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352
약먹는 천재마법사 352화
항하사미궁(2)
“2년 전에는 에이전트에게 빚을 졌지.”
자운이 말했다.
그 시선은 레녹이 아니라 그 옆에 서 있는 이벨린을 향해 있었다.
자운은 처음부터 이벨린의 존재를 인지하고 이쪽에 먼저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살짝 웃는 듯한 얼굴로 양 손을 들어올린 자운이 말했다. 창백한 두 손에는 방금 전 그가 죽인 사람의 피가 흥건하게 묻어 있었다.
“당신처럼 청렴한 사람도 승천자의 유물을 탐낼줄은 몰랐는데, 요즘 시정부도 돈이 많이 궁한 모양이지?”
대답은 없었다.
언짢은 표정으로 자운의 얼굴을 응시하던 이벨린의 몸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을 뿐.
치익!!
극도로 압축된 도약음. 그녀의 신형이 그 짤막한 소리보다도 먼저 내달린다.
십수 미터 거리를 호흡 한 번에 건너뛰어 마력을 비튼다. 텅 빈 로브 안쪽 가슴팍에 번뜩이는 손날을 찔러넣었다.
직후 유리가 깨지는 듯한 독특한 소음과 함께 총천연색의 광채가 어두운 공동 안쪽에 번뜩였다.
와장창!!
어느샌가 자운이 던져올린 보석이 정확하게 이벨린의 선공을 받아내며,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산산조각이 나버렸던 것이다.
차라라라락!!
허공에서 흩날리는 보석의 파편들이 사방에서 반짝이면서 자잘한 빛의 비를 그린다.
이벨린의 기민한 반응을 확인한 순간 레녹도 곧바로 움직였다.
‘자운은 내 신분을 모른다. 전격마법은 일단 자제할 수밖에.’
화르르륵……!!
손바닥 위에서 끌어올리는 것은 날카로운 전격의 소용돌이가 아니라, 살을 녹일 듯이 뜨겁게 타오르는 화염덩어리.
다섯 손가락 사이로 줄줄 흘러내리는 불의 흐름을 고쳐 쥐고 순식간에 영창을 마친다.
[작염구(炸炎球)] [9중 전개 복합 융해]자운이 뒤집어쓴 로브 사방 허공에서 피어오른 아홉 갈래 화염구가 회전하며 눈처럼 녹아내리고.
그대로 자운을 에워싸며 거대한 만월의 형태를 그렸다.
[적월(赤月)]콰아아아아아아!!!
화염구를 전개하는 것과 동시에 마력구조를 융해시켜 억지로 파괴력을 끌어내는 술식.
머리 위를 포함한 팔방위를 점유하고 회전하는 화염의 달이 미궁 공동을 환하게 밝히며 살아 있는 모든 것을 불사르려 꿈틀거렸다.
“우윽……!!”
이벨린조차 그 강렬하기 그지없는 열기에 뒤로 살짝 물러선 그 순간.
쩌저저저적!!
마치 공간이 괴리되듯 쪼개지는 듯한 괴현상과 함께 [적월]이 쪼개지고, 그 안에서 자운이 튕기듯이 앞으로 질주했다.
기민하기 그지없는 속도. 노리는 방향은 이벨린이 아니라 레녹 쪽이다.
레녹 역시 그리 놀라지 않고 자세를 고쳐잡았다.
그의 기억 속에서 자운 오디스는 뛰어난 보석술사인 만큼이나, 우수한 권법가.
그 당시에서 술식과 무예 양면에서 우수한 경지에 올랐던 그가 이제 와서 접근전을 포기했을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다.
“차라리 잘됐군.”
염열계열 마법에, 최근 들어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된 융해의 성질변화를 더하는 것.
자신이 사용하는 마법의 구조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한순간에 쌓아 올린 작품을 무너뜨리는 판단과 이해력이 필요한 고급 기술이다.
