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505
약먹는 천재마법사 505화
중간결산(6)
차르르륵……!!
빠르게 만개하는 신상의 눈동자를 보며 레녹은 생각했다.
‘신중해야 한다.’
박사의 설명을 들은 순간부터 알고 있었다.
구세계의 유물과 정보를 취합하는 중간결산.
복마전에서 진행되는 이 결산이 레녹에게 있어 상당한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걸.
다른 이들은 구세계의 유물이나 기록을 찾아다니는 것으로밖에 결산에 참가할 수 없지만 레녹은 다르다.
1세계와 2세계의 정보란, 다름아닌 레녹 자신이 직접 플레이했던 게임의 지식 그 자체.
구세계의 존재가 실제 현실인지, 아니면 게임에 기반한 세상이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 두 가지 개념이 강력한 연관성으로 묶여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
이 세계에서 좀처럼 쓸모없던 레녹의 게임 지식이,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점에 와서야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레녹은 그것을 반쯤 확신하는 이 시점에서도 섣불리 게임 지식을 떠벌리는 대신 암리타의 사망이라는 정보를 먼저 꺼내 들었다.
‘급하게 갈 이유는 없어. 결산 과정과 분위기만 파악하면 충분해.’
다른 멤버들의 말을 생각하면 이러한 결산이 비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다는 사실은 틀림없다.
그렇다면 굳이 이 시점에 레녹이 기억하는 게임 지식을 먼저 꺼내 들기보다는, 안전한 성과를 먼저 내놓는 것이 우선.
암리타의 사망이라는 정보는 틀림없이 레녹이나 판데모니엄의 입장에서도 중요한 정보지만,
오히려 교단의 입장에서 너무나 치명적인 타격이기에, 그 비밀이 오래 지켜질 수 없을 것이다.
제 아무리 교단이라 해도, 암리타의 저울 술식이 봉인되었다는 사실을 완벽하게 감추기란 불가능한 일.
조만간 교단의 10사도가 사망했다는 사실이 대륙 전체에 퍼지게 될 터.
레녹은 그 전에 미리 정보를 먼저 유출함으로서 상대적으로 다른 이들에 비해 선점효과를 누릴 생각이었던 것이다.
‘암리타의 사망은 외신들과도 직접 얽혀 있던 문제인 만큼, 구세계와 관련된 정보 판정을 받을 건 틀림없다.’
문제는 그 변동성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에 대한 것일 뿐.
정보의 가치가 떨어지기 전에 이득을 봐야한다는 생각에 일단 내뱉기는 했지만, 그 중요성은 레녹조차 쉽게 짐작하기 어렵다.
찰칵, 찰칵!!
신상의 두 얼굴 중 한쪽 얼굴의 눈동자 다섯개가 빠르게 뜨이고, 순식간에 여섯 번째 눈으로 넘어간다.
“6단계 이상이군.”
“순수한 정보의 경우에는 유물에 비해서는 변동성이 낮을 텐데…… 그런데도 저 정도라고?”
“더 올라간다.”
“말도 안 돼. 빅터는 이번 결산에 처음 참가하는-”
사브리나의 말은 신상의 일곱번째 눈동자가 개안하기 시작하는 것과 함께 멈췄다.
“…… 7단계. 소류가 가져온 1세계의 넘버링을 넘어섰어.”
“지금부터는 세계의 운명과 직접적으로 관계된 정보일 가능성이 있다. 신중하게 확인해야…….”
“조용히 해라.”
마이야가 중얼거렸다.
“아직 남아있는 것 같으니까.”
“……!!”
일곱 번째 눈동자부터 천천히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한 신상의 반응.
침을 줄줄 흘리던 혈노와 취한 버논. 소류는 물론이고 무관심해 보였던 마이야까지 신상의 움직임을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
박사조차 아무런 말 없이 그 모든 순간을 관조하던 바로 그 순간.
찰칵.
여덟 번째 눈동자가 희미하게 꿈틀거린 상태로 멈춰 선다.
“…….”
어두운 극장 메인 홀을 비추는 여덟 개의 안광.
신상의 눈동자가 움직인 것은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버논이 입에 가져다 댄 술병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마이야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고, 소류가 차가운 시선을 멈춰 세웠다.
싸늘한 침묵이 흘렀다.
“8단계……!!”
“8단계 초입에 도달한 변동성이라고?”
“결산에 참가한 뒤로 이런 경우는 처음보는군…….”
지금까지의 결산을 아득하게 뛰어넘은 인과 조정치.
