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358
약먹는 천재마법사 358화
승천자의 요람(4)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관문의 풍경이 의미하는 바를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밟고 올라가라는 거군.”
“단망경, 사용해 볼 수 있겠어?”
레녹은 이벨린의 제안에 단망경을 들고 마안을 회전시키려다,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
“……안 되겠군. 눈에 과부하가 온 것 같다.”
“뭐라고?”
고개를 휙 돌린 이벨린이 성큼 레녹에게 다가와 그의 뺨을 양손으로 덥석 붙잡았다.
“눈은? 괜찮아?”
“…….”
얇은 손으로 조심스레 레녹의 눈꺼풀을 뒤집고, 녹색 눈동자로 빤히 동공을 응시한다.
그 서슴없는 태도에 역으로 정신을 차린 레녹이 가만히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일어섰다.
“괜찮아. 마안을 너무 자주 사용하면서 생긴 부작용인 듯하니까.”
“하지만…….”
“마안을 얻은 뒤로 가능한 빨리 이런 한계점을 알아두었어야 했는데, 이건 내 실수군. 그동안은 마안의 능력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더니 이렇게 된 것 같다.”
이벨린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당분간은 사용을 자제하는 게 좋겠어. 정말 강력한 마안은 그 대가로 사용자의 시력을 앗아간다는 소문을 많이 들었거든.”
“……그래.”
카르텔 고위 간부와의 조우, 블레이버 마탑 서대륙 지부에서의 경험으로 개안한 마안은 여전히 성장의 여지가 많고 잠재력도 상당한 편이다.
레녹은 시신경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을 생각해 마안의 사용을 최대한 자제해 왔지만, 오히려 진작 마안의 한계점을 알아두어야 했다는 것을 자각하고 낮게 혀를 찼다.
몸과 건강을 신경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필요한 순간에 마안의 힘을 사용해 단망경을 볼 수 없다면 지금까지와 같은 미궁돌파속도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겠지.
‘돌아가면 카르텔에 한 번 들러야겠군.’
가만히 욱신거리는 눈을 매만지면서 레녹이 생각에 잠겼다.
레녹이 아는 초인들 중에서 마안보유자의 숫자는 굉장히 희귀하지만, 그중에서도 눈에 관해서는 단연코 필두에 서 있는 권위자가 있지 않은가.
카르텔의 회장이자, 칠채보의 마안을 보유한 8레벨의 술사, 올리비에라 론 메이즈.
협업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지금이라면, 레녹이 마안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 해도 마냥 거절하지는 않을 테지.
그러지 않아도 최근 들어 부쩍 마안 사용 빈도가 늘어나면서 이 눈으로 할 줄 아는 일이 이것저것 늘어나고 있다.
어느 정도 성장의 단초를 잡았다 싶을 때 미리 방향을 바르게 설정할 필요가 있었다.
레녹이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그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이벨린이 시선을 돌렸다.
“내가 먼저 가볼게. 넌 일단 그쪽에서 보고 있어.”
상대적으로 몸이 날래고 가벼운 그녀가 앞장서 함정을 확인하는 게 합리적이라 생각하는 걸까.
사실상 이 미궁 안으로 들어온 뒤로 이벨린은 레인저의 역할까지 도맡아가며 레녹을 보조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이벨린이 조심스럽게 도약해 공중에 떠다니는 블록 하나에 발을 내디뎠다.
퉁!
그 반동에 블록이 살짝 가라앉는다.
레녹이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과 반대로, 이벨린이 레녹을 향해 시선을 홱 돌렸다.
“미리 말해두지만, 그렇게 무거운 건 아니야.”
“……체중을 말하는 거였나?”
레녹조차 알아듣는데 시간이 걸렸을 만큼 뜬금없는 항변을 뒤로하고, 이벨린이 곧바로 연이어 움직였다.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진 이벨린의 신형이 떠다니는 블록들을 가볍게 즈려밟고 도약.
단숨에 수백 미터 위로 치솟아 하늘 위에 떠오른 문으로 향했다.
이벨린이 가속하던 속도 그대로 관문에 손을 뻗으려던 그 순간.
후욱!
“어라?”
그녀의 몸이 꺼지듯이 사라지더니, 이윽고 레녹의 바로 옆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레녹은 그 모습을 보고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한 함정이나 트랩은 아니라는 말이군…….”
“끄응, 거의 닿았었는데…… 뭐가 문제였지?”
머리칼을 쓸어넘기면서 자리에서 일어선 이벨린의 모습을 응시하던 레녹이 시선을 돌렸다.