그 사용법은 진작 이해하고도 한동한 사용할 방법이 없었는데, 이 자리에서 자운을 상대로 사용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어두컴컴한 미궁의 갈림길 사이에서 순식간에 두 사람이 거리를 좁히고 서로를 마주본다.
채채채채채챙!!
레녹이 손가락을 접었다 피며 팔을 휘두르는 것과 함께 흩날리는 화염이 각기 다른 형태의 꽃으로 피어나고,
그 무수한 염화의 전개를 자운이 던져올린 보석이 터져나가며 사방에서 막아선다.
쉴 새 없이 흩날리는 보석 파편. 호흡기로 들어가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까 걱정될 수준.
레녹 자신과 잠깐이나마 대등하게 주고받는 그 공방이 아니라, 그 엄청난 보석의 보유량에 감탄을 터트린 그 순간.
까가가가각……!!
사방에서 유리되듯 갈라지며 쪼개지는 풍경의 균열이 레녹을 뒤덮기 시작했다.
“……!!”
그 알 수 없는 현상이 단순히 우연에 의한 것이 아니라, 명백하게 자운이 일으킨 공간박리라는 것을 인지한 레녹의 표정이 찌푸려지고.
승리를 확신한 표정을 지은 자운이 레녹의 목을 향해 창백한 왼손을 내밀었다.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워 넣은 날카로운 보석 한 개가 빛나며 발광하는 그 순간, 레녹 역시 품 안에 손을 뻗어 대천사의 연민을 발동.
그대로 사방에서 번뜩이는 보석파편들을 자운의 뒤쪽으로 전이시켜 버렸다.
후우웅!!
직후 연기처럼 소멸하기 시작하는 공간박리에 자운이 꿈틀거린 순간, 옆에서 날아든 새카만 섬광이 그대로 그의 왼쪽 어깨를 관통했다.
“윽……!!”
처음으로 튀어나온 신음.
그 힘을 이기지 못한 자운의 신형이 뒤로 날아가 벽에 처박힌다.
콰아아앙!!
“어처구니가 없네. 설마 가만히 보고 있을 거라 생각한 건 아니지?”
어깨를 돌리면서 레녹의 옆으로 걸어 나온 이벨린의 싸늘한 단언.
자운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왼쪽 어깨를 매만졌다.
카가각……!!
이벨린이 쏘아낸 화살대가 자운의 어깨에 꽂힌 채로 아직까지 회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별다른 장비도 없이 맨손으로 쏘아낸 궁술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위력.
“도망치기는커녕 역으로 이쪽을 노리다니……. 그렇게 일이 쉽게 흘러갈 줄 알았던 거야?”
기껏 선공을 적중시켜놓고 두고 볼 생각은 없다. 혹시라도 영역을 전개했다가는 귀찮은 상대가 될 터.
이벨린이 곧바로 자운의 숨통을 끊기 위해 움직이려던 그 순간.
레녹이 그녀의 어깨를 잡아 멈춰 세웠다.
“잠깐.”
“에반?”
날카로운 눈으로 쓰러진 자운을 들여다보던 레녹이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기묘할 정도로 사방에서 느릿하게 떨어져 내리는 보석의 파편.
장갑 사이로 반짝이는 파편을 쥔 레녹이 흥미롭게 그것을 관찰하다 말했다.
“보석류 광물은 강도가 상당한 편이지.”
“…….”
“광석이 규칙적인 구조와 패턴으로 이뤄진 경우는 많지만, 보석의 종류를 막론하고 이렇게 얇게 쪼개지는 건 이상하지 않나?”
“그 말은…….”
“아마 이런 식의 전투를 대비해서 사전에 손을 써두었겠지.”
레녹은 그렇게 말하며 장갑을 낀 손으로 보석가루를 털어냈다.
전투 도중에 일어났던 부자연스러운 공간박리. 자운과 공방을 교환하면서 이미 그 원리는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보석의 파편을 이용한 가공된 마력의 난반사……. 그 부작용을 이용해서 근방 공간을 억지로 벗겨내 붕괴시키고 있는 거야.”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리는 자운의 모습에 레녹이 고개를 내저었다.