구세계의 유물이나 고위 아티팩트로는 근처에도 도달할 수 없던 결과다.
변동성의 단계 측정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이해하는 이들은 그 사실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 알고 있었다.
레녹의 말 한마디가 그만한 결과를 지녔다고 믿기 보다는, 신상의 기능이 고장 났다는 것이 오히려 타당해 보일 지경.
더 이상 섣부르게 의견을 교환하는 사람은 없다.
가만히 입을 다문 채로 레녹을 주시하는 일에 집중할 뿐.
그만큼 지금 일어난 일 자체가 믿기 어려운 중대한 분기점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박사, 8단계 변동성 수치는 실제로 어느 정도의 가치지?”
소류의 질문에 박사가 대답했다.
“구세계의 운명을 좌우하는 전쟁이나 초대형 프로젝트의 핵심 정보 정도. 이쪽의 역사로 치환하면 요르타의 만귀야행 정도는 되어야겠지.”
박사의 말에 마이야의 손끝이 살짝 떨리는 것을 레녹은 놓치지 않았다.
기계도시 마키나의 승천문을 이야기하지 않은 것은 아마 박사의 배려일 터.
“따지자면 이미 성립된 이론이나 전제 자체를 통째로 갈아치워야 하는 수준이다. 아직도 이 정도 변수가 남아 있을 줄은 몰랐어. 골치 아프게 됐군.”
박사가 골치아프다는 듯 말을 이었다.
“하지만 먼저 그것보다 확인해야 할 사항이 하나 있지.”
새하얀 털뭉치에 파묻힌 푸른 눈동자가, 여덟 번째 팔 위에 우두커니 서 있는 마법사에게로 향한다.
이 모든 순간을 직접 만들어내었으면서도, 아무런 반응도 없이 새카만 로브를 뒤집어쓴 가면술사.
다른 멤버들 역시 그 움직임을 조금이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것처럼 그의 반응을 주시하고 있었다.
박사는 그런 레녹을 보며 굉장히 즐겁다는 듯 묘한 목소리로 물었다.
“빅터. 어떻게 10사도 암리타의 죽음이, 구세계와 관련된 정보라는 걸 알고 있었지?”
“…….”
“8단계의 변동성은 단장의 지시를 받아 이 일을 시작한 뒤로…… 두 번밖에 나오지 않은 기록이야. 그중 하나는 크로켄 아실러스가 직접 가져온 것이었지.”
“음……!!”
“그 남자가…….”
레녹조차 경시할 수 없는 이름이 등장하자, 멤버들 중 몇 명이 날 선 기세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그 악어거인을 만나본 적이 있다면, 레녹이 했던 것처럼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했겠지.
“내 입으로 정보의 중요성과 변동성이 비례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이건 정도가 지나쳐. 관련된 정황에 대해서 물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박사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났다.
“의견을 듣고 싶군. 말해줄 수 있겠나?”
“…….”
레녹은 박사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고민에 잠겼다.
설마 암리타의 죽음에 대한 정보가 이렇게까지 큰 변동성으로 평가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
그만큼 암리타의 사망과 그 죽음에 얽힌 전말 자체가 구세계의 인과를 측정하는 데 있어 중요한 일이었다는 말인가.
‘암리타의 불멸성 때문이겠지.’
암리타는 신녀와 사도의 힘을 동시에 거머쥐고 틀림없이 불멸과 비슷한 어떤 힘을 얻었고.
레녹은 자성영역 광라무해궁을 통해 그것을 훼손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한 정황이 구세계의 정보나 인과에 있어 치명적인 변수로 판정되었다면 마냥 이상한 일은 아닐 터.
다만 그런 사실을 지금 여기 모인 이들에게 설명해 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레녹이 침묵을 지키는 사이 다른 이들이 빠르게 의견을 주고받았다.
“아니, 그것보다 확실한 정보냐? 그 암리타 프라우벨이 뒈졌다고. 내가 아는 이단심문관 말하는 거 맞지?”
버논이 술을 벌컥벌컥 들이켜면서 물었다.
“10위 안쪽의 사도가 사망했다면 그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을 리가 없을 텐데.”
“정확한 시기는? 사망한 지는 얼마나 시간이 흘렀지?”
사방에서 쏟아지는 질문에 레녹이 느릿하게 대답했다.
“한 달이 지나지 않은 일이라고만 알고 있다.”
“믿을 수가 없군…….”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앉아 있던 꺽다리 인형, 체비엔이 말했다.