“블록을 밟는 순서나, 방향에 따로 규칙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규칙…… 말이야?”
“그게 아니고서야 관문 바로 앞에서 강제로 널 이동시킨 힘을 설명하기 어렵지.”
레녹이 하늘에 떠오른 문을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이제 와서 진둔이 침입자를 거부하고 있을 가능성은 낮아. 그럼 순서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할 수밖에. 아마 이 공간 내부에 특수한 법칙이 작용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흐음……. 이제야 좀 승천자의 미궁답네.”
7레벨 성위능력자의 위치를 강제로 지정해 이동시킬 정도의 강력한 정언명령.
이벨린 정도 되는 실력자가 자각조차 하지 못할 정도라면, 단순히 술식이 정교하며 자연스러운 수준이 아니다.
사실상 물리법칙에 준하는 공간조작능력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일 터.
어디까지나 이 미궁의 존재가 결계술로 만들어진 구현체의 일종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레녹의 지식으로도 믿기지 않을 수준이다.
결게술을 극한까지 익히고 난다면, 특정한 조건에서는 성위능력자조차 피할 수 없는 새로운 법칙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일까.
빠르게 몸을 푼 이벨린이 살짝 자세를 낮추고 마력을 끌어올렸다.
우웅!!
그녀의 발밑으로 가벼운 돌풍이 이는 것과 동시에, 순식간에 검은 섬광으로 변해 사라진다.
그대로 블록을 연달아 지나쳐 관문으로 질주.
파앗!
어김없이 레녹의 옆에서 모습을 드러내지만, 기다렸다는 듯 방향을 틀어 다른 블록을 붙잡고 위로 치솟는다.
“일단 블록을 건너는 순서를 맞추지 않으면, 멈추는 순간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건 맞는 것 같아.”
우웅!!
가장 가까운 블록에 올라탄 이벨린이 그렇게 말하며 바로 옆에 있는 블록에 발을 내디뎠다.
그 상태로 3초 정도 멈춰서 기다리자, 그녀의 몸이 그대로 공간을 이동해 레녹의 옆에 나타났다.
“이 순서가 정답이 아니라는 증거지. 여기서 옆에 있는 블록이 아니라, 뒤쪽에 있는 블록으로 건너서 기다리면…….”
3초가 지나도 블록 위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이벨린이 양손을 펴고 어색하게 웃었다.
“당장 알아낸 건 이정도야. 블록 숫자가 너무 많아서 경우의 수를 찾으려면 아마 한참 걸릴 것 같아.”
“으음…….”
생각에 잠겨있던 레녹의 시선이, 이벨린의 발치로 향하는 것과 동시에 반짝였다.
“돌 부스러기가 떨어지고 있군. 블록 자체가 파괴가 불가능한 물건은 아니라는 말이지.”
“아, 그건 나도 알고 있어. 미리 실험도 해봤고. 하지만…….”
그녀가 손가락에 마력을 덧씌워 블록을 찌르는 것과 동시에 블록이 터지듯이 비산하며 갈라졌다.
펑!!
이벨린이 레녹을 바라보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이거 봐. 다시 수복되고 있어. 큰 의미는 없을걸.”
그녀의 말대로 박살 난 블록이 순식간에 모여들어 원형으로 복구되고 있다.
예상과는 살짝 다르지만, 상식적으로 당연한 일.
관문에 존재하는 모든 블록들을 초인의 힘으로도 파괴가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보다, 파괴된 이후에도 원형을 유지하도록 수복하는 것이 훨씬 쉽지 않겠는가.
하지만 레녹은 이벨린의 말을 듣고도 고개를 저으면서 소매를 향해 손을 뻗었다.
“중요한 건 블록이 파괴 후 수복된다는 것 자체에 있지.”
철컥!!
스나이퍼 라이플을 꺼내든 레녹이 순식간에 탄환을 장전하고 한쪽 무릎을 바닥에 굽혔다.
스코프에 눈을 가져대는 그 모습을 본 이벨린이 뒤늦게 레녹의 의도를 눈치채고 중얼거렸다.
“……설마?”
레녹은 대답하는 대신 방아쇠를 당겼다.
탕!!
라이플을 통해 발사된 탄환이 그대로 이벨린의 옆에 있던 블록에 명중, 그대로 블록 안쪽을 짓뭉개고 파고들어 멈췄다.
그 충격으로 블록 잔해들이 허공에 비산했다가 다시 복구되며 탄환의 모습까지 안에 파묻어 버린다.