“굉장히 수준 높고 복잡한 방식이군. 구체적인 원리 자체는 나도 쉽게 이해하기 힘들 정도야. 무작위에 가까운 마력광의 난반사 패턴을 이 환경에 임의로 끼워 맞추지 않는다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텐데.”
전투 도중 박살 낸 보석의 파편을 공동 사방에 흩뿌린 뒤, 그 사이로 마력광을 내비쳐 억지로 근방의 공간을 벗겨내듯 박리시킨다.
공동 곳곳에서 흩날리는 파편을 통해 찰나의 순간 수백 번은 넘게 난반사된 마력이 한도를 이기지 못하고 어그러지며 공간 자체를 갉아먹는 현상.
그 현상 자체는 공간의 직접조작과는 관련이 없지만, 술식의 결과로서 공간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자운이 자각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자운 오디스가 서대륙에서 가장 8레벨에 근접한 술사라는 소문은 거짓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걸 고의적으로 발현시켰다는 건 분명해 보이고……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쳤다는 점은 변하지 않아. 아무리 생각해도 최근 학계의 흐름과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군.”
“…….”
“그쪽에 대해 들리던 소문, 아무래도 전부 헛소리는 아니었던 모양이야.”
그제서야 레녹을 돌아보며 자리에서 일어선 자운이 피식 웃었다.
“에반이라 했나? 마약왕을 때려눕힌 염열마법사…… 이벨린과 같이 움직일 정도의 실력은 되는 듯하군.”
자운은 어깨를 관통하고 회전을 멈춘 화살대를 뽑아낸 뒤 몸을 일으켜 세웠다.
마치 상처를 입지 않은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왼팔을 휙휙 돌린 그가 웃으면서 한발 앞으로 걸어 나왔다.
“이 정도면 서로 실력은 충분히 확인한 것 같은데, 이제 내 용건을 이야기해도 될까?”
“……”
“솔직하게 말하자면, 난 에이전트에게 나쁜 감정은 없어. 결과적으로 현궁이 현장에 나서지 않았던 덕분에 나도 그 흑마법사를 미끼로 안전하게 도주할 수 있기도 했고. 그 일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때 이벨린이 흑마법사를 토벌하는 현장에 나서지 못했던 것은, 그 일에 배후에 있던 시의회 상원의원 레이센을 잡아 구속시키기 위해서였지만 여기서 굳이 그 사실을 자운에게 말해줄 필요는 없었다.
이벨린 역시 자운의 말에서 돌아가는 분위기를 눈치채고 앞으로 나섰다.
자운이 로브를 벗고 자신의 정체를 공개한 이유가, 사실상 그녀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여기는 무슨 일이지?”
다소 냉막한 표정으로 변한 이벨린이 물었다.
에이전트 소속인 그녀는 자운이 테러조직 팔시온을 지휘해 흑마법사 크레이그 틸리언과 내통, 거대도시에 혼란을 일으키려 한 내막을 전부 알고 있다.
당연히 자운이 서대륙으로 건너가 엘더바인이라는 범죄조직을 만들고, 7레벨의 성위급 보석술사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겠지.
“멸목강림에 실패한 뒤로 발칸으로 돌아오지 않을 생각인 줄 알았는데.”
“그 말대로다. 여기는 발칸이 아니잖아. 나도 그 쓸데없이 크기만 한 도시에 돌아갈 생각은 없다고.”
심드렁하게 대답한 자운이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뭐 이제 와서 내 사정을 구구절절 설명해야겠나? 승천자의 유산을 털어 한 몫 두둑하게 챙길 생각을 한게 나뿐만은 아닐 텐데.”
“…….”
“그 과정에서 주제를 모르고 욕심을 부린 이런 병신들을 겸사겸사 혼내주고 있었을 뿐이지.”