“교단 최고위 사도에게 걸려 있는 저주는 한두 가지가 아니야…… 특히 암리타 같은 존재가 죽었다면, 그 소식이 요르타에 들리지 않았을 리가…….”
“…….”
체비엔의 인형 눈동자가 기이한 안광으로 번들거렸다.
“그걸 정보라고 내세우고 싶다면 좀 더 명확한, 증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증거라.”
“10사도 암리타 프라우벨은 사도가 되기 전에도 이단심문관으로 유명한 신도였다. 알고 있겠지?”
차가운 시선을 레녹을 향해 돌려세운 소류가 의견을 보탰다.
“성전 당시 그녀에게 걸린 저주의 총량를 생각하면, 암리타가 사망한 직후 저주의 소멸을 군령도시에서 인지했어야 정상이다. 대륙의 거의 모든 개념저주는 요르타에서 관측되고 있으니까.”
소류가 재차 물었다.
“암리타의 저울 술식이 교단 내부에서 전략적으로 지니는 가치를 생각한다면, 좀 더 확실한 검증이 필요해 보이는데.”
무슨 의미인지는 이해했다.
암리타 본인이 죽었다면 틀림없이 관측됐을 저주의 소실. 그 소란이 군령도시 요르타 내부에서 들리지 않았을 리가 없다.
소류와 체비엔은 그 사실 때문이라도 레녹이 언급한 정보에 대한 추가적인 설명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레녹은 그 말을 듣자마자 어째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대략적으로는 이해하고 있었다.
아마 암리타가 이젤의 몸을 빌려 다시 태어난 직후 레녹에게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겠지.
2사도가 회수한 본래 암리타의 육신 자체가 죽지 않았기 때문에, 그 육신에 걸린 저주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면 놀라운 일은 아니다.
정신이 죽고 육체만이 남는다면, 그 육신에 걸린 저주가 소실되지 않는 것도 일견 당연한 일.
하지만 암리타의 죽음에 레녹 본인이 밀접하게 얽혀 있는 만큼, 그 전말을 여기서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섣부르게 거짓말을 했다가는 오히려 괜히 꼬리를 잡혀서 일이 커질지도 모르는 상황.
처음부터 해야 할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팔짱을 낀 채로 살짝 고개를 기울인 레녹이 대답했다.
“말할 수 없다.”
“암리타가 사망한 장소는? 지금 그 시체는 어디에 있지?”
“말할 수 없다.”
“10사도를 죽인 사람은 누구냐?”
“글쎄.”
“……이 모든 정보의 출처는?”
점차 싸늘해져 가는 주변의 분위기를 확실하게 실감하며 레녹이 웃었다.
“난 잘 모르겠군.”
그 순간, 극장 안쪽에 밀어닥치듯 섬뜩한 살기가 터져 나왔다.
마치 한 마리의 포식자가 자신을 향해 아가리를 벌린 것만 같은 짙은 야수성의 냄새.
레녹이 근래 직면했던 그 어떤 괴물이나 초인보다도 강렬하고 노골적인 적의.
화악!!
순식간에 신상의 팔 위에 올라탄 근육질의 남자, 로기어가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로 레녹의 옆에 서 있었다.
근육질의 거체가 고개를 숙이고 가면을 내려다본다. 얼굴까지 문신이 들어찬 얼굴이 섬뜩하게 무표정했다.
고개를 돌리지 않는 레녹의 가면을 향해 시선을 낮춘 로기어가 말했다.
“야, 난 지금 장난할 기분이 아니야.”
“…….”
“사도가 죽었다는 말을 지껄였다면, 그만한 설명까지 할 생각으로 입을 털었어야지. 자꾸 비협조적으로 나올 거냐?”
“정보의 진위성은 교차검증이 끝난 걸로 아는데.”
레녹이 여유롭게 대꾸했다.
“인과 변동성이라는 걸 저쪽에서 판단해서 판정을 내렸으면 끝난 일 아닌가?”
“…….”
“말할 수 없다면 말할 수 없는 거다. 그 의미조차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면, 더 이상 해줄 말은 없군.”
“그래?”
빠르게 고조되어가는 긴장감 속에서, 로기어가 입매를 꿈틀거렸다.
“그럼 말이 나오게 만들어야겠군.”
콰아아앙!!!
그 순간 로기어의 팔이 그 자리에서 사라지는가 싶더니, 레녹의 명치 앞에서 나타나 그대로 충격파를 터트렸다.
움직이는 순간조차 제대로 확인하기 어려운 초고속의 일장. 그 자리에서 허리 위쪽이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은 가열이다.