레녹이 다시 라이플을 재장전하면서 중얼거렸다.
“이게 1번.”
“블록에 탄환을 박아넣고 표식으로 삼을 생각이야? 굉장히 창의적인 발상인걸…….”
혀를 내두른 이벨린이 블록에서 내려와 레녹의 등 뒤에 서면서 중얼거렸다.
“하지만 떠다니는 블록을 구별해서 번호를 매긴다고 크게 달라지는 건 없잖아.”
“중요하다. 왜냐면 이 블록들은 생명반응이 아니라, 마력 같은 동력에 반응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
“무슨 뜻이지?”
“탄환을 박아넣고 매개체로 삼아 마력을 전이시켜가면서 블록의 순서를 미리 확인하는 거다.”
레녹이 쉴 새 없이 방아쇠를 당기면서 대답했다.
“모든 블록에 탄환을 박아넣을 필요는 없어. 탄환을 매개로 근처 블록에도 마력을 전이할 수 있을 정도면 충분해.”
“결국 정면돌파인가…….? 하지만 경우의 수를 엄청 많이 계산해야 한다는 건 똑같잖아. 계산 자체에도 시간이 꽤 걸릴 텐데.”
레녹이나 이벨린이나 판단력과 기억력이 다른 초인들에 비해 월등히 뛰어남은 자명한 사실.
마력을 전이시키고 그 방향과 시행착오를 기억하고 후보에서 제외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문제는 시간이다.
결국 편법이나 지름길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남들보다 아주 조금 일찍 관문의 퍼즐을 풀기 시작했다는 메리트밖에 얻어가지 못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레녹은 그런 이벨린의 말에도 불구하고 웃었다.
“아니……. 이 방법이라면 괜찮아.”
[마스터는 정말 저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는군요.]코트 안에서 눈을 비비적거리면서 일어난 다비가 꿍얼거렸다.
[저 같은 전뇌정령을 고작 계산기 취급하다니……. 이제 마스터의 휴대폰 배터리는 모두 제거예요.]“시간 안에 계산을 마친다면 전부 줄게.”
레녹이 웃으면서 다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니까 잘 부탁한다, 파트너.”
[……흥.]다비는 레녹의 말에 콧방귀를 끼었지만, 더 이상 무어라 말하지 않았다.
레녹은 그 뒤로 탄환을 블록 사이사이에 박아넣는 일에 집중했다.
수천 개가 넘는 블록 전부에 탄환을 박을 필요는 없다.
탄환을 매개로 삼아 근방의 블록들까지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의 범위만 만족시키면 될 일.
레녹의 어림짐작으로는 탄환 200발이 조금 안 되는 선에서 끝날 작업이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이벨린이 탄창을 주섬주섬 뜯어내 맨손으로 탄환을 던져서 일을 도와주는 사소한 소란이 있었지만,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시작하자.”
[준비됐어요.]마법사와 정령이 동시에 의지를 굳히는 것과 동시에, 거대한 공동 곳곳에서 부유하는 블록들이 푸른 빛으로 깜박이기 시작했다.
삐비비비빅!!
“이건…….”
정밀한 기계부품 안에서 전기신호가 오가는 것처럼 초당 수백 번이 넘게 점멸하는 마력광이 공동을 환하게 밝힌다.
이벨린의 동체시력으로도 그 규칙이나 순서를 확인하기 어려울 만큼 마력광이 어지러이 반짝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모습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파밧, 팟, 팟, 팟!!
계속해서 밝혀졌다 꺼져가는 블록의 마력광들 사이에서, 이제 더 이상 꺼지지 않고 계속해서 마력의 빛을 유지하는 블록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순서대로 길을 밝히는 것처럼 깜박이는 광채 사이에서 빛을 유지한 채로 하나둘씩 존재를 드러내는 블록의 모습들.
지상에서 가장 가까운 블록에서부터 길게 이어지는 마력의 길을 확인한 이벨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잠깐만, 설마 지금 계산을 시작한 거야? 어떤 연산장치를 가지고 있길래 속도가 이렇게…….”
[빨리 저 활잡이의 오해를 고쳐주세요.]레녹의 코트 안에서 꼬리 세 개를 팔락거리면서 고개를 빼꼼 내민 다비가 항의했다.
[위대한 전뇌정령의 연산능력은 고작 계산기랑 비교될 정도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셔야죠.]레녹은 대답하는 대신 품 안에서 휴대폰을 다비에게 내밀었다.
다비는 그것을 보자마자 말을 멈추고 곧바로 양쪽 앞발로 휴대폰의 밑동을 쪽쪽 빨아먹기 시작했다.
