대에 자리잡은 이유가 단지 그것뿐만은 아니었지만, 지금의 편의를 구축하고 이벨린이 컨디션을 관리해준 것만으로 레녹은 할 일을 다한 셈.
“그래. 알았다. 한나절 뒤쯤에는 미궁 입구가 열리기 시작할 테니까.
레녹이 그렇게 말하면서 웃어넘기려던 그 순간.
이벨린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아직 부족해.”
“뭐?”
“생각해 보니 난 좀 더 칭찬과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어.”
“…….”
다소 뜬금없게 느껴지는 이벨린의 선언.
레녹의 눈치를 살짝 보는 그 모습은, 그녀가 나름대로 고심 끝에 그 말을 꺼냈단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레녹은 그 말을 듣고 오히려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훗.”
“……?”
“그럴 줄 알고 사흘 전부터 미리 준비를 하고 있었지.”
“주, 준비를?”
살짝 톤이 높아진 이벨린의 목소리에 더 진해진 웃음을 머금은 레녹이 여유롭게 품 안에 손을 뻗었다.
이벨린이 살짝 움찔거리며 레녹의 손끝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그 순간.
탁!
수십 개의 풀뿌리가 담긴 케이스를 레녹이 이벨린의 앞에 내려놓았다.
“설산 곳곳에서 사흘 동안 채집한 채소 컬렉션이다.”
레녹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미궁에 진입하기 전에 네 컨디션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기 위한 섭취물이지. 몰래 준비하고 있었는데, 설마 눈치채고 있었을 줄은 몰랐군.”
“…….”
“……왜 그러지? 혹시 식용이 불가능한 품종이 섞여 있는 건가? 철저하게 골라냈을 텐데.”
이벨린의 시선이 싸늘하게 변한 것을 인지한 레녹이 슬쩍 케이스를 매만졌다.
[아휴…….]코트 안에 숨어 있던 다비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