하지만 그 순간 레녹의 앞에 빼곡하게 늘어선 수십 갈래 마력사가 겹겹히 중첩되어 그 일격을 받아냈다.
끼기긱!!
정면에서 로기어의 선공을 받아내는 것은 물론이고, 실의 장력을 절묘하게 조절해 파도처럼 충격을 바깥으로 흘려내는 경지.
레녹의 로브가 희미하게 펄럭인 직후, 등 뒤로 몰아친 아음속의 공기가 원형의 고리를 그리며 극장 관객석 뒤쪽을 강타했다.
뻐어어엉!!
이면팔비 신상의 거체가 그 충격에 희미하게 흔들리고, 팔을 떠나 쏘아진 충격파가 극장 홀 사방을 난자한다.
관객석의 중앙에 거대한 길이 새롭게 생기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로기어가 웃었다.
“좋아, 나름 믿는 게 있다 이거지?”
그렇게 말한 로기어의 오른손에 박힌 문신이 은은한 붉은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계속해 봐.”
“로기어, 그만해!!”
찌지직!!!
로기어가 묶인 손으로 마력사 다발을 움켜쥔 순간, 손등 위로 적색의 문신이 발광하며 마력사 자체를 갈기갈기 끊어버린다.
예상치 못한 그 현상에 대해 레녹이 무어라 반응하기도 전에 한 번 더 찔러 들어오는 로기어의 손날.
일장을 내밀어 턱 아래서부터 가면 근처를 노리는 의도는 뻔하다.
이 자리에서 레녹의 가면을 벗기고 정체를 공개. 동시에 빌미를 잡아 정보를 토해내게 하겠다는 속셈인가.
로기어가 처음으로 시비를 걸어온 순간부터 여기까지 10초도 지나지 않았다.
충동적으로 움직였다기에는 상당히 기민한 행동. 처음부터 레녹을 어느정도 노리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게 맞겠지.
상응하는 대처가 필요했다.
로기어의 손이 레녹의 가면을 부숴버릴 것처럼 힘줄이 튀어나온 그 순간, 레녹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번뜩이고.
오히려 로기어의 손을 움켜쥔 채로 제자리에서 다시 나타났다.
키잉!!
가면을 노린 손을 그 자리에서 붙잡아, 역으로 가만히 내려놓는 레녹의 모습.
아무런 마력도 담겨 있지 않은 그 행동에 본능적으로 로기어가 그를 후려치려던 그 순간, 레녹이 말했다.
“술식각인, 행동을 통한 조건부 동작발현인가?”
“……!!”
“아무리 편의성이 강하다고 해도 맨정신으로 이런 짓거리를 하는 사람은 흔치 않지.”
방금 로기어가 선공을 날린 직후 허공에서 알아서 술식이 조립되며 마력사를 통째로 끊어냈다.
강력함에 비해 이상할 정도로 간결한 구현시간. 동시에 주먹 사이에 새겨진 문양이 빛났다는 흔적.
특정한 동작을 통해 피부에 새긴 술식을 활성화, 그를 통해 필요한 술식을 전투 시에 빠르게 구축해 사용하기 위한 각인의 일종이다.
별다른 영창이나 수인을 맺지 않고서도 술식을 사용할 수 있다는 편의성이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한번 새긴 술식을 바꾸거나 무르기 어렵고
반드시 특정 행동을 거쳐야 한다는 조건부 제약 때문이라도 술사 중에서 이러한 방식을 선택하는 이는 많지 않다.
“선천적으로 마력량이 많지만, 반대로 마력조작능력은 떨어지는 경우가 아니라면 보통 선택하지 않아. 그럴 필요도 없지.’
레녹이 그렇게 말하며 마주 잡고 있던 로기어의 손을 놓고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그런 로기어의 손 위에서 기묘한 소리를 내며 타들어 가는 유리관의 모습.
치이익……!!
로기어가 그 물건의 존재를 온전히 인식한 그 순간, 손안에서 터져 나온 폭발이 순식간에 로기어의 몸을 집어삼키고 빛의 구체로 화했다.
콰아아아!!!
자신이 일으킨 폭발을 점멸로 피해 신상에서 내려온 레녹이 로브를 훌훌 털었다.
마나공진 범위장악 공명소이탄(MAPHI). 통칭 마피아라 불리는 기계도시의 특주물품.
빅터의 신분으로는 밀림에서도 한번 사용한 적이 있는 만큼 부담은 없다.