[옴뇸뇸뇸.]레녹은 다비를 슬쩍 내려다보고 곧바로 머리 위로 떠오른 블록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어느덧 이 공간에 놓인 절반 이상의 블록들이 깜박임을 멈추고 마력광을 유지한 채 환하게 빛나고 있다.
이벨린 역시 그렇게 만들어진 빛의 길이 만들어낸 경로를 확인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완전히 중구난방이군. 하나하나 일일이 계산해 가면서 찾아내면 정말 오래 시간이 걸렸을 거야.”
한쪽 블록에서 이어진 길의 순서가 공동 완전히 반대쪽 블록에서 나타났다, 아래로 푹 꺼진 블록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다시 위로 솟구친다.
작정하고 거리가 떨어진 블록에서만 순서가 맞춰지는가 싶다가도, 또 바로 옆에 있는 블록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심지어 한번 건너온 블록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으면 순서가 이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을 정도.
이 모든 시행착오를 거치는 대신 비정상적으로 빠른 속도로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강인공지능의 강력한 연산능력을 보유한 다비의 존재가 있었기 때문.
레녹이 발한 마력광의 통제권을 양도받고 수천 개의 블록들에서 가능한 경우의 수를 그 강력한 연산능력으로 일일이 대입해 보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에게 가능한 단순반복작업을 아득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대리시행해 주는 연산의 결정체.
전뇌정령이자 알고리즘 학습과 창조에 특화된 다비에게 있어서는 상대적으로 훨씬 쉬운 일이었다.
레녹은 그 모습을 보고 곧바로 가장 가까이서 빛을 발하는 블록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움직이자.”
“벌써? 일단 계산이 다 끝난 다음에 건너가는 게 낫지 않겠어? 중간부터 헷갈리면 어쩌려고.”
이벨린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냉큼 레녹을 따라서 블록 사이를 오가기 시작했다.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일단 레녹이 말하는 대로 따르고 있는 것이다.
레녹도 부유마법을 이용해서 순서대로 블록들을 밟으면서 대답했다.
“언제 다른 진입자들이 이 공동으로 따라 들어올지 알 수 없어. 여기 모인 이들의 수준이 상당한 만큼, 이 빛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금방 알아차릴 거다.”
“하긴, 잠깐이라도 보여주면 금방 기억하고 따라올 테니까…….”
“대신 이렇게 우리가 지나온 블록의 흔적을 없애버리면, 후발주자에게 금방 따라잡힐 일도 없겠지.”
레녹과 이벨린은 그렇게 자신들이 지나온 흔적과 마력을 지우며 부지런히 블록 사이를 건너기 시작했다.
[진척도 62%. 계산 완료까지 3분.]“으앗?!”
“체감시간으로는 10초. 그 이상 공중에 머무르면 리셋되는 모양이군. 조심해야겠어.”
도중에 이벨린이 발을 헛디뎠다 레녹이 구해주는 사이, 원래대로 돌아가기도 하는 작은 소란이 있었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한창 마력광의 순서를 반복시행으로 때려 맞추던 다비가, 갑자기 모든 계산을 중단하기 전까지는.
[진척도 96%. 연산중단.]“뭐?”
[확인불가능한 변수의 존재가 있습니다. 이 블록에서 더 이상 어떤 블록으로 전이해도 마력의 잔존이 불가능해요.]“이미 건너온 블록까지 전부 확인한 거야?”
레녹의 말에 다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등 뒤에서 레녹의 결정을 기다리던 이벨린이 물었다.
“문제가 생긴 거야?”
“……아무래도 이 공동에 우리가 파악하지 못한 무언가 숨겨져 있는 모양이다.”
레녹이 대충 변수의 존재에 대해 설명해 주자 살짝 들떠있던 이벨린의 표정도 가라앉았다.
“쉽게 보내줄 생각은 없는 모양이네.”
“……”
다비는 이 공동안에서 떠다니는 블록을 전부 변수에 놓고 계산한 진척도가 96%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관문에 도달하기 위해서 남은 블록의 숫자는 얼마 남지 않았을 터.
도대체 어디서 문제가 생겼기에 전뇌정령의 계산이 끊길 만큼 중대한 변수가 발생한 것일까.
공동 주위로 마력감지를 펼쳐도 사방에서 몰려오는 기묘한 위화감 말고는 큰 문제를 감지할 수 없는 상황.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마안을 다시 사용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겠군.”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이벨린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적어도 어떤 문제가 있는지는 확인하고 넘어가야 해. 그 전에 변수를 찾을 수 있겠다면 좋겠지만-”
콰아아앙!!