자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발치에 굴러떨어진 시체의 머리통을 발로 걷어찼다.
퉁!
그의 발등에 맞고 날아간 머리통이 데굴데굴 굴러 공동 벽에 부딪혔다.
순식간에 입맛이 달아난 표정으로 이벨린이 짜증스레 미간을 찌푸렸다.
“네가 누구를 죽이고 다니건 관심 없어.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왜 입 다물고 도망치는 대신 우리 앞으로 기어 나왔냐는 거야.”
그 말과 함께 이벨린의 손에서 새카만 화살 한 자루가 튀어나왔다.
날카로운 화살촉을 역수로 쥔 이벨린이 레녹의 앞으로 한 발짝 걸어 나오며 말했다.
“여기서 그 낯짝을 드러냈다는 건, 미궁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결판을 내고 싶다는 말이겠지?”
그녀의 전신에서 배어 나오는 날카로운 예기가 순식간에 미궁의 공동 안쪽을 가득 메운다.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마력이 순식간에 방향을 재배열하여 자운을 노리는듯한 기묘한 감각.
“차라리 잘 됐어.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모르지만, 더 이상한 방향으로 뻗어 나가기 전에 여기서 죽여주지.”
무표정한 얼굴로 섬뜩한 말을 중얼거리는 이벨린의 얼굴을 보고도, 자운은 담담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미안하지만 완전히 반대다. 너희들이 일으킨 눈사태 때문에 미궁에 들어오기도 전에 내 계획이 틀어졌거든.”
“뭐?”
이벨린을 비롯한 고위 실력자들과의 대면을 기피하던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
자운은 희미하게 웃으며 팔짱을 낀 채로 대답했다.
“내 부하들은 미궁에 들어오기도 전에 흩어져서 위치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야. 그래서 하는 말이다만……. 나와 손을 잡지 않겠나?”
“…….”
“현궁 네 실력이야 말할 필요도 없고, 나는 미궁에 대해 남들이 모르는 정보를 몇 개 쥐고 있지. 우리가 협력한다면 미궁을 공략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을 거다.”
그 말과 함께 자운이 품 안에서 손가락만 한 크기의 보석을 꺼내 들었다.
“보석술사인 나는 위계나 속성을 막론하고 다양한 술식들을 다룰 수 있다. 적어도 네 옆에 있는 그 마법사만큼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데. 어때?”
침묵이 흘렀다.
설마 이 시점에서 자운이 장기적인 거래를 제안해 올 거라고는 레녹과 이벨린 모두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
그것도 바로 옆에 있는 레녹을 배제하고 이벨린과 협상에 들어가다니, 술사로서 자신이 더 우월하다는 자신감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대단한 자신감인걸.”
이벨린도 그 뉘앙스를 눈치챘는지 픽 웃었다.
“견뢰에게 꼬리를 말고 도망친 놈이 맞나 싶을 정도야.”
그녀가 반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것과 동시에, 자운의 입매가 희미하게 꿈틀거렸다.
“……놈에 대한 소식은 나도 들어 알고 있다. 그때 이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 카르텔의 사장단을 죽이고 성위급에 올랐다지.”
“잘 알고 있네?”
놀리듯이 말하는 이벨린의 말에 자운이 애써 웃었다.
“질만 한 놈에게 졌고, 결과에 승복했을 뿐이야. 그리고…… 이제는 내가 더 강해. 너도 알고 있을 텐데?”
“글쎄. 난 모르겠는데.”
이벨린은 그렇게 대꾸한 뒤, 레녹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에반, 네 생각은 어때?”
“…….”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린 레녹이 희미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반과 에반이 동일인물이라는 것을 아는 그녀 입장에서는 지금 상황이 기묘하게 느껴질 테니.
하지만 자운은 그 반응에서 레녹과는 다른 것을 느끼고 표정을 살짝 굳혔다.
대답을 레녹에게 돌리는 이벨린의 모습. 사실상의 결정권을 에반이라는 마법사가 쥐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