철저하게 후폭풍을 조절한 소형 폭발은 오로지 로기어의 몸을 정확하게 뒤덮고 모든 화력을 쏟아부을 뿐.
그 과격한 대처에 할 말을 잃은 다른 멤버들을 무시한 레녹이, 슬쩍 시선을 뒤로 돌리고 웃었다.
공명소이탄으로 일으킨 폭발이 그 자리에서 빠르게 규모를 줄여간다.
빛의 구체가 사라진 그 자리에서 나타난 것은 양손으로 유리관을 거머쥔 채, 온몸에서 연기를 내뿜는 로기어의 모습.
“후우우우…….”
로기어는 레녹이 폭발을 터트린 그 시점에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하고, 양손으로 소형 소이탄을 붙잡고 그 반동을 최대한 억눌러 버렸던 것이다.
반응속도나 판단이라기보다는, 순전히 짐승에 가까운 본능의 영역. 하지만 그 직감이 로기어가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 것을 막았다.
레녹은 그런 로기어를 보며 가만히 가면 아래쪽을 쓰다듬었다.
“맨몸으로 버틸만한 화력은 아닐 텐데. 엄청난 내구력이군. 아니, 그게 아니라면…….”
그 몸이 급격하게 새카만 털로 뒤덮이며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애초에 인간도 아니었나?”
“크르르릉……!!!”
순식간에 3미터에 가까운 거체. 반인반수의 모습으로 화한 은색의 늑대인간이 레녹을 내려다보며 낮은 신음을 흘렸다.
극장 무대 안으로 흘러들어 오는 달빛을 받은 로기어의 몸이 눈부신 은빛으로 빛나는 것과 동시에,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섬전처럼 허공에서 몸을 반 바퀴 뒤집어, 짐승의 것으로 변한 앞발을 그대로 레녹의 등허리에 때려 박으려던 그 순간.
쩌어엉!!
웨어울프의 팔이 거대한 얼음덩어리에 둘러싸여 그대로 멈춰 섰다.
순식간에 사방에서 불어닥치는 싸늘한 한기.
그 끝에서 손을 내민 싸늘한 표정의 청년, 소류가 말했다.
“거기까지 하지.”
“소류…….”
로기어가 낮게 으르렁거리며 자신의 손에 들러붙은 얼음덩어리를 박살 냈다.
“방해할 생각이냐?”
“말할 수 없다는 대답이 말 그대로일지도 모른다. 기아스나 맹세에 묶여서 비밀을 누설할 수 없는 상태일 수도 있지.”
서슬 퍼런 짐승의 포효에도 소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레녹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단순히 말할 생각이 없는 것 뿐일 수도 있지만, 그걸 알아내기까지 시간이 너무 걸려. 방금 공방을 보니 확실하군.”
“…….”
“여기 모인 전원의 판정이 끝난 만큼, 각자 가져온 성과에 따른 결과 정산이 우선이다. 싸우고 싶다면 나중에 알아서 해.”
“사도가 뒤졌다는 소식을 들고 온 놈이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는데, 그냥 넘어가겠다고? 제정신이냐?”
쿠우웅!!
박살 난 얼음덩어리를 짓밟은 웨어울프가 성큼 소류의 앞에 선다.
거대한 늑대의 얼굴로 소류를 바라보던 로기어가 이빨을 드러내며 말했다.
“난 지금 저 자식한테 그걸 물어보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는데.”
당장이라도 싸울 것처럼 날이 선 분위기.
하지만 극장에 모인 누구 하나 그 모습을 말리려는 사람이 없다.
로기어와 소류 양측의 주장에 이유가 있고, 어느 쪽이든 합당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터.
옆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레녹이 손바닥을 짝 마주치며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하지. 좋은 생각이 있다.”
“지금 뚫린 입이라고 지껄일 처지가-!”
레녹이 박수를 친 순간 트리거에 맞춰서 대천사의 연민을 발동.
파바박!!
직후 로기어의 아가리 안쪽에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유리관 대여섯 개가 가득 들어찼다.
삽시간에 달라지는 주위의 반응을 보며 레녹이 웃었다.
“시끄러운 개한테는 일단 입마개를 채워두자고.”
“잠깐만, X발 그건 입마개가 아니잖……!!”
로기어의 입에 들어찬 것이 직전에 레녹이 터트린 폭탄이라는 것을 깨달은 사브리나가 새된 비명을 내지르고.
콰아아아앙!!!
눈부신 광채와 함께 웨어울프의 몸이 거대한 섬광에 뒤덮였다.