말이 끝나기도 전에 레녹의 실드 너머로 강렬한 폭발이 터져 나왔다.
두 사람을 감싸 안고 휘몰아치는 폭염. 호의가 담긴 마력은 결코 아니다.
손짓 한 번으로 블록 위에서 몰아친 폭염을 몰아낸 이벨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래쪽이야.”
“그래. 보고 있다.”
이벨린의 날이 선 목소리에 레녹의 눈도 깊게 가라앉았다.
두 사람이 지나온 공동의 지상, 그사이에 난 수십 개의 문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초인 십수 명이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드디어 찾았다, 이 X발새끼들아.”
폭발을 쏘아 올린 날 선 표정의 술사가 레녹을 향해 걸쭉한 쌍욕을 내뱉었다.
“설산에 꼭꼭 숨어서 남의 머리통을 날려댈 때는 좋았지? 이제 다 뒤졌어, 이 개……!!”
타아앙!!
술사의 말이 끝까지 이어지기도 전에 날아온 탄환에 피를 흩뿌리며 고꾸라진다.
레녹이 심드렁한 얼굴로 라이플을 장전하면서 대꾸했다.
“그렇게 말하고 싶으면 방금 건 피했어야지.”
“유린!!”
“이 개자식들이!!”
“산 채로 잡아 와. 곱게 죽지는 못할 거다!!”
머리 위로 흔적이 사라진 동료의 허무한 죽음.
거기 분노한 다른 초인들이 고성을 내지르며 레녹을 잡기 위해 블록 위로 뛰어올랐다.
레녹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면서도, 장전한 라이플을 다시 겨누는 대신 이벨린을 돌아보았다.
“숫자 세줄까?”
“됐어.”
끼릭!!
왼쪽 팔뚝에 매인 단궁에 화살을 매긴 이벨린이 대답했다.
레녹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하던 그녀의 표정은 어느새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타이밍을 맞추는 건 사수의 몫이잖아.”
피이잉!!
시위를 당겨 쏘아낸 화살이 그대로 수백 미터를 가로질러 공동 아래쪽을 향해 쏘아진다.
화살이 향하는 방향은 지금 그들을 향해 블록 위를 내달리는 초인들이 아니라, 그들이 방금 전까지 발을 딛고 있던 지상 최하단.
블록의 순서를 맞추지 못한 채 10초가 지난 초인들이 그대로 지상 위로 강제전이되고.
“어?”
이벨린이 미리 쏘아낸 화살에 차례대로 미간이 관통당했다.
퍼버버벅!!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고꾸라지는 후발주자들의 모습.
그들의 품을 뒤져서 추가적인 정보를 획득해낼 틈도 없었다.
“두 번째 관문에 먼저 도착한 것 치고는 대응이 형편없었어. 탐색능력에 비해 무력은 좋지 못했던 모양이군.”
“아니면 그냥 운이 좋았던 걸 수도 있고.”
“어쨌든 다른 진입자들이 슬슬 공동 안쪽에 도착하고 있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맞아. 소리가 들려.”
“……소리?”
그 말에 이벨린이 대답해 줄 필요도 없었다.
다다다다다!!
공동 바깥쪽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발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뚫린 문 사이로 굉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으니까.
콰아아앙!!
“으아아아악!!”
“카바인 기사단이다!!”
“에놀라스 마탑도 왔어!!”
“이 군인놈들은 말도 제대로 모르잖아, 도대체 어디서 온 거냐!!”
“이쪽은 여자 한 명뿐이다. 미친 듯이 강해……. 다 죽을지도 모른다!!”
고요했던 공동이 순식간에 시끄러워지면서 사방에서 고함 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진다.
길을 찾은 방법은 제각기 모두 다를지라도,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미로를 돌파하고 두 번째 관문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쉬이이익!!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기사단이나 해방전선처럼 굵직한 무력조직들이 아니었다.
조용한 걸음으로 공동 한가운데 난 문에서 걸어 나온 것은 딱딱하고 싸늘한 인상의 여성 하나.
한 손으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털뭉치를 붙잡고, 다른 한 손에는 이미 죽은 시체의 멱살을 쥐고 있다.
레녹이 그녀의 전신에서 피어오르는 기이한 마력에 얼굴을 굳힌 그 순간
주위를 휙휙 둘러본 마이야가 순식간에 두 사람을 향해 시선을 마주쳤